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46화 (4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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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보(悲報)

    하북성의 끝자락, 마을과 조금 동떨어진 산기슭 근처에 지은 지 오래된 듯 거의 허물어진 담벼락을 두른 흙담집이 어둠 속에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집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집을 주시하는 여섯 개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조장, 우리가 언제까지 저 집을 지켜봐야 하는 겁니까? 매일 이렇게 집만 지키고 있으려니…… 좀이 쑤십니다."

    계속되는 반복적인 일상에 인상을 찌푸리던 사내가 기지개를 펴면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던 또 다른 사내가 그를 나무라듯이 말했다.

    "소가주께서 잘 지키라고 하지 않았더냐? 잔말 말고 계속 주시하거라."

    "이런 촌에 누가 온다고…… 팽가에서 꾸준히 보내주는 재물들은 어디에 쓰는 건지. 왜 계속 저런 추레한 건물에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 떠나간 아이가 다시 돌아올 때를 생각하면서 계속 지낸다고 하지 않더냐? 부모들의 마음이 다 똑같은 것이겠지."

    "쳇, 그럼 애초에 떠나보내지를 말던지……"

    입을 삐죽이던 사내의 태도에 미간을 찌푸린 그였지만 정작 화를 낸 사람은 그 옆에 있던 또 다른 남자였다.

    "닥치고 네 일이나 해라. 저 사람들이 떠나보내고 싶어서 보냈다더냐? 네놈이 자식을 보내야 하는 그런 심정을 알고 지껄이는 것이냐?"

    "미…… 미안하오. 내가 실언을 했소."

    "……."

    "그만 하게. 실언이라고 하지 않나."

    "……."

    붉어진 얼굴로 처음 말을 내뱉던 사내를 노려보던 자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도 어렸을 때, 팔려서 집을 나왔던지라, 지금 지키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런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에 혹여나 자신이 팔려갔을 때, 자신의 부모들도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더욱 저들의 생활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

    무거워진 분위기에 처음 말을 꺼냈던 사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지루한 표정으로 다시 어둠 속에 있는 집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팽명민의 명에 의해 맹호단의 한 개의 조가 아삼의 집을 지킨 지도 벌써 여러 달이 흘렀다. 처음에 임무를 배정 받았을 때는 편할 거라는 생각에 잔뜩 기대를 했었지만, 벌써 몇 달째 움직이지도 못하고 교대로 밤을 새가면서 지켜만 보고 있으니 슬슬 좀이 쑤셔오는 그들이었다.

    그곳에 있던 조장과 붉어진 얼굴로 화를 냈던 사내도 투덜거리던 사내와 비슷한 심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소가주가 특별히 신경을 쓰라던 일을 허투루 처리할 수는 없었다. 잠깐의 방심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너무나 잘 아는 조장이라는 사내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유난히 반짝였다.

    그때, 그들의 시야에 까만 복면을 뒤집어쓴 사내 열댓 명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조장, 수상한 놈들입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던 사내가 조장이라던 자의 옆에 바싹 붙으며 나직이 속삭였다. 낯선 자들의 모습을 확인한 조장이라는 자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서 주의를 준 뒤, 갑자기 나타난 그들을 주시했다.

    낯선 무리들 중에서 앞장 선 사내가 주변을 살피더니 뒤에 포진해있는 사내들을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삼의 집으로 접근하는 사내들이었다. 그 모습에 가만히 지켜만 보던 맹호단의 제 7조장인 천소만이 허리춤에 찬 도를 빼들면서 단박에 그들을 향해 날아올랐고, 바닥을 박찬 두 사내가 그의 뒤를 따랐다.

    "웬 놈들이냐?"

    아삼의 집 앞을 가로막던 천소만이 매섭게 물었고 이런 집을 누군가가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복면인들이 당황하듯 주변을 둘러봤다.

    "너희들은 누구냐?"

    "…… 우리는 팽가의 사람들이다.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물러서는 것이 좋을 것이다."

    "……."

    팽가라는 소리에 침음을 삼키던 복면인이었다. 그리고 잠시 고심하는 모습을 보이던 그의 태도에 안도하는 천소만이었다.

    고작 세 명이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열댓 명의 사내들을 막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고, 그들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팽가라는 이름을 빌려야만 했다. 그리고 무리를 이끄는 자가 멈칫거리는 것으로 봐서 자신의 의도가 먹혀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뒤에 있던 자들 중에 한 명이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검을 빼들면서 안으로 달려들었다.

