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장 (9/13)
  • 9장

    다음 날, 어제 태협이 온 마음을 쑥대밭처럼 헤집어 놓은 탓에 퇴근이 한참이나 멀었음에도 연은 햇빛에 바싹 마른 갈대처럼 고개를 꾸벅 숙였다.

    태협이 떠나고 연은 겨우 움직여 집으로 돌아갔다. 새별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었다.

    연은 고요해 보이는 새별의 옆에 누웠다. 속을 어지럽히는 풍파가 끝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작고 보드라운 몸을 감싸 안았다.

    그러나 모든 감각이 일시에 살아나 숨을 쉬고 있었다. 연은 쉬이 진정하지 못했다. 폭풍에 휘말려 침몰하기 직전의 난파선에 올라서 있는 기분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보았다. 또한, 어디로 가야 피할 수 있는지도.

    그러나 도저히 답이 없었다. 태협은 어디에 있든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는 불안한 확신이 엄습했다.

    답을 찾지 못했음에도 현실의 태양은 떠올랐다. 결국, 연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오픈하고 네 시간이 지났다. 연은 한여름 아이스크림처럼 햇빛에 녹아 갔다.

    조금만 앉아 있다가.

    손님이 오면 곧바로 일어날 생각이었다. 작게 마련된 테이블의 한자리를 차지한 연이 턱을 괴고 눈을 반쯤 떴다. 눈꺼풀이 닫히는 불상사만은 막기 위해 속눈썹이 팔락팔락, 힘든 부채질을 반복했다.

    그러나 잠 이기는 장사 없다고, 연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머리가 공중에서 지휘하듯 흔들렸다.

    얼마나 푹 잤는지, 태협이 들어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태협이 가게를 두리번거리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연을 발견하고 연에게 다가갔다.

    예나 지금이나 둔한 건 똑같은지. 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태협이 꾸벅꾸벅 조는 연과 마주 앉았다.

    얼굴을 찬찬히 감상하다가 잔뜩 오므려진 미간을 발견했다. 속눈썹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 그가 큰 손으로 그늘을 만들었다. 얼굴이 평온해진다. 태협은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웃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딸랑, 선명한 종소리가 연을 깨웠다. 얇은 눈가죽 위에 쌍꺼풀이 겹겹이 올라갔다.

    “어서 오, 헙!”

    일어났을 땐 방금 들어온 손님보다 더 먼저 들어와 마주 앉아 있는 태협을 보고 놀랐다. 태협은 살짝 뻗었던 팔을 거두고 있었다.

    연의 얼굴이 태양에 익은 듯 발개졌다.

    눈앞이 깜깜하면서도 황금색 빛이었다. 가끔 거뭇한 연기가 스칠 때는 구름이 해를 가렸나 보다 하였지, 그가 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언제 왔어? ……어서 오세요!”

    연이 황급하게 머리를 넘겼다. 태협이 쳐다보고 있는 시선이 햇빛보다 따뜻해서 더 허둥지둥했다. 그것도 잠시, 손님이 온 것을 확인하고 얼른 손님에게 달려갔다.

    연이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가, 손님이 나가자 시선을 돌렸다.

    “왜 왔어.”

    진이 쫙 빠져 연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전혀 반가워하지 않는 태도에 상처받을 법하지만 태협은 여전하다는 말로 대화의 결을 바꾸었다.

    “오랜만에 눈 감고 있는 모습 보니까 좋네.”

    말투에 연은 소름이 돋아 양팔을 감쌌다.

    “말투 소름 돋는다. 원래대로 해라.”

    연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사투리에 민망해하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니, 내가 나이 많다고 나름 예의 차리는 거야?”

    연이 뜻밖의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입을 가렸다. 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연은 스물여덟 살로 태협보다 한 살이 더 많았다.

    스물일곱이나 스물여덟이나 도긴개긴이지만. 태협은 못마땅한 듯 눈썹을 올렸다.

