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50화 (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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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만

    '전음입밀(傳音入密), 천리전음(千里傳音), 육합전성(六合傳聲), 혜광심어(慧光心語) 등은 전음술의 보다 높은 경지들을 차례로 이르는 말이다.

    전음입밀(傳音入密)은 의어전성보다 한 단계 높은 전음술이다. 의어전성과는 달리 상대를 특정지어서 의사를 전할 수는 있으나, 역시 입술을 움직여야만 하고 듣는 사람이 음성이 발출된 장소를 짐작할 수 있다.

    천리전음(千里傳音)은 전음입밀에서 조금 발전하여 시전 거리를 늘린 수법을 말하며 육합전성(六合傳聲)은 전음입밀, 천리전음보다 한 단계 위의 전음술로 소리가 사방에 울리도록 함으로써 시전자의 소재를 숨기는 수법이다.

    마지막으로 혜광심어(慧光心語)은 전음술 중 불문의 최고 수법으로 아무런 외적인 움직임이 없이 뜻이 움직이는 대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으며 그 거리에도 제한이 없다.'

    '말이 아닌 뜻 자체를 전달하는 수법이라…… 혜광심어야말로 벙어리인 내가 익힐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음술이다. 하지만 내가 전음술의 최고 수법이라는 그것을 익힐 수 있을까? …… 그가 준 책에도 단지 종류만 나와있을 뿐인데…… 그 최고 수법이라는 혜광심어의 비급을 구할 방도도 없잖아?'

    혹시나 하고 책을 뒤적여봤지만 혜광심어라는 전음술에 대한 설명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간단한 전음입밀만 자세히 적힌 책을 본 아삼은 실망한 표정으로 그것을 덮으면서 침음을 삼켰다. 어렵게 방법을 찾아낸 것 같았지만 실질적으로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이전에는 기초조차 없었던 내용을 알게 됐다는 사실에 다행이라고 여겼고 새삼 자신을 위해서 이 서책을 준비해 둔 사마택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 아삼이었다.

    새하얀 목면을 입은 동창요원들이 넓은 연무장에 시립해 있었다. 그런 그들을 검은 망건에 검은 휘장을 두른 사내 하나가 단으로 쌓은 곳에 올라서서 굽어보며 소리쳤다.

    "오늘부터 너희들의 훈육을 책임질 당두 반철홍이라 한다. 너희들은 이 수련장에서 도법을 비롯하여 전음, 포박술 등 동창 요원이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한 교육을 받을 것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지급할 터이니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서 물품들을 수령해 가도록 하거라."

    반철홍의 말이 끝나자 맨 앞에 시립해 있던 동창요원들부터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각 동창요원에게는 황금빛 노란색의 포승줄과 날이 선 군도 그리고 명패와 휘장 등 개인비품들이 지급되었다.

    "지금 지급된 물품들은 너희들이 현장에서 사용할 물품들이니 소중히 다루도록 하거라. 그리고 지금부터 호명한 사람은 앞으로 나오거라. 방태옥, 송상호."

    반철홍의 부름에 방태옥과 송상호가 재빨리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이내 호명을 마친 반철홍이 앞에 선 아이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이 아이들을 이끌어 갈 조장이 될 것이다. 이 두 아이들은 너희들과 계급은 같지만 반 단계 정도 위의 감투를 쓸 것이다. 물론 그 책임 또한 막중할 것이니 너희 둘은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도 조장이 된 두 아이들의 뜻을 잘 따르도록 하거라."

    반철홍의 말에 시립해 있던 동창요원들이 고개를 숙이며 짧게 답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이인학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내서당에서의 시험도 당당히 통과한 나다. 내 공이 컸다는 사실을 잘 알 터인데…… 그런 내가 고작 말단이라니…… 송상호나 방태옥, 저 아이들보다 내가 못한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적어도 저 두 아이와 같은 위치는 되어야 하거늘! 헌데 고작 저 아삼이라는 놈과 같은 직위라니……'

    생각보다 낮은 직위에 불만이 고조된 듯 잔뜩 얼굴이 굳어진 이인학이 저 멀리 서 있는 송상호와 방태옥 그리고 아삼을 노려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멀리서 그 눈빛을 눈치 챈 아삼이었지만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으려는 듯 돌아보지 않았다.

