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2화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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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생

    까맣던 어둠에서 한 줄기 빛이 보였다.

    그 빛을 인지하자마자 머릿속에서 아찔한 고통이 느껴졌고 아래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으으으."

    그리고 목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고통에 급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삼아! 아삼아! 정신이 드는겨? 아삼아!"

    누군가 자신의 몸을 흔든다는 느낌과 함께 머리와 목 그리고 아래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더욱 커졌다. 절로 인상을 찌푸린 그가 감겼던 눈을 뜨자 흐릿한 불빛과 함께 누군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흐흐흑. 아삼아. 에구 이놈아!"

    "아삼아. 정신이 드는겨?"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낯선 두 사람을 지켜봤다.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촌부한 명과 자신의 발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여인 한 명이 걱정스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머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가시질 않았고 목에서도 따끔한 고통이 전달되었다. 특히 허하게 까발린 아랫도리와 함께 엉덩이와 고환사이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여긴 어디지? 나는 어떻게 된 거지? 아삼이라고?'

    혼란스러웠다.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가 마지막에 느낀 기억이라고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한 기억이 전부였다. 딱딱했던 바닥이 눈에 가득 들어왔었고 그 이후로 정신이 끊겼다. 당연히 죽었어야 할 자신이었지만 지금 보여지고 있는 광경과 들리는 말은 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아삼이라고?'

    처음 들어보는 말과 낯선 풍경. 그리고 귓속으로 파고드는 낯선 언어들.

    신기하게도 그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자신이었다. 지금 상황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극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옛날 복장으로 보이는 거친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사내와 여인.

    안타까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흡사 마지막에 봤던 어머니의 눈빛과 닮아있었다.

    "어떡해요. 우리 아삼이 어떡해요."

    "어허. 가만히 좀 있어. 그렇게 흔들면 애한테 더 안 좋을 거구먼!"

    남편의 으름장에 다급하게 아들의 몸에서 손을 뗀 여인이 구슬프게 흐느꼈다. 이미 두 명의 아이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심한 기근이 들었을 때, 첫째 아들은 굶어서 죽어버렸고 남은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둘째였던 장녀를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야만 했다. 그리고 남은 세 명의 아이들.

    그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놈이 바로 아삼이라고 불리던 아이였다. 그리고 지금 중한 상처를 입고 자리에 누워있었다.

    측은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모습과 함께 닫혔던 문이 삐거덕거리면서 벌컥 열렸다. 그리고 하얀색 턱수염이 목까지 내려오는 늙은 남자와 함께 7-8살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들어섰다.

    "엄니. 의원님 모셔왔어유."

    "에헴. 어디 한 번 보세나."

    의원이라고 불리는 노인이 들어서자 앉아있던 두 사람이 일어서면서 자리를 비켜줬고 모두를 물린 노인이 누워있는 아이의 맥을 잡아왔다. 그제서야 자신의 몸을 살피던 남자 아이는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느껴지는 고통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끄으응."

    "가만히 있거라. 에잉. 쯧쯧쯧."

    바둥 거리는 아이를 말리던 늙은 의원이 혀를 차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조심스럽게 상처난 부위를 살피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던 노인이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누워있는 아이에게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아이라고? 내가 아이라고?'

    서른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등졌던 그였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작아진 팔과 다리가 느껴졌다. 10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도 아니었다. 생전 처음보는 복색의 사람들과 눈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확인하는 늙은 노인.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왜? 사후세계인가 생각도 들었지만 몸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그런 생각마저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신은 분명히 다른 모습을 하고 살아있었다.

    '도대체 왜? 어떻게?'

    모든 것을 혼란스러워하던 그 때, 변해버린 자신의 몸을 진맥하던 늙은 의원이 혀를 차면서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노인이 방을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한번 밖이 소란스러워졌고 도무지 믿기 어려운 현실에 처한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이름은 아삼.

    삼남 이녀 중, 셋째였고 자신의 위로 있었던 동기 중에 형과 누나는 없었다. 그가 장남 역할을 해야 했었지만 이제 10살인 그는 자잘한 심부름 외에는 할 만한 일도 없었다. 지금은 머리와 목, 그리고 사타구니 쪽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몸져서 누워있었고 없는 살림에 의원까지 불렀지만 쉬이 날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동생들을 위해서 감나무를 오르다가 거꾸로 떨어져서 튀어나온 가지와 돌 뿌리에 몸을 다친 어린아이는 계속해서 앓아누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바닥에 튀어나온 머리를 찧은 순간 그 아이의 삶은 끝났지만 비어진 혼과 함께 이명철의 혼이 대신 들어선 것이었다. 그리고 명확하게 그 사실을 몰랐던 이명철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멍해져 버린 정신과 함께 어느새 깊게 잠이든 명철, 아니 아삼의 곁으로 거친 손을 가진 여인이 그의 몸을 젖은 천으로 닦아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그녀의 남편이 땅이 꺼질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아."

