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유치원 통학버스에서 새별이 내렸다.
“우리 아들 왔어?”
마중을 나온 연이 며칠을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새별을 반갑게 껴안았다. 새별도 연의 품에 반갑게 뛰어들었다.
“어땠어? 캠프는?”
“응! 좋았어요.”
“간식은 잘 먹었어?”
새별은 입을 작게 모으고 새초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기양양, 뿌듯해 보이는 새별의 등을 연이 끌었다.
그러나 새별의 걸음이 미약한 저항에 주춤했다.
“저 아저씨 또 왜 여기 있어요?”
연이 대답하려는 찰나에 새별은 눈을 매섭게 치뜨더니 연의 손을 잡고 집으로 뛰었다. 어어, 하다 보니 어느새 연은 집 안이었다. 태협과 제대로 된 인사도 못 나누었다. 창밖을 둘러보았지만 태협도 빈정 상한 걸까,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는 새별이 씩씩대는 소리가 들렸다. 연은 새별을 달래기 시작했다.
“왜 그래 새별아, 아저씨한테.”
“저 아저씨 싫어요.”
노골적으로 싫다고 말하는 새별에게 어떻게 사실대로 말하지. 친아빠라고 말하면 더 싫어할 것 같은데.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사이가 좋아지면, 그때 말해도 될 일이었다.
연은 새별의 짐을 정리했다.
“씻고 밥 먹을까?”
“……네.”
새별은 욕실로 뛰어들어 갔다. 연이 그 뒷모습을 보고 푸르르 웃었다. 이제 여섯 살이라고, 혼자 씻는단다.
새별은 이를 아드득 갈고 욕실로 들어갔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엄마를 괴롭히는 괴수 같은 저 남자가. 유치원에 찾아와서 자신이 먹는 약통을 보고는 비웃던 저 남자가. 그리고 힘이 세서 금방 저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것도 싫었다.
쏴아아, 물이 머리로 토독토독 떨어진다.
새별은 얼른 밥을 먹고 크고 싶었다. 저런 아저씨 한 번에 콱 누르고 싶고 엄마를 지키고 싶었다.
몸을 박박 닦아 씻고 있을 때, 문 너머로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안 된다니까, 내일 와. 새별이 기분 안 좋아.”
“싫은데.”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 상황에 귀를 기울이던 새별이 물기를 제대로 닦지도 않고 나왔다.
역시나, 태협이 식탁 위에 앉아 있었다. 새별이 붉고 통통한 입술을 이로 꽉 물었다.
“뭐해, 앉아.”
새별에 눈에 불꽃이 일었다.
희철이보다 싫고 영수보다 싫었다.
????????????
며칠 후.
태협은 오늘 일이 없다는 걸 핑계 삼아 점심부터 지금까지 연의 가게에 베짱이처럼 죽치고 앉아 있었다.
팀장이 할 일이 없는 회사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지적하자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고집을 부렸다.
결국 내내 같이 있었다. 연은 고장 난 김에 오븐을 아예 바꾸기로 결심했다.
내부 인테리어로 업자와 바빴던 연은 벨소리를 듣고 태협을 불렀다.
“협아! 전화 좀 갖다도!”
한참이 지나도 태협은 들어오지 않았다. 연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상태로 나갔다.
“그거 갖다주는 게 그렇게 어렵……. 벌써 가게?”
태협이 나갈 채비를 하는 듯이 걸어 두었던 옷을 걸치고 있었다. 가래도 안 가던 양반이 밥 먹을 때 맞춰 가네.
태협의 심경 변화가 신경 쓰였던 연이 미간에 힘을 풀었다.
시간을 보니 유치원 하원 시간에 가까웠다. 아무래도 어제의 일이 신경 쓰이는가 보다 했다. 연이 입꼬리를 아래로 끌어 내렸다.
“어제 일 때문이지.”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어제 부주의로 새별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진득한 건 아니었고, 가게 뒷방에서 겹쳐 앉고 있는 모습을 들켰다.
어제 일 이후 새별의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둘만 보내라는 배려인 동시에 그답지 않게 피하는가 하였다.
“그니까, 가게에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안 했나. 안 그래도 언니가 흉보고 다닌단다. 내 남자 친구 생겼다고.”
