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35화 (3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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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직임

    초조한 모습으로 방안을 거닐던 장인태감이 바깥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반가워 하면서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고 소리쳤다.

    "어서 안으로 들어 오거라.”

    반기는 듯한 장인태감 송기득의 목소리에 쭈뼛거리면서 전각으로 들어선 환관 한 명이 그의 앞에 부복을 했다. 불안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면서 장인태감의 눈치를 살피던 환관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은 듯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그 모습에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장인태감이 환관을 다그치면서 물었다.

    "왜 대답이 없는 것이냐? 그래, 어찌 되었느냐? 비급은 손에 넣었느냐?”

    장인태감의 하문에 부복해 있던 환관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것이…… 송구하옵니다. 공공. 이번 일은 실패하였사옵니다.”

    "뭐라? 시……실패?”

    믿기 힘들다는 듯이 되묻는 송기득이었지만 다시 한 번 들려오는 환관의 대답에 큰돈을 들이고 위험을 무릅썼던 이번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그였다.

    새빨개진 얼굴로 부복해있던 환관을 노려보던 송기득이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환관의 가슴을 거칠게 걷어찼다.

    '크윽.’

    장인태감의 발에 가슴을 차인 환관이었지만 고통스러운 신음을 안으로 집어삼켜야만 했다. 여기에서 소리를 냈다가는 흥분한 장인태감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을 부여잡은 환관이 재빨리 장인태감 앞에 다시 부복했고, 그런 환관을 다시 한 번 걷어차면서 호통을 치는 송기득이었다.

    "이런 모자란 놈! 그깟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단 말이냐? 내 멍석까지 깔아주고 들인 금자만 수십만 냥 이거늘!”

    거친 숨을 몰아쉬는 장인태감을 보면서 눈치를 살피던 환관이 비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억울하다는 듯이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송구하오나 무고를 지키는 자들의 실력이 대단한 것 같았사옵니다. 혹여나 들킬까봐 가까이 가지는 못했지만 아무래도 살아나온 놈들이 없는 걸로 봐서는 모두가……"

    "이익…… 되었다. 입단속은 알아서 잘 했겠지? 오늘 일은 함구해야 할 것이야. 그렇지 않으면, 네 놈도……"

    "여부가 있겠습니까. 공공."

    매섭게 노려보는 장인태감의 눈빛에 얼어붙은 환관이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고 그런 환관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장인태감이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앞에서 눈치를 살피던 환관이 재빨리 전각을 나섰다.

    '그리 간단한 일 조차 해결하지 못하다니! 무림에서 이름 난 놈들이라더니 모두가 허명이었던가? 이제는 되려 몸을 사려야하지 않은가!'

    손을 썼던 금의위와 함께 관련된 자들의 입을 막아야만 하는 송기득이었다. 자신의 힘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이번 일을 없앨 수 있겠지만 한동안은 자중해야만 했다. 이 황궁에서 그와 비슷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패로 돌아간 이번 일을 되짚어 보던 장인태감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간밤의 일을 보고하기 위해서 정화를 찾아가는 사마택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금의위를 움직일 정도라면 엄청난 위치에 있는 자가 배후로 있을 테지. 상당한 힘을 가진 자일 텐데…… 찾아낸다고 한들 쉬이 처리할 수 있을까?’

    상대할 자들을 생각하면서 긴 한숨을 내쉬던 사마택이 전각으로 들어섰고 그런 사마택의 모습을 본 정화가 미소를 지으면서 되물었다.

    "이 사람아, 그리 한숨을 쉰다고 땅이 꺼지겠는가?”

    갑작스런 정화의 장난기 어린 말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사마택이 재빨리 부복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송구하옵니다. 공공. 소인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그래, 무슨 일인데 그렇게 한숨을 내쉬는 건가? 천하의 사마택이."

    "농이 과하십니다. 공공."

    "자네 표정을 보아하니 심상치 않는 일인 것 같은데. 무슨 연유인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사마택을 바라보자 정화의 눈빛을 접한 사마택이 간밤에 무고에서 있었던 일을 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 말을 듣던 정화의 얼굴이 굳어져만 갔다.

    "흐음. 간밤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래, 다친 사람은 없는가?”

