소설리스트

동창-77화 (77/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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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투

    기이한 열기를 품고 시작된 대련은 점점 더 치열해져만 갔다.

    가장 처음 나선 자들은 동창 쪽에서 가장 무공이 높다고 알려진 번역 중 한 명이었고, 금의위 쪽에서는 그들도 생소한 얼굴이었다. 바로 무당에서 온 자들 중에 한 명이 먼저 나선 것이었다.

    동창과 금의위의 대표로 나온 둘의 대련은 흉흉했다. 하나 둘 새겨지는 도흔과 검흔은 대련을 빙자한 생사결 같았지만 누구 하나 막아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점에서 두 세력의 부딪침은 황궁에서 어떤 세력이 주도권을 잡을지 판가름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런 흉흉한 모습은 그만큼 동창과 금의위, 두 세력 모두가 이번 대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첫 번째 대련은 동창에 속한 번역의 목에 무당 출신인 무인의 검이 겨눠짐으로써 금의위의 승리로 돌아갔다. 상대의 목에 겨눈 번역의 군도가 주먹 한 개의 차이로 멈춰선 것을 보면 간발의 차이였다. 두 사람의 실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동창의 패배로 끝이 났다.

    "하하하. 그렇지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알았지."

    호탕하게 웃는 가영호의 웃음에 만태산과 금무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을 벌인 사람은 만태산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금무정도 끼어들게 되었다. 이미 이번 일은 만태산 혼자서 처리할 만한 수준을 넘어섰고 두 세력 간의 자존심 싸움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호탕하게 웃는 가영호였지만 그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만 갔다. 황궁의 고수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수련을 한 무당의 제자들보다 그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이대 제자라고 하지만 무당이 키운 아이들이니 만큼 여타 비슷한 또래의 수준들 보다 높을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수월하게 이길 줄 알았던 가영호였다. 하지만 막상 그 과정을 지켜보니 만만치가 않았다.

    '잘못 하면…… 큰 망신을 당할 수도 있겠어.'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는 가영호였지만 속으로 침음을 삼켰고, 금무정과 만태산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만 갔다.

    다음으로 나선 사람은 인학과 금의위에 속한 고수였다. 꽤나 치열한 싸움이었지만 필사적으로 임하는 인학의 기세에 금의위의 고수가 주춤했고 그 틈을 노린 인학의 도가 그의 머리 위로 휘둘러졌다. 빠르게 날아드는 도에 고개를 숙여서 피한 그였지만 이미 예상한 듯 인학의 입에서 커다란 기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압."

    횡으로 휘둘러진 도가 그 상태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갑자기 변한 도초에 상대하던 금의위의 몸이 느리게 반응했고 결국 피가 튀었다. 가슴이 갈라지며 날아가는 금의위의 모습에 모두의 입에서 걱정스러운 듯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개의치 않던 인학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다행히 가슴을 베인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그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고 더 이상 무기를 들고 대련을 하지 않기로 합의를 본 두 세력이었다. 그렇다고 그 흉흉한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인학의 행동이 금의위에게 달가울 리는 없었다.

    맨손으로 박투를 벌이자는 말에 두 세력의 수장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지어졌다.

    만태산과 금무정은 상대로 나온 금의위 중에 남은 두 명이 무당에서 왔다는 사실을 눈치 챈 상황이었다. 검으로 유명한 무당인 만큼 그들의 손에서 검을 떼어 놓는다면 동창의 승산이 올라갈 것은 당연했다.

    반면 가영호도 웃음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무당에는 검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출신이 그곳인 만큼 그 사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제 금의위에서 나올 사람은 그 덩치가 남다른 황세웅이었기 때문이다.

    '팽가에서 뒤를 봐주는 아이니, 그 실력 또한 뒤쳐지지는 않겠지. 저 체격으로 박투술에서 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것이다.'

    인학의 승리로 밝아진 얼굴의 동창이었지만 늠름한 모습으로 올라서는 황세웅의 모습에 이내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황세웅의 덩치에도 위축되지 않는 번역의 모습에 일말의 기대를 가지는 그들이었다.

    커다란 덩치의 황세웅이었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번역이었지만 황세웅은 단순하게 힘만 센 자가 아니었다. 비호처럼 날렵한 그의 움직임에 기함을 터뜨리며 뒤늦게 거리를 벌리려고 노력하는 번역이었지만 황세웅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뻐억.

