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32화 (3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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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직임

    천장에 박힌 야명주가 유난히 시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황금 몇 만냥은 거뜬할 정도의 크기를 가진 야명주가 여러개 박혀있는 천장은 마치 기다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킬 만큼 화려한 조각과 함께 비싼 야명주가 여의주처럼 곳곳에 박혀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기다란 탁자의 주변에는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을 바라보면서 경외의 눈빛을 담아내고 있었다.

    "교주님!"

    한 사내가 숨을 헐떡이면서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교주전 안에서는 뛰지 말아야한다는 말도 잊어버린 듯이 헐떡거리는 그가 호화로운 태사의에 앉아서 무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긴 백발의 사내 앞에 부복하면서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지?"

    "요즘 황궁 쪽,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뭔가를 눈치 챈 것 같습니다만……"

    "눈치? 눈치라……"

    백발의 사내가 기다란 흰 색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어느새 교주전은 적막이 내려앉았고 그런 교주의 눈치를 보면서 부복해 있던 사내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교주라고 불리는 사내의 아래에 있던 문사차림의 남자가 접힌 부채를 들면서 백발의 사내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미 황궁에서 우리 쪽에 줄을 대던 놈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긴 뭘 어쩐단 말이야! 황궁에서 눈치를 챘다면 슬슬 우리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지 않겠습니까? 교주님?"

    덥수룩한 수염에 큰 눈을 부라리던 덩치 큰 사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교주를 바라봤다. 그의 행태에 미간을 찌푸리던 문사차림의 남자였지만 딱히 제지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만 불경한 언사를 사용하는 그 장한을 한번 노려봐 줄 뿐이었다.

    "지금 움직이기에는 희생이 너무 커집니다. 특히나 황궁이라는 놈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놈들입니다. 황제라는 놈이 원체 드세서 정파라고 칭하는 놈들을 달달 볶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지금 존재를 드러내면 중원에 있는 놈들을 모두 적으로 돌릴 것입니다."

    "흥! 그깟 놈들이 떼로 덤벼 봤자지. 내 이 두 주먹으로 골을 부숴주겠어."

    자신의 뜻에 반하는 말에 문사차림의 사내를 보던 덩치 큰 사내가 주먹을 들어 올리면서 으름장을 놨고 그 모습에 발끈하려던 문사차림의 사내였지만 이어지는 말에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다들 자중하라 이르거라."

    "하지만, 교주님! 이미 놈들이 우리 존재를……"

    교주의 명에 덩치 큰 사내가 말을 이으려고 했지만 싸늘한 그의 웃음을 접하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 교주의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운을 눈치 챈 그가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급히 탁자에 머리를 박으면서 교주의 말을 따랐다.

    쿠웅. 쿠웅.

    "조…… 존명."

    "존명."

    그 사내를 필두로 명을 받드는 자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교주의 입에서는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이내 볼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휘양찬란한 곤룡포를 휘날리면서 전각을 빠져나갔다.

    '이제 슬슬 시작되는 것인가?'

    백발의 사내는 마교(魔敎)라 불리우는 집단의 교주 장위적이었다. 마교 교주 장위적.

    무림에서 이름 난 고수 중에 한 명으로, 손에 꼽을만한 무력을 갖춘 자였다. 일신상의 무위가 무림에서 수좌를 다투고 있었고 성격 또한 치밀하고 잔인해서 쉽사리 몸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한 번 손을 쓰면 후환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주원장에 의해서 내쳐진 그들이 이 천만대산으로 불리는 척박한 땅으로 들어온 지도 벌써 수십 해가 지났다. 쫓기듯이 들어온 본거지지만 생활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자신들을 내친 그들을 용서할 수는 없었고 언젠가는 들어가야 할 중원이었다. 이제는 슬슬 이 척박한 곳을 벗어날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아버님,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무영이. 네 생각은 어떠하냐?"

    장위적이 사내아이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아직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은 사내였지만 눈에서 정광이 흐르고 범상치 않는 기도를 흘리는 것을 보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였다.

    "소자가 아버님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소자의 미흡한 생각으로는…… 아직은 힘을 더 길러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무영이라고 불리는 아들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장위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어갔다.

    "힘이라? 우리 교의 힘이 아직까지는 부족하다고 느낀 모양이로구나."

    "소자는 그저……"

    "되었다. 농이었다. 그래 진전은 보이는 것 같더냐?"

    이전에 봤을 때보다 달라진 기도를 느낀 장위적이 흐뭇한 눈빛으로 그의 아들을 바라봤지만 그의 아들은 만족한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장무영이 힘들게 입을 뗐다.

    "……열심히는 하고 있으나 아직은 많이 부족한 듯 싶습니다."

    계속해서 일신의 무공을 높이기 위해서 수련을 한다고 하고 있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는 장무영이었다. 훗날,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교를 이끌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지. 자, 이걸 받거라."

    장위적이 건네 준 책을 조심히 받쳐든 장무영이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제껏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서 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책을 받아든 장무영이 그 책을 살펴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혈수마공(血手魔功)이다."

    "혀…… 혈수마공!"

    "지금 너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게다. 우리 신교 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수공이니 만큼 정진하다 보면 좋은 성취를 얻을 수 있을 게다."