    하기야, 그럴 리가 없었다. 나이 80이 넘은 할매한테도 대섰던 앤데. 연이 시답지 않은 소리를 했다며 손을 휘저었다.

    “어쨌든, 왜 왔냐고.”

    “데이트하려고. 다 팔았냐.”

    “아니, 한참 남았어.”

    마카롱이 한참 남은 것에 감사했다. 재고가 한참 나갔으니 그만 가라고 말하려 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이거, 이거, 이거.” 하더니 “아니, 여기 있는 거 다 주세요.” 한다. 암만 봐도 마카롱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눈치여서 연이 태협을 노려보았다. 입가를 가렸지만, 태협이 웃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아니,”

    “얼른 주십시오. 제가 바쁩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정중한 요청을 거부할 수 없어 결국 연은 진열대를 열고 마카롱을 차곡차곡 바구니에 담았다. 계산을 마치고 양손 가득 마카롱을 들고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본 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거야?”

    “뭐가.”

    태협이 능청스럽게 모른 척했다. 잠이 다 깬 연은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시야가 물방울 퍼지듯 시야가 확보되고 여전히 웃는 낯의 남자가 가득 들어찼다.

    “나 여기에 겨우 자리 잡았어. 네 이런 행동이 단기적인 매출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결국 나한테 전혀 도움이 안 돼.”

    “그러면 망하면 되겠네.”

    “안태협.”

    태협이 눈을 가늘게 접었다. 아까 전보다 미소의 온도가 더 올라갔다.

    “그것보다는 뒤의 글자만 부르는 게 더 좋은데.”

    “…….”

    “편하면 계속 그렇게 부르든지.”

    태협은 연이 불편해질 정도로 짙게 웃었다. 저 안하무인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연은 속이 꽉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쫌.”

    “좋네. 가자, 데이트하러.”

    “……새별이 올 거야.”

    “다섯 시간쯤 남았나?”

    태협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저건 또 어떻게 알고. 거짓말을 들킨 것 같아 연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걔는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내가 엄마인데.”

    연은 자신에게는 아이가 있고 그러므로 알아달라는 듯이 말했다. 태협이 눈썹을 까닥였다.

    “누구 새끼냐? 나랑 헤어지고 1년 만이던데.”

    그리고 필터로 거르지 않고 곧장 물었다. 도대체 누구 새끼였는지, 그 면상이 궁금하다는 얼굴. 한낱 가십거리를 대하듯 가벼운 얼굴에 연은 스리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태협은 포기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새끼냐고. 네가 말 안 하면 내가,”

    “몰라.”

    태협이 눈을 찌푸렸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새끼인지.”

    그러다 연은 눈을 내리깔고 그을음에 잠긴 표정을 했다. 태협이 눈을 사납게 떴다. 어떤 새끼인지 몰라도 제 앞에서 감싸는 꼴을 보기 싫은 모양이었다.

    “내 앞에서 그 새끼 생각하면서 그런 표정 짓지 마. 기분 더러워.”

    연이 시선을 올리다가 피식, 웃었다. 그는 불같은 질투심에 휩싸여 이를 악물었다.

    “내가 못 찾을 것 같냐?”

    “찾아보든가.”

    연이 잔인한 죽음의 수수께끼를 내는 투란토트처럼 차갑게 대꾸했다. 태협이 시험에 든 듯 인상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남자의 존재가 도통 감이 안 잡히는 듯 보였다. 당연했다.

    류소연이라는 이름을 가지기까지 2년이 걸렸다. 새별이 태어나고, 겨우 도망갔던 엄마를 찾았고 이름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이름을 가지기까지 연은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아무리 그라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종적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연이 놀리듯 입을 삐죽거리자 태협이 같잖다는 듯 코웃음 치더니 연의 입술에 곧장 제 입술을 찍어 눌렀다. 얼마나 거칠었는지 이와 이가 시리게 부딪쳤다.

    그때, 문이 열리고 종소리가 딸랑딸랑 울렸다.

