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58화 (5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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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약

"전심어서는 말이 아닌 뜻 자체를 전달하는 수법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육신통 중 타심통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강호상에 널리 알려진 '혜광심어'라는 불문의 최고 수법도 이와 비슷하다. 바로 타심통과 관련된 수법이지. 육신통(六神通)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 보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한 수행자들이 수행의 부산물로 얻을 수 있는 여섯 가지 신통력(神通力)을 가리킨다. 불교에서 육신통은 참선 수행 끝에 마음을 집중하고, 자신의 의식, 마음을 관(觀)하는 수준이 매우 높아짐에 따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 중 전심어서와 관련된 육신통은 타심통이다. 타심통(他心通)은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생소한 단어들의 나열에 가만히 듣고 있던 아삼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 모습에 정화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너에게는 생소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 전심어서는 정신적인 부분이 트여야 한다. 중단전이나 하단전보다는 상단전 쪽으로 기의 흐름이 흘러야 한다는 말이다. 상단전 쪽으로 기가 흐르다보면 머리 쪽에 이상이 올 수도 있다. 상단전을 틔우기가 어렵고 힘든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런 이상한 징후와 고통을 견딜 만큼 혼이 강해야 수월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네 몸의 상단전으로 보이는 곳에 흐르는 오묘한 기운을 봐서는 아마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무엇인가 있어 보인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정화의 말에 속으로 뜨끔한 아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전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저런 말을 내뱉는 것을 보면 자신의 정체를 어렴풋이라도 알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단전이라……'

정화의 말을 되뇌는 아삼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사마택 그가 말한 것처럼 네 오성이 뛰어나다는 말은 아마도 그 이유에서 일 것이다. 조금씩 정진하다보면 반드시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니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화의 설명에 아삼이 고개를 숙이면서 고마움을 표하였다.

'혼이 강해야 한다? 죽었던 내 혼이 이 어린 아이의 몸에 들어온 걸로 봐서는 혼은 충분히 강한 것 같은데…… 이전의 삶과 다르게 오성이라는 것도 트였다고 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이 전심어서라는 것을 충분히 익힐 수 있겠구나.'

팽가에서의 수련에서도 오성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아삼은 별다른 위험이 없다는 소리에 이것을 익히기로 결심했다. 규화보전을 몰래 익혔을 때에는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 몰래 비급을 익히면서 목숨까지 위험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비급을 익히는 것에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엄청난 고수로 보이는 정화의 말이 없었다면 며칠을 고민했을 내용이었겠지만 다행히 그런 고민 없이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신을 얻은 아삼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고 그런 아삼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던 정화가 갑자기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갑작스런 정화의 웃음에 아삼이 잔뜩 긴장한 채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하하, 역시 사마택 그 사람의 눈은 틀리지 않았구나."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은 듯 아삼의 표정이 멍했다. 그런 아삼을 보며 정화가 얄궂은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사마택 그 사람이 너를 어찌 봤다고 생각하느냐? 그저 어리고 순수하던 어린 환관? 그가 너의 행동을 모르고 있는 줄 알았더냐? 네가 필사를 하면서 그 비급들을 외운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신중하면서도 속내를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라고 했었지. 표정을 감추려고 하는 네 모습을 보니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구나."

"……."

"처음에 필사를 맡겼을 때와 현저히 차이가 나는 필사 속도에 그도 모두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너에게 규화보전의 필사를 맡긴 것이다.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자신의 눈을 속이려한 네 놈을 괘씸하다고 생각했었지. 규화보전을 필사하면서 그것을 외웠다면 응당 그 비급을 익히려고 했을 것이 아니냐? 허면 그 욕심이 화를 부를 것이고 너는 지금 이곳에 없겠지. 하지만 너는 그 비급을 필사하면서도 익히지 않았다. 그래서 사마택 그 사람의 신임을 얻게 된 건지도 모르겠구나."

정화의 말을 들은 아삼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사마택 그 자가 다 눈치 채고 있었단 말인가? 그동안 잘 속였다 생각했는데 다 내 착각이었다니……'

정화의 말을 들은 아삼은 스스로가 너무 한심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동안 은연중에 자신이 특별하다는 착각을 해오던 아삼이었다. 사마택을 속인 것도 그렇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뛰어난 오성과 무공 실력. 당연히 전생의 기억을 가진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해왔던 그였기에 지금 정화의 말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만했다. 앞으로 더 조심스럽게 행동해야겠구나.'