    커다란 주먹을 막아서는 번역의 팔에서 커다란 타격음이 울렸고 그 충격에 뒷걸음질 치는 번역에게 다시 한 번 황세웅의 묵직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채 자세를 잡지 못한 번역의 복부에 솥뚜껑만한 황세웅의 주먹이 박혀들었고 그의 몸이 들썩였다.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황세웅의 공격에 결국 동창의 번역이 무릎을 꿇으면서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옆구리를 향해 황세웅의 발이 날아들자 그 발에 나가떨어진 자가 지켜보던 동창들이 있는 곳으로 떨어졌다.

    "저런……"

    황세웅의 도발에 얼굴이 구겨진 그들이었지만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황세웅의 행동에 커다란 웃음을 터뜨린 사람은 가영호였다. 이전에 인학에게 당한 그 수모를 황세웅이 되갚아줬기 때문이다. 비록 팽가의 아래에 있는 아이였지만 꽤나 마음에 드는 행동이었다.

    그와 반대로 만태산과 금무정의 얼굴은 눈에 보인 정도로 찌푸려져 있었다. 황세웅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는 만태산이었지만 금무정은 다른 이유에서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이 다음이…… 아삼이다. 애초에 만태산의 말처럼 두 번째로 자리를 했어야 했나? 차라리 다섯 번째로 순번을 정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처음 아삼을 그들 무리에 넣었다는 만태산의 말에 화를 내보인 금무정이었지만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그 순번이라도 유리하게 정해서 되도록이면 아삼의 실력을 드러내지 않게 하고 싶었던 그였다.

    창피를 주고 싶었는지 두 번째로 아삼의 순번을 정하려던 만태산을 만류한 금무정은 그를 마지막 순번으로 정해서 되도록이면 이 일에 끼어들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마지막은 가장 강한 자가 맡아야 된다는 만태산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두 번째가 더 좋았을 지도 몰랐겠군. 무당의 사람들과 맞붙는다니…… 이제 어떻게 할 테냐? 이대로 네 진면목을 보일 테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는 금무정이었다. 실상 자신조차도 저 아이가 가진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드러나는 기세로는 다른 요원들과 비슷했지만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는 아삼이었다. 반듯한 청강석이 여러 장 깔린 연무장 위를 올라서는 아삼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무언가를 고심하는 듯한 눈치였다.

    '어떻게 한다? 이대로…… 숨기는 것이 좋을까? 괜히 위험을 자초하느니 그냥……'

    이내 결심을 하듯이 마음을 다잡는 아삼의 귀로 날카로운 음성이 파고들었다.

    - 무조건 이겨라. 네놈 목숨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꼭 이겨야만 한다!

    들리는 전음에 인상을 찌푸린 아삼이 고개를 돌려서 한 쪽을 바라봤다. 두 눈을 부라리며 자신을 노려보는 만태산의 모습이 그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전음을 날린 자의 모습을 본 아삼은 이내 결심을 굳혔다.

    '대충 시늉만 하고 내려오자.'

    그런 아삼의 모습을 바라보던 왕호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스쳤다. 드러나는 기세도 별 볼 일 없는 놈을 상대로 무당의 제자들을 내보낸 가영호의 처사가 못마땅했다. 그리고 그 분을 앞에 있는 자에게 풀기로 결심한 그가 걸음을 내딛었다.

    '흥! 무당의 면장이 얼마나 무서운지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마.'

    "왕호라고 하오."

    "……."

    포권을 하며 인사를 건네는 왕호였지만 상대는 목례만 할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왕호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분노한 두 눈은 조금씩 살기를 내비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은 처음 갖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왕호의 몸이 아삼을 향해 달려들었다. 성난 그의 표정과 달리 신묘한 그 움직임은 마치 구름이 흐르듯 부드러움을 띄고 있었는데 무당의 대표적인 보법 중 하나인 유운보법(流雲步法)이었다.

    부드러운 움직임 속에 보이는 섬뜩함에 뒤로 물러선 아삼이 그를 경계했고 그 움직임에 코웃음을 친 왕호가 그의 옆을 잡으며 가볍게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눈에서 느껴지는 살기가 아니라면 그저 장난스럽게 내뻗는 듯한 손짓이었다.

    경시하는 마음은 애당초에 가지고 있지 않았던 아삼이 다시 뒤로 물러섰고 원래 아삼의 얼굴이 있던 자리에서 거둬진 왕호의 손에서 '퍼엉'하고 공기가 터져나갔다.

