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6화 (6/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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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

다급하게 일어서려고 했던 아삼의 행동이 화를 불러일으켰다. 위에서 귀여운 얼굴로 내려다보던 그 여자아이와 머리가 부딪쳤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여아가 뒤로 넘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가씨!"

부딪친 머리와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아파하던 여아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뒤에서 지켜보던 두 시비였다. 아삼도 값비싸 보이는 비단 옷을 입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어어."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으려고 했지만 불편한 목은 그의 생각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넘어진 여아를 일으켜 세운 두 시비가 아삼을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째려봤다.

"천해보이는 네놈이 감히 아씨에게……"

짜악.

순간 반응할 새도 없이 아삼의 얼굴이 돌아갔다. 볼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에 고개를 돌려서 앞을 바라보자 손을 휘두른 시비가 어쩔 테냐면서 허리에 손을 올리고 그를 노려봤다.

열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시비의 덩치가 아삼보다 더 컸지만 개의치 않던 그는 고사리 같은 손을 놀렸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삼의 뺨을 때렸던 시비의 고개가 돌아갔다. 쥐었던 주먹이 얼얼했는지 쥐락펴락하던 아삼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어차피 삶에 대한 미련도 없는 상태에서 어린 여자아이에게 무시를 당하는 일을 참고 싶지는 않았던 그였다. 하물며 당사자도 아니고 뒤에서 지켜보던 시비가 아닌가.

"이익. 무슨 짓이야? 소소 괜찮아?"

"흐윽. 괜찮습니다. 아씨. 저는 흐으윽. 괜찮아요."

"소소. 네 코에서…… 피가 나와."

"흐아앙."

결국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어버리는 시비였다. 그 모습에 괜히 참지 않고 나섰다고 살짝 후회가 된 아삼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시비를 본 비단 옷을 입은 여아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아삼을 째려봤다. 팽가 내에서 가주의 딸인 자신을 넘어뜨린 것은 뒤로하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끼는 시비의 얼굴을 후려치는 자는 앞에 있는 추레한 차림의 아이가 처음이었다.

계속 노려보는 그 눈빛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서있는 아이의 태도에 팽설연은 화가 났다. 천천히 앞에 있는 놈의 앞으로 다가간 그녀가 그 아이를 노려보면서 입술을 깨물 때, 거대한 그늘이 그들을 덮치면서 빛을 가려왔다.

갑자기 생긴 그늘에 의아해하며 옆을 돌아보자 커다란 덩치를 가진 소년이 그들에게 다가섰고 낯선자의 모습에 놀라서 토끼 눈을 한 채로 그를 바라보자 대뜸 그 덩치 큰 소년이 앞에 있는 아이의 몸에 발길질을 날렸다.

퍼억.

상대적으로 왜소한 아삼이 그 큰 놈의 발길질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굴렀다.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런 공격에 어리둥절해 있는 그 때, 커다란 덩치를 가진 소년이 팽설연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과의 말을 건냈다.

"저놈이 아무것도 몰라서 무례를 저지른 것 같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시지요."

낮은 목소리와 커다란 덩치에 놀란 팽설연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도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쳐들었다. 상대를 내려 보려고 했지만 나타난 낯선 소년의 키는 너무나 컸다. 흡사 자신의 오라비를 보는 듯한 그 덩치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여아의 표정을 읽은 소년이 급히 몸을 낮췄다.

"네놈은 누구지? 저기, 저 놈은 누구고?"

"저는 황…… 세웅 이라고 합니다. 저 놈 이름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아삼에게 쏠렸지만 정작 말을 할 수 없는 아삼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 아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자신을 무시한 거라고 생각하던 팽설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그 아이도 엄연한 팽가의 여식이었다. 어려서부터 무공을 배웠고 팽가 사람으로 그 자긍심이 강하게 심어진 상태였다.

"네놈이 지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화가 난 듯한 팽설연의 말에 얼굴이 굳은 아삼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변명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입을 열어도 '어어어'라는 소리밖에 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고 지금 상황이 어처구니없기도 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네. 잘못을 저지른 것은 어린 너희들이지 내가 아니잖아?'

아직까지 처해진 현실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그였다. 물론 현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37년을 살아온 그였기 때문에 저런 생각을 갖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그가 살던 곳이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간에 과거에 아삼이라는 몸속에 들어온 그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이른 시간에 인식을 바꿀 계기가 주어졌다.

계속해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팽설연은 단전에 깃들어있는 작은 기운을 일으켰다. 갑자기 변해버린 어린 여자아이의 분위기에 절로 움츠려들던 주변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

'기세가 대단한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동자를 굴리던 아삼은 다가오는 여자아이를 보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대로 굳어버린 아삼을 보고 비릿하게 웃던 팽설연이 기운이 깃든 손을 휘두르자 어떻게 반응할 겨를도 없이 아삼의 고개가 돌아갔다.

입 안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입 안이 터졌는지 흐르는 피와 함께 다시 고개를 돌려세운 아삼이 계속해서 노려보고 있는 팽설연을 바라봤다. 다시 한 번 번쩍거리는 느낌과 함께 그의 고개가 돌아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공격에 당황하던 그였지만 또 다시 팽설연을 바라봤다.

