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5화 (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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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북팽가

    가주인 팽문호는 팽가를 이끌고 있는 가문의 중진들을 불러 모았다. 직접적으로 설명을 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해야 할 일들은 이들도 알아야만 했다.

    "며칠 전부터 각지에서 일정한 조건을 갖춘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가주,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장로 중의 수장격인 작은 아버지 팽철명의 물음에 침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팽문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전에 황명이 떨어진 것은 모두들 알고 있을 겁니다."

    "소가주를…… 환관으로 들이라는 그……"

    "맞습니다. 제 아들을 환관으로 들이라는 명이었지요. 그래서 이번에 그 아이들을 불러모았습니다."

    "……."

    가주의 말에 모두들 무슨 말인지 의아해 했다. 이윽고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린 장로 중 누군가가 무릎을 딱 치면서 가주인 팽문호를 바라봤다.

    "허나. 그렇게 하면 가문의 명예가 실추 될 터인데……"

    "그게 무슨 말인가? 가주 지금 이게 무슨 말이오?"

    아직도 영문을 몰라하는 몇몇 사람들이 연유를 물어오자 한숨을 내쉬던 팽문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 이미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겁니다. 황상의 명은 거둬지지 않을 거고, 어쩔 수 없이 우리 팽가의 명예는 실추 될 수 밖에 없습니다."

    "……."

    "불러들인 아이들 중에서 한 명을 제 양자로 들일 생각입니다."

    "가주!"

    "어찌 그런."

    파격적인 팽문호의 말에 그곳에 앉아있던 많은 사람들이 경악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에 씁쓸하게 웃던 팽문호였고 소란스러워진 안을 장로인 팽철명이 진정시켰다.

    "그 아이들 중에 한 명을 양자로 들여서 환관으로 들여보내실 생각인 게요?"

    "그 어느 때보다 관의 힘이 압도적인 지금. 황제폐하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불경한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 가문은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겁니다. 그게 지금의 황상이시고 저는 그런 황상의 충직한 금의위입니다."

    "흐음."

    안타까워하는 가주의 모습에 모두가 말을 잃었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그곳엔 정적만이 흘러 넘쳤다.

    아삼이 몸을 회복하면서 정양하는 그 며칠 동안 팽가 내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환관이 되기 위해서 데리고 온 아이들을 엄격하게 심사를 했다. 제일 우선시 되는 것은 양물이 살아있느냐였다.

    아삼을 포함해서 총 스무 명 남짓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지만 아직 양물이 제 구실을 한다거나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은 걸러져서 팽가의 하인으로 들어앉혔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아직 거세되지 않은 아이들 중 한 명이 자진해서 거세를 하겠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11세 되는 아이로 눈이 똘망똘망해 보이고 매우 총명해 보였는데 당돌한 그의 말에 심사를 하던 팽가의 사람들도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네놈이 뭘 모르나 본데…… 거세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그래도 하겠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습니다."

    "흐음. 거세를 하다가 잘 못되면 죽을 수도 있다. 실제로 환관이 되기 위해서 거세하는 자들의 대부분이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래도 자청할 테냐?"

    심사관의 으름장에 겁을 먹은 듯이 창백한 얼굴로 변해버린 어린 아이였지만 이내 결심을 했는지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충분히 감안해 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당돌한 아이의 말과 11살이라고는 할 수 없는 기품 있는 말투에 고민하던 심사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아이의 눈을 바라본 심사관이 그 아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소인은 이인학이라고 합니다."

    "이인학이라…… 좋다. 우선 너를 따로 분류해놓고 직접 살펴보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심사하는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들은 없었다. 그렇게 걸러지고 걸러진 다섯 명의 아이들 중에서 이미 거세가 된 아이들은 아삼을 포함한 두 명이었고 나머지 세 명의 아이들은 양물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환관이 되기 위해 자원한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스스로 양물을 잘라내려고 하는 자궁(自宮)을 택했다.

    역대 환관의 유래를 찾아보면 크게 피궁(被宮)과 자궁(自宮)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피궁은 황제 혹은 정부로부터 강제적으로 거세당한 사람으로 상황에 따라 몇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전쟁 포로에게 궁형을 실시한 것으로 거세된 전쟁 포로를 환관으로 썼던 상황은 명대까지 계속되었다.  죄인 혹은 죄인의 가족이 궁형을 당한 것과 부족한 환관을 보충하기 위해서 관원 혹은 외번이 거세된 어린아이를 받친 경우도 있었다.

    자궁은 자신이 스스로 거세한 뒤에 여러 경로를 통해 궁중에 들어온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수나라 이후 환관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부모가 주동적으로 거세를 시킨 경우와 자신이 주동적으로 거세한 경우가 있었다.

    부모에 의해 거세된 경우는 대체로 내시의 후손으로 어려서 거세 시켜 궁중에 들여보낸 경우와 집안이 가난하여 생활이 어렵거나, 부역을 회피하기 위해서 환관의 부귀를 부러워하여 거세시킨 경우였다. 이런 경우가 가장 많았는데 역대로 내력이 분명하지 않고 어려서 궁중에 들어 온 경우 대부분 이런 경우에 속했다.