잘됐네. 태협은 어깨만 으쓱였다. 예전에는 여이 남친이라고 불리는 게 짜증 난다고 온갖 꼬장은 다 부리더니. 7년이 지나 약간은 유들유들해진 모양이었다. 연은 최대한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어디 가게?”
“가 봐야 할 데가 있어서.”
“아 글나, 그런데 내 핸드폰은 왜 들고 가?”
“잠시 들고 갔다 나올게.”
“왜? 그거 고객들 전화번호랑 다 있어서 잃어버리면 안 된다.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내가 애냐.”
태협이 잃어버릴 일 없다고 말한 후 가게를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못 미덥지만, 연은 태협이 가는 걸음마다 등에 바짝 붙은 후 손을 흔들었다.
“내일 보,”
자, 문장은 끝마치지 못했다. 태협이 뒤를 돌아 입 속을 깊게 휘저은 후 떨어졌다.
“곧 오니까, 기다리고 있어.”
“뭐…… 알았다.”
연이 차를 타고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았다. 언제 오냐 물어볼걸. 올 때까지 시계만 들여다보면 어째.
태협이 떠난 지 30분이 지났다. 태협 혹은 새별을 기다렸다.
오늘따라 새별의 하원이 늦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지, 불안함에 연은 앉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렸다.
그때 태협의 차가 먼저 등장했다. 연이 고개를 바짝 들었다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가 멈춰 서고 의외의 인물이 안에서 나왔다.
새별이었다.
새별과 태협, 두 사람이 한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무슨 상황이지?
“별아?”
한달음에 달려가 보았지만, 새별이 연을 지나쳐 곧바로 집으로 올라갔다. 작은 발에서도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발 찧는 소리가 컸다.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눈물 자국이 보인 것 같기도 했다. 분명 뭔가 마음에 상처를 받은 얼굴이었다.
“뭐야? 왜 둘이 같이 와?”
태협이 연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게로 들어가더니 열쇠를 들었다. 연은 태협에게 바짝 붙어 물었다.
“안태협, 새별이한테 무슨 일 있었어?”
“새별이 유치원에서 인기 많더라.”
“뭔데? 왜 말을 돌리는데?”
“말 돌린 거 아니고, 새별이 유치원 갔어.”
“왜?”
“전화 와서.”
“누구한테?”
“새별이네 반 선생. 학부모 면담 좀 하자고 해서.”
“그걸 왜 니가 가.”
“너 바쁘잖아.”
시답지도 않은 변명을 한다. 아무리 그래도 새별이 일이 오븐보다 중요할까.
연이 태협의 가까이에 붙였다. 선생님이 왜? 뭐라 하던데? 그러나 태협은 입을 꾹 다문 채 열지 않았다.
연은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좋은 일로 부른 건 아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사고라도 친 건 아닌지.
태협은 가게 문을 잠그더니 연의 손을 부드럽게 움켜잡았다.
“갈 데가 있다.”
연이 뿌리치려고 했지만, 태협은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연을 그대로 차 조수석에 앉혔다.
“아니! 애 놔두고 어딜 가냐고.”
“집에 가서 엎드려 울고 있으라고 했어.”
“새별이가 울 만한 일이가?”
그는 입을 닫고 성질 급하게 움직였다.
“니, 돌았나?”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런데 달래 주지는 못할망정 혼자서 울고 있으라고 했다니. 태협은 빠져나가려는 연을 놓아두고 안전띠를 매어 주었다. 풀어내려 했으나, 가까이에서 이마를 콩 찍은 태협이 귓가에다 대고 중얼거렸다.
“혼인 신고부터 하자.”
어깨를 움찔 떤 연의 볼이 눈에 띄게 뻘게졌다. 태협이 그사이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했다. 차는 망설임 없이 뻗어 나갔고, 연은 정신이 없어 태협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어차피 결혼할 거니까, 혼인 신고부터 하자고. 호적부터 합쳐.”
“무슨 소린데. 왜 그러냐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자세히 보니 태협은 화가 나서 주위가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화가 난 태협에게서 자주 보이는 반응이었다.
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니 유치원 가서 깽판 논 건 아니제?”