    이인학의 불편한 심기 따위는 상관도 없이 곧바로 포박술에 대한 수련이 시작되었고 처음 받는 수련에 동창요원들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잠시 휴식한다."

    잠깐의 휴식시간이 돌아오자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 주저앉은 그들이었다. 내서당에서의 교육과 달리 동창의 교육은 더 힘이 들었고 더 많은 주의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인지 하나같이 피곤한 얼굴들이었다.

    "많이 힘들지? 내서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 같아. 황제폐하를 보필한다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어."

    흐르는 땀을 닦고 있는 아삼을 향해 손수건을 내밀던 송상호가 말을 붙였다. 그 손수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삼이 어색하게 웃고 있는 송상호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나같이 음흉한 뜻을 품고 있어. 어린놈들이 벌써부터 저런 식으로 표정을 관리하다니…… 그만큼 황궁이 흉흉하다는 뜻이겠지?'

    속으로 고소를 짓던 그가 내민 손수건을 뒤로한 채 소매로 땀을 닦아냈다. 그 모습에 무안해진 송상호였지만 미소를 지으면서 아삼의 어깨를 두드렸다.

    "앞으로 잘 해 보자."

    일부러 호쾌한 모습을 보이면서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돌아선 송상호였지만 손수건을 다시 집어넣는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유독 저놈만 틈을 보이지 않는구나. 어떻게 해야 저 아이를 끌어들일 수 있을까? 벙어리라는 환관이 그렇게 중요하나?'

    내서당에서부터 줄 곳 아삼에게 관심을 보인 송상호였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방태옥을 비롯한 아이들이 벙어리인 그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다. 어떻게든 자신의 사람을 하나라도 더 만들라던 장인태감 송기득의 명에 의해 무던히도 아삼을 꼬드기려고 애를 썼지만 좀처럼 틈을 보이지 않는 아삼이었다.

    "그 아이가 틈을 보이지 않는다?"

    장인태감 송기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무리 잘해주고 노력을 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모습이라 환심을 사는 것도 힘들어 보입니다. ……아마도 이미 다른 쪽과 연을 맺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다른 쪽이라니? 어디를 말하는 것이냐?"

    "그것이…… 아무래도 팽가 쪽이 가장 유력한 것 같습니다. 팽인학이라는 그 아이가 아삼이라는 아이에게 몰래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모습으로 봐서…… 저번에 있었던 조삼보라는 놈을 추포하는 과정에서도 팽인학이라는 그 아이와 함께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팽가라……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런 능구렁이 같은 놈들…… 우리가 한발 늦었단 말인가? 하긴 팽가라고 손 놓고 있지는 않았을 터. 알았다. 내 그 아이에 대해서 따로 뒷조사를 해 볼 터이니, 너는 지금처럼 그 아이에게 꾸준히 호감을 보이도록 하거라. 행여 그 아이가 팽가와 연이 없다면 응당 우리 쪽으로 끌어들여야 하지 않겠느냐?"

    장인태감 송기득의 명을 떠올린 송상호가 다시 한 번 아삼을 바라봤다. 옆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침음을 삼킨 아삼은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모습을 보는 송상호는 속으로 굳은 다짐을 하고 있었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고 했다. 장인태감의 말씀처럼 우선은 호감을 비출 수 밖에…… 도도한 네놈의 콧대를 부러뜨려 주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동창의 수련은 계속 되었다. 내서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빡빡한 일정에 수련을 마치고 난 아이들은 모두 초죽음이 될 정도로 몸도 마음도 힘겨웠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앞으로 동창이라는 곳에서 해야 할 일들을 참관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다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참관에 임해야 할 것이다. 우선 죄를 토설하는 과정을 볼 것이다. 가장 중한 일이니 모두 두 눈을 크게 뜨고 잘 보도록 하거라."