속으로 다짐을 하는 아삼의 표정을 살피던 정화가 의아해하면서 그를 바라봤다.

"지금 너를 다시 보니, 그 친구가 왜 너같이 어린 아이가 나를 도울 수 있을 거라고 말을 했는지 알 것 같구나. 허나…… 이건 어찌 된 일이냐? 어째서 네 몸에 사마택, 그 사람의 내기가 느껴지는 것이냐? 희미하긴 하지만 이건 분명 사마택 그 사람의 기운인데……"

얇게 뜬 눈으로 자신을 훑는 정화의 모습에 당황한 듯 아삼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사마택의 내기를 느끼다니. 내 몸 속에 있는 기운을 읽은 것인가? 살수지무도 저 정도 고수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다는 말인가?'

아삼의 등 뒤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애써 담담한 모습을 보이면서 서 있는 그였지만 긴장된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마른침을 삼키는 아삼을 향해 정화가 나직이 말했다.

"돌아 앉거라. 희미하게 느껴지는 사마택의 내기를 풀어주마."

"……."

뜻밖의 말에 당황한 아삼이 손사래를 치면서 극구 부인했다. 규화보전의 그 음기를 막아놓은 것이 바로 사마택이 물려준 기운이었다. 지금 그 기운을 정화가 건드린다면 자신이 규화보전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들켜버리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괜찮다.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풀어주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사양하지 않아도 된다. 나중에 내 청을 들어줄 사람에게 이런 호의는 당연한 것이다."

- 지금은 사태감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마음속으로 되새기면서 그 은혜를 기리고 싶습니다. 언제고 풀릴 기운이지만 지금은 이렇게나마 간직하면서 몸 안에 새겨놓고 싶습니다.

급하게 붓을 들어 자신의 뜻을 전하는 아삼이었다. 그리고 아삼의 글을 읽은 정화의 얼굴에 흡족한 듯 미소가 번졌다.

"그리 생각하고 있다니 기특하구나. 이렇게 생각해주는 사람이 남아 있으니. 사마택 그 사람도…… 외롭지는 않겠구나."

어느새 촉촉해진 눈가로 허공을 바라보는 정화였다. 그런 정화의 모습에 괜히 미안해지는 아삼이지만 다행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사마택이 전해준 내기를 건드리면 내가 규화보전을 익힌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당연히 나에 대한 믿음은 깨질 것이고 죽을 수도 있음이다. 아직 정화라는 자에 대해서 정확히 판단할 수 없으니 지금은 이렇게라도 감추는 것이 당연하겠지. 내가 살기위해 이리 둘러대긴 했지만 왠지 마음이 좋진 않구나.'

"벙어리라는 게 환관으로서는 이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글로만 소통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하물며 동창이라는 곳에 속한 너이니 그 중요성은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건네준 전심어서를 열심히 수련하도록 하거라.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는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도록 하거라."

담담한 얼굴로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정화를 향해 아삼이 고개를 숙여 읍했다. 그리고 고마움을 담아서 큰 절을 올리는 아삼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를 속이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푼다는 점이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그 모습에 흡족한 듯 정화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다시 한 번 위기를 넘긴 아삼은 살수지무의 수련에 더욱더 시간을 쏟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자신의 실력을 감추는 것. 그것이 흉흉한 황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요건이었다.

그 시각, 어둠에 묻힌 한 사내가 은밀하고 빠른 움직임을 보이면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선 자가 그 방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를 향해서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예를 표했지만 그의 인사를 받아든 사내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어쩔 수 없이 만난다는 듯이 인상을 구긴 그가 안으로 들어선 자를 바라봤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보자 했느냐?"

고개를 숙인 이인학을 바라보던 구영고의 물음에 찌푸렸던 인상을 숨긴 이인학이 그에게 바짝 다가서면서 은밀하게 말했다.

"소인이 이리 찾아온 것은…… 긴히 논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긴히 논할 일이? 그게 무엇이냐?"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구영고의 모습에 다시 떨어져 앉던 이인학이 그를 마주보면서 가슴 속에 넣어둔 서책을 조용히 꺼냈다.

"그것이 무엇이냐?"

이인학의 손 위에 올려진 서책을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쉽게 손을 뻗지 않는 구영고였다.

"탐욕스러운 관리들의 비리가 낱낱이 적힌…… 치부책입니다."

