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3화 (1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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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

    "간단한 대련을 실시할 것이다. 서로 다치지 않는 선에서,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내가 개입해서 멈출 것이니 그리 알고 준비를 해라. 단, 절대 내공을 사용하지 말라는 가주님의 엄명이 계셨다."

    금교두의 말을 전해 듣고 환하게 웃던 팽설연의 얼굴이 구겨졌다. 마지막 말은 분명히 자신을 염두해두고 전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공을 금해야겠지만 아삼이라는 아이와 겨룰 수 있다는 것은 어린 여아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벼르고 벼르던 오늘이었다. 처음부터 그 아이를 손봐주고 싶었지만 오라버니의 방해로 그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기본적인 교육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공이라는 이점을 가진 그녀는 알게 모르게 그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물론 그 사실을 금교두를 포함해서 팽명민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괄량이 같았던 어린 여아의 행동이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공을 사용했던 팽설연보다 더 나은 결과를 선보인 세 아이의 집념과 끈기는 높이 평가 될만 했다.

    팽설연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는지 처음 대련을 하는 사람은 이인학과 황세웅이었다. 교두의 통보를 받은 두 아이는 서로 대조적인 표정이었다.

    이인학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졌고, 황세웅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하하'거리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

    '이런 오라질. 내가 왜 저런 무식한 놈이랑 상대를 하는 거지? 아삼이랑 붙여줬다면 그놈을 발 아래에 둘 수 있었을 텐데…… 분명히 팽설연 저 아이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야.'

    팽설연을 흘겨보는 이인학이었지만 지금 그녀는 그의 눈빛을 눈치채지 못했다. 평소였다면 빽하면서 소리를 치고 난리를 쳤을 테지만, 지금은 아삼이라는 아이를 처음부터 밟아놓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흘러나오는 그녀였다.

    "자, 준비는 됐느냐?"

    금교두의 말에 연무장에 올라선 두 아이가 상반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하하. 얼마든지요!"

    "…… 네."

    자신만만해 하는 황세웅과 주눅이 들어있는 이인학이었다. 금교두의 '시작'이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드는 황세웅이었다.

    두 아이의 손에는 서로 다른 종류의 무기들이 들려있었다. 황세웅의 손에는 목검이 들려있었지만, 이인학의 손에는 끝이 뭉툭한 봉이 들려있었다. 창 같은 무기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이인학이었지만 가벼운 대련에 살상력이 높은 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달려드는 황세웅을 보면서 봉의 끝부분을 잡은 이인학이 그의 상체를 향해 찔러 넣었다. 앞서 금교두에게 배웠던 가장 기본적인 찌르기였지만 자세가 제대로 잡혔는지 날카로운 찌르기가 황세웅의 목젖을 향해 날아갔다.

    순식간에 찔러든 공격에 옆으로 걸음을 옮기던 황세웅은 생각보다 날카로운 이인학의 공격에 정신을 다잡았다. 다시금 휘둘러지는 봉에 목검을 들어서 방어를 하자 '딱'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세웅의 힘을 무서워하던 이인학은 그와 거리를 두면서 공격을 할 수 있는 봉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의 꼼수가 통했는지 초반은 제법 선전을 했다. 하지만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황세웅은 찔러 들어오는 공격을 쳐대면서 조금씩 이인학과의 거리를 좁혔다.

    느리지만 차근차근 거리를 좁혀오는 황세웅의 행동에 뒤로 물러서던 이인학이었지만 어느새 연무장의 끝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침음을 삼켰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분명히 좋은 모습은 아닐 거야. 저 덩치 큰 놈을 상대로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선전한 거겠지.'

    각오를 다지면서 봉을 끌어당긴 그가 진각을 밟으면서 다가오는 황세웅의 머리를 향해 봉을 뻗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였지만 이미 찔러 들어올 곳을 예상한 황세웅은 머리를 숙이면서 안으로 파고들었다. 휘두른 목검이 이인학의 목 앞에 멈춰 섰고 한 뼘 차이로 멈춰진 목검의 끝을 보던 이인학의 입이 힘겹게 떨어졌다.

    "져…… 졌다."

    패배를 인정하는 이인학의 말에 진중하던 황세웅의 입이 귀에 걸렸다. 시원시원한 그의 웃음과 함께 생각보다 박진감 넘치는 대련을 펼친 두 아이를 향해 금교두의 칭찬이 쏟아졌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팽명민도 만족할 만한 대련에 흐뭇해했다.

    그 두 사람의 뒤를 이어서 연무장에 오른 사람은 아삼과 팽설연이었다.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는 팽설연의 모습과 아무런 표정도 없이 목검을 휘두르는 아삼이었다.

    그 두 사람이 가장 많이 접한 무기가 바로 도였다. 아무래도 팽가라고 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도였고 다른 무기들보다 더욱 세밀하고 깊이 있게 가르침 받은 무기도 바로 도라고 불리는 병기였다.

    실제 목검이라고 불렸지만 한쪽에 날이 선 그것은 도의 형태와 비슷했다. 그런 목검을 휘두르면서 대비하는 아삼에 반해서 미소를 띠고 있던 팽설연은 빨리 그와의 대련이 시작되기만을 바랬다. 내공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배웠던 초식까지 봉인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금교두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아삼에게 달려드는 팽설연이었다. 팽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또래에 비해서 날렵한 그녀의 몸놀림이었다. 금새 아삼의 앞으로 파고든 그녀가 손에 들린 목검으로 아삼의 목을 노렸다.