    반두홍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창요원들 앞에 오사모를 쓰고 원령포를 입은 관리 한명이 끌려 들어왔다. 불쑥 튀어나온 배에 채워진 관대가 꽉 끼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고 끌려 나온 그를 본 반두홍이 그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 자는 이부(吏部) 정6품 주사(主事) 이현령이다. 이부는 관리의 인사와 지방의 관서를 관장하는 곳이다. 헌데 이 자는 그간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뇌물을 받고 관직을 매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금부터 이 자가 자신의 죄를 낱낱이 발설하도록 할 것이니 잘 보아 두거라."

    말을 마친 반두홍이 옆에 선 사내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매섭게 생긴 사내가 이현령이라는 관리 앞으로 다가갔다.

    "네 놈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네 놈의 죄를 인정하겠느냐?"

    사내의 물음에 이현령이라는 자가 억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면서 답했다. 표정만 봐서는 진실만을 말하는 것 같이 정말 억울해 보였다.

    "나…… 나는 잘못한 것이 없소. 누군가 날 음해…… 음해하려고 이런 일을 꾸민 것이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소. 나를 풀어주면 친히 그놈을 잡아다 대령하겠소. 제발! 제발 억울한 나를 풀어주시오!"

    "훗, 음해라? 이미 명확한 증좌들이 확보된 상태다. 단지 네놈 입으로 토설하게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죄를 시인하지 않겠다 이 말이렸다?"

    이현령의 말에 사내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검은 휘장을 풀어서 옆에 둔 그가 천천히 팔을 걷어 올리면서 이현령을 매섭게 노려봤다.

    "자,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

    야릇한 미소와 함께 사내가 옆에 놓인 검은 천을 걷어 올렸고 그 곳에는 은빛 쟁반 위에 놓인 갖가지 고문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그 중 가느다랗고 긴 쇠꼬치를 든 사내가 이현령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섬뜩한 그 미소에 미친 듯이 고개를 젓던 이현령이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들려진 쇠꼬치가 자신의 가슴을 파고들자 느껴지는 고통에 알 수 없는 소리를 토해냈다.

    "아아악! 크으윽. 으…… 으윽!"

    "지금 이것은 자심이라는 것이다. 견딜만하더냐? 이제 입을 열 생각이 든 것이냐?"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이현령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지금 여기에서 토설하게 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남은 식솔들이 위험했다. 완강하게 거부하는 그 모습을 보고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차갑게 웃어보이던 사내가 다시 이현령의 가슴을 향해 기다란 쇠꼬치를 찔러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현령의 가슴은 새빨간 피로 물들어졌다. 잔인한 그 광경에 지켜보던 동창요원 몇몇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동창요원들의 행태에 반두홍이 매섭게 소리쳤다.

    "잘 봐두라고 하지 않았더냐? 이 모든 것들이 다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다. 고개를 돌리지 마라!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란 말이다."

    매서운 호통에 잔뜩 긴장한 동창요원들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눈을 크게 떴다. 이내 여기저기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서당에서도 고문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그들이었지만 동창에서의 고문은 그 이상이었다.

    금의위의 백호가 보여줬던 고문법들 보다 더 잔인했고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한 모습을 보였다.

    '내서당에서의 고문은 약과였구나. 어떻게 사람에게 저렇게 잔인할 수 있는 거지? 저런 고문을 버틸 수 있는 자들이 있을까? 토설하지 않고 버틸 수는 없을 것 같구나.'

    두 눈에 힘을 주고 주먹을 불끈 쥔 채 묵묵히 서 있는 아삼이었다. 계속되는 고문에 결국 이현령이 자신의 잘못을 실토했고 그 모습에 사내의 얼굴에 만족한 듯 미소가 흘렀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내의 모습에서 상대방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희열로 느끼는 듯한 생각이 들자 아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언젠가 그런 소리도 들은 것 같았다. 성을 잃은 환관은 성격이 괴팍해지고 보통 사람들이 꺼려하는 것에서 안정을 찾으려 하는 경향이 많다는 이야기들을.

    '나는…… 괜찮겠지? 저런 미친놈은 되지 않아야 할 텐데."

    그렇게 하나씩 동창에서의 일을 배워나가는 아이들이었다. 한동안 이런 교육과 참관은 계속 이어졌고, 조금씩 잔인하고 힘든 일과에 익숙해져가는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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