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68화 (68/204)
  • 0068 / 0204 ----------------------------------------------

    발본(拔本)

    아삼과 인학, 송상호와 몇몇의 신입 동창이 모여서 무리를 이뤘고 당두 한 명이 그들을 통솔했다. 인학의 지위가 번역이라고 하지만 아직 그 경험이 부족했고 관군과 함께 퇴로와 길목을 막는 일이라 지휘권을 넘길 수는 없었다.

    무리를 이뤄서 모인 그들의 근처로 수십명의 관군이 배속되었다. 물론 관군들의 통솔도 동창의 당두가 맡았다.

    "우리에게는 관군과 함께 길목을 막으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리를 고수하거라. 특이한 일이 생긴다면 즉각 보고를 올리고 위급한 사항은 각자의 재량에 맡긴다. 퇴로를 막는 만큼 그 역할 중하니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할 것이다."

    "예."

    "두 눈 크게 뜨고 잘 지키거라.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당두의 말에 모여 있던 요원들이 답을 했고 이내 관군과 함께 그 길목을 막기 시작했다.

    하북성과 산서성의 경계의 근접한 곳에 위치한 '삼청객잔'이었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놈들의 근거지에 놀란 그들이었지만 다행히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적발을 했고 소탕을 하게 되었다.

    퇴로는 관군과 동창의 번역, 신입요원들이 막고 객잔의 안에는 무림에서 일류라고 부를 수 있는 당두급 이상이 습격을 하기로 결정 내려졌다. 어느새 목표했던 삼청객잔의 십 장 밖을 포위한 동창과 관군이 그들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갑자기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 천요희의 아미가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그저 근처를 지나치는 무리라고 생각을 했지만 정확히 객잔을 포위하는 그들의 행태에 무언가 모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객잔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듯한 기운에 얼굴을 굳힌 천요희가 허공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무슨 일이냐?"

    그녀의 물음에 허공에서 나타난 사내가 부복하며 말을 이어갔다.

    "근방에 관군과 동창의 복장을 입은 자들이 깔려 있습니다."

    "뭐라? 관군과 동창? 그동안 네놈들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

    천요희의 다그침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그들이었다. 실상 천요희 정도의 고수도 이제야 눈치를 챈 마당에 그들이 뒤늦게 사실을 알려온 것도 용한 일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천요희였지만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분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천요희의 아미가 다시 꿈틀거렸다. 이내 잠시 생각에 잠겼던 천요희가 사내를 향해 손짓했고 그녀 앞에 부복을 했던 사내가 다시 허공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게 있느냐? 가서 네놈들의 회주를 불러오너라."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은호가 다급하게 방으로 들어서면서 천요희를 향해 예를 올렸다. 여유로워 보이는 그 모습에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판단한 천요희가 삼청회의 회주라고 칭하던 하은호를 매섭게 노려봤다.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냐?"

    "일……이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하은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고 멍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하은호의 모습에 천요희가 노성 띤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런 미련한 작자들을 봤나. 내 경거망동하지 말라 이르지 않았더냐?"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흐읍."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살기에 급히 내기를 끌어올리는 하은호였지만 그가 감당할 만한 살기가 아니었다. 핏발이 선 눈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그가 간절한 눈빛으로 천요희를 바라봤고 그 모습에 기운을 거둬들인 천요희가 화를 참지 못하고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지금 밖에 관군과 황궁의 고수들이 이곳을 포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 네놈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일들을 왜 저지르는 것이더냐?"

    "……."

    그녀가 후려친 탁자가 터져나가면서 하은호의 앞에 꽂혀들어갔다. 가공할 그 한 수에 식은땀만 흘리던 하은호가 더욱 고개를 숙이면서 몸을 납작 엎드렸다.

    "저희들은 그저…… 당분간은 지켜볼 요량으로……"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놓던 하은호의 두 눈이 다시 한 번 커다랗게 변했다. 천요희의 앞에서 납작 엎드린 자신의 눈앞에 무언가 박혀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점으로 '피웅'하는 소리와 함께 객잔을 향해 철시(鐵矢)가 날아들었다. 놀란 하은호가 재빨리 몸을 숨겼고 자신에게 날아드는 철시를 쳐낸 천요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뇌까렸다.

    "이런…… 벌써 시작된 건가?"

    피이웅. 피웅.