태협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도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이러냐고.”
“혼인 신고부터 하면 알려 줄게.”
그래도 지금 당장 혼인 신고는 조금 아니었다.
연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결혼이 너랑 내 일도 아니고. 새별이는 또 어떻고, 너희 부모님도 있을 거 아니가.”
천천히 생각해 보자는 말에 태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새별이도 괜찮대. 우리 부모님은 신경 쓰지 말고.”
“새별이가 괜찮다고 했어?”
“어.”
“뭐라고 하면서?”
“혼인 신고 하면 알려 준다던데.”
“야! 이 미친 머심아야!”
연이 답답함에 언성을 높였지만 태협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연이 짜증 나서 태협의 어깨를 때렸다.
차는 흔들림 없이 달렸다. 마치 개가 짖어도 달리는 열차처럼. 그는 흔들림 없이 운전했다.
구청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내려.”
연은 팔짱을 끼고 자리에서 버텼다.
“니만 고집 있나. 내도 고집 있그등?”
“내려. 여기서 박아 버리기 전에.”
태협이 낮은 목소리로 연을 협박했지만 연은 코웃음 쳤다.
“해 봐라, 해 봐라!”
“…….”
“나도 자존심 있그등? 자기는 말 안 하면서, 나는 하자고 하면 다 하는 사람인 줄 알지. 예전부터. 어?”
태협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넥타이를 가슴까지 풀었다. 연의 고집도 만만치 않다는 걸 태협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프레임을 꽉 잡았다. 연은 고개를 바짝 올리고 턱을 사선으로 틀었다.
“일단 집에 가. 가서 새별이랑 이야기해 봐야겠어.”
그리고 운전석을 가리켰다. 이렇게 끌려가듯이 막 해치우고 싶지는 않았다. 거기에다 새별이에게 허락을 받았다는 태협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새별은 태협을 닮아, 그리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었다.
????????????
“정말 무슨 일 있었는지 말 안 해 줄 거야?”
“다녀오겠습니다.”
새별이 어깨에 무거운 등딱지 같은 덜 익은 배색 가방을 들쳐 메고 집을 나갔다. 연이 손톱으로 머리 밑을 북북 긁었다.
괴로웠다. 태협과 태협의 미니미 사이에 갇힌 기분이었다. 둘이 성격이 얼마나 똑같은지, 대화가 연결이 안 되는 기분을 10분에 한 번씩 느꼈다.
연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태협도 새별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어차피 창구는 많았다. 점심시간에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봐야지.
오전 시간을 어영부영 보냈다. 아이들이 숙면에 빠지는 시간이 되자 연이 핸드폰을 가져왔다.
유치원 선생님 번호를 찾기 전에, 전화가 걸려 왔다. 아, 연이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발신자가 반갑지는 않았다. 희철 엄마. 그녀가 또 어떤 폭탄을 터트릴는지. 크게 심호흡한 연이 티 나지 않게 목소리를 높여 받았다.
“네, 언니.”
- 어응, 새별이 엄마.
“네. 무슨 일이세요?”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던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녀가 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다가 바쁘지 않으면 곧 찾아가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늘 언질 없이 들이닥쳤으면서 웬일이람.
연이 수락하고 전화가 끊어졌다. 늘 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마카롱을 종류별로 하나씩 먹고 가는 사람이라,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두었다.
집이 가까워서인지, 온다는 사람은 5분 만에 도착했다. 연이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그녀는 테이블에 잔뜩 올려진 디저트를 살피다가 멋쩍게 웃었다.
“아유, 뭘 이런 걸 다 준비해서.”
익숙한 여자가 풍기는 낯선 분위기에 연은 적당히 웃고는 지정석으로 안내했다.
“저기 있잖아…….”
여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손님이 줄줄이 들어오는 바람에 연은 자리를 비웠고 뒤쪽에서 여자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녀는 따뜻한 머그잔을 꼭 쥔 채 핸드폰을 자꾸 확인하고 있었다.
손님을 떠나자 연이 뒤쪽으로 다가갔다. 인기척에 흠칫, 놀라 핸드폰을 숨겼다. 그리고 목을 축여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 왜. 저기 내가 유독 연이 씨가 마음이 가는 게 연이 씨 살던 동네가 우리 남편 고향이랑 비슷해서 그렇다고 했었잖아.”