    “새별이 엄마 있어?”

    연이 태협의 몸이 휘청일 정도로 세게 밀어냈다.

    문 앞에는 큰 웨이브를 넣은 머리에 선글라스를 끼고 아주 짙은 마스카라를 한 여자가 있었다. 긴 네일로 입술을 가린 그녀는 아주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연은 몸을 흠칫 떨었다.

    하필이면 희철이 엄마라니……. 연이 잘못 걸렸다는 표정을 몰래 지었다.

    “오셨어요?”

    재빨리 환한 표정을 꾸며내고 사근사근하게 물었다.

    “으응, 마카롱 먹으러 왔지.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야. 없네?”

    “방금 한 손님이 다 사 가셨어요.”

    연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달랬다. 입이 삐죽 나온 여자의 표정은 풀어질 줄을 몰랐다.

    “자기! 너무하다. 나 올 거 알면서.”

    여자는 불규칙하게 아무 때나 들이닥쳤다. 그러니 예상할 수가 없었다.

    “네, 죄송해요. 다음에 오세요. 그땐 더 제대로 준비해 놓을게요.”

    연이 은근슬쩍 나가 달라는 의도도 덧붙였다. 눈치가 백단인 여자가 연이 씨 은근히 여우 같아, 하며 운을 띄웠다. 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네?”

    “그런데 누구야? 뒤의 잘생긴 저 남자.”

    그리고 태협의 정체를 물었다. 안타깝게도 태협을 등지고 있어 연은 태협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밖에서 보이지 않는 각도라는 것이다.

    아마 보지 못했을 거야.

    연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에 꽂았다.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여자가 태협을 보고는 흐음, 하고 콧소리를 냈다. 왜 그녀가 그런 모호한 표정을 한 것인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뒤쪽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턱이 강제로 들리더니 입술이 닿았다. 아까 닿았던 것과 같은 느낌의 입술이었다. 연의 동글동글한 눈이 더할 데 없이 커졌다.

    태협은 이 재미난 걸 놓칠 수 없다는 듯 눈을 뜨고 있었다. 연이 품에 안긴 고양이처럼 흘러내렸다.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버럭 소리쳤다.

    “야! 니, 니 뭐 하는 짓인데.”

    당황해서 사투리가 먼저 나왔다. 한 번 더 하려는지 태협이 다가오는 순간 기어 도망갔다.

    “아는 사이도 종류가 있잖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싱그럽게 웃은 태협이 연의 붉어진 볼을 쓰다듬었다.

    시선이 흔들리는 와중에 뾰족구두의 끝이 보였다. 연은 당황해서 여자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희철이 어머니. 저기. 이 남자는.”

    “그나저나 이번에 알지?”

    여자는 당황하지도 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을 이어 붙였다. 미소는 조금 뻔뻔하고 위험했다. 연이 혀로 입술을 적셨다.

    “이번에, 유치원 1박 2일 봄 캠프 있는 거. 우리 학급 간식을 연이 씨가 준비해 줘야겠어.”

    여자는 건수를 잡았다는 듯이 말했다. 곤란해진 연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반 하나도 아니라 학급 전체면……. 연이 울상을 지었다.

    “터무니없이 많아요.”

    “그럴 거야? 새별 엄마. 혼자 키우느라 고생한다고 우리가 이것저것 편의 다 누리게 해 줬잖아.”

    연은 우물쭈물 대답을 못 했다. 유치원 행사에 빼 주는 등 그들이 해 준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학급 전체 간식이라니.

    재빨리 계산했다. 유치원 아이들에 선생님들 간식, 기사님들 것까지 하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혼자 준비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그러나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여자의 뜻은 남자가 생긴 것 같은데 그에게 부탁해 봐라, 일 테니까.

    여자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을 쳐다보고는 사라졌다.

    들킨 이상 낙장불입이었다. 연은 소풍 날이 언제인지를 세기 위해 달력 앞으로 다가갔다. 3일 후였다.

