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40화 (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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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인지 객잔으로 들어서자 두 무리로 나뉜 아이들이 이인학과 아삼을 반겼다.

    "여기야, 여기!"

    "뭐야? 두 사람만 따로 다니는 거야?"

    "팽인학이 선택한 놈인가? 운이 좋은 것 같군."

    꽤 왁자지껄한 객잔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아삼이 조용히 빈 곳을 향해서 걸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동기들의 말에 미소를 띤 이인학이 인사를 건네면서 아삼의 앞에 앉았다.

    "젠장, 저놈들도 다 우리와 비슷한 생각인 건가?"

    다른 아이들이 미리 이곳에 와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이었다. 특히 이인학은 아삼을 제외하고도 다른 아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는 사실에 찝찝함을 느끼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윽고 그들에게 다가온 비슷한 또래의 점소이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 물어왔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이인학이었지만 조금 뒤에 물어볼 것들을 대비해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간단하게 소면으로 두 그릇 가져다 줘. 어때?"

    아무 말도 없는 아삼을 돌아보면서 그의 의견을 묻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그였고 그 모습에 거친 걸레질로 탁자를 훔치던 점소이가 투덜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젠장, 어디 학관에서 단체로 나온 건가? 관군들이 마을을 가로 막았다더니 요사이에 무슨 일이람?"

    그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이인학이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하오문과 관련이 돼서 도움이 될 만한 자는 지금 투덜거리면서 걸음을 옮기는 점소이가 가장 유력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지금 객잔을 가득 채우고 있는 또 다른 경쟁자들이었다.

    "흐음.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턱을 괴면서 생각을 해보려던 이인학이 옆에 앉아있는 아삼을 바라봤다. 하지만 별다른 말도 없이 주변을 살피는 그의 행동에 괜한 기대감을 품었던 자신을 자책하면서 다른 방법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객잔을 가득 채웠던 동기들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 들어선 것이었다. 그들은 조삼보를 쉽게 찾기 힘들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우선 배가 든든해야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단지 식사를 위해서 찾았지만 개중에 몇 명은 눈을 빛내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이제 슬슬 움직이자."

    천천히 소면을 먹은 이인학이 옆에 있는 아삼을 바라봤다. 느리게 젓가락질을 하던 아삼이 그를 보더니 손가락에 물기를 묻히면서 탁자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은밀한 그의 행동에 묘한 기대감을 갖은 이인학이 급히 그의 손끝을 좇았고 적혀진 그 글을 보고 인상을 구겼다.

    "이익…… 지금……"

    '소면'이라고 적힌 글을 보고 짜증을 내려던 이인학이었지만 진지한 아삼의 표정에 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생각이 없는 놈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들은 이인학이 다시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 소면 한 그릇 더."

    "…… 예."

    떨떠름한 표정의 점소이였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진득하게 기다리던 다른 동기들도 객잔을 벗어났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섰고 객잔에 남은 사람은 이인학과 아삼 둘 뿐이었다.

    "젠장, 얼마나 더 처 먹는거야! 꼴랑 몇 푼 안 되는 소면만!"

    또다시 주문을 받고 투덜거리면서 걸어가는 점소이의 말에 앉아있던 이인학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런 말도 없이 벌써 세 그릇의 소면을 비운 아삼이었다. 자신도 두 그릇이나 먹었지만 별다른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은자를 쥐어주고 묻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이러는 이유가 있어?"

    "……."

    은밀히 묻는 이인학이었지만 벙어리인 아삼이 답할 수는 없었다. 소면이라는 글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글도 적지 않는 그의 행동에 화를 내려던 이인학이었지만 분명히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참고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언제부터 저놈의 말을 듣고 있는 거지?'

    어느 순간 아삼에게 끌려다니는 자신을 발견한 이인학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때, 소면을 가지고 오는 점소이를 바라보던 아삼의 눈이 빛났다.