“네, 그랬죠.”
“미리 말을 해 주지, 새별이 아빠도 그 동네 나왔다고.”
“네?”
새별이 아빠요? 반문하는 말에 어색히 웃은 여자는 연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연은 손등을 굳혔다. 새별이 아빠, 소문이 그렇게 난 모양이네. 그러나 구태여 정정하지 않았다.
그 단어가 왜 그렇게 어색한지. 태협은 아무리 봐도 아이 아빠라고 부르기엔 젊고, 또…… 사실, 책임감이나 무게감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매치가 되지 않았지만, 그 단어가 주는 연결고리가 나쁘지 않아 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3개월 정도 있었나.”
“뭐, 그건 중요하지 않고, 그때 만난 거야? 남편은?”
“네.”
이런 케케묵은 과거 이야기가 궁금해서 온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연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동안 여자의 안색을 살폈다. 여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결국 연이 왜 왔냐 물었다. 여자는 연의 얼굴을 샅샅이 훑어보고 난감한 듯 이마의 경계선을 휘황찬란한 네일을 이용해서 긁적였다.
“새별이랑 남편이, 이야기 안 했어?”
“네, 안 그래도 새별이가 많이 화가 나서 집에 왔더라고요. 해서 선생님께 물어볼 참이었어요.”
“에휴, 그러면 새별이 엄마가 이야기를 좀 잘 해 줄 수 있겠네.”
여자가 비굴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톡톡 손등을 두드리고 입을 열었다.
요약하자면, 그 집 아들 희철과 새별이 싸웠다는 것이다. 여자는 싸웠다고 했지만, 연은 희철이 시비 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희철은 유난히 새별이를 무시했다. 키가 작다고 또 여자처럼 생겼다고. 그런데, 그날따라 과하게 놀렸다고 했다.
“뭐라고 놀렸어요?”
“그게, 내가 애한테 하지 말라고 해도, 알지? 남자애들 자기 자존심 부린다고 엄마 말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거?”
주절주절하던 여자는 연이 무언의 눈빛으로 재촉하자 결국 실토했다.
“아빠가, 없다고 놀렸나 봐. 우리 희철이가.”
어쩐지……. 예상한 답변이 나오자 연은 빳빳했던 등줄기를 풀고 고개를 푹 숙였다. 연이 입술을 꽉 물었다.
여자가 이왕 한 김에 다 털어놓자는 얼굴로 나머지 이야기도 쏟아 냈다.
“새별이가 또 자기 아빠 있다고 막 소리친 거야. 우리 희철이가 또 한 성격 하는 거 알지? 거짓말쟁이라고 놀리니까 화가 나서 팔을 때렸다는데. 지금 우리 희철이 팔이 맞아서 퍼렇기는 하거든?”
여자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 속 희철의 포동포동한 팔을 보여 주었다. 보면 괜히 동정심이 생길 것 같아 연은 부단히 시선을 피했지만, 여자는 자꾸만 들이댔다.
성화에 어쩔 수 없이 확인했다. 그러나 경계선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다. 연이 알아보지 못하자 여자가 손가락으로 부위를 가리켰다.
“여기, 보이지?”
연은 손등으로 툭 치워 냈다.
“그래서요?”
“어?”
“지금 새별이는 마음에 퍼랗게 멍이 들었을 텐데…….”
“그, 그렇지. 아니 뭐 내가 이거 보여 주려고 뭐 협박하려는 건 아니었고.”
여자가 황급히 핸드폰을 감추었다. 연이 울상이 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제가 저번에 말씀드렸잖아요. 희철이 좀,”
“에이, 말했지! 그런데 애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잖아. 그리고…… 이제는 새별이 아빠가 있잖아!”
여자가 연의 어깨를 툭툭 치는 것으로 위로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구렁이 담 넘듯이 한다. 연이 아무 말 없자 여자는 분위기를 바꾸었다.
“어제 바빴어? 갑자기 새별이 아빠가 와서 놀랐어. 나는 둘이 그냥 정분만 통한 관계인 줄 알았지, 정말 친아빠야? 새별이 아빠는 그렇다던데.”