    "암중에서 무고를 지키던 장 천호(千户)의 수하 몇이 목숨을 잃었으나 비급이 유출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사옵니다.”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이로군. 그런 무공 비급 따위야 그냥 줘버려도 될 것을 괜한 사람들만 목숨을 버린 거로군. 흐음."

    "공공. 그 말씀은……"

    "왜 그런가? 그런 종이 쪼가리들이 그들의 목숨보다 귀하다고 생각하는 겐가?"

    "송구하옵니다. 소인이 어찌……"

    사마택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던 정화가 날이 선 물음을 내던졌다. 그 목소리에 급히 몸을 숙인 사마택이 말을 잇지 못했다.

    냉랭한 분위기에 눈치를 살피던 사마택이었다. 보고를 받은 정화의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듯 했고 그의 기분을 읽은 사마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헌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사마택의 모습에 조심스러운 그의 태도를 바라보던 정화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안다는 듯이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무고를 습격한 자들의 배후가 심상치 않았겠지."

    "금의위까지 움직인 걸로 봐서는…… 그냥 이대로 묻어둬야 하겠지요?”

    "그렇게 생각 하는가?"

    "소인이 어찌……"

    "자네를 다그치려는 것이 아니네.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황공하옵니다."

    급히 읍을 하는 사마택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씁쓸한 미소를 띠는 정화였다. 생각보다 대범하게 움직이는 자들의 행태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고 그 짓을 벌일만한 깜냥을 가진 자들을 떠올리던 정화가 몸을 숙이고 있는 사마택을 내려봤다.

    "누구의 짓인지는 밝혔는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정황상…… 장인태감이 관련된 것 같사옵니다."

    "흐음. 송기득이라."

    "아직 확실하지는 않사옵니다. 조금 시일이 걸릴 듯하지만……"

    "아니네. 내 생각도 일치하네. 그럴 깜냥이 되는 놈은 송기득 밖에 없지. 유현이라는 놈은 너무 소심하고 신중하니까. 송기득이 급하긴 급했나보군. 무고에 잠입할 생각을 다하고……"

    "빠른 시일 내에 조사해 보겠습니다."

    "알겠네. 그만 나가보게."

    정화의 축객령에 왔던 전각을 다시 빠져나가는 사마택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마택을 바라보는 정화의 눈빛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이제 다시 원정길에 올라야 하는데……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니겠지?'

    하얀 천으로 어깨를 감은 아삼은 지난밤의 아찔했던 기억들을 되새겼다. 아직까지 살인이라는 무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조금만 잘못 했더라면 그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을 사람은 자신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절로 몸이 떨려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역시나 힘을 키워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아직까지 규화보전은 익힐 수가 없어. 시간이 부족하고, 남은 것은 분뢰공인가?'

    사마택이 보였던 엄청난 신위. 그 근본이 되는 무공이 바로 분뢰공이었다. 비호처럼 날아든 그의 손짓에 피를 뿌리면서 쓰러지는 적들의 모습은 절로 전율이 일게 만들었고 그가 사용했던 무공이 분뢰공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아삼은 사마택이 줬던 비급을 꼼꼼히 살피면서 다시 필사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어깨에서 미미하게 느껴지는 통증도 잃은 채 필사를 해나가는 아삼이었다.

    '평범한 아이는 아니겠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복면인의 머릿속이 복잡해져만 갔다. 장 천호라고 불리던 그 복면인은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삼을 바라봤다. 처음 겪는 시체였고 살인이었다. 실전도 처음이었을 테지만 어린 그 아이는 비급을 지켜내면서 살수 두 놈을 물리쳤다.

    물론 앞선 두 놈이 방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침착한 대처였고 단호한 손속이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놈이야. 어떻게든 그 능력이 피어날 때가 오겠지.'

    이내 아삼에게 시선을 거둔 복면인은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다. 희생된 부하들에 대한 처리도 해야 했고, 비어진 자리도 새로 채워 넣어야 했다. 물론 지난밤에 일어났던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무고를 더욱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대로 묻어두는 것은 아니 될 말이겠지?'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긴 정화는 앞으로 자리를 비울 자신을 대신해서 세력을 유지할 사마택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비록 그 능력이 뛰어난 사마택이었지만 능구렁이 같은 환관들의 공세를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호랑이를 잡을 수는 없어도 그 꼬리는 밟을 수 있지 않겠는가?"