    하아, 한숨을 쉰 연이 진열대에 기댔다. 뒤에 바싹 붙는 몸이 느껴졌다. 허리를 잡으려는 걸 연이 몸을 돌려 막았다.

    “눈치는 얻다 팔아먹었는데! 할 거 못할 거 구분 못하나?”

    이 사달을 낸 태협을 향해 진심을 다해 화를 냈다.

    “다 팔았으면 그만 가지. 데이트.”

    태협이 대수롭지 않아 보여 더 화가 났다. 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닌 진짜 한 개도 도움 안 된다. 아나?”

    그의 단단한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격한 연이 꼴 보기 싫어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 일 아니라고 걱정 없이 웃는 모습이 미웠다.

    그날 저녁, 단체 채팅방에 해당 학급의 정원과 필요한 간식 목록이 올라왔다.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전날 장사는 아예 못하고 간식만 준비를 해야 하는 사태였다.

    캠프 전날 저녁부터 연은 퇴근도 못 하고 베이킹에 들어갔다.

    “엄마!”

    새별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별이 왔어? 배고프지?”

    미리 저녁을 준비했던 연은 볶음밥을 내놓았고, 부득부득 우겨 어른용 숟가락을 챙긴 새별이 입이 찢어지도록 볶음밥을 퍼 입 안에 넣었다.

    먹는 모습만 봐도 좋은지 연이 풀린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맛있게 먹어. 우리 아들.”

    “빵 만들어요?”

    “응.”

    “무슨 빵인데요?”

    “새별이 내일 캠프 갈 때 먹을 간식.”

    아이가 빤하게 쳐다보았다.

    “나 이렇게 많이 못 먹어요.”

    “친구들 것까지 같이 준비하고 있어.”

    “나 친구 이렇게 많이 없어요.”

    양을 보고 가늠한 듯 새별이 지적했다.

    “영수도 주고, 희철이도 주고.”

    “걔들 내 친구 아닌데.”

    걔들은 주기 싫다는 반항적인 눈빛이었다. 연은 아무 말 없이 작은 머리통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새별은 골이 난 표정을 했다.

    이 맛있는 걸 그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왜 엄마는 그것도 모르지? 알아주지 않자 조그만 반항기가 끓어올랐다.

    “전 걔네 싫어요.”

    새별이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래도.”

    “걔네 나 놀려요. 재수 없어.”

    연이 놀라서 뒤를 돌았다.

    “새별, 그런 나쁜 말을 어디서 배운 거야.”

    당황한 연은 믹싱기를 만지다 말고 새별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거친 말을 쓰다니, 내 아들이.

    새별은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걔는 나 아빠 없다고 놀린단 말이에요. 약 먹는 것도 놀리고 키 작은 것도 놀려요! ……재수 없어.”

    새별이 밥을 욱여넣고 다 씹지도 않은 채 성급하게 꿀꺽 넘겼다.

    꼭꼭 씹어 먹으라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뭐라 말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친하게 지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너도 무시하라고 해야 할까.

    무엇이 정답이든 간에 연은 모든 게 제 탓인 것 같은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을 느꼈다.

    그때, 뒤에서 감정을 담지 않은 목소리가 건너왔다.

    “데려와.”

    태협이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벽에 기대서 있었다.

    “데려오긴 누굴 데려와. 쓸데없는 이야기 좀 하지 마.”

    연이 조금 허둥댔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하필 이 순간에 오다니.

    “아까 걔 데리고 오라고. 놀린다는 애.”

    태협은 좋은 사냥감을 발견한 것처럼 미소를 세웠다. 문득 연은 태협이 지훈을 마구잡이로 때렸을 때를 떠올렸다. 설마 애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새별이 아군을 자청하는 태협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아저씨, 내가 여기 오지 말라고 했죠.”

    새별은 태협의 등장이 거슬린 듯 촉각을 세웠다. 뿌리박힌 불신은 거두어질 줄 몰랐다.