    '측간을 갔다가 물기 있는 손으로 소면을 한 바퀴 휘젓는 것을 보면 뭔가를 묻힌 건가?'

    쓰게 웃은 아삼이 그 점소이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고 객잔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비웃는 듯한 웃음이 걸린 것을 확인한 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자, 소면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요!"

    전보다 유쾌한 말투로 소면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점소이였다. 그런 점소이의 손을 잡아챈 아삼의 행동에 젓가락을 들려던 이인학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이거 왜 이러십니까? 갑자기."

    자신을 노려보는 아삼의 눈빛에 겁을 먹은 점소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젓가락을 들었던 이인학도 아삼을 바라봤다. 한 손으로 점소이의 손을 잡은 아삼이 다른 손으로 탁자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글을 본 이인학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이 더러운 소면이 자신의 입에 들어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붉어진 얼굴의 이인학이 아삼을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짓을 주는 아삼이었다. 본능적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벌어야 할지 알게 된 이인학이 크게 소리쳤다.

    "이 소면에 무슨 짓을 한 거지?"

    "무…… 무슨 짓이라니요. 단지 소면일 뿐입니다."

    "그래? 후훗."

    비릿하게 웃는 이인학의 표정에 뭔가 잘못됐다 싶은 점소이가 움직이려고 했지만 아삼의 손에 잡힌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생각보다 억센 그 힘에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고 본능적으로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점소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그때, 커다란 덩치를 가진 장한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누가 우리 식구를 건드리는 거야? 무슨 일이야?"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장한의 행동에 점소이의 얼굴이 밝아져서 앞선 두 사람을 바라봤지만 그들의 표정은 바뀐 것이 없었다. 직감적으로 무언가 잘못 됐다고 판단한 점소이였지만 쏟아지는 날카로운 눈빛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면에 더러운 짓을 했더군."

    "뭐? 그건 무슨 개소리야? 증거라도 있어?"

    "…… 좋아 그렇다면 네놈들이 먹어봐라. 깨끗하게 다 비우면 그때, 우리가 사죄하고 변상까지 하지."

    "……."

    이인학의 말에 그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무래도 작정을 하고 어린놈들을 골려줄 생각이었지만 눈치 빠른 놈들이 그 사실을 알아챈 것 같았다. 그렇다고 순순히 인정하기도 힘들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장한이 우악스럽게 이인학을 향해 달려들었고 그 사실을 눈치 챈 이인학이 옆으로 움직이면서 장한의 두 손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비어진 장한의 복부에 발차기를 날리자 '퍼엉'소리를 내면서 뒤로 나가떨어지는 장한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순식간에 부서진 탁자와 의자에 객잔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커다란 식칼과 몽둥이를 든 그들의 눈에 표독스러움이 넘쳐흘렀고 그 눈빛을 접한 아삼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때, 그 모습을 본 이인학이 탁자에 올라서면서 명패 하나를 꺼내들고 소리쳤다.

    "나는 팽가의 사람이다! 하오문이 하북에서 우리 팽가와 척을 지려는 것이냐?"

    이인학의 외침에 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북이라는 지방에서 팽가의 위세는 그만큼 대단했고 그의 손에 들려진 명패가 팽가의 것을 확인한 노쇠한 사내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을 이었다.

    "팽가 사람이 어인 일이요? 왜 우리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오?"

    "시비? 먼저 우리에게 모욕을 준 것은 네놈들이 아니었던가?"

    "…… 따라오시오. 분명히 이러는 연유가 있을 터. 그 이유를 알아야 하지 않겠소?"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아삼이 이인학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눈빛을 접한 이인학이 명패를 갈무리하면서 그 노인의 뒤를 따랐다.

    '뭔가 명분을 얻으려 했음인가? 확실히 무작정 묻는 것보다야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이런 상황까지 예견했던가?'