    갑작스런 그 움직임에 놀란 천소만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허리를 숙여서 가볍게 피하고, 몸을 틀면서 다가온 사내의 옆구리를 향해 도를 휘둘렀다. 맹호도법이라고 불리는 강맹한 위력을 머금은 도가 달려든 자의 옆구리를 갈랐다. 흡사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에 뜯긴 듯이 옆구리를 깊게 베인 그자의 몸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가벼운 몸놀림과 강맹한 도법에 남은 사내들의 눈동자가 다시 한 번 커다래졌다. 팽가라고 밝힌 것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이었지만 이미 자신의 동료가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최소한 목표로 삼았던 것이라도 완수를 해야만 했다.

    멍하게 서 있는 사내들을 향해 앞에 나왔던 사내가 손짓을 했고, 일제히 검을 빼들은 그들이 앞을 가로막은 세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의도치 않은 결과에 입술을 깨문 천소만이 앞으로 뛰어나가면서 그들을 맞았고, 뒤에 있던 두 사람도 도를 꺼내들면서 달려드는 놈들을 막아섰다.

    수적으로 세배가 넘게 차이가 났다. 어느새 아삼의 집 앞에는 검과 도가 부딪치는 소리만 가득 울려 퍼졌고 전투는 점점 더 치열하게 변해갔다. 팽가의 맹호단이라고 하면 무림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단체였지만 그들과 맞서는 자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네 명을 쓰러뜨렸지만 남은 자들의 실력도 그렇게 뒤쳐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흉흉한 기세를 뿌리는 검초와 저돌적인 움직임들. 맹목적인 모습을 보이는 그들의 태도에 꺼림칙한 뭔가를 느낀 천소만과 두 사람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고 몸에는 자잘한 검흔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게 지친 세 사람을 둘러싼 사내들의 모습에 얼굴을 굳힌 세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댄 상태로 에워싼 놈들을 노려봤다.

    '매우 공격적이 놈들이다. 일부러 검법을 숨기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묻어있는 특징들로 봐서는 결코 정파의 무리가 아니다. 살수는 더더욱 아니고…… 그렇다면?'

    숨을 돌리면서 다가선 놈들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애쓰는 천소만이었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았다. 지금은 소가주의 명을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이대로 몸을 빼야할지 명을 이행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였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사안이 아니었다.

    자신들을 천천히 에워싸는 놈들을 바라보는 천소만이었지만 이어지는 그들의 행동에 다급히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애초에 저들의 목적은 앞을 가로막는 자신들이 아니라 허름한 건물 안에 있는 자들이었다.

    가로막는 놈들과의 싸움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목표로 했던 일들이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린 그들은 인원을 나눴다. 남은 아홉 명 중에서 세 명이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처리하고 그 동안에 남은 여섯 명이 앞을 막아선 팽가의 사람들을 묶어놓는 것이었다.

    빠른 속도로 안으로 들어서는 자들을 확인한 천소만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이대로 도망가기도 글렀다고 판단한 그가 내기를 끌어 올리면서 뒤쪽에 있는 자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갑자기 변한 그의 기도에 당황한 자들이 급히 검을 끌어당길 때, 천소만의 뒤로 다시 한 명이 튀어나오면서 그들의 손을 묶었고 그 사이, 그들을 뛰어넘은 천소만이 안으로 들어서는 자들을 향해서 도기를 뿌렸다.

    흉흉한 기세로 날아오는 도기에 급히 뒤를 막는 두 사람이다. 그 사이에 남은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무리를 이끌던 자가 안으로 들어섰고 그 모습에 이를 악문 천소만이 힘을 끌어올려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부우웅.

    거력이 담겨있는 그의 도에 기겁을 하던 자들이 물러섰다. 그 틈에 땅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드는 천소만이었다.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함과 함께 몸을 회전시킨 그가 다시 한 번 도기를 뿌리자, 뒤늦게 그를 쫓는 자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다.

    촤아악.

    가슴팍이 길게 갈리면서 쓰러지는 두 사람이었다. 일수에 두 명을 물리친 그가 길게 벌어진 옆구리를 부여잡으면서 인상을 찌푸릴 때, 집 안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악! 여보!"

