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41화 (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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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일부러 일을 크게 벌리려던 아삼의 생각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은밀하게 처리하라던 정태감의 의도를 무산시킴과 동시에 이인학에게 돌아갈 조삼보를 찾은 공을 줄일 수 있었지만 팽가라는 것을 밝히고 일을 수습하는 이인학의 태도는 그의 의도와 많이 벗어났다.

'거기에서 팽가를 들먹일 줄이야.'

앞서서 걷는 이인학을 바라봤지만 가벼운 걸음걸이로 사내의 뒤를 따르는 이인학의 모습은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노인이 붙여준 사내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움직인 곳은 저잣거리에서도 구석진 곳을 이리저리 돌아서 들어간 골목길이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누군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것 같았는데 미로처럼 이어진 그 길은 쉽게 들어올 만한 길은 아니었다.

이윽고 허름한 창고같은 건물과 멀리 떨어진 곳에 선 사내가 그곳을 가리키면서 뒤따르던 두 사람을 돌아봤다.

"저기…… 저기 보이는 허름한 창고에 그가 있소."

"알았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반말을 내뱉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노인에게도 툭툭 내뱉는 말투를 보면 그 신분이 높다는 것을 인지한 사내가 속으로 욕을 삼키면서 퉁명스럽게 말을 꺼냈다.

"여기까지가 내 일이오. 남은 일은 관여치 말라고 하셨으니 이만 가보겠소."

"좋다. 이번 일은 철저히 함구해야 할 것이라고 전하거라."

"…… 알겠소."

멀어지는 사내를 본 이인학이 아삼을 바라봤다. 우선 저곳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지원을 요청할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자신이 익히고 있는 무공이라면 조삼보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혹시라도 도주를 할 수도 있으니 네가 앞장서서 문을 열어라. 나는 위로 올라서서 다른 도주로가 없는지 확인해 볼 테니."

"……."

명령조로 내뱉는 이인학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삼이었지만 이왕 돕기로 한 것 빨리 끝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동을 보고 만족하는 듯 웃음을 지어보이던 이인학이 땅을 박차면서 위로 올라섰다. 조잡하게 엮인 초가의 위에 올라선 그가 앞에 있다던 창고의 주변을 바라보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도주로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불쑥 떠오른 생각에 급히 문 쪽으로 다가서려던 아삼의 뒤를 쫓았다.

'동창의 번역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거야! 이런, 조삼보를 잡는 사람은 내가 되어야 하거늘. 그 기회를 날려버리다니.'

침음을 삼키던 이인학이 바닥을 박차면서 기운을 끌어올렸다. 단전에서 일어난 양력의 기운이 기맥을 돌아서 용천혈로 뿜어져 나왔다. 순식간에 아삼을 따라잡은 이인학이 낡은 창고의 문을 열어 젖혔다.

끼이이익.

낡은 경첩소리와 함께 적막했던 그 공간이 깨져나갔고 열려진 문 사이로 누군가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튀어나온 그 인형이 앞에 있는 이인학을 향해서 무식한 박도를 휘둘렀고 갑작스런 공격에 상체를 숙이면서 휘둘러진 박도를 피하는 이인학이었다.

허공을 가르는 묵직한 도가 반쯤 열린 문을 박살냈고 그 틈을 노린 이인학의 장이 빠른 속도로 출수했다.

벽력장(霹靂掌).

이전에 벽력도법과 함께 받았던 팽가의 절기가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우르릉'거리면서 공기가 떠는 듯 했고, 벼락같이 출수한 그 장법에 적중한 사내가 피를 뿜으면서 바닥에 처박혔다.

한차례 몸을 떨던 그 사내는 꿈틀거리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그 모습에 충격을 먹었는지 이인학의 몸이 가늘게 떨려왔다. 멍하게 서있는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 아삼이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

말을 할 수 없는 그였기 때문에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인학을 향해서 손을 날렸다. '짜악'하는 소리와 함께 이인학의 고개가 돌아갔고, 뺨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이인학이 딱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삼을 보고는 급히 몸을 추슬렀다.

