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4화 (4/204)
  • 0004 / 0204 ----------------------------------------------

    환생

    아삼이 살고 있는 곳은 하북성의 끝자락에 있는, 산서성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행정상으로는 하북이었지만 번화한 곳과는 거리가 많이 떨어진 촌으로 그 생활이 궁핍했고 대부분의 백성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아삼이 크게 다치고 그 작은 마을에는 연일 아삼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오르락내리락 했다.

    다른 집에 비해서 유독 아이가 많았던 문씨의 집이었다. 특히 이전의 대기근으로 큰 아들을 잃고 큰 딸을 팔아버린 '문씨'였기에 남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두 부부였다.

    "글쎄. 문씨네 아들이 벙어리에 고자가 되었다고 하네."

    "그…… 그려? 워매. 그 어린 애가 뭔 죄가 있다고 그런 일을 당했을까. 쯧쯧쯧."

    "동생들 챙겨줄려고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따가다 떨어졌다는구먼."

    "근디?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디. 그렇게 된 거여?"

    "머리하고 목하고 거기를 다쳤다고 하던디. 이제 10살 남짓한 사내애가 참 안 됐지."

    "에구. 어쩔까나. 어미는 얼마나 속이 썩어서 문드러질꼬."

    객점에서 휴식을 취하던 젊은 무사 둘이 길가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여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낭성을 잃은 10살 정도의 사내아이라는 소리에 귀가 번뜩였다. 자신들이 찾고 있던 아이가 확실하다고 느낀 그들은 급히 몸을 일으키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여자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낯선 자들이 아삼의 집으로 찾아왔다. 소문을 듣고 왔다던 그들은 허리에 커다란 도를 차고 동일한 복장을 하고 있는 젊은 사내들이었다. 무인으로 보이는 그들의 등장에 아삼의 아버지는 벌벌 떨면서 그들의 앞에 섰고 동생인 아영과 아호는 그런 아비의 뒤에 숨어서 낯선 사람들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아직까지 거동을 할 수 없던 명철, 아니 아삼은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갑작스레 들리는 낯선 목소리와 함께 불안하게 떨리는 듯한 아비의 목소리.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된 그가 귀를 기울이자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을 데리고 가겠다는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발대발했고, 어린 동생들도 그들을 말렸지만 정작 안에서 엿들은 아삼은 그들의 제안이 솔깃했다.

    '이대로 있으면 폐만 끼칠 거야. 병수발이 얼마나 힘든데. 언제까지 누워있을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나를 필요로 하는 저곳으로 팔려가는 게 가족들에게 더 좋을 테지.'

    결심을 굳힌 그는 크게 소리를 내서 그들을 불렀다. 하지만 다쳐버린 목에서는 제대로 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어어어! 어어!"

    커다랗고 끔찍한 소리가 튀어나오자 목이 찢겨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놀란 듯이 방으로 뛰어 들어왔고 문이 열리자 낯선 사내들의 모습이 확인되었다.

    자신이 내뱉고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밖에 있는 자들을 가리키면서 손짓을 하던 아삼은 계속해서 그들을 불러댔다.

    그제야 아들이 밖에서 나눈 이야기를 듣고 이런 행동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마차에 이끌려서 먼 길을 움직여야만 했다. 가는 도중에 간간이 들리는 의원에서 조금씩 상처를 회복해나가던 아삼은 얼마 전까지 함께 있었던 가족들을 떠올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보내지 않겠다던 부모님이었다. 더 이상 자식을 잃기 싫다던 두 사람의 의지는 꽤나 완고해보였지만 문제는 가난한 현실이었다. 계속해서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전의 삶에서도 그랬고 아픈 사람 한 명만 있어도 남은 사람들은 더 힘들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무인으로 보이는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팽가에 연락을 취했고, 치료를 해준다는 명목 하에 아삼을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물론 아삼의 집에 어느 정도의 돈을 떼어주기도 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생길지 모를 분란을 미리 막아내기 위해서였다.

    "근데, 저런 놈을 왜 찾는지 모르겠네. 사내구실도 못하는 놈을."

    "어허. 우리 같은 말단이야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될 일이네. 괜한 호기심으로 명을 재촉할 필요는 없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네. 크흠."

    밖에서 들리는 말에 귀를 기울이던 아삼이었지만 정확히 자신이 어디로, 무슨 이유로 끌려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칼을 찬 사람들을 무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말로만 듣던 무공을 연마하는 자들일까? 옷차림을 보면 옛날 고려나 조선은 아닌 것 같은데…… 중국인가?'