    그 소리를 들은 천소만이 심각한 얼굴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쓰러져있는 중년의 남성과 그 앞에서 피 묻은 검을 든 사내. 그리고 서로 부둥켜안은 상태로 구석에서 벌벌 떠는 세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천소만이 들어서자 기척을 느낀 그자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뒤늦게 구석에 있는 자들을 향해 나가가려고 할 때, 그의 발을 부여잡는 손이 있었다.

    아직까지 목숨이 끊기지 않은 중년의 남성이 그자를 막아서려는 듯이 발목을 부여잡았지만 이내 그 손을 뿌리친 자가 다시 검을 휘둘렀고 그를 잡아 섰던 팔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부지!"

    처절한 어린아이의 외침과 함께 그 모습에 분노한 천소만이 검을 든 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도양단의 기세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모습에 급히 보법을 밟은 그자의 몸이 옆으로 비켜섰고 쥐어진 검을 뿌리려 했다. 하지만 내려쳐지던 도가 횡소천군의 초식으로 바뀌면서 옆으로 비켜선 자의 몸을 갈라왔고 뒤늦게 도격을 막은 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윽."

    온전히 그 힘을 감당할 수 없었던 사내의 몸이 휘청거렸고 그 사실을 눈치 챈 천소만의 도가 그자를 향해 내리쳐졌다. 머리 위로 내려오는 도격에 사내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면서 끌어올린 기운과 함께 진한 살기가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다.'

    급격히 변한 그자의 기도에 침음을 삼킨 천소만이 아릿한 옆구리를 의식하면서 도를 거둬들이고 거리를 벌렸다. 혈도를 점해서 막아놨던 상처가 조금 전의 공격으로 다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눈치 챈 자의 진한 살기와 함께 섬광 같은 찌르기가 눈앞으로 들이쳤다.

    간발의 차로 고개를 젖히면서 찌르기를 피했지만 조금 모자랐는지 볼이 갈리면서 피가 튀었다. 피한 찌르기와 함께 그 자의 안으로 파고든 천소만의 검이 그의 가슴을 갈랐다. 하지만 천소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들려오는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놀란 아이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안 돼! 엄니! 안 돼!"

    '지독한 놈들.'

    가슴이 갈리면서 쓰러지는 순간까지 구석에 있는 세 사람을 향해 검을 날린 복면인이었고 두 아이의 앞을 막아선 그 여인의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아영아…… 아호야.…… 우리 아삼이……"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돌아본 여인의 몸이 싸늘하게 식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소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숨 돌릴 틈도 없었다. 밖에서 들리는 처절한 외침과 비명을 끝으로 집안으로 다가서는 기척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모두 당한 건가?'

    그가 빠져나오면서 그 균형이 무너진 것이었다. 셋이 뭉쳐있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주어진 임무가 먼저였다.

    먼저 간 동료를 생각하던 천소만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도를 다잡으면서 각오를 다지던 그의 눈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콰과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뒤로 튕겨져 나간 자의 검이 깨져나가면서 그자의 몸이 바닥에 처박혔다. 정수리에서 부터 사타구니까지 새겨진 도흔에 남은 자들이 침음을 삼켰을 때, 그 앞을 지키고 선 천소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애써 힘든 기색을 숨기려고 하는 그였지만 들썩거리는 어깨와 함께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 한 수를 위해서 힘을 아끼지 않았던 그였다. 이렇게 된 이상 한 놈이라도 확실하게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에 무리를 한 것이다.

    기세를 보이면서 남은 자들이 그냥 물러서기를 바라는 마음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남은 네 명의 복면인들은 더욱 흉흉한 눈빛을 보이면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끝인가?'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쥐어짠 내력으로 들어서는 놈을 날려버린 그였기에 지금은 간신히 서있는 것도 힘겨울 뿐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지만 순박한 시골에 사는 일가를 몰살하려는 자들의 행태는 쉬이 용납될 수 없는 짓이었다.

    '사파 쪽, 인사들인가? 아니면…… 마교?'

    적들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는 점과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한 다는 것이 비통했지만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먼저 간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남은 한 놈이라도 같이 데려가리라 마음먹은 천소만이 부들거리는 팔을 들어 올리자, 남은 자들이 달려들었다.

    섬뜩한 정광을 흘리면서 달려드는 놈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 몸을 느낀 천소만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 때, 천소만과 그들 사이에 평범한 철검 하나가 떨어져 내리면서 바닥에 꽂혀들었다.

    쿠웅.

    갑작스런 검의 등장에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볼 때, 진한 청색의 푸른 도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 멈추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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