연은 흘러가는 가십거리가 될까 봐 입을 닫았다. 실제로 친아빠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연이 대답이 없자, 여자가 어색하게 웃었다.
“우리 애 남편이, 뒤늦게 왔다가 새별이 아빠를 알아보더라고. 새별이 아빠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지 뭐야……. 우리가 가는 길에 희철이 많이 혼내고 그랬으니까 법적 절차니 뭐니 하는 것들은 좀……. 아이들 일이잖아. 싸우면서 크는 거지. 응?”
여자는 호기롭게 들어왔던 본인의 남편이 태협을 보고 사색이 된 순간을 떠올렸다. 반면 태협은 알아보지도 못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태협의 앞에서는 조용하던 남편은 아들에게 뭐 잘못한 게 있다면 얼른 가서 사과하라 닦달했다. 싸우기도 전에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왜 그러냐 물어보자 남편은 정확한 대답은 얼버무렸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전학 온 태협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문제가 생기면 주먹을 갈기고 돈으로 수습했었다며 보통 집안 아들이 아니라고 했다.
여자는 자신이 새별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것인지. 아버지가 없으니 저 모양이지.”
선생님이 듣고 말릴 정도였으니, 새별이도 들었을 것이다. 아차 했지만, 아들의 포동포동한 피부가 옅은 분홍빛에 물든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자는 그것은 쏙 빼놓았다. 아직 말을 안 했다고 하니까. 게다가 그녀가 아는 연은 심성이 약해 만만한 사람이었다.
연이 시선을 맞추고 있자 여자가 들러붙었다.
“그런데 새별이 아빠는 뭐 하는 분이셔? 명함 없어? 사과하고 싶어서.”
“…….”
“그런데 자기는 괜찮은 거지? 평범한 남자는 아닌 것 같아서. 성격도 또 보통은 아닌 것 같고.”
여기저기 들쑤시는 말들이 점점 기분이 나빠져 연이 팔짱을 꼈다. 이 태도가 정녕 사과하는 게 맞는지.
“그런 걸 왜 물어보시는데요?”
“어?”
억센 억양으로 그런 걸 왜 물어보냐 역으로 물었다. 여자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엉덩이를 들썩였다.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새별 엄마, 우리가 이런 일로 얼굴 붉히는 그런 사이는 아니니까. 부탁할게.”
태평스러운 말에 연이 눈을 곧게 떴다. 그리고 머그잔과 마카롱이 든 접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죄송해요. 새별이가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아서요.”
“어?”
“제가 결정할 사항은 아닌 것 같아서, 새별이한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고 연락드릴게요.”
“아니 그런 일은, 엄마끼리……. 새별 엄마!”
“들어가세요.”
연이 화가 난 얼굴로 등을 돌렸다. 새별이가 크게 상처만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자기 전, 새별에게 물었다.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새별은 엄마가 상처받을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떻게 하고 싶냐는 말엔 사과를 받고 싶다고 대답했다.
누굴 닮아 이렇게 순할까.
연이 잘 다듬어진 볼록한 이마를 쓸었다. 그리고 친아빠인 걸 알게 됐다고 해서 연이 물었다.
“아저씨가 갔을 때 어땠어?”
새별이 이야기하기 싫은지 몸을 돌렸다.
“응?”
재차 물었으나 새별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직 받아들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연은 기분이 풀리면 엄마한테 말해 달라고 했다. 새별과 약속하고 새별을 재우고 나왔다.
피곤한 하루였다. 연은 뒷목을 꾹꾹 누르다가 소파에 그대로 누웠다.
때마침 거실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태협이었다. 전화를 받자 문 열어, 한마디 하고 태협은 전화를 끊었다.
들은 일도 있고 지금 일도 어이없어 연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잘못 없단 표정으로 서 있는 태협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으이구!”
태협은 입매를 시원하게 웃었다. 재밌나? 재밌냐고. 연은 소리 없이 입만 벙긋거리며 위협했다. 주먹을 손쉽게 받아 낸 태협이 기어이 연의 방까지 밀고 들어갔다. 침대에 눕혀진 연이 발버둥 치자 이번엔 두 팔다리가 모두 묶였다.