    "아삼아. 흐윽. 에구. 이 불쌍한 것."

    밤새도록 그들의 간호는 계속되었다. 특히나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들을 보는 어미의 심정은 천갈래만갈래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다고…… 우리 아삼이를. 아삼아'

    며칠을 자리에 누웠지만 별다른 차도는 없었다. 계속해서 혼란스러워하던 명철은 이제 자신이 아삼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했다. 그리고 자신을 간호하던 두 사람이 아삼이 되어버린 자신의 부모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의 어린 쌍둥이 동생들도 볼 수 있었다.

    아영과 아호라는 이란성 쌍둥이로 여자아이와 사내아이였다. 자신들 때문에 오라비와 형인 아삼이 나무에서 떨어진 것을 알고 있는 그들도 걱정스러운 눈으로 아삼을 바라봤지만 근처로 오지 못하게 하는 어미와 아비의 행동에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병세로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만 갔다. 쉽게 놓을 수 없는 아들이었다. 벌써 두 명을 떠나보냈고 그만큼 아이에 대한 애정이 커져버린 부모였다.

    없는 살림에 비싼 값을 치르고 의원까지 불렀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간단하게 다친 부위와 나아서도 정상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고, 치료에 들어가는 약재와 의원에서 치료를 하면서 들어가는 값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땅 몇 마지기 값이 필요했고 겨우 먹고사는 그들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에 간호를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어미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명철, 아삼의 마음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제는 내가 병수발을 받는 건가?'

    이전의 삶과 다른 것이 있다면 자신이 누워있고 다른 가족들이 그를 살리기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한다는 점이었다.

    벌거벗은 몸으로 하루 종일 누워있는 그도 곤욕이었다. 어미와 아비가 밖으로 나서는 낯 동안은 동생인 아영과 아호가 그를 간호했고 아직 어린 아이들은 움직일 수 없는 오라비와 형의 모습에 울음을 터뜨렸다.

    자기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만큼 순진한 그들은 스스로를 탓하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누워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은 괜찮다는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어어어'라는 소리만 흘릴 뿐이었다.

    넘어지면서 목을 다친 그는 평생을 벙어리로 살아가야하는 팔자였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만약에 몸을 털고 일어선다고 해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정신은 멀쩡하고 속으로는 이야기도 가능한데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어어어"

    "흐윽. 알겠어. 형아. 이제 그만 울게. 걱정하지 말어. 내가 꼭 돈 많이 벌어서 형을 고쳐줄거구먼. 내가 꼭 그렇게 할거여."

    "나도 그럴거여. 오라비는 내가 지켜줄거여."

    순진한 두 아이의 다짐에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아삼이었다. 그리고 사고 이후 처음으로 웃는 얼굴을 보인 아이들은 그 모습 자체로도 기뻐했다.

    "형이 웃은거제? 형아가 웃었어. 그치 아영아?"

    "맞어. 나도 봤어. 잘 못 본 것은 아니제? 맞제? 오라버니가 웃었어. 오라버니가!"

    단지 미소를 보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뻐하는 두 동생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삼은 '괜찮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아픈 몸은 그의 의지를 배반했다. 어버버 거리면서 의미없는 소리만 내뱉던 그의 입에서는 고인 침이 흘러내렸고 그것을 본 동생들이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을 닦아냈다.

    '하아. 언제까지 이렇게 누워있어야 하는거지?'

    아직까지 느껴지는 통증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신의 몸을 닦아내는 두 동생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깨진 머리통과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목. 그리고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양물.

    40년 가까운 삶을 동정을 유지하며 살아 왔던 그였다. 37년을 동정으로 살아왔던 그가 남은 생을 강제적으로 그런 삶을 살아야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가난과 병을 이겨내야 했다.

    '더 이상 순응하면서 살진 않을 거다. 무슨 이유로 내가 이런 몸으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네놈들 뜻대로 살지는 않을 거다. 절대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신을 원망하던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전의 삶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었는지 잠만큼 몸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것이 없다는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과거로 돌아 온, 아삼이라는 아이의 몸으로 살게 된 명철은 주어진 암담한 상황에도 살려는 의지를 다잡았다. 그래도 안타까운 현실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젠장. 내가 고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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