    날아드는 철시의 수가 조금씩 늘어났다. 객잔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듯 엄청난 수의 철시가 하늘을 수놓았고 그 아래 놓은 객잔에 떨어져내렸다. 일반적인 화살이 아닌 철시의 파괴력은 벽으로 세워놓은 나무를 꿰뚫을 정도였고 그 벽을 뚫고 안으로 꽂혀들었다.

    "으으아악!"

    "끄으윽. 아아악!"

    마치 벌떼가 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철시에 객잔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철시에 맞아서 쓰러진 사람들과 살려고 탁자 안으로 기어 들어가려는 사람들. 이미 그 모습을 잃어버린 객잔을 바라보던 천요희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에게 날아드는 철시와 함께 일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녀의 주변을 감쌌다. 날아드는 철시를 후려치면서 그녀를 보호하던 그들 중에 한 사내가 고심하는 천요희를 향해 말을 이었다.

    "어서 몸을 피하시지요."

    사내의 말을 듣던 천요희의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지금은 그녀가 몸을 뺄 수 없었다. 관군 따위는 언제라도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였고, 아직 자신의 제자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아희가 오지 않았다. 분명히 지금쯤 이곳을 향해서 오고 있을 것이야. 혹시라도 시기를 놓쳐서 관군들에게 곤혹을 당한다면…… 이대로 기다려야만 할까? 아니면 다시 교로 돌아가야 할까?'

    잠시 고심하던 천요희의 모습에 날아오는 철시를 쳐내던 무리 중 하나가 뚫려진 틈사이로 밖을 보고는 크게 소리쳤다.

    "저기……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사내의 말에 천요희가 고개를 들어서 밖을 바라봤다. 수하의 말처럼 붉은 연기가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붉은 연기가 올라온다는 것은 자신의 제자가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에 차가운 미소를 짓던 천요희가 그들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난다."

    그녀의 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날아오던 철시도 그쳤다. 이내 객잔의 입구와 창문을 통해서 검은 휘장을 휘날리던 누군가가 뛰쳐들었다. 화살을 날리고 바로 진입을 하던 동창 요원들이었고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던 천요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꽤 수준이 있는 자들이다.'

    "한 놈도 놓치지 말고 모두 잡아들이거라."

    첩형인 만태산의 외침에 객잔에 들어선 동창 요원들이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아직까지 목숨을 잃지 않는 자들을 향해 달려드는 그들이었다.

    불타버린 본가에서 망연자실해 있던 아희는 산서성에 있는 '삼청객잔'을 향해서 움직였다. 그 사이 혹시라도 다른 소식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자신이 드러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오문을 찾았고 불행 중 다행으로 몇 가지 소식을 알 수 있었다.

    황궁에서 나온 환관이 부모님의 시체를 거둬갔다는 것과 팽가에서 부모의 장례를 치뤘다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들려온 팽가라는 말에 이상한 곳과 얽혔다는 생각을 가진 그녀의 인상이 굳어졌지만 뒤를 이어서 남은 두 동생의 행방이 화산으로 이어졌다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살아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 있을 사부를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말을 몰아서 하북성에서 산서성으로 들어서는 사이 또 다른 소식을 접하게 된 그녀였다. 삼청객잔이라는 곳을 관군이 포위하고 있고 그쪽을 향해 백성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모든 길이 관군에 의해서 막혔다는 소식에 고민을 하던 그녀였지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사부의 모습에 멀리에서라도 소식을 알려야 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요."

    "하명 하십시오."

    허공에 나직이 내뱉은 아희의 말에 모습을 드러낸 사내가 부복을 하며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그 상황이 자연스럽다는 듯이 그자를 바라보던 아희가 말을 이어갔다.

    "관군이 포위하는 곳에 아직 사부님께서 계실 것 같아요. 아니 아직도 저를 기다리시겠죠. 저기 오른쪽에 있는 산의 중턱에서 신호를 보내고 그대로 교로 복귀하세요. 저는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사부님과 합류하죠."

    "저희가 끝까지 모셔야……"

    "그걸로 충분해요. 저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요."

    "아…… 알겠습니다."