“나한테 말할 생각은 안 들드나.”
연의 원망을 태협이 금방 알아듣고 대답했다.
“안 들던데.”
“왜?”
“빡쳐서.”
주먹을 휘두르지 않은 게 다행이지. 그때 상황을 떠올린 그가 이를 갈았다. 부아가 치미는 듯 콧김마저 뜨겁다. 연이 콧잔등을 살짝 떨었다.
“지금 니가 잘못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거기서 갑자기 친아빠라고 하면 어쩌냐고.”
“어차피 알게 될 텐데.”
“그래도 내가 엄마인데 말은 해 줘야지.”
“나는 아빠인데?”
“어떤 아빠가 아들을 그렇게 배려 없이 대하냐고. 아한테는 좀 조심스럽게 말해도 된다이가.”
애가 받아들일 시간을 줘야지. 잔소리가 늘어졌다. 태협은 연을 껴안고 구르더니 알아들었다는 듯 등을 토닥였다.
“거짓말하네.”
대답만 잘하고 행동은 그대로일 게 뻔했다. 순간, 연이 면박을 주던 입을 멈췄다. 그리고 웃고 있는 태협을 응시했다.
신기했다. 아무렇지 않게 자기 아들이라고 말하는 게.
7년간 존재를 몰랐을 텐데 자기 아들이라고 금방 저렇게 인식이 될까.
연의 표정이 풀리자 태협이 모로 누워 앞으로 껴안았다. 연이 볼을 단단한 가슴에 붙이고 웅얼거렸다.
“협아. 나 궁금한 게 있어. 이건 진짜 제대로 대답해 줘.”
“뭐.”
“니는 새별이가 안 어색하나?”
“걔가 날 가리던데?”
“…… 아니, 애가 낯가리는 건 당연한 일이고.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니가 애기 낳아서 니 아들이다 하고 내한테 말하면…… 좀 안 믿길 것 같거든?”
한동안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역시 혼란스럽기는 한가 보다.
“아이다, 걍 다음에 대답해 주라,”
태협이 입술을 몇 번 들썩이더니 입을 뗐다.
“미안해서 그런 거 생각할 시간이 없어.”
어? 예상치 못한 말에 연이 고개를 바짝 들었다. 태협이 쑥스러운 것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을 숨기고 싶은지 연의 어깨에 얼굴을 숨겼다. 얕게 이어지는 숨이 간지러웠다. 연도 말을 잇지 못하고 말을 곱씹었다.
“미안하다고?”
“어.”
태협이 연의 정수리에 턱을 올리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가?”
“이런 것들이.”
정확히 꼽기에는 수도 없이 많아, 이런 것들이라고 태협이 통칭했다.
“미안할 것도 많다.”
연이 입을 말아 물었다. 하마터면 울 뻔해서 태협의 허리를 감쌌다. 위로를 하는 동시에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이번엔 희철이가 좀, 심했을 뿐이지 그런 일은 처음이었대. 선생님이 중간에서 잘 막아 줬었거든.”
“처음이든 아니든.”
시무룩한 그를 보고 있자니 연도 미안한 게 한둘이 아녔다.
“나도 미안.”
새별에게도 태협에게도 미안했다. 혹시나 본인이 태협과 새별의 7년을 뺏은 건 아닌지.
태협은 뭐가 미안하냐 묻지 않았다. 다만, 숨결을 고르게 정리하고 물었다.
“너 그날 왜 나 안 잡았냐.”
다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연은 가슴이 철렁했다.
“어, 그러니까.”
연이 말을 정리하는 척 시간을 끌었다. 첫날에도 그렇고 오늘도 같은 것부터 물어본다.
연이 그의 표정을 흘끔거렸다. 태협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했다. 진실을 알고 싶지만, 괜한 금단을 들쑤시는 것에 두려워 보였다.
기저에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에 사로잡힌 상처받은 스무 살 소년이 있었다. 연이 그의 손을 붙잡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도 걱정 많이 했지. 처음에 인신매매를 당하는 줄 알고 놀랬는데, 인신매매범들이 친절히 옷가지를 챙겨 나오지는 않잖아. 그리고 뒤에 나도 아는 사람이 있대. 그 하얀 사람. 그 사람 보니까, 집에서 데려가는 거구나 싶더라.”