    거세하려면 지위가 있는 환관의 추천이 있어야 하고 보증인이 자원해 궁중으로 결혼해 들어간다는 혼서(婚書)를 만든다. 그런 연후에 길일을 택해 밀폐된 깨끗한 방으로 들여보내 3-4일간 단식을 시킨 뒤에 수술을 한고, 수술하는 날 다시 한 번 후회 여부를 묻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면 비로소 그 때, 수술을 한다. 수술로 잘라 낸 것을 작은 석회 상자에 넣어 피를 흡수시켜 마르게 하고 헝겊으로 깨끗이 닦은 다음 기름에 담갔다가 작은 나무 상자에 넣어 밀봉한다. 그리고 길일을 택해 그것을 그 집 사당에 보내면 대들보 위에 걸어 놓는다.

    거세를 해 주는 자를 도수(刀手) 혹은 도아장(刀兒匠)이라 불렀으며 이들은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았고 직업은 세습이었고 고정된 수입은 없었다. 오직 수술을 받는 사람에게 수술비를 받는데 이들은 경험이 많고 숙련되어 성공률이 높았다. 그리고 궁중에 들어가는 수속을 도와주었다.

    도아장으로는 유가(劉家)와 필가(畢家)가 가장 유명했다.

    유가에서 사람을 불러서 남은 세 아이의 거세를 진행시키는 동안 자연적으로 거세가 되어있는 두 아이는 하릴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아이들 중에는 아삼도 끼어있었다.

    남은 아이들이 거세를 하는 동안 아삼은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노력했고, 남은 한 아이는 팽가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으면서 몸을 보양했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집에서 나오는 음식보다 훨씬 영양가있고 풍족한 섭취를 할 수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이 집의 주인은 언제 만나볼 수 있는거지?'

    "어어어. 어어."

    "……."

    겉으로 보이기에 대략 15-16세 정도 되어보이는 시비에게 물어본 아삼이었지만 그 여자 시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말길을 못 알아 들으니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다만 한번 째려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아삼의 시중을 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삼이 신분이 높은 아이도 아닌 것 같았다. 그동안의 시비 생활로 보건데 곁에 종복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높은 집안의 자제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언제까지 저런 아이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거야?'

    안에 있는 아이와는 말도 섞지 말라는 명으로 아무런 말도 못 했지만 아직까지 어린 마음에 대 팽가에 속해있는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뾰루뚱한 채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던 시비는 문을 '쾅' 닫으면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어린 계집의 짜증을 보던 아삼은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아물어서 흉터가 생겨버린 상처들이었다. 머리는 아직까지 하얀 천으로 매어져있었지만 다른 두 곳은 겉으로 보기에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겉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팽가의 내원에 있는 듯한 전각의 한 방에서 그가 나오자 주변을 몰래 지키던 무인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아삼은 관상용으로 보이는 소나무와 기이한 화초를 바라보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상처가 아물고 움직일 수 있던 어제부터 이곳에 와서 정원을 구경하는 그였다.

    '가운데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으면 더 운치가 있었을 텐데…… 내 생애에 이런 여유가 있었을까?'

    지난 생애를 통틀어서 가장 여유있는 때가 다친 상태에서 모르는 곳으로 팔려온 지금이었다. 씁쓸하게 웃던 아삼은 지금의 여유를 느끼면서 눈을 감았다. 바람이 불어오면서 많은 수의 꽃내음이 그의 코로 들어왔다.

    '이전에는…… 이런 여유도 없었지.'

    피식 웃으면서 눈을 감은 채 앉아있던 그의 모습은 소일거리로 정원을 돌보는 듯한 노인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렇게 한참을 여유롭게 앉아있던 그때, 둥그런 입구에서 일련의 무리들이 들어섰다.

    아삼과 비슷한 10살 남짓의 어린 여자아이를 필두로 그 뒤를 쫄래쫄래 쫓아오는 두 시비의 모습은 꽤나 쾌활해서 보는 것 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특히 앞장서서 걷는 여아의 모습은 어른들이 보기에는 꽤나 앙증맞은 모습이었다.

    부푼 두 볼과 함께 고사리같은 손을 휘저으면서 걸어오던 여아의 옷은 화려했고 그 옷도 값비싸 보이는 비단이었다. 두리번거리면서 걷던 여아의 눈이 한 쪽 구석에 앉아서 양손을 뒤로 뺀채 편하게 앉아있는 아삼에게 고정되었다.

    처음 보는 낯선 아이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여아가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갔을 때까지 자신의 존재를 몰라보는 아삼의 모습에 부푼 볼을 더욱 크게 부풀린 여아가 그를 불렀다.

    "얘!"

    "……."

    "이게. 야! 너 뭐니?"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과 함께 코끝을 파고드는 이질적인 향기에 눈을 뜬 아삼은 자신을 바라보는 여아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위에서 얼굴을 내밀며 내려다보는 여아의 모습에 깜짝 놀란 그가 몸을 일으켰다.

    쿠웅.

    "아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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