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2화 (1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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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계속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초조한 모습을 보이는 이인학이었다. 학문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어느 선에 다다르자 큰 편차가 나타나지 않았고, 무공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스스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아삼은 늘 자신보다 앞서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文)에서는 자신이 가장 뛰어났지만 그 차이는 미비했다. 바로 다음으로 아삼이 뒤쫓아 오는 상황이었다. 물론 황세웅과 팽설연과의 차이는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무(武)에서는 황세웅이 가장 뛰어났다. 타고난 골격과 뚝심은 그의 장점이었고 아삼과 팽설연이 그 뒤를 따랐다. 물론 무라는 것이 기본적인 체력단련이었고 간단한 무기술을 배우는 것이었지만 가장 처지는 사람은 이인학이었다.

팽가라는 거대한 세가의 사람으로 들어갈 기회였다. 이 기회를 잘 살린다면 자신의 가문을 짓밟고 농락했던 자들에게 다가가기가 더 수월했지만 아삼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그의 앞에 놓여있었다.

문과 무, 두 가지를 모두 종합해 볼 때, 누가 보더라도 아삼이라는 아이가 괄목할 만 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어린아이 같지가 않아. 나보다도 뛰어난 집중력이라니……'

아삼에 대해서 생각하던 이인학은 고개를 숙이면서 좌절했다. 스스로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학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읽어온 수많은 책들과 조부로부터 배운 가르침들은 그를 신동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듣게 만든 것 중의 하나가 어린아이 같지 않은 집중력이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엄청난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인학이었다.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따분해하고 지겨웠을 만한 강술에도 가장 늦게까지 자리에 앉아서 눈을 빛내던 그는 스스로도 자신의 장점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아삼이라는 아이 앞에서는 태양 앞의 반딧불이였다.

"후우. 내가 그런 볼품없는 아이에게 자격지심을 가지다니. 두고 봐라. 꼭 네놈을 내 발아래로 둘 것이야. 팽가의 양자는 내가 차지할 테니까!"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은 모두 기본이 되는 것들이다. 비록 18반 병기를 모두 배우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인 병기들의 파지법에서 부터 운용까지…… 쉬지 않고 정진하다보면 어느새 어엿한 무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금교두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던 아이들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그의 가르침을 받아서 어느새 가까워졌다고 느꼈지만 아직까지 거리를 좁히지 못하던 이인학이 손을 들면서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교두님. 헌데 심법이라는 것은 배우지 않는 것입니까?"

"…… 그것은 비전이 되는 것들이라 내가 함부로 결정해서 전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곤란한 듯한 금교두의 태도에 경청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사이에 활짝 웃던 팽설연이 침울해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아무리 이런 잡스러운 것들을 배워봤자 내공이 없으면 하찮은 몸부림에 불과할 뿐이지. 이런 것들로 앞서나간다고 우쭐할 필요는 없어!"

"……."

아삼을 노려보면서 내뱉는 팽설연의 말에 같이 있던 아이들은 속으로 팽설연을 욕했다. 직접적으로 할 수는 없었지만 속마음까지 들킬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가만히 있던 황세웅이 번쩍 손을 들면서 금교두를 바라봤다.

"간단한 투로와 초식만 배우는 것은 제대로 된 무인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저희들은 내공을 키울 수 있는 심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황세웅까지 이인학의 의견에 동의하듯이 가세하자 곤란해 하는 금교두였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심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만큼 이곳에 모인 아이들의 자질은 대단했다. 특히 무에 관해서는 가장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이인학마저 평범한 아이들에 비해서는 비범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런 말도 못하는 금교두였고 그 모습에 재미를 느낀 팽설연이 자랑하듯이 말을 했다. 스스로 이 셋과 비교해서 가장 낫다고 생각되는 것은 어려서부터 꾸준히 수련해온 가전 심법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삼류 심법 하나 던져 줘요. 그것만이라도 감지덕지 해야겠죠. 호호호."

팽설연의 생각 없는 말에 남은 아이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던 아삼도 그 버릇없는 말투에 미간이 좁혀졌고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자 헛기침을 해대면서 말을 꺼내려는 금교두였다.

"크흠. 흠. 내공을 모을 수 있는 심법이라는 것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심법을 배우고 싶은 거냐?"

금교두의 말을 끊고 끼어든 자는 멀리에서 지켜보던 팽명민이었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표횰한 신법으로 등장한 그의 모습은 마치 땅에서 솟은 듯한 모습이었고 저런 것이 무공이라고 불리는 것을 처음 보게 된 아삼의 눈이 번뜩였다.

"저희들도 심법을 배울 수가 있는 겁니까?"