“…….”
“그래도 니 마음 편히 가라고 손도 흔들어 줬다이가.”
태협이 절망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마음 편히 가라고 손을 흔들어 줬다니, 사고방식이 너무 본인다워서 따질 힘이 나지 않았다.
주제를 옮겼다.
“그럼, 왜 안 찾아왔어. 적어도 애 낳기 전에는 알렸어야지,”
“……어떻게 찾아?”
“거기에 가만히 있었으면 내가 찾으러 갔겠지.”
아, 글나. 연이 단순하고 명쾌한 대답에 설득당해서 고개를 끄덕이려다 마음을 바꿨다.
“아니다. 내 거기 있었으면, 새별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연은 이번 일은 말하기 어려운 듯 입술을 몇 번이나 들썩였다.
“나 애 지울라고 했다.”
누가 들을까 겁이 나는 듯 연은 최대한 목소리를 죽였다. 태협이 고개를 바짝 붙이고 귀를 기울였다.
“니가 달동네에서 끌려 나가고 나도 얼마 안 지나서 아 가진 거 알게 됐거든. 그때는 별이도 뭣도 아닌 아를 낳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거든. 내 새끼가 태어나 봤자 내처럼 밖에 더 되겠나 싶어서 지우려고 했었어…….”
지금까지도 못했던 말을 연이 털어놓았다. 꽉 안는 팔에 힘이 더 들어왔다. 그의 행동이 7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지우는 방법을 몰라서 계단에서 구를까, 고민할 때 딱 아빠가 온 거야.”
그 인간을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듯 태협이 목울대를 낮게 떨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맞는데, 갑자기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들대? 솔직히 말해서는 배 속의 애가 우선순위였다기보다, 내가 좀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아빠가 술 마시고 자는 사이에 뛰쳐나왔거든? 근데 막상 혼자가 되니까, 살 이유를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 게다가 난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태협은 미동 없이 조용했다. 설마 자나 싶어 듣고 있어? 물어보자 태협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연이 이야기를 이었다.
“내가 힘드니까 얘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거야. 하루에 열두 번씩 기분이 막 왔다 갔다 해. 지울까 낳을까, 낳고 버릴까? 입양센터를 미리 알아보아야 하나? 그런데 얘가 배 속에서 안 자라는 거야. 얘가 8개월까지 너무 작아서 그냥 똥배만 좀 나왔다 정도이지, 티가 안 났어. 그리고 나는 얘가 되게 얌전한 앤 줄 알았어. 입덧도 거의 없었고, 태동도 거의 없었거든. 그런데 쌤한테 물어보니까, 산모가 하는 생각을 얘도 다 안대. 그래서 애기가 있는 듯 없는 듯 지낸다더라. 뚱딴지 같제? 근데, 생각해 보니 미안한 거야. 얘가 무슨 죄가 있어서 태어날 때부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문득 내가 아빠가 하는 행동 따라 하고 있다는 생각 드니까, 오싹하더라. 그날 마음을 고쳐먹었지. 낳아서 예쁜 이름도 주고 사랑도 넘칠 만큼 줘서 잘 키워 보자고.”
가슴에 속을 긁는 웃음소리가 닿았다. 또 웃지. 비틀린 시선 속에는 평소보다 더 서글서글하게 웃는 연이 보였다.
다만 다른 점은 떨어지지 못한 눈물이 맺혀 있다는 것이었다. 연이 눈물을 비치자 태협이 살짝 굳었다. 엄지로 연의 눈자위를 누르듯 닦아 냈다.
“누가 울래.”
“하품한 건데?”
“하품도 하지 마.”
연이 우는 건 싫었다.
세상 무엇보다도. 그러나 연이 울게 만드는 방법도 웃게 만드는 방법도 잘 모르겠다. 이 순간 태협은 반쯤 허무감이 담긴 눈빛으로 연을 보았다.
연이 태협의 눈을 가렸다.
“그럼 니가 보지 마라.”
눈앞에서 안 보이는 건 싫었다. 태협이 손을 치워 냈다. 눈이 마주치고 연은 홀린 듯 중얼거렸다.