    다시 몸을 숨기던 자들 중에서 몇 명의 기척이 사라지자 몸을 돌린 아희가 사부인 천요희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비교적 먼 곳에서 보고 있지만 객잔이 있을 곳이라고 추정되는 곳은 들려오던 말처럼 수많은 관군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고, 근처로 모여드는 백성들을 일일이 수색하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희는 관군에게 보이지 않게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때, 검은색 목면과 휘장을 두른 동창의 요원 한 명이 그녀를 붙잡았다.

    "멈추어라."

    "……."

    돌아서는 그녀의 몸이 우두커니 섰고 그 모습을 확인한 동창 요원이 말을 타고 있는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천천히 그 모습을 살피던 그가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여인 혼자서 돌아다닐 만큼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닌데…… 무림인인가?"

    "…… 그렇소."

    "무기는 어디에 있지?"

    "…… 강호인에게 그런 것은 함부로 묻는 게 아니오."

    "흐음…… 좋다. 호패를 볼 수 있을까?"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소? 나는 그저 시간이 걸릴 듯하여, 돌아가려던 참이었소만."

    "그런 것은 알 필요 없다. 협조하지 않으면 치도곤을 당할 것이다. 우선 말에서 내리는 것이 좋겠군."

    위협적인 그 말에 쓰게 웃던 아희가 말에서 내려서면서 고삐를 잡았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던 요원이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 순간 오른쪽에 있던 산의 중턱에서 붉은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먼 곳에서 그 연기를 확인한 그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인학! 요원 한 명과 함께 나를 따르거라. 다른 이들은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마라!"

    당두인 구영고의 말에 근처에 있던 인학이 뒤를 돌아봤다. 길을 막아서고 있는 많은 요원들이 그를 바라봤고 무표정한 얼굴로 한 곳을 바라보는 아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기운을 가지고 있는 자다. 무림인인가?'

    살수지무의 공능으로 알려오는 기운에 놀란 아삼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의 고삐를 쥐고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에 멍하게 바라보는 그의 귓가에 인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삼! 함께 가자."

    자신을 부르는 인학의 말에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린 아삼이 어쩔 수 없이 바닥을 박찼다. 멀리 떨어진 산의 중턱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연기를 향해 세 명의 요원이 그곳에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아삼이라고?'

    얼핏 들리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아희가 중턱을 향해 멀어지는 세 인영을 바라봤다. 안력을 돋궈서 그들을 바라봤지만 뒷모습만 보인채로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에 안타까워해야만 했다.

    '분명히 아삼이라고 했어. 황궁으로 들어갔다고 하던데…… 동창이라는 조직에 몸을 담은 건가?'

    자신이 잘못 듣지 않았다면 분명히 자신의 동생과 이름이 같은 사람이 불렸고 그 사실에 가슴이 떨려오는 아희였다.

    객잔으로 진입하자마자 몇몇의 요원들이 그대로 창을 부스면서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이내 싸늘하게 변해버린 시신과 함께 객잔의 천장이 터져나갔고 그 위로 몇몇의 무리가 빠져나왔다.

    "길을 뚫어라."

    가녀리면서도 단호한 여인의 명과 함께 주변을 막아서던 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꺼내든 검과 함께 한 쪽을 향해 뛰쳐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와 같았다. 재빠른 그들의 몸놀림에 당황한 관군이 뒤늦게 막아섰지만 가공할 그들의 무력은 일반적인 관군들로 막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쉬이익. 쿠우웅.

    날아드는 검풍과 장력에 앞에 있던 관군들의 몸이 찢겨져 나갔다. 가공할 그 위력에 분주히 길을 뚫는 관군의 모습에 그들을 이끌던 장수 한 명이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물러서지 마라! 물러서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

    호기롭게 외친 그가 검을 꺼내들며 말의 등을 박찼고 날아오르면서 천요희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꽤 강력한 기운이 어린 검이었지만 맨손으로 검면을 쳐내자,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에 뛰어든 장수는 침음을 삼켜야만 했다.

    "사라져라!"

    퍼엉.

    투명하게 변한 천요희의 손이 달려드는 장수의 가슴에 박혀들었다. 엄청난 속도와 함께 시린 한기를 토해내는 장력에 가슴을 얻어맞은 그가 달려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뒤로 튕겨져 나갔다.

    가슴을 얻어맞은 그 자는 절명을 했고, 마치 겨울에 얼어서 죽은 것처럼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동창의 고수 중 하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소…… 소수마공?"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