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60화 (6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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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단

    객잔의 후원의 중심부에 있는 가장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방에 앉아있던 천요희의 눈에 나른함이 어렸다. 먼저 만나기를 청했던 자들의 회주가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정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이렇게 기다리게 만드는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꽤 신중한 자들인가? 아직까지 살아있으면 그럴 만도 하겠지만 객잔 이름은 참으로 유치하구나.'

    삼청객잔(三淸客棧).

    산서성에 위치한 객잔의 이름이 삼청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를 대충이나마 짐작한 천요희의 입가에 조소가 지어졌다. 건문제가 삼청산에 몸을 숨겼다는 말이 돌았고 그것을 기리기 위해서 삼청회라고 이름을 지은 잔당들이었다. 그리고 그 회가 운영하는 객잔 중에 하나가 바로 삼청객잔이었고 그곳을 접선하는 장소로 잡은 그들이었다.

    대범한 건지, 미련한 건지 모르겠다는 듯이 조소를 흘리던 그녀의 기감에 두 명의 사람이 잡혔다. 이윽고 그녀가 있는 방 밖에서 천요희를 이곳으로 모셨던 늙은 객잔 주인이 조심스럽게 의중을 물어왔다.

    "회주가 만나기를 청합니다."

    "안으로 들여라."

    그녀의 말과 함께 누군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요희의 눈이 낯선 사내의 전신을 훑었다.

    '회주라는 자가 겨우 일류 수준의 내공인가? 하긴…… 저 마저도 뛰어나다고 여기겠지?'

    강함을 숭상하는 그녀였다. 겨우 일류 수준의 무공을 가진 자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고 회주라는 자가 들어왔지만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앉아서 자신을 맡는 천요희의 모습에 잠깐 얼굴이 굳은 낯선 남자였지만 이내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녀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삼청회(三淸會)의 회주 하은호라고 합니다."

    "그래.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 이유는?"

    딱딱한 그녀의 태도에 미미하게 인상이 굳어지는 하은호였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그곳에서 나온 사람이 장로의 직에 있다는 사실과 유명한 빙마후라는 사실을 전해 듣지 않았다면 참지 않았을 정도로 무례한 모습이었다. 그런 천요희를 바라보던 그가 웃어 보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하하하.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근래에 들어 더욱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일전에 황궁에 심어둔 자가 잡혀가면서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 난 적이 있었다. 그때, 앞에 있는 여인이 적을 둔 곳까지 알려지면서 그들에 대한 탄압이 더욱 거세진 상황이었다. 그들을 대표하는 회주였기 때문에 몸을 사려야 했고 그 사실을 알리면서 양해를 구하려 했지만 앞에 있는 천요희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길어지려는 하은호의 말을 자른 천요희가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를 부른 연유나 설명하도록."

    아랫사람 대하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결국 미간을 찌푸리는 하은호였다. 지금까지 마교에 들어간 자금도 경시할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을 참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었고 아쉬운 것은 자신들이었기 때문에 애써 화를 삭였다.

    '언젠가 이 치욕을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다. 그때도 네년이 이런 모습을 보일지 두고 보마.'

    다시 얼굴을 바꾼 하은호가 이전과 달리 딱딱한 말투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저희 쪽의 존재가 드러난 이상 연왕, 그 자는 어떻게든 저희들을 뿌리 뽑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알아서 조심할 수 밖에 없지요. 지금은 이렇게 숨어 있는 것이 최선입니다."

    "나는 연유를 물었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인가?"

    싸늘하게 변한 분위기에 침음을 삼킨 하은호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런 거물이 혼자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고 지금 전할 말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찻잔을 들어 올린 천요희를 바라보던 하은호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주변을 물려주시는 것이……"

    "괜찮다. 말 하라."