    “내 마음이야.”

    태협은 아이를 비웃듯 내려다보다 툭, 말을 던진다. 새별은 뱁새눈을 뜨고 태협을 노려보았다.

    지난 며칠간 같은 패턴이었다. 새별은 태협을 향해 충동적으로 화를 냈고 태협은 같잖은 듯 콧방귀를 뀌었다. 사이에 낀 연은 떼꾼한 눈을 끔뻑였다.

    “새별아, 다 먹었으면 집에 올라가 있어. 오늘 엄마는 일이 남아서 늦게 올라가니까, 문 잘 잠그고.”

    사달이 나기 전에 새별을 올려 보낼 생각이었다. 새별은 오히려 눈을 부릅뜨고 태협과 마주 섰다.

    “아저씨가 먼저 가면요.”

    “가기 전에 말 하고 가. 유치원에 있는 애냐?”

    “아저씨는 몰라도 되잖아요!”

    새별이 새끼 호랑이처럼 몸으로 달려들었다. 쪼그만 게. 조소를 흘린 태협은 오는 아이의 손을 붙잡고는 가볍게 옆구리에 꼈다.

    새별이 붙잡혀서 버둥거렸다. 연이 “안태협!” 불러도 그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제법 진지한 말투로 설득하듯이 을렀다.

    “내가 왜 몰라야 해. 그것 때문에 너희 엄마가 고생하잖아.”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내가 지킬 거예요!”

    “퍽이나.”

    “안태협 놓으라니까!”

    연의 만류에도, 아이의 버둥질에도 태협은 새별을 인질을 삼고 협박했다.

    누구냐고, 말해. 싫어요. 안 말해 줄 거예요!

    두 사람은 유치하게 싸웠다. 한참 새별과 싸우던 태협은 표적을 연으로 바꿨다.

    “넌 알 거 아니냐. 네가 말해.”

    “안태협. 그만하고 새별이 내려…… 류새별!”

    붙잡혀 있던 새별이 화를 참지 못하고 태협의 허벅지를 있는 힘껏 물었다. 이번엔 꽤 아팠는지 태협이 눈을 찌푸렸다.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새별이 득의양양하게 웃다가 연의 큰 소리에 목을 움츠렸다.

    연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사랑해 마지않는 새별이지만, 누구에게든 폭력을 쓰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연은 누누이 말했다. 어떤 상황에 이르러서도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저 아저씨가…….”

    “엄마가, 함부로 누구 때리고 물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

    “했어 안 했어?”

    새별이 칼날처럼 매서워진 연 앞에서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했어요.”

    태협은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리라는 것은 예상 못 했다.

    화를 삭이듯 하늘을 향해 한숨 쉰 연이 태협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시만 가게 봐줄래?”

    그길로 연은 새별을 데리고 사라졌다.

    10분쯤 지났을까. 연이 피곤한 얼굴로 가게에 내려왔다. 태협은 어제 앉아 있었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미안. 새별이가 자존심이 좀 세서. 애들 교육상 남들 앞에서 화내면 안 좋다고 해서 그것 좀 해결하고 왔어. 단단히 주의를 시켰으니까, 다음부턴 안 그럴 거야.”

    “애가 다 그러면서 크는 거지.”

    은근히 감싸는 말투에는 무안함도 더러 있었다. 낯설었지만 연은 뚜벅뚜벅 다가가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연은 무척 피곤하고 지친 상태였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던 연이 태협에게 눈을 부라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다.

    “니는 애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니가 어른이니까 참아야지 않겠나. 매번 반응하고 그러면 새별이한테도 안 좋다.”

    연은 어쩌면 7년 전과 다를 바가 없냐며 불평을 쏟아 냈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던 태협이 흥미롭다는 듯 얼굴을 들이댔다. 그에겐 일말의 반성하는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연이 뒤로 물러서자 태협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예전엔 날 감싸 주더니.”