    생각보다 빠른 팽설연의 몸놀림에 놀란 아삼이었지만 뒤로 걸음을 옮기면서 그 공격을 회피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휘두른 목검을 양손으로 잡은 팽설연이 곧바로 검을 찔러왔다.

    도법을 수련한 팽가의 무공상 휘두르는 공격이 많을 것 같았지만 이번 한 수는 그런 상대의 생각을 파고드는 수였다. 하지만 팽가의 도법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 없던 아삼은 당연하다는 듯이 찔러 들어오는 목검을 쳐내면서 팽설연의 머리를 향해 목검을 내리쳤다.

    튕겨진 목검을 들어 올리면서 내려쳐지는 아삼의 공격을 막은 팽설연이었지만 힘에서 조금 밀리는 감이 있었다. 아무래도 위에서 내려쳐지는 공격이 더 강할 수밖에 없었고 남자아이의 힘을 감당해 내기도 어려웠다.

    "크윽."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막아낸 목검을 쳐내면서 비어진 복부를 향해 팽설연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목검만 생각했던 아삼은 그 공격을 허용하면서 뒤로 떨어져나갔고 넘어진 그를 보던 팽설연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지어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아삼은 다시 자세를 잡으면서 두 손으로 목검을 잡았다. 다시 일어서는 그 모습에 다시 한 번 땅을 박찬 팽설연이 아삼의 머리 위로 도를 내려쳤다. 박력있는 그녀의 행동에 되려 앞으로 한 발 내딛은 아삼이 목검의 아랫부분을 쳐 올리면 비어진 팽설연의 배에 발차기를 날렸다.

    퍼억.

    하지만 그의 의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다리를 올려서 그의 발차기를 방어한 팽설연이 힘에 밀려서 뒤로 물러섰지만 별다른 충격은 없어보였다. 다만 아삼에게 공격을 허용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질 뿐이었다.

    화가 난 듯한 팽설연의 머리에 아삼의 목검이 휘둘러졌다. 횡으로 베어오는 그 공격에 급히 머리를 숙여서 공격을 피한 팽설연이 비어진 그의 가슴을 향해 목검을 찔러넣으려고 할 때, 갑자기 그의 목검이 아래로 떨어졌다.

    고통스러운지 구겨진 아삼의 표정과 함께 주위에서 바라보던 사람들이 다급한 음성을 토해냈다. 영문을 모르던 팽설연이 급히 위를 바라보고 떨어지는 목검을 막으려고 했지만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팽명민이 급히 끼어들어서 내려쳐지는 목검을 향해 장력을 뿌렸다. '퍼엉'하는 소리와 함께 아귀가 찢어진 아삼의 손에서 피가 뿌려졌고 들고 있던 목검은 뒤로 날아가서 바닥에 처박혔다.

    "연아 괜찮느냐?"

    "오…… 오라버니?"

    넋이 나간 듯한 팽설연의 표정에 다행히 다친 곳이 없다고 생각한 팽명민은 손을 부여잡고 있는 아삼을 바라봤다. 그제서야 자신의 행동이 과했음을 깨달은 그가 아삼에게 다가가서 찢어진 손을 확인했다.

    "내가 너무 과한 것 같구나. 미안…… 하게 됐다."

    팽명민의 사과의 말에 옆에서 바라보던 금교두의 눈이 커다래졌다. 팽가의 소가주가 한낱 촌아이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의 말을 건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팽명민은 아삼을 동생으로 점찍어 둔 것 같았다.

    그렇게 흐지부지 첫 대련은 끝이 났다. 황세웅과 아삼은 겨룰 수 없었지만 아삼이 팽설연과의 대련에서 보여줬던 마지막 한 수는 팽명민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전에 초식과 내공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잠깐 선보였던 벽력도의 한 초식을 그가 재현해 냈기 때문이었다.

    한 번 보고 비슷하게 흉내 낸 수준에 그쳤지만 팽설연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고 대략적인 투로는 비슷했다.

    그 만큼 그의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고 실제로 응용하는 것을 보면 10살이라는 아이 치고는 대단한 재능이었다. 물론 아무런 내공도 없이 육체적인 힘을 사용해서 펼쳤기 때문에 비틀린 팔로 며칠간은 고생을 할 것이지만 다행히 팽가에는 유능한 의원이 있었다.

    전체적인 상황은 아삼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팽가의 양자로 들어올 아이들 중에서 그 아이만큼 적합한 아이는 없었다. 이인학과 황세웅도 뒤지지는 않았지만 문과 무 한 쪽으로 너무 치우친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아삼은 문, 무를 두루 갖춘 아이였고 황궁에서 지내기에 가장 적합해 보였다.

    그렇게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기 위한 시간들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아쉬워했다.

    이인학은 아삼보다 뒤쳐져있다는 사실이 아쉬웠고 황세웅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헤어지는 시간이 가까워져 온다는 것이 아쉬웠다.

    팽설연은 아삼에게 이렇다할 복수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쉬워 했다.

    오대세가의 수장격인 팽가의 사람이 되는 아이를 뽑는 시간은 그렇게 마무리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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