    "중대한 일인지라 자칫 새어나간다면 우리 회의 식구들이 목숨을 보존할 수 없음입니다. 우리 쪽 사정도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은호의 정중한 요청에 들고 있던 찻잔을 허공에 뿌리는 천요희였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움찔한 그였지만 이내 얼굴을 굳히면서 말을 꺼내야만 했다. 뿌려진 찻물이 허공에서 그대로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둥근 기막으로 주변을 막아섰다는 사실에 앞에 있는 천요희의 실체를 깨달은 그가 다급히 말을 이어갔다. 어느새 조금 전에 보였던 불쾌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름이 아니오라 이번에 저희가 황궁의 사람과 연이 닿았습니다."

    "황궁의 사람?"

    "그것이…… 공영미인 왕씨라는 후궁과 연줄이 닿았습니다."

    "후궁?"

    후궁이라는 소리를 되물은 천요희의 음성에는 놀라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간 교에서도 자신을 탄압하는 명의 황실에 수많은 자들을 들여보내 왔었다. 하지만 온전히 그곳에 들어선 자들의 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막상 그곳에 안착한 자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락이 끊겼다. 그만큼 비밀스럽고 중한 위치에 사람을 들이기 힘든 곳이 바로 황궁이었다.

    특히나 궁녀로 들였던 자들이 황제의 승은을 입은 경우는 전무했기에 그 놀람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삼청회라는 곳이 여러 단체들에 손을 뻗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후궁에게까지 손을 뻗고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한 사항이었다. 새삼 이들의 능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천요희였다.

    "이번에 후궁첩지를 받은 여인인데 그녀 역시 연왕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쉽게 우리와 손을 잡을 수 있었고 그녀를 이용해서 연왕을 제거할까 생각 중입니다. 신교 쪽에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기색을 보이는 천요희의 얼굴을 보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하은호였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말을 자른 천요희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단호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잠깐. 그 후궁을 이용해 연왕을 제거한다? 어떻게 그런 위험하고도 무모한 생각을 할 수 있지?

    "……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회에서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연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입니다. 그 원한도 얕지 않거니와 연왕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황궁이라는 곳이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지. 그건 나보다도 너희들이 더 잘 알지 않나? 그까짓 후궁 하나로 황제를 없앤다? 거론할 가치도 없는 말이지. 그렇게 쉬웠다면 벌써 없어졌을 황제였겠지. 자칫 잘못했다가는 수많은 사람이 목을 내놓아야 할 거야.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아."

    단호하게 말하는 천요희의 모습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는 하은호였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도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짠 계획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그런 기회가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다고 기회가 생겼을 때 실행하는 것이……"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것인가? 경거망동하지 말라 하지 않았던가!"

    계속해서 자신의 의견을 밀어 붙이는 하은호의 모습에 화가 난 듯한 천요희가 그를 노려봤다. 싸늘한 그 시선에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싸한 느낌에 식은땀을 흘리던 하은호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를 노려보던 천요희가 딱딱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황궁에는 수많은 군사와 금의위 그리고 동창이라는 조직까지 새로 생겼지. 그 자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다던가? 하물며 궁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벌어질 일이고 황제를 시해하는 일인데 총애를 받는 후궁 한 명이 일을 벌인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우리 교에게도 불똥이 튈 것은 자명한 일이니 경거망동하지 말게.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는 천요희의 모습에 분을 삼킨 하은호가 고개를 숙이면서 표정을 감췄다. 싸늘한 그녀의 눈초리를 떠올린 그가 마른침을 삼키면서 말을 이어갔다.

    "저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시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경거망동하지 말게. 그리고 후에 날 찾는 이가 객잔으로 올 거야. 내 제자이니 이쪽으로 안내해 주도록 하게."

    "예.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방을 나선 하은호의 미간이 잔뜩 일그러졌다.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방을 노려보던 하은호의 두 눈에 비장함이 어렸다.

    '이래봬도 삼청회를 이정도로 키워놓은 나다. 그런 내가 그깟 일 하나 제대로 못할 줄 아느냐? 두고 봐라. 내 네년에게 우리 삼청회의 능력을 보여줄 테니.'

