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45화 (4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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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택

    점점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는 아삼이었다. 등과 맞닿은 사마택의 장심에서 뜨거운 기운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고, 동자공의 구결과 함께 움직인 자신의 기운이 새로운 기운을 이끌면서 조금씩 단전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미하다고 말한 사마택의 내공이었지만 받아들이는 아삼에게는 엄청나게 커다란 기운들이었다. 이전에 흡수했던 자화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단전으로 흘러들었고 힘을 더한 동자공의 내력이 조금씩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잠들어있던 음기가 눈을 떴다. 위화감을 느꼈는지 새로 들어온 양력의 기운에 대응하던 규화보전의 음기가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기운은? 낭패다. 왜 하필 이때!'

    가장 먼저 그 기운을 알아차린 아삼이 커진 양기로 인해서 깨어난 음기를 제어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내공에 대한 깊이도 모자랐을 뿐더러, 운용하는 방식도 많이 부족했다. 커져가는 양기와 함께 다시 몸집을 불리기 시작하는 음기가 어린 아삼의 몸을 차갑게 식히기 시작했다.

    뜨거운 몸이 조금씩 차가워지면서 그의 머리위로 아지랑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순탄하게 전해지던 기운에 힘을 갈무리하려던 사마택은 아삼의 몸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했다.

    '뭐지? 뼛속까지 얼릴 듯한 이 한기는?'

    조금씩 떨리는 아삼의 몸과 함께, 강력한 한기가 사마택의 몸에 전해졌다. 그 차가운 기운에 대항해서 기운을 끌어올린 사마택의 양기가 다시 아삼의 몸으로 들어섰고 팽팽하던 두 기운에 어느덧 두 사람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은 그 두 사람의 몸은 얼마나 힘든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지 절로 알 수 있게 만들었고 계속 이어지는 양기와 음기의 대결은 서로를 지치게 했다. 가장 힘이 든 사람은 아삼이었다. 아직 어린 몸에서 이어지는 강력한 기운은 그를 힘들게 만들었지만 사마택 또한 편치만은 않았다.

    '지독하게 음습하면서도 끈질긴 기운이구나. 이런 음기라니…… 설마하니 이놈이…… 규화보전을 익혔다는 말인가? 어떻게?'

    아삼의 몸에 있는 기운의 정체를 깨달은 사마택이 침음을 삼켰다. 어린 아이의 몸속에 잠들어있는 그 기운을 제압해서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 기운이 규화보전을 익히면서 얻은 음기라면 쉽게 없앨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없애기보다는 가둬놔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차가운 기운을 제압해서 흡수시키기는 힘들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봉해놔야겠구나.'

    놀랄 틈도 없었다. 자꾸만 꿈틀거리는 규화보전의 음기에 아삼의 다물어진 입에서도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소리에 다시 정신을 가다듬은 사마택이 준동하는 규화보전의 음기를 잡기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없어질 목숨이다.'

    이미 자신의 목숨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였기 때문에 자신이 부탁했던 일을 끝마치기 위해서라도 아삼을 살려야만 했다. 앞에 있는 영악한 어린놈이 어떻게 규화보전을 익히고도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까지 속일 정도라면 흉흉한 황궁에서 목숨을 보전할 수는 있을 거라고 믿는 사마택이었다.

    처음에는 장인태감이나 팽가, 다른 세력들을 등에 업은 아이들보다 뒤지지 않을 정도의 내력을 전해주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잠들어있는 기운을 당분간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혼신의 힘을 다 쏟아야만 했다. 어차피 곧 사라질 육신이었기 때문에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희대의 무공을 익히고도 내색조차 하지 않았던, 그리고 자신의 눈을 속인 아삼의 행동에 쓴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영악한 놈.'

    모든 힘을 쏟아내고서야 간신히 날뛰는 힘을 잠재울 수 있었던 사마택이었다. 비록 막아놓은 그 힘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커다란 충격이 없다면 위험한 상태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아삼이 은밀하게 가지고 있던 그 기운을 잠재운 사마택은 허해진 자신의 단전과 함께 비릿한 혈향을 느끼면서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과도한 기운과 함께 심적으로 고된 일을 여러 번 겪은 그였기에 정신을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던 아삼 역시 그의 손이 떼지자마자 앞으로 쓰러졌다.

    자신이 쓰러졌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아삼이었다. 계속 정신을 붙잡던 그가 단단한 기운에 쌓인 안정된 음기를 느끼자마자 마음을 놓았고, 그 뒤로는 생각을 이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정신을 차린 아삼이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어스름한 주변이 정확히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누워있는 곳이 침상이라는 점과 주변은 방으로 보인다는 것에 무고에서 옮겨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느껴지는 인기척에 움찔한 아삼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그것을 만류하려는 듯 다가온 사람이 입을 열었다.

    "되었다. 그대로 있거라."

    사마택이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의 모습은 마친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아삼이 침상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조아렸다.

    '들켰겠지? 확실히 그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알아챘을 거야.'

    그 어떤 사실보다 자신이 몰래 비급을 익혔다는 사실을 들킨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마택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었다. 조심스럽게 사마택의 눈치를 살피는 아삼이었지만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인 어린 아이를 보던 사마택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지금은 몸을 보중하거라. 죽일 생각이었다면 살리지도 않았을 게다."

    "……."

    사마택의 말을 들은 아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서 앞에 서 있는 사마택을 바라보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안심하라는 듯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사마택이었다.