    들려오는 소리에 미간을 꿈틀거린 아삼이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내기를 머금은 그 주먹이었지만 빠르게 뻗어진 주먹을 보고 눈에 이채를 띤 왕호가 내기를 돌리면서 그 주먹을 받았다.

    튕겨져 나올 주먹에 대비해서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아삼은 순간 휘청거리는 자신의 몸에 어리둥절했다. 올린 왕호의 손이 아삼의 주먹을 받아내면서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겼고 휘청거리는 아삼의 다리를 걸고 그대로 잡아당기자 균형을 잃은 아삼이 순식간에 하늘을 바라봤다.

    쿠웅.

    넘어진 아삼의 몸통을 밟으려는 왕호의 움직임에 급히 바닥을 구르자, 아삼을 놓친 왕호의 발에 청강석이 깔린 단단한 바닥이 들썩거리면서 실금이 새겨졌다.

    "황궁의 관인들은 부끄러움이 없는가? 나려타곤이라니. 쯧."

    아삼의 행동에 혀를 차던 왕호가 그를 힐난했지만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아삼이었다. 처음 접하는 무공이었다. 그동안 그가 접한 무공은 모두가 직선적이고 파괴적인 무공이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무공은 처음이었고 그 속에 엄청난 위력이 숨어있었기 때문에 아삼으로서는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앞에 있는 상대가 자신의 일수에 겁을 집어먹은 거라고 판단한 왕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내 다시 보법을 밟아가며 그를 향해 들이치자 이전보다 훨씬 더 멀리 뒤쪽으로 물러서는 아삼이었다.

    - 무슨 추태냐! 뒤로 물러서다니!

    들려오는 만태산의 전음에 속으로 욕을 내뱉던 아삼이 그것을 무시하고 왕호를 바라봤다. 생소하기도 했지만 호승심도 일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재단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쉽게 내비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다시 들이치는 왕호가 이전과 다르게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진각을 내딛음과 동시에 뻗어진 주먹이 순식간에 아삼의 얼굴을 향해 다가왔고 급히 고개를 돌린 아삼이 그 손을 쳐냈다. 그와 동시에 그의 가슴을 파고드는 쫙 펴진 왕호의 손.

    다급히 기운을 끌어올린 아삼의 주먹이 그의 장을 막아섰고 터져 나오는 기운에 휩쓸려 다시 뒤로 튕겨나가야만 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만태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삼을 바라볼 뿐이었다. 금무정은 걱정스러운 듯 그를 바라봤고, 가영호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기운을 털어낸 아삼이 다시 왕호를 바라봤다. 단지 꼭두각시놀음을 하기 싫었지만 막상 상대에게 밀리는 자신을 보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커다란 울림이 들려왔다. 자신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수법이었다.

    - 고민할 게 있느냐? 쉽게 제압할 수 없는 놈이라면 마음껏 싸워보거라. 낭중지추라 했다. 언젠가는 알려질 일인데 조금 더 빨리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큰 상관은 없지 않겠느냐?

    어디선가 들려오는 전심어서에 쓰게 웃은 아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규화보전의 강력한 내기. 그 음한 기운만 나타내지 않는다면……'

    마음을 다잡은 아삼이 다시 들이치는 왕호를 맞았다. 달려드는 놈의 몸에 먼저 주먹을 뻗자 급히 옆으로 비켜서는 왕호였다. 그 모습에 다시 퇴법을 날렸고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 아삼의 모습에 왕호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

    '웃어? 이 상황에서? 이런 미친놈을 봤나.'

    아삼의 얼굴에 걸린 미소를 본 왕호의 눈이 번뜩였다. 순간 기운을 끌어올린 그가 아삼의 발을 붙잡았다. 아릿하게 저려오는 손에 미미하게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 고통을 참던 왕호가 붙들린 아삼을 바닥으로 내팽개쳤다.

    콰앙.

    바닥이 흔들리면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금이 간 청강석이 눈에 들어오자 붙든 발을 놓으려던 왕호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내기를 두 팔에 모았다.

    잡힌 발과 함께 크게 회전한 아삼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대로 처박히면 위험할 거라는 생각에 바닥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면서 내기를 끌어올리는 아삼이었다. 단전에 자리 잡은 기운이 순식간에 뻗어 나오면서 바닥을 후려쳤다.