미소를 지어보이던 이인학이 다시 한 번 서책을 건네며 말했지만 구영고는 여전히 그것을 경계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침음을 삼키던 이인학이 혀로 마른 입술을 적시면서 그를 바라봤다.

'흠…… 생각보다 신중한 자다. 내가 생각한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겠어.'

짐짓 당황한 이인학이었지만 곧 미소 속에 표정을 감춘 그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그리 중한 인사들은 아니나 추포하신다면 그래도 공을 세우실 수는 있을 것입니다."

"공을 세운다? 그런 것을 왜 나에게 주는 것이냐? 네놈이 이것을 나에게 건넨다? 응당 자신의 공을 높이려 할 네가 이것을 건네는 진정한 이유가 무엇이냐?"

의심의 눈초리로 이인학을 바라보는 구영고였다. 팽가의 양자라는 자리에 앉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미련스러운 인사라고 여기는 자가 바로 앞에 있는 이인학이었다. 그리고 그 양자라는 자리도 얼마나 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물으나마나 저 치부책이라는 것의 출처는 공영미인 왕씨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놈이 저런 것을 얻을 수는 없었겠지.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저 치부책을 나에게 건네는 것이지?'

그런 구영고의 속내를 아는 듯 이인학이 더욱더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다만 소인이 동창에 들어가게 된 것도 다 돌봐주신 덕분이기에…… 그저 고마움의 표시이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훗, 고마움의 표시라? 그래 내가 이걸 받는다면 나는 너에게 뭘 주면 되는 것이냐? 세상사 공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나다. 너도 뭔가를 바라고 이 것을 준비 했을 터."

"……소인이 바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저 당두께서 제 일에 눈감아 주시는 것. 그거 하나로 족합니다."

"팽가를 버리고 너와 한 배를 타라? 하하하하."

당돌하게 나오는 이인학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는 구영고였다. 이내 웃음을 멈춘 그가 굳은 얼굴로 이인학을 노려봤다.

"구 당두께서도 아시다시피 금의위에서 영향력이 큰 팽가라고 하나 동창에서는 그 힘이 미약하지요.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창이다 보니 서로 자신들의 세력을 늘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저희 팽가에서도 손을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팽가의 사람인 당두와 제가 손을 잡고 우위를 선점한다면 동창도 우리 팽가가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동창에서의 팽가의 힘이 세진다면 응당 당두의 지위도 오르겠지요."

정공법을 택한 이인학이었다. 어차피 속내를 감추려한다고 해봤자 자신의 속내를 모르지 않을 구영고였다. 지금껏 동창에서 자신의 행동을 감시했던 인물이니 차라리 이렇게 솔직하게 나가는 게 더 믿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 숨은 뜻을 감추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구영고 역시 감춘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역시 약삭빠른 놈이다. 나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다니…… 허나 저 아이의 말도 일리는 있다. 아직 동창에서의 팽가의 힘은 미약하여 나조차도 고작 당두의 자리밖에 얻질 못하지 않았는가? 폐하의 총애를 받는 공영미인 왕씨를 등에 업은 저 아이와 손을 잡는다면 내 위치는 자연히 올라서겠지…… 하지만 이 사실을 소가주가 알게 된다면.'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구영고였다. 그런 구영고를 조심스레 살피던 이인학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어차피 당신이 팽가의 개라면 소가주나 팽가에게 이 사실이 흘러들어가겠지. 결국에는 나와 당신의 지위를 올릴 수단으로 써질 것이고. 이미 내가 행한 일이 알려진 상황이라면…… 나는 실리를 택해야겠지. 두 세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힘을 얻을 것이다. 양자라는 나를 쉽게 내치지는 못할 것이야. 더군다나 이런 중요한 순간에!'

"이 서책은 여기에 두고 가겠습니다. 소신의 말을 잘 생각해 주십시오."

행여라도 그가 거절할까 싶어서 재빨리 방을 나서는 이인학이었다. 그리고 사라지는 이인학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구영고의 시선이 그가 놔두고 간 서책으로 옮겨졌다. 매섭게 서책을 노려보던 구영고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팽가와 후궁이라…… 당연히 팽가를 선택해야 한다. 일개 후궁 따위야…… 하지만 내 지위를 높일 수 있는 일이라면. ……우선 소가주를 만나서 논의해 보는 것이 좋겠구나.'

어느새 그의 시선이 이인학이 가지고 왔던 치부책으로 향했다. 별다른 탈이 없는 것이라면, 누군가 처리할 일이라면 자신이 주가 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 작품 후기 ============================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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