“난 새별이를 니 대신이라고 생각했어.”
연이 울음이 잔득 매달려 무겁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별이 내한테 어떤 존재냐면…… 니였다. 내 전부이자 니한테 받았던 것들을 돌려줄 수 있는 존재.”
태협의 눈도 달빛을 받아 일렁였다. 연은 따뜻하게 웃고는 그의 살결에 얼굴을 비볐다.
“니 올 거 알았으면 안 떠났을 텐데. 아니,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았을 텐데.”
최선이었던 그 선택이 후회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고마워.”
연이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태협은 돌처럼 굳은 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연이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태협의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였다.
“니 없으면 달동네에서 산송장처럼, 이게 내 인생이라면서 죽은 듯이 살았을 텐데. 니 덕분에 뭔가를 할 생각이 들었잖아. 늦었지만 고마워, 협아.”
태협이 미친, 하고 욕을 중얼거리더니 연의 몸을 강제로 돌렸다.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그가 눈가를 훔쳤다. 어깨가 축축했다. 연이 소름 돋는 이질감에 눈을 찌푸렸다가 낄낄 웃었다.
“니 우나? 우냐고? 울보가?”
그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연은 팔에 힘을 주어 거리를 벌리려고 노력했다. 태협은 부끄러운지 연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꽉 안았다.
알았다, 알았다. 안 보께.
결국, 연이 먼저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조용히 그를 안고 달래듯 등허리를 쓸었다.
“이럴 때는 니가 내를 위로해야 하는 거 아이가? 니가 울면 우짜는데.”
연이 가슴이 뻥 뚫린 듯 후련한 한숨을 내쉬었다. 속에 있던 불필요한 벽이 무너지고 뭉쳐 두었던 응어리가 풀어지는 기분을 받았다.
“니가 눈물이 이래 많은 줄 몰랐네.”
연이 입을 가만두지 못하고 그를 놀렸다. 기분 좋은 웃음이 얼굴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 여운을 느낄 새가 없었다.
“새별이 있다. 안 된다.”
점점 아랫배가 점점 불편해졌다. 이 와중에 징그럽게. 연이 경고를 띄웠다.
“뭔 생각 하냐. 그냥 서는 건데.”
“하여간 진지한 건 한 번을 못 참지.”
타박에도 그는 동한 듯 축축한 혀를 귓바퀴에서 굴리고 젖은 숨을 불어넣었다. 그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듯, 옷 사이로 손이 슬금슬금 뻗어져 온다.
“……새별이 자잖아, 한 번만 하면 안 되냐?”
연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말이라고 하나.”
“신음 좀 참아 봐.”
그게 참아지는 줄 아나! 격렬한 거부에도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이 들어왔다. 노력해 봐, 지껄이는 소리가 농염했다.
하지 마라, 연이 다급하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협을 밀어내려는 그때, 채 잠그지 못한 문이 열렸다.
연이 당황해서 상체를 벌떡 일으켰고 태협은 들리지 않게 욕을 내뱉었다.
“어, 어! 새, 새별아. 왜?”
눈을 반쯤 뜬 새별이 베개를 들고 서 있었다. 태협의 존재감에도 새별은 천천히 걸어와서 태협과 연의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같이 자면 안 돼요?”
“나이가 몇인데 방에 들어가,”
“안 될 리가! 자자. 우리 별이 잠이 안 왔어?”
심통 부리는 태협을 팔꿈치로 저지한 연이 새별을 불러들였다.
태협이 불만을 터뜨리려는 걸 연이 쉿 소리로 그의 입을 막고 새별의 가슴 위를 토닥였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던 태협이 침대 위로 올라왔다.
좁은 침대는 두 명이 자는 것도 벅찼다. 태협까지 엉겨 붙으니 발 디딜 곳 없이 비좁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세 사람 모두 자리 잡았다. 진동이 줄어들었다.
실눈을 뜬 연이 그 모습을 구경했다. 어둠 속의 태협과 새별의 얼굴이 똑같은 게 웃겨서 웃음이 났다.
너무 평온했다. 더는, 나쁜 일이 없을 것 같아 연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