    씁쓸하게 웃어보이던 정화가 걸음을 옮기면서 전각을 나섰다.

    "송 공공, 정 공공께서 드셨사옵니다.”

    갑작스런 정화의 방문에 장인태감 송기득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 놈이 여긴 무슨 일이지? 혹시 지난 밤 일을 눈치 챈 것은 아닐까? 설마 아니겠지…… 제깟 놈이 어떻게 알겠어? 설사 눈치를 챘다고 하더라도 증좌가 없을 건데…… 그냥 이대로 그냥 돌려보냈다가는 확신만 주는 꼴이겠지?’

    짧은 순간에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린 송기득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잔뜩 굳은 얼굴로 소리쳤다.

    "안으로 뫼시어라.”

    "송 공공,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아이고 정 공공, 원정에서 돌아오셨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이거 제가 먼저 찾아뵙어야 하는데 송구합니다. 그려.”

    언제 그랬냐는 듯 유들유들한 얼굴로 정화를 맞이하는 장인태감이었다.

    "이번 원정도 성공을 하셨다지요?”

    "다, 장인태감이 걱정해주신 덕이지요.”

    "헌데…… 무슨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걸음 하셨는지요?”

    정화의 눈치를 살피며 장인태감이 조심스럽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비릿한 미소와 함께 장인태감을 직시하는 정화였다.

    "조금 전에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송 공공께서도 관심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왔습니다.”

    "재미난…… 이야기라니요?”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는 것이야?’

    정화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웃음으로 포장한 송기득이 되물었다.

    "어젯밤 무고에 쥐새끼 몇 마리가 들어왔다 하더이다. 다행히 사태감이 그 쥐새끼들을 박멸했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하지 않았겠습니까?”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짐짓 모른 체 장인태감이 말을 이었고, 그 모습을 확인한 정화의 얼굴에 얄궂은 미소가 흘렀다. 아무리 황궁에서 살아남은 능구렁이 같은 장인태감이었지만 정화 역시 녹록치 않았기 때문에 잠깐 더듬은 그의 말투와 긴장한 모습에 확신을 가진 것이었다.

    "헌데 말입니다. 무고를 지켜야 하는 고양이가 그 쥐새끼들을 방관했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응당 쥐새끼를 잡아야 하는데, 왜 그 고양이들은 쥐새끼를 놓아 주었을까요? 혹여 그 고양이의 목에 누군가가 방울을 달지 않았을까요?”

    정화의 말에 장인태감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이내 아무렇지 않은 듯이 표정을 감춘 장인태감이 태연히 말했다.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쥐를 무서워하는 고양이인가 보지요.”

    "흐음. 그럴까요? 쥐를 무서워하기보다는 자신의 목에 방울을 단 그 주인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화의 말을 들은 장인태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 눈동자를 놓치지 않은 정화였다.

    "고양이를 족치면 그 주인이야 금방 드러나겠지요. 허나 이미 눈을 감기로 결정 한 이상 더 캐내서 무얼 하겠습니까? 다만, 그 주인이라는 놈이 더 이상 경거망동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요.”

    정화의 말을 듣고 그 뜻을 간파한 장인태감의 얼굴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그리고 그런 장인태감에게 마지막 쐐기를 박는 정화였다.

    "자중하시오."

    "……."

    "내 지금은 공사가 다망하여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아주나. 다시 한 번 그딴 짓을 벌였다가는 그 목이 무사하지는 않을 것이오!"

    갑자기 변해버린 정화의 태도와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기운에 땀만 흘리던 장인태감이 그의 눈치를 살폈다. 황제의 최측근인 그였다. 아무리 자신이 장인태감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게 밀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체면을 살려주던 그의 말이 명령조로 바뀌었지만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는 송기득이었다. 이미 자신이 벌인 짓을 알고 있는 정화였기 때문이다.

    전각을 나서는 정화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는 장인태감이었다. 어느새 두 주먹을 불끈 쥔 장인태감이 입술을 앙다물면서 낮게 읊조렸다.

    "정화, 네 이놈……"

    뒤에서 느껴지는 표독스러운 눈빛에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정화였다. 황제를 최우선으로 보필해야할 놈들이 몰래 권력을 탐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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