아삼의 눈빛에 움찔한 팽설연이었지만 다시 한 번 어깨가 들썩였고 그 어깨를 확인한 아삼이 고개를 숙이면서 팽설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의 손짓을 피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허공에 휘둘러진 팽설연의 손과 함께 그녀를 온몸으로 들이받는 아삼이었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뒤로 넘어지자 아삼의 아래에 깔린 팽설연이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팽설연의 위에 올라탄 아삼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고사리 같은 주먹이었지만 자신보다 다섯 살은 더 많은 소소라는 시비의 얼굴에서 코피를 터뜨린 주먹이었다. 꽉 쥔 그 손을 들어 올리자 아래에 있던 팽설연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들었던 주먹을 휘두르려던 아삼은 그대로 멈췄다. 아래에 깔려서 눈을 질끈 감은 여아의 옷을 보면 신분이 높은 아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어차피 자신은 상관이 없었지만 혹여라도 남겨졌던 진짜 아삼의 가족이 걱정이었다.

'괜히 분란을 일으켜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겠지.'

생각을 마친 아삼이 손을 내리면서 짓누르던 힘을 빼고, 팽설연의 몸에서 떨어졌다. 떨어져나가는 아삼을 확인하고 눈을 뜬 팽설연의 자신이 했던 행동에 얼굴이 붉어졌다. 아직까지 어린 여아에 불과했지만 스스로 무인이라고 생각하던 그녀였다.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던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난 팽설연에게는 그 화를 풀어줄 대상이 필요했고 아무 말 없이 그곳을 걸어나가려던 아삼이 눈에 들어왔다.

"멈춰!"

"……."

날카로운 소리에 멈춰선 아삼이 뒤를 돌아보자 눈앞으로 작은 당혜가 날아들었다. 피할 겨를도 없이 날아든 그 공격에 '뻐억'소리와 함께 그의 고개가 돌아갔고 뒤이어서 팽설연의 손과 발이 쏟아졌다.

정신없이 날아드는 그 공격에 아삼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평범한 공격이라면 몸을 웅크리고서라도 막았겠지만 지금 자신을 강타하고 있는 공격은 평범한 공격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 공격을 맞고 있는 사람은 아삼이었다. 안에 들어가 있는 이명철처럼 37살의 성인이 아니었고 10살이 어린 아이였다. 그리고 감나무에서 떨어져서 겨우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약해진 상태였다.

계속 이어지는 공격에 몸을 가눌 수 없던 아삼은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가 쓰러지는 상황에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팽설연은 더욱 흉흉한 기세로 그에게 일권을 날렸다.

퍼엉.

그 작은 몸뚱이가 끈 떨어진 연처럼 하늘을 날았다. 커다란 충격을 입었는지 아삼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왔고 이미 정신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의 몸이 뒤로 날아가면서 바닥에 처박히려고 할 때, 커다란 덩치를 가진 누군가가 비호처럼 날아들어서 바닥에 떨어지려는 그의 몸을 낚아챘다.

"이잇! 누구야! 그 손 못 놔?"

갑자기 날아들어서 마음에 들지 않던 아이를 구해가는 모습에 더욱 화가 난 팽설연이 그자까지 날려버릴 기세를 흘리면서 일장을 날렸다. 팽가가 자랑하는 벽력장(霹靂掌)이었다.

비록 10살의 여아였지만 그 흉흉한 기세는 어느 무인 못지 않았다. 날아오는 장력을 바라보던 덩치 큰 사내는 웃음을 띠면서 그녀의 공격을 피하면서 그 손을 낚아챘다.

"아얏. 어떻게 이렇게 쉽게?…… 오라버니?"

"그래. 내가 네 오라버니다. 오라비도 못 알아보고 그런 장력을 함부로 뿌리는 게냐?"

"……."

"더군다나 이자는 무공도 배우지 못한 일반인이 아니더냐? 대 팽가의 여식이 일반인을 상대로 무공을 사용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이더냐?"

새롭게 나타난 사내의 호통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는 팽설연이었다. 두 눈에 맺힌 닭똥 같은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지만 애써 참으려고 노력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혼내는 이유가 추레한 차림의 아이라는 사실이 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팽설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이유를 단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고 생각하던 팽명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렇게 뉘우치면 되었다. 다음부터는 그 사실을 염두해두거라. 우리 같은 무인들은 함부로 무공을 사용하면 안 된다. 힘이 있는 만큼 책임도 뒤따른 다는 말은 잘 들어 봤을 게다. 그렇지?"

"…… 네."

"그래. 그만 가 보거라. 이곳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데 네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구나."

말을 마치면서 주변을 향해 날카로운 눈빛을 뿌리던 팽명민이었다. 그의 눈빛을 허공을 향했지만 분명히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 했는지 화가나 보이는 그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이제 그만 나가 보거라. 이 아이는 내가 수습하도록 할 테니."

"네. 오라버니."

자신의 오라비를 보고 고개를 숙이던 팽설연은 두 시비를 데리고 그 정원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지켜보던 오라비가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맺힌 눈물을 흘러내리는 팽설연이었다. 하찮은 놈 때문에 꾸중을 들은 것이 억울했다.

"흐윽. 그 자식 가만히 두지 않겠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 눈물과 함께 원망 섞인 어린 여아의 말도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 수 없던 아삼은 정신을 잃은 채 팽명민의 손에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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