    - 이미 익힌 비급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기운을 네 의지 아래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지독한 음기를 움직이는 것은 온전히 네 몫이다. 내가 미력하게나마 그 음기를 막아놓기는 했으나, 얼마나 갈지는 확언할 수 없다.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나, 당분간만이다. 남은 일들은 모두 너에게 달려있다.

    "……."

    귓속으로 파고드는 사마택의 전음에 아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힘겨운 듯 잠시 숨을 고르던 사마택이 품안으로 손을 넣더니 두개의 책을 꺼냈다.

    - 받거라. 하나는 전음술(傳音術)에 관해서 필사한 책이고, 나머지 하나는 규화보전에 관한 책이다. 규화보전을 익히려던 자들의 소행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궁에서도 이전부터 이 비급에 대한 비밀을 풀고자 무던히도 노력했다. 절세의 비급을 익힐 수만 있었다면 오랑캐와 무림이라는 곳을 그대로 좌시하지만은 않았을 테지.

    "……."

    - 그 엄청난 위력을 가진 비급이었지만 익힌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물건이었다. 그 비급을 익히려 했던 자들의 상태를 소상히 적어놓은 책이니 네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서 머릿속에 새겨 놓도록 하거라.

    "……."

    떨리는 손으로 건네는 비급을 받아드는 아삼의 눈이 사마택의 얼굴을 바라봤다. 과분한 것을 건네는 사마택의 얼굴은 비교적 담담했지만, 그 담담한 얼굴에서 이전 생의 마지막을 결정하던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 아삼의 눈빛을 읽은 것인지 미소를 보이던 사마택이 계속해서 전음을 이어갔다.

    - 고심해서 내린 결정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았던 이전의 나였다면…… 너를 이렇게 살려두지는 않았을 게다. 내 너를 양자로 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 아들이라 생각하려 했었다. 부디 너는 네 뜻대로 이 한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거라.

    진심어린 사마택의 말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아삼은 그대로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이전의 자신이 그의 몸에서 투영되고 있었고, 그의 감정이 어린 몸을 가진 자신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삼을 말없이 바라보던 사마택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이제 자신의 일을 끝낼 때가 다가왔다. 비급을 옮기라던 황제의 명을 은밀히 실행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고, 그 일을 마친다면 역모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어딘가에 있을 딸아이도 가슴을 졸이면서 살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고개를 숙인 아삼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은 사마택이 몸을 돌렸다. 한없이 작아 보이는 그의 등을 보던 아삼이 다시 한 번 그를 향해 읍을 했고,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을 빠져나간 사마택의 얼굴에는 허탈한 미소가 지어졌다.

    은밀히 무고를 옮기겠다던 황제의 명. 그리고 그 일을 도맡게 된 사마택은 추리고 추린 비급의 진본을 몰래 옮기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했다. 누구도 알게 하면 안 된다는 황제의 명에 따라서 은밀한 장소로 옮겨진 비급을 바라보는 사마택의 눈에는 착잡함이 묻어났다.

    '황제는…… 위험한 사람이다. 껍데기만 남긴 황궁무고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그 알맹이는 비처로 옮긴다니. 황제의 그릇은 다르다 이것인가?'

    언젠가 노려질 황궁무고였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중요한 비급들은 따로 옮기려는 황제의 생각은 다시 한 번 그의 됨됨이를 알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런 황제의 눈을 피해서 살아가야만 했던 자신의 가문이 이제 양지로 올라올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사마택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중요한 비급은 옮겨지고 있었다. 유일하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황제와 사마택,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황제를 보필하는 황제의 최측근들뿐이었다.

    며칠 후, 무고를 향하던 아삼의 눈에 무고 앞에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 생긴 듯 웅성거리면서 무고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에 아삼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내 무고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마택의 시체에 아삼의 두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차갑게 식어버린 사마택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돌렸을 때, 침울한 눈빛으로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장 천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직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였지만 이전까지 자신을 생각해주던 사마택을 그렇게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 장 천호를 도와서 그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마음을 먹은 아삼이 그곳으로 다가가자, 무고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던 자들이 일제히 부복하면서 들어서는 누군가를 향해 예를 표하였다.

    "황제폐하, 납시오."

    낭랑한 환관의 목소리에 놀란 장 천호와 아삼이 부복을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삼의 눈에 무고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황금빛 가죽신이 가득 들어왔다.

    "이렇게 가다니 안타깝구나. 지금껏 이 무고를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은 인사다. 장례라도 성대하게 치러주도록 하거라."

    황제의 명에 장 천호가 길게 읍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마택의 장례가 시작되었다. 우선 양물단지에서 거세된 양물을 꺼내든 환관이 사마택의 양물을 다시 봉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곱게 지은 수의를 입혀 관에 봉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삼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자신의 끝을 알고 있었을 그였다. 마지막에 어딘가에 남아있을 딸아이를 떠올리던 사마택의 아련한 눈빛을 떠올린 아삼이 침음을 삼켰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해 놓은 사마택의 서찰이 느껴지자, 그가 청했던 말을 떠올리는 아삼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서찰은 꼭 전해주겠소. 마음 편히 떠나시오.'

    아삼의 눈이 사마택의 비어진 양물단지로 향했다. 혹여라도 건네받은 서찰을 잃어버리지는 않을지 고민하던 그였다. 그리고 그 서찰을 숨겨놓을 안전한 장소를 확인한 아삼은 비어있는 양물단지를 떠올리면서 생각을 굳혔다.

    다시 한 번 관을 바라보던 아삼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마택의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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