얼얼한 뺨을 붙잡고 문에 박힌 박도를 쥐려는 순간 어둠속에서 누군가 튀어나왔다. 갑자기 튀어나온 상대의 모습에 움찔하던 이인학이었지만 채 그의 곁에 다가서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아삼의 손에 목을 잡히고는 '컥컥.'대면서 고통스러워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놈을 향해서 분뢰수를 펼친 아삼이었다. 습격이 있고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법 익숙해진 분뢰공이었지만 사용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규화보전의 한기가 언제 다시 눈을 뜰지 몰랐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목을 붙잡힌 상대도 엄청난 빠름에 침을 꿀꺽 삼켜야만 했고, 생각보다 강한 아삼의 무공에 경악하던 이인학은 빼낸 박도로 눈치를 살피는 자의 가슴을 찔러 넣었다.

'무슨……'

갑작스런 이인학의 돌발적인 행동에 눈을 크게 뜬 아삼이었지만 피가 묻은 도를 털어낸 이인학은 굳은 얼굴로 안으로 들어섰다.

'저놈이 나조차도 반응할 수 없는 자를 상대로 저런 무공을 펼쳐 내다니. 무슨 기연을 얻은 거지? 옆에서 지켜보던 상태라 반응이 더 빨랐던 건가?'

처음보는 아삼의 실력에 자만하던 이인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상대조차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삼이었지만 처음 접한 그의 위력적인 무공은 이전에 가졌던 경시했던 마음을 지우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들어선 이인학을 따라서 안으로 발을 내민 아삼이었지만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저 조삼보의 위치만 알리면 될 일이었지만 욕심이 많은 이 어린놈은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어둠이 찾아왔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어둡고 두꺼운 천이 부서진 문을 가렸고 주변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안에서 숨어있던 조삼보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순간에 대비해서 낭인들을 고용한 상태였다. 이미 관의 병력으로 이곳이 통제된 이상 빠져나가는 일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괜한 짓을 벌였다고 후회를 했지만 너무 늦은 상황이었고 그나마 반항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동안 벌어들인 돈으로 관군의 힘을 줄이는 것뿐이었다.

안에서 들어온 자들을 확인하던 조삼보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자신이 그동안 눈여겨봤던 두 아이가 자신을 잡겠다면서 안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 씁쓸하게 웃던 조삼보였지만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었다.

'네놈들을 이곳으로 밀어 넣은 그 고자 새끼를 탓하거라.'

순식간에 어두워진 어둠에 적응을 할 시간이 부족한 두 아이였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것을 깨달은 둘이 두 눈을 감았다. 어둠에 관련된 사항은 조삼보에게 배웠던 것들이었다. 귀를 쫑긋거리면서 주위의 기척을 느끼려는 이인학과 살수지무를 운용하면서 기척을 느끼는 아삼이었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서로 다른 기척에 조심스럽게 이인학과의 거리를 벌리는 아삼이었다. 혹시라도 잘못해서 휩쓸리게 되면 서로가 서로를 공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멀어지는 아삼의 기척을 느낀 이인학도 천천히 반대되는 곳으로 거리를 벌렸다.

'아직까지 야백안을 쓸 수는 없겠지. 그렇다면 유리한 것은 바로 나다!'

뒤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두 아이를 보고 쓴웃음을 짓던 조삼보가 품에 있던 암기를 뿌렸다. 요란한 파공음을 흘리면서 날아드는 암기가 순식간에 두 사람의 면전에 들이닥쳤고 그 소리를 기점으로 안에 있던 낭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티잉.

날아든 암기를 박도로 쳐낸 이인학이 앞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급히 몸을 곧추 세웠고 고개를 숙여서 암기를 피한 아삼은 무영보법을 펼치면서 자신의 기척을 지웠다. 순식간에 사라진 아삼의 모습에 잠깐 사이에 이인학을 바라봤던 조삼보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예사 놈이 아니다!'

그 사이에 도를 휘두르면서 낭인들을 상대해나가던 이인학은 두어 명을 쓰러뜨리면서 소진된 진기에 지쳐가는 몸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겪는 실전과 살인이었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칭찬을 받을만 했다.