    “내가? 언제.”

    장난 어린 말투에 은근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연이 과거 일을 곱씹어 보다가 할매와 싸우던 일을 떠올렸다. 연은 피식 웃었다.

    “그땐 니가 어렸으니까. ……그나저나, 다리는 어때? 괜찮고?”

    “일찍도 물어본다. 아파.”

    태협이 엄살을 피웠다. 언젠가 새별이 상처 낸 태협의 팔뚝을 떠올렸다. 그날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꼬집었다. 선명하고 보라색으로 물든 것이 여간 악다구니를 쓴 것이 아니었다. 연이 대신 아프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상처는 안 났어?”

    “여기서 벗어서 확인,”

    “아니! 집에 가서 확인하고, 연락해.”

    옷을 벗으려는 듯 보이던 태협의 움직임을 만류하기 위해 연이 빠르게 말을 잘랐다. 그가 옷에서 손을 떼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태협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매섭게 뜬 눈이 떠올랐다.

    달아나고 싶은 충동 같은 게 느껴졌다.

    아이를 키우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자존심은 또 얼마나 세고 지기는 얼마나 싫어하는지. 혹여나 어디 가서 예의 없다는 소리 들을까 봐 둥글둥글 키우려 노력했지만, 잘되지가 않았다.

    아버지 없이 커서 저러는 거라고 손가락질 받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많았다. 그 걱정에 앞에 있는 남자가 자꾸만 불을 지폈다.

    “누굴 닮아서 저렇게 자존심이 센지 모르겠어.”

    괜히 푸념했다고 생각한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지.

    그의 형체가 흐릿해 보일 정도로 연의 동공은 빠르게 떨렸다. 겨우 입을 움직여 변명하려 했지만 태협의 대답이 더 빨랐다.

    “네 아들이니까 널 닮았겠지. 아님 그 새끼를 닮았든가.”

    태협의 지적에 연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 그렇지.” 하고 말을 더듬는 순간, 태협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쏟아졌다.

    “아니면, 나를 닮았을 수도 있겠지.”

    그는 질문도 대답도 아닌 모호한 말투로 연을 뒤흔들었다. 하마터면 날카로운 비명이 터질 뻔했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등줄기가 뻣뻣해졌다. 태협은 제법 진지한 얼굴이었다.

    “아니거든!”

    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 엎어졌다.

    “왜, 왜 그런 말을 하는…… 아니야. 가. 나 할 일이 많아서. 넌 이만 갔으면 해.”

    “무슨 일.”

    태협이 일어나 연의 등 뒤로 바짝 붙었다. 연이 달군 쇠처럼 얼굴을 붉히고 태협의 손을 밀었다.

    “애들 간식, 만들어야 해. 봄 캠프용.”

    태협은 그 여자를 만난 날, 난색이 되어 손을 젓던 연을 떠올렸다.

    “그걸 왜 네가 해.”

    “원래 엄마들끼리 돌아가면서 했어. 이번엔 내가 할 차례거든. 바쁘니까. 다음에 와.”

    오븐 한 칸이 돌았어야 할 시간인데, 예기치 못한 사고로 시간이 늦어졌다. 지금 해도 빠듯할지도. 머릿속에 계획을 수정한 그린 연이 손을 닦았다.

    “도와줄게.”

    그때, 담백한 목소리가 연의 귀를 사로잡았다. 등을 돌리자 태협이 선심을 베풀겠다는 듯이 으스대고 있었다. 연은 두 눈썹을 좁게 모았다.

    “뭐? 너 할 줄 알아?”

    “시키는 건 잘해.”

    의심스러웠으나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손부터 씻어.”

    실제로 태협은 곧잘 따라 했다. 정작 짤주머니를 든 태협이 적응이 안 되어서 연이 흘끔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아까 그 말은 뭔지.

    ……설마 눈치챘나?

    연이 태협의 행동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모호했다. 새별을 많이 봐주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또 다정함이라고는 한구석도 찾아볼 수 없었다.