    조금씩 호전되는 상처에 힘입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유추해보려고 노력하는 아삼이었다. 이제는 명철이라는 이전의 이름을 버리고 아삼으로 살아가기고 결심한 그였다.

    '10살의 어린 사내아이를 왜 사가는 거지? 그것도 말도 못하고…… 이제 양물도 사용할 수 없는 그런 나를……'

    수 만 가지 생각과 추측이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내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구기면서 생각을 날려버려야만 했다.

    낯선 무인들을 따라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던 아삼이었다. 처음에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크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지극 정성으로 다친 아들과 동기를 챙기는 가족들의 모습에 뭉클함을 느꼈다. 이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그들을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 때문에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딘가에 사라졌을 원래 주인도 그걸 바랐겠지.'

    아픈 몸을 치료해주기로 했던 자들을 따라나섬으로써 남은 가족들이 다가올 겨울을 날만한 충분한 돈이 지급되었고 부담도 줄게 되었다. 비록 목적지와 자신을 데리고 가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죽음이라는 단어는 그의 머릿속에서 막연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죽을 몸인데……'

    마차에 누워서 옮겨지는 아삼도 고역이었지만 그 보다 쉬지 못하고 하북의 팽가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들도 고생이었다. 하루빨리 복귀하라는 명을 전해들은 그들이었기에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만 했다.

    어차피 이번 일만 해결하면 정·사 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것이 뻔했다. 혹시라도 일처리가 상관의 마음에 든다면 포상을 얻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힘들지만 기대감에 찬 그들은 쉬지 않고 팽가로 향했다.

    드디어 아삼이 타고 있던 마차가 멈춰 섰다. 아삼을 이곳까지 데리고 온 무사들도 처음 얼굴을 본 이후로 함부로 안을 들추지는 않았다. 아마도 모종의 지시를 받은 것 같았지만 목적지까지 오는 내내 10살의 어린 아이가 따분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칠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삼은 평범한 아이들과는 달랐다. 겉모습은 10살이지만 속은 37살의 노총각인 명철의 혼이 자리잡은 상태였다. 오는 시간동안 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던 아삼이었다.

    갑자기 변해버린 인생에 혼란스러워 하던 그도 어쩔 수 없이 순응을 했지만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맞서서 싸우리라는 다짐은 잊지 않았다.

    '절대로 휘둘리는 삶을 살지는 않을 거야. 곧 죽는다고 해도.'

    마음속으로 몇 차례 다짐하던 그였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온다고 해도 얼마나 달라질지는 알 수 없었다.

    아삼이 누워있던 마차의 창이 열리고 누군가 날카로운 눈으로 안을 훑어봤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던 낯선 이가 다시 창을 닫더니 '통과'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마차가 흔들리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각의 시간도 못 돼서 다시 멈춰선 마차와 함께 문이 열리면서 환한 빛이 들어왔다. 드디어 내려지던 아삼은 들어오는 환한 빛에 눈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뜬 눈에는 지금껏 보지 못 했던 광경이 가득 들어왔다.

    고풍스러운 정원이었다. 낮은 담장으로 둘러진 전각 안에는 마치 이전 세상의 수묵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굽은 소나무와 기이화초들이 널린 듯한 모습이었고, 낮은 담장과 함께 둥그렇게 뚫려진 문은 이곳이 생각했던 대로 과거의 중국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만들어줬다.

    펼쳐진 광경에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앞에 서 내려보는 낯선 시선에 급히 눈을 돌려야 했다.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내 한 명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누워있는 아삼을 바라봤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그 시선에 마른침이 삼켜지는 아삼이었지만 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흐음. 상처는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더냐?"

    "예. 총관어른. 며칠만 약재를 달여서 먹으면 낫는다고 한답니다. 다만……"

    "다만?"

    "더 이상 사내구실을 하지 못 할 것이라고 했었고, 말 또한 하지 못 한다고 했습니다."

    "벙어리란 말이냐?"

    "예. 내보인 의원마다 한결 같이 같은 소리를 했습니다."

    "…… 잘 됐구나. 우선 정양할 수 있도록 정갈한 방 하나를 내어주도록 하거라. 고생들 했다."

    "예. 총관 어른."

    총관이라 불리는 건장한 사내가 그곳을 벗어나자 처음 아삼을 데리고 왔던 젊은 무인들이 한 쪽에 있는 방으로 그를 데리고 갔다. 이어서 방을 찾은 시비에게 이것저것 당부를 하던 무인들이 나가자 아삼만 있는 방에는 정적이 찾아들었다.

    '이곳은 어딜까?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