    커다란 폭음과 함께 갈라진 바닥이 눈에 들어왔고 그 반동으로 몸을 회전시킨 아삼이 왕호라는 무당의 제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손이 뻗어졌다.

    '분뢰수.'

    짧은 순간 뻗어나간 아삼의 손이 왕호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두 팔에 모은 내기로 아삼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던 왕호였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은 그 빠른 공격은 자신이 막아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퍼어엉.

    박혀든 장에 몰려든 아삼의 내기가 터져나갔고 왕호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지면서 뒤로 날아갔다. 딱딱한 청강석 위를 미끄러지듯 구른 왕호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고 몸을 추스르려 노력하던 그가 휘청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으윽."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나오는 신음과 함께 앞섬까지 적신 피에 입을 닦아낸 왕호가 살기어린 눈빛으로 아삼을 바라봤다.

    "이런…… 실력을 여태, 숨기고 있었던가?"

    "……."

    되묻는 말에도 답이 없는 아삼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던 그가 아삼을 향해 뛰어들었다. 다시 뻗어낸 그의 장에 아삼도 주먹을 내질렀고 부딪친 장과 주먹에 공기가 터져나갔다.

    이미 내상을 입은 왕호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고 그 행동에 아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큰 힘이 섞이지 않은 장이었다. 마치 자신의 힘을 이용하려는 듯한 그 모습에 의아해하던 그의 눈에 물러선 왕호의 모습이 가득 들어왔다.

    일부러 물러선 그가 주변에 있던 같은 무당의 제자들 손에 들린 송문검을 빼들었다.

    차장.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모두가 놀라서 그를 바라볼 때, 검을 빼든 왕호가 바닥을 박차며 내기를 끌어올렸다. 모여든 기운과 함께 검신에 푸른 기운이 맺혀들었고 그가 휘두른 검이 아삼의 전방을 가득 채워오는 것 같았다.

    수많은 검영과 함께 뿌려지는 검초에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무당의 제자들이 기겁하며 소리를 높였다.

    "유운검(流雲劍)!"

    무당이 자랑하는 검법이 왕호의 손에서 재현됐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당새아의 창영을 떠올리던 그가 그것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검영을 보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미 이성을 잃은 왕호가 살초를 뿌려댔고 아삼의 발이 무영보법을 밟아갔다. 분뢰공의 묘와 함께 최대한 음기를 자제시킨 규화보전의 기운이 아삼의 몸을 왕호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그 모습에 모두가 눈을 부릅 뜨면서 아삼의 모습을 좇았고 어느새 왕호의 옆에 나타난 아삼의 손이 다시 한 번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퍼어엉.

    "끄으윽."

    터져나간 내기에 그대로 뒷걸음질을 치면서 물러서던 왕호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핏물과 일그러진 표정으로 아삼을 노려보던 그가 그대로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었고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무당의 제자들이 그를 향해 다가섰다.

    "왕호!"

    함몰된 가슴과 함께 피를 토하고 쓰러진 왕호는 이미 절명한 상태였다. 눈을 뜨지 못하는 그 모습에 분을 참지 못한 그들이 검을 뽑아들며 아삼을 노려봤다.

    난입한 그들이 뽑아든 검에 그곳에 시립해 있던 동창의 요원들도 아삼을 에워싸면서 도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뒤늦게 금의위도 위로 올라서면서 서로 대치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처럼 긴장감이 흘렀지만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들은 아삼이 보였던 마지막 움직임을 떠올리며 그들을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내공이 가득 실린 목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멈춰라!"

    그 일갈에 실린 엄청난 공력에 올라선 자들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렸고, 위에서 멍하게 서있던 금무정을 비롯한 세 명이 급히 아래로 내려왔다.

    "도지휘사(都指揮使)를 뵈옵니다."

    도지휘사 주재(朱梓)와 정화. 그리고 오건휘의 등장에 모두가 고개를 조아렸다. 갑작스런 그들의 행차에 서로 대치하던 동창과 금의위의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어 갔다.

    모두의 뇌리에 아삼이라는 번역의 이름을 각인 시킨 채로.

    부서진 청강석을 바꾸던 인부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빨리 일을 끝내라는 환관의 말에 무거운 청강석을 나르던 그들이 부서진 조각을 주워 모았다.

    "젠장, 누가 여기다 오줌을 갈긴 건가? 무슨 물이 이렇게 흥건해?"

    부서진 청강석 사이로 고인 물을 보던 인부의 투덜거림이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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