    머리를 바쁘게 돌리던 그때 태협이 연을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뭐, 왜? 연이 가기를 꺼렸다가 어깨를 잡히는 바람에 끌려갔다.

    태협이 잘 보라는 듯이 오븐을 툭툭 건드렸다. 그러나 연은 보라는 것을 보지 않고 태협만 주시했다.

    연이 오랫동안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자 그가 입을 맞췄다. 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키스하고 싶어?”

    “뭐래!”

    연이 손등으로 입술을 박박 닦았다. 손등을 치워 낸 그가 다시 찜하듯이 입술을 찍었다.

    “계속할래?”

    더 했다가는 제 입술만 부르트지. 연이 익은 얼굴을 도리질 쳤다. 만족스럽게 웃은 그가 제법 진지하게 오븐을 가리켰다.

    “불 꺼졌다고.”

    “어?”

    연이 오븐 안을 살폈다. 오른쪽 오븐이 고장이 났는지 빵들이 구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왜 이러지?”

    오븐을 조작해 봤지만 멈춘 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와 이라노. 진짜.”

    평소 오락가락하던 오븐이긴 한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고장 나는 사고는 연의 시나리오에 없었다. 연은 오븐을 통통 두드리다가 좌절한 채 오븐 앞에 주저앉았다.

    “망했네.”

    거기다 대고 태협은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 연이 “그렇게 말하지 마라.” 한마디 하고 머리를 짜냈다.

    대여섯 번 정도만 더 돌리면 되었다……. 한 대가 고장 나는 바람에 시간에 맞추려면 다른 가게에서 기계를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곳에 프랑스 빵집이 있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양해해 주실 것이다.

    전화번호부에서 번호를 찾으려 자리에 일어서려는 연의 허리춤을 감싸는 손이 있었다.

    “야!”

    완력에 끌려간 연은 둔부에 닿는 단단한 살성에 몸을 바짝 긴장했다. 엉덩이 아래 허벅지와 그리고 그 위쪽으로…….

    “야, 니 뭐 하는데.”

    “있어 봐.”

    태협이 핸드폰을 꺼내서 번호를 입력했다. 연이 오갈 수 없도록 꽉 안은 태협이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연과 태협의 얼굴 사이에 핸드폰이 있었다. 왜 굳이 이런 자세를 만드냐 지적하고 싶었으나, 전화기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난데. 애들 간식 좀 공수해. 유치원생들. 다섯 살. 정원이 몇 명?”

    “……123.”

    “123명분이랑 선생들이랑 버스 기사 들것까지. 아무거나 제일 비싼 거로 준비해. 빵이랑 마실 거랑. 1박 2일 봄 캠프에 어울릴 만한 걸로.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애들 먹을 거니까 크기만 좀 조그마면 되겠네.”

    태협이 간단하게 지시하고 통화를 끝냈다. 귓가에 닿던 뜨뜻미지근한 것이 사라지고 대신 턱이 와닿았다. 숨만 색색 내쉬던 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새별이 거야?”

    “아니면?”

    태협이 짧게 대답하고 제 눈가를 연의 어깨에 비볐다. 피곤한 모양이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시침이 숫자 3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쉬운지. 태협은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걸 해결했다. 나는 또 뭐가 이렇게 어려운지.

    오랜만에 닿는 친밀한 온기에 잠시 어깨를 움츠린 연이 들릴락 말락 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기, 고맙다고…….”

    여전히 등 뒤로 뜨거운 그것이 닿았고 어깨에는 미약한 숨결이 닿았다. 연이 쑥스러운 듯 발가락을 꼼지락댔다.

    “할 맘은 안 생기고?”

    태협이 넉살을 떨었다. 허리를 지분대고 하체를 바짝 들이댔다. 연은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태협의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할까. 연이 태협의 등에 기댔다. 마음 같아서는 엉덩이를 차서 내쫓고 싶었다. 강경하게 밀어내고 정이 떨어졌음 했다.