    "명…… 명심하겠습니다. 기필코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장위적 건낸 비급을 든 장무영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미미한 미소를 띠는 그 모습에 아버지인 장위적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고 그 사실을 모르는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장무영은 간신히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면서 비급을 소중하게 갈무리했다.

    '드디어 혈수마공(血手魔功)을 익히게 되는 것인가? 드디어……'

    장무영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교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위력적이라고 알려진 비급을 익히게 될 순간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이제서야 자신이 교주인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교주인 아버지와 함께하는 곳에 누군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커다란 고리눈을 가진 덩치 큰 사내 하나가 씩씩거리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전에 문사차림의 사내와 반대되는 의견을 말했던 그 자였다. 그리고 그 뒤를 몇몇의 사내가 따라 들어왔다.

    "교주님! 아니 형님! 황궁에서 우리의 존재를 눈치 챘다면서 왜 가만히 계시는 겁니까? 당장 쳐 들어가서 본때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내가 두 팔을 걷어 올리면서 크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리던 장위적은 그를 타이르듯이 말을 건냈다.

    "일에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정면으로 황궁과 맞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지. 몇 백 명만 싸우고 끝낼 것들이 아니다. 머리를 써야지."

    "자살행위는 무슨 자살행위요! 저한테 염왕대만 주면 그 황젠지 황제 할애비인지 그놈들을 모두 처리하고 오겠소."

    마태령이 발끈하면서 소리쳤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장호영이 그런 마태령을 거들면서 앞으로 나섰다.

    "저도 마숙부와 같은 생각입니다. 아버님. 이미 존재를 들킨 이상 가만히 두면 그놈들은 우리 신교를 얕볼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런 버러지들 따위에게 우리 신교의 힘을 보여줘야 할 때입니다. 명만 내려주신다면 소자가 마숙부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장호영!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경거망동 하지 마라. 조급해하는 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황궁과 정파의 수많은 놈들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설령 상대한다고 한들 우리 교도들의 희생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흥! 신교의 소교주라는 사람이 어찌 그런 나약한 말을 한단 말입니까?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니요?"

    "꼭 해 봐야 아는 것은 아니다."

    "전 형님의 말에 수긍할 수 없습니다. 비겁하게 숨어서 눈치를 살피느니 차라리……"

    무영과 호영의 언쟁이 길어지자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던 장위적이 그들을 다그쳤다.

    "그만들 하거라. 내 경거망동하지 말라 이르지 않았더냐? 아직은 때가 아니니 다들 그만하고 돌아가도록 해라."

    장위영의 호통에 두 아들과 마태령이 전각을 나섰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하늘같은 교주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동창에 들어가서 주축이 될 환관들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한 각 세력 간의 물밑작업이 거세졌다. 그와 함께 자신이 심어둔 환관의 실력을 높이기 위한 세력의 움직임도 늘어만 갔는데, 실력이 출중해야만 동창에 들어서가도 요직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인학을 양자로 들인 팽가의 움직임도 조금씩 바빠졌다. 금의위의 부천호(副千戶) 한 명이 환관으로 들어온 어린 아이를 데리고 금의위에 배속된 전각으로 데려갔다. 이미 팽가의 힘이 확고히 자리 잡은 금의위였기에 종오품직인 부천호마저도 그들의 사람과 마찬가지였다.

    "소가주, 원하던 아이를 데려왔소이다."

    부천호의 말에 팽명민이 고마워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고맙소. 이 일은 잊지 않겠소."

    팽명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사내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서는 이인학이었다. 방에 들어선 이인학이 팽명민을 향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에 팽명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건방지군. 앉으란 말도 안 했건만……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군.'

    '나도 이제 엄연한 팽가의 양자가 아닌가? 소가주라 하나 내게 형님이 되니 이제 과한 예를 지킬 필요는 없겠지.'

    자부심 가득한 눈빛으로 팽명민을 바라보는 이인학이었고 그 눈빛에 팽명민의 얼굴이 굳어졌다.

    "흐흠……"

    못마땅 한듯 헛기침을 한 팽명민이 이인학의 앞에 책을 한 권을 내던지면서 말했다.

    "너도 이제 팽가의 성을 갖게 되었으니 팽가의 무공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건 벽력도법(霹靂刀法)이라는 비급이다. 익혀두면 좋을 것이다."

    이인학이 자신의 앞에 놓인 책을 조심히 집어 들면서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살피기 시작했다.

    '팽가가 도법으로 유명하다 하더니 이런 비급을 내릴 줄이야. 이것을 익히면 큰 도움이 되겠구나.'

    어느새 이인학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지어졌다. 팽가의 양자가 됐다고 했지만 내공이 증진되는 단약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체감되지 않았었는데 이런 비급을 전해 받으니 자신이 정말로 팽가의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졌다.

    "지금 이 자리에서 비급을 숙지하거라. 네 역량이 된다면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이곳으로 불려와서 비급을 외워야 할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비급이니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안 될 것이다. 혹여라도 비급이 새어나가면…… 네놈은 팽가의 추격을 받을 것이다."

    "……."

    팽명민의 말에 침을 삼킨 이인학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집중을 해가면서 비급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비급에서 눈을 떼지 않는 이인학이었고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팽명민은 여전히 못마땅한 듯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저 아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두 눈에 야망이 가득해 보이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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