    연왕에게 왕위를 빼앗긴 건문제를 위해 들고 일어선 그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대의는 점점 시들해져 갔다.

    안에서 적의어린 기감을 느낀 천요희의 얼굴에 조소가 떠올랐다. 속으로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는 회주였지만 그런 사실을 모를 빙마후가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을 사리면서 돈과 권력을 쫓는 그들의 모습을 비웃는 그녀였지만 그들을 내칠 수는 없었다. 그간 그들이 축척해 놓은 부(富)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그들이었고 그 부로 자신들의 교에 자금을 대주고 있었다.

    '괜한 짓을 벌이지 말아야 할 것인데. 아희가 오는 대로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겠구나. 느낌이 좋지 않아.'

    ***

    야심한 시각, 모두들 잠자리에 들 시간에 홀로 앉아있던 아삼이 품속에서 정화에게서 받은 비급을 꺼내 들었다. 정화가 들려주었던 말들을 떠올리던 그가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면서 비급을 바라봤다.

    '전심어서는 육신통 중 타심통(他心通)과 깊은 관련이 있다. 타심통(他心通)은 타인의 마음을 아는 힘을 말한다.'

    비급을 읽으면서 정화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던 아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계속해서 되뇌는 말이었지만 쉽게 와 닿지는 않았다.

    '말이 아닌 뜻 자체를 전달하는 수법이라……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건가?'

    이전 생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적혀진 뜻을 이해하려는 그였고 그런 방식을 이용해서 이해를 도우려고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비급의 내용은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답답함에 한숨을 내쉰 그가 다시 비급으로 눈을 돌리고 천천히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인간에게는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의 세 가지 단전이 있다. 그 단전을 통해 기가 흐르고 순환한다. 그 중 상단전 쪽이 트여야 타심통을 엿볼 수 있다. 상단전(上丹田)은 니환(泥丸)이라고도 부르며 미심(眉心)과 후뇌중간(後腦中間)에 위치하고 있다. 꾸준한 명상과 수련을 통해 상단전을 트이게 하여야만 전심어서에 가까워질 수 있다.'

    비급을 덮고 방 한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은 아삼이 다시 비급의 내용을 떠올렸다.

    '미심이라면 두 눈썹 사이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상단전은 뇌, 즉 머리 쪽일 것이고…… 머리를 맑게 해서 정신을 집중하는 훈련을 하면 상단전을 트이게 할 수 있다는 뜻인가?'

    천천히 두 눈을 감은 아삼이 미간에 정신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들숨과 날숨을 고루 내쉬며 정신을 집중하려 애쓰는 아삼의 이마에 어느새 내천 자가 새겨졌다.

    그렇게 매일 수련을 반복하는 아삼이었다. 그만큼 언어의 부재가 벙어리인 그에게 절실하게 느껴졌고, 매일 반복하는 수련의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점점 머리가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의 수련이 어떤 성과에 이르렀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점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거야 원…… 잘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가 있어야지. 그렇다고 아무나 붙잡고 시연할 수도 없지 않는가?'

    정화에게 전수 받은 수법이었다. 그 이름도 생소한 만큼 다른 사람에게 전심어서를 들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드러낼 수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깊어지던 아삼이 무언가가 생각난 듯 두 눈을 빛냈다.

    '정화! 정화 태감이라면…… 어차피 비급을 줬으니 숨길 이유가 없을 테지. 그래, 나중에 정화 태감에게 확인해 봐야겠다.'

    어느새 아삼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흘렀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흡족한 듯 밝은 얼굴로 다시 수련에 열중하는 아삼이었다.

    이미 강해져 있는 혼과 함께 정화에게 들었던 전심어서의 내용과 비급에 적힌 수련법들. 상단전을 단련시키기 위한 수련과 궁극에 이르러서는 육신통 중의 하나를 이룰 수 있다는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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