"…… 내 아버님에게 여쭤는 보겠다. 허나 팽가의 독문무공은 쉬이 배울 수는 없을 것이다. 혹 너희 중에서 누군가가 내 동생이라도 되면 그 때, 몇 가지 무공을 배울 수 있을 지도 모르지."

"……."

팽명민의 말을 듣고 침울해 하는 아이들이었다. 내심 무공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아삼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아쉬운 감이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내공이라는 신비한 힘이었고 자신이 생각하던 힘의 원천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울해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던 팽명민이 금교두를 바라봤다.

"잠깐 자리를 물러 줄 수 있겠는가?"

"…… 예. 소공자."

무슨 이유인지는 몰랐지만 교두를 멀리 물리는 팽명민이었다. 뭔가 중요한 말을 할 것 같은 그의 분위기에 침울해 있던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팽명민의 말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간단한 가르침을 주겠다. 대신! 이제부터 볼 초식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만큼 적막해진 아이들은 기세를 풍기는 팽명민을 바라봤다.

"내공 심법과 초식에 관해서다. 지금 너희들이 배우고 있는 기본적인 초식은 병기의 투로를 익히기 쉽게 설명해 놓은 길이다. 그 길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 그리고 그 길에 힘을 더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내공이다. 흔히 말하는 일류, 이류라고 분류되는 내공들은 그 안정성과 내공이 모이는 속도에 따라 분류되는 것이지."

"……."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피식 웃던 팽명민이 말을 이어갔다.

"초식도 그렇게 분류가 된다. 일류라고 불리는 초식에는 구명절초라고 하는 비장의 수가 숨어있다. 그런 예상치 못한 수가 많아지는 것이 바로 일류라고 불리는 고급 초식들이다."

"허면 그런 초식에 내공이 더해지면 그게 일류 무공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예상하지도 못할 곳에서 날아드는 공격은 초식이다. 그리고 그 초식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단단한 육체와 그 초식과 연관되어 있는 특유의 내공 심법이다. 예를 들어서 팽가에 벽력도라는 것이 있다. 패도적인 이 도법은 무림에서도 일절로 불리는 일류 무공이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황세웅의 말이 자부심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는 팽명민이었다.

"그 초식 중에 하나가 바로 이거다."

갑자기 허리에 찬 도를 꺼낸 팽명민이 허공에 대고 설명하려던 초식을 뿌렸다. 횡으로 베어가는 도에 공기가 갈라지면서 '쉬이익'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고 힘껏 휘둘러지던 도가 갑자기 뚝 떨어지면서 투로를 바꿔왔다.

만약 그 도법을 상대하던 자가 고개를 숙여서 피했다면 머리 위를 지나가던 도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면서 큰 낭패를 겪을 만한 초식이었다.

그 초식을 보고 팽명민이 말한 요지를 이해한 아삼이었다.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던 그가 생각보다 위력적인 도법에 깜짝 놀라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을 정정해야만 했다.

무공이라는 거창한 말로 불렸지만 단지 싸움질을 과장해서 부르는 거라고 생각하던 그였다. 하지만 팽명민이 보인 몸놀림은 가볍게 생각했던 인식을 깨뜨렸고 왜 아이들이 무공이라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실망하는 듯한 아이들이 의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가문의 도법 중에서 한 초식을 선보인 팽명민이었다. 그의 의도가 적중했는지 다시 활기를 찾은 아이들이었고, 그 아이들을 보던 팽명민의 얼굴에 만족할 만한 웃음이 지어졌다.

다시 금교두를 통해서 훈련에 임하는 아이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특히 평소보다 더한 집중력을 보이는 아삼의 행동은 이전부터 대단하다고 여겼던 그의 재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계속되는 교육은 아이들의 모습을 바꿔놓았다. 그냥 돌덩이로 보이던 원석이 조금씩 깎여나가면서 빛을 띠기 시작했다. 조금씩 가치를 높여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흐뭇해하는 금교두와 팽명민이었다.

보고를 받은 팽문호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떻게 보면 팽가의 후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만한 아이를 선별하는 과정이었다. 당연히 선별된 아이들로 양자를 들여야 하겠지만 가장 큰 제약은 바로 남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거세된 아이들 중에서도 자질이 괜찮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 아이들 보다 더욱 뛰어난 자질을 가진 아이들이 선별됐다는 것은 팽가로써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다만, 그 아이들 중에서 팽가에 어울릴 만 한 아이들을 고르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 팽가에 손과 발이 될 아이라…… 그런 아이가 있을지가 문제구나.'

아이들의 모습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던 팽문호는 근심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좋은 원석을 구했지만 그 원석을 갈고 닦아도 사용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보고된 서찰을 다시 한 번 넘기면서 황궁으로 들어갈 만한 아이를 고르는 그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해졌다.

황궁이라는 거대한 괴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만한 자질을 가진 아이.

그리고 팽가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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