기척을 지우면서 모습을 감춘 아삼은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하면서 내공의 소모를 줄였다.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성을 안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행여라도 잠들어있던 한기가 깨어나면 감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실질적으로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조삼보였다. 간혹가다 암기를 날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용한 낭인들보다도 못한 실력을 가진 그였기 때문에 뒤에서 지켜보면서 기회만 엿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지켜보던 그는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옆에서 맹렬한 도법을 펼치는 팽인학의 모습은 흡사 호랑이를 닮았다. 위력적인 도법이 벽력도라는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꽤나 위험한 무공이었고, 어린 나이에 저런 성취를 보인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정작 감탄한 것은 바로 아삼이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던 그 아이는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옆에 있을 팽인학에게 상대를 보내면서 틈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빈틈을 본 팽인학의 도에 낭인들이 쓰러져갔다. 당연히 점점 더 지치는 사람은 팽인학이었고 비교적 멀쩡한 아삼이라는 아이는 수월하게 낭인들을 상대해 나갔다.

'영악한 놈이다. 싸우는 법을 잘 알고 있어.'

어린 나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대처였다. 자신의 도법과 힘에 취해서 마음껏 무공을 사용하는 팽인학이라는 아이보다 아삼을 더 높게 평가하는 조삼보였지만 이곳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은 쪽은 아삼이라는 아이가 있는 쪽이었다.

'영악하지만 무공이 팽인학이라는 놈보다는 떨어진다. 잘만 하면 이곳을 벗어날 수도 있겠어.'

순간 아삼을 유의 깊게 바라보던 조삼보의 눈이 빛났다. 마지막 낭인을 팽인학에게 밀어주면서 틈을 만드는 순간, 그 아이가 안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린 조삼보가 바닥을 박찼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마지막 낭인을 이인학에게 밀어주고 다행히 날뛰지 않는 한기에 안도를 하는 순간을 노렸기 때문에 대처가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위기를 자처한 스스로에 대해 자책을 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상황판단이 빠른 자다. 고순가?'

더욱 긴장한 아삼이 단전에 있는 기운을 움직이려고 할 때, 움직임을 보이려는 숨겨진 기운이 느껴졌다. 여기에서 더 많은 기운을 끌어올렸다가는 그놈이 깨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아삼이었다.

잠깐의 틈을 보인 순간 조삼보가 달려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조삼보가 고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전에 상대했던 낭인보다 떨어진 실력이었지만 경공은 수준급이었다. 어설프게 날아온 공격을 피한 아삼의 손이 빠른 속도로 조삼보를 향해 뻗어나갔다.

분뢰수.

우뢰를 나눈다는 무공이 손을 통해서 나아갔고,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빠름에 헛바람을 집어삼킨 조삼보는 목에서 느껴지는 아찔한 충격에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크윽!"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잡혀진 목과 함께 빠른 공격을 보여준 아삼을 바라보는 조삼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 이런 공격을 보일 정도라면 자신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고수였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삼의 얼굴을 본 조삼보가 경악을 할 때, 남은 낭인까지 처리한 이인학이 헐떡거리면서 드리워진 두꺼운 천을 잘라냈다. 남은 기척이 얼마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처리를 했다고 판단한 이인학이 입구를 막은 천을 잘라내자 쏟아지는 밝은 빛에 눈을 가려야만 했다.

어느 정도 빛에 적응을 한 이인학이 창고 안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뿌듯해 했지만 아삼의 손에 잡힌 조삼보를 보고 얼굴을 구겨야만 했다. 자신이 있던 주변에 대부분의 낭인들이 쓰러져 있었고 아삼은 조삼보의 멱을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얍삽한 자식!"

드러난 광경에 분노하던 이인학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아삼을 노려봤다. 그 시선을 느낀 아삼은 자신을 노려보는 이인학을 향해 조삼보를 건넸다.

"무슨 뜻이냐?"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찌푸린 얼굴로 조삼보를 건네는 아삼의 모습에 의아해하는 이인학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아삼은 발로 바닥을 끄적거리면서 말없이 그곳을 벗어났다.

'팽가'

바닥에 적힌 단 두 글자에 아삼의 행동을 이해한 이인학이었다. 도움을 요청한 자신에게 최고의 도움을 준 팽가의 행동에 웃어보이던 이인학이 손에 잡힌 조삼보를 바라며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푸욱.

"크억."

가슴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에 번쩍 뜬 두 눈으로 이인학을 바라보던 조삼보의 모습에 비릿하게 웃던 이인학이 조용히 속삭였다.

"당신은 내가 잡은 거야. 그 사실을 알릴 수는 없잖아."

어린놈의 심계에 인상을 찌푸린 조삼보의 고개가 떨궈졌다. 너보다 더 대단한 놈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는 듯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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