    객잔의 뒤에 있는 독채에 마주한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무표정한 모습의 아삼과 걱정스러운 눈길로 두 아이를 바라보는 노인이었다. 그리고 일이 잘 풀려간다는 생각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인학이었다.

    '팽가의 위세가 대단하구나. 명패 하나에 흉흉했던 놈들이 꼬리를 마는 꼴이라니.'

    새삼 하북팽가의 위세를 느낀 인학은 그들의 양자가 된 자신의 신분을 느끼면서 의기양양해 있었다.

    "일부러 찾아온 것 같소만. 혹시 이곳을 막아선 관과 관련된 것이오?"

    "……."

    "…… 역시 하오문인가? 아무튼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그게 무엇이오?"

    "조삼보."

    "……."

    "이 근처에 숨어있는 조삼보의 위치를 알고 싶다."

    "조…… 삼보라. 먼저 우리에게 요청을 한 자는 그 조가요. 아무리 팽가를 등에 업었다고는 하나 그를 내어준다면 강호 사람들은 더 이상 하오문을 신뢰하지 않을 거요."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노인이 머리를 가로저었고 그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런 노인을 바라보던 이인학이 천천히 노인을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이대로 함구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잡힐 조삼보다. 지금 관의 인사들이 이곳을 빈틈없이 막아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

    "조삼보와 관련된 하오문이 관의 손길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거냐?"

    "관! 관이라고 했소? 그렇다면 이곳을 막아선 이유는?"

    "거기까지. 더 이상 알아봤자 좋을 것은 없을 것 같은데?"

    이인학의 말에 급히 입을 다무는 노인이었다. 어려보이는 놈이었지만 상당히 영악하고 침착해 보였다. 또래에 맞지 않는 생각과 함께 침착함을 가진 놈의 행태로 봐서 역시나 팽가의 핏줄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노인이었다.

    '팽가의 핏줄이라고 하기에는 몸집이 많이 왜소한 것 같기도 하지만…… 몇 해 전에 들였다던 양자인가? 그렇다면…… 황궁에서 나왔단 말인가?'

    떠오르는 생각에 다시 찬찬히 두 아이의 모습을 살피자 유독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가 눈에 걸렸다. 살짝 굽은 듯한 자세로 미루어보아 자신의 짐작이 맞다고 깨달은 노인의 입에서 침음이 흘렀다.

    "결정은 내린 건가? 이대로 척을 질 텐가?"

    "…… 좋소. 조삼보의 위치를 알려드리리다. 다만, 이번 일에 우리 하오문은 없었소."

    "당연하다."

    "그곳까지만 안내하고 손을 떼겠소. 그 뒷일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 이 말이오."

    "알아들었다. 꽤 현명한 선택이군."

    자신만만해 하는 이인학의 태도에 인상을 굳힌 노인이 그 옆에 있는 아삼을 바라봤다. 시종일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아이의 행동이 미심쩍었지만 그래도 그 옆에 있는 이인학에 비하면 한참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노인이었다.

    '조삼보를 잡기 위해서 관이 이곳을 막았다라…… 헌데, 왜 직접 나서지 않고 이런 아이들을 내세우는 것인지? 환관같아 보이는 어린 아이들을……'

    밀려드는 의문을 떨쳐낸 노인이 객잔으로 가더니 따로 한 사람을 붙여줬다. 따로 이번 일과 관련된 보고를 올려야 했기 때문에 직접 나설 수가 없었다. 그나마 믿을만한 사내를 붙여주면서 단단히 주의를 준 노인의 시선이 밖에서 기다리는 두 아이에게 꽂혀들었다.

    '어린 환관이라…… 동창? 생각보다 큰일을 벌이는군. 황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호전적인 영락제의 행보를 떠올린 노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황제의 의중 하나하나가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었다.

    붙여준 사내와 함께 몰래 객잔을 빠져나가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노인이었다. 그리고 따로 준비된 방을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오문의 문도로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따로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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