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창-1화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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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장

    30대 중반의 남자가 위태롭게 아파트 옥상의 끝에 서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은 가만히 서 있어도 중심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세차게 불었고 하염없이 흔들거리면서도 중심을 잡던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후회가 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도 했고 살려고 발버둥도 쳐봤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가혹한 단어 앞에서는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었다.

    "엄마,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해?"

    "……."

    철부지의 물음에 아무런 말씀도 못 하시고 그를 꽉 안아줬던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감았던 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명. 철.

    자신의 이름을 떠올린 남자가 쓰게 웃었다.

    서른일곱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아직까지 결혼도 못한 그였다. 번번한 연애조차 하지 못했다. 삶에 치여서 그만큼 바쁘게 살아야했고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가난이라는 단어를 절실히 느꼈던 유년시절과 함께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을 다니던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사회로 나섰다. 이전까지 삶을 책임져 주셨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병 때문에 그와 엄마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흔히 말하는 루게릭 병이었다. 퇴행성 신경질환으로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희귀질환이었고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서 두 모자는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좀처럼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갈수록 병세는 악화되었다. 목에 가래가 차서 호흡이 곤란하기 때문에 목에 구멍을 뚫고 30분에 한 번씩 가래를 빼야 했고 옆에서 계속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장시간 외출이 불가능했다.

    결국 혼자서 병원비를 대야했던 그는 불철주야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힘겹게 일을 마치고 잠깐이라도 병실에 들르는 날이면 자신의 손을 붙잡고 아무런 말도 없이 눈물을 흘리셨던 어머니를 떠올린 그의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제는 어머니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0년간 투병생활을 하셨던 아버지였다. 그 기간 동안 병원비를 벌기위해서 뛰어다니던 그였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도 몸져누우셨다. 그만큼 상심이 컸고 숨겼던 병이 결국엔 손도 못 쓸 정도가 되어버렸다.

    고생하는 아들이 안쓰러웠는지 자신의 병을 숨기던 어머니는 위암이라는 병으로 결국 숨을 거두셨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의 아들을 걱정했다.

    "어쩌누.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쩌누."

    앙상하게 변해버린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떠올린 그는 감았던 눈을 떴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주변에 나뒹구는 술병과 함께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는 것을 느낀 그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야아아아!"

    후회는 남았지만 미련은 없었다. 거지같은 운명을 저주하고 신을 저주했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웃지도 않으면 떨어지기 전에 심장이 터져서 죽어버릴 정도로 가슴 속이 답답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느낀 그는 그렇게 웃으면서 몸을 던졌다.

    37세의 노총각은 그렇게 처음으로 운명을 거부하고 웃으면서 죽음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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