    연은 제 분수를 잘 알았다. 제 옆에 붙잡아 두기엔 태협은 너무나 아까운 남자였다. 아름답고 귀했다. 부족함 없이 자라 성격은 조금 나쁘지만, 천성이 나쁜 건 아니었다. 얼마든지 더 좋은 사람과 만날 수면 있었고 연은 그랬으면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무게감에 만족한 그가 가여웠다. 주제넘게도. 그가 가여워서 내보내고 싶었다.

    “내 이름이 왜 류소연인 줄 알아?”

    태협은 고개를 저었다.

    “왜냐면, 난 니가 전에 불러 줬던 연이가 너무 듣기 좋았거든. 그래서 지금도 니 보면 좋다. 옛날 생각도 나고. 늘 고맙고.”

    연은 실제로 많고 많은 이름 중 가장 평범하고, 또 ‘연’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이름을 골랐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본인의 과거를 지우고 싶지는 않은 탓이었다.

    연이라고 불리면서 얼마나 많은 배려를 받았었나.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연은 태협이 불러 주었던 이름으로 평생 불리고 싶다고 바랐을 정도였다.

    이 머리에서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태협은 불안했지만, 듣고 있다는 뜻으로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그런데 이름을 가지게 되니까 책임감이 따라오더라.”

    연에게는 책임질 것이 많았고 그에게 그것들을 태협에게 들이대고 싶지 않았다. 그라면 그 모든 걸 쉽게 해결할 테지만, 연의 마음부터가 그랬다. 오롯이 내가 헤쳐 가고 싶은 마음.

    “난 이제 혼자서 가계를 꾸려 나가야 하는 사람이잖아. 나한테 딸린 식구가 꽤 많아. 이제는 그걸 지켜야 해. 성인이니까 책임을 져야 한다고.”

    “…….”

    “나 이때까지 100점은 아니더라도 60점 정도로 잘 해 왔어. 그러니까 너도 놓고 살아…… 그래도 돼.”

    마침 목이 메는 소리가 났다. 이런 효과를 주고 싶은 건 결코 아니었다.

    큼큼 목청을 가다듬는 연의 뒤에서 차고 냉혹한 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깝게 됐네. 너도 하는 걸 내가 못해서.”

    차지게 비꼰다. 움찔한 연이 그의 품에서 벗어나 마주 섰다. 반쯤 기대고 있음에도 태협의 눈높이는 여전히 뾰족한 산처럼 험준하고 높았다.

    “성인이 돼서 지 몸 하나 건사 못하고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내가 한심해 보이겠다?”

    이야기가 왜 그리로 튀는 거지?

    연이 우물쭈물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만 질긴 인연을 끊고 앞으로 나아가도 괜찮다는 말이라고. 이제.”

    “너 바보냐?”

    “니는 이 와중에 그런 말을…….”

    분위기 초 치는 데는 선수였다. 연은 그를 노려보았다. 태협은 멀리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돌렸다.

    거칠 게 없는 그가 어쩐지 조심스러워 보였다.

    “네가 필요하다고.”

    내가 못 살겠어서. 태협이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지난번처럼 울분을 표출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아니면 알아듣지 못하고 틈을 내주지 않는 연에게 무거운 연기처럼 스미듯 화를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아듣지 못하는 연을 위해 다시 길게 설명했다.

    “나 그렇게 잘난 놈 아니라고. 내가 혼자 잘하면 왜 너한테 들러붙어. 내가 못나서 혼자서는 못 살겠으니까 너한테 들러붙는 거잖아. 대체 누구 좋으라고 내가 이런 짓까지…….”

    태협은 매달리는 게 은근히 자존심 상해 보였다. 자존심이 상하면서까지 매달리는 그는 수상쩍어 보이기까지 했다.

    내게 무슨 가치가 있다고.

    “왜?”

    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봐야 3개월 안 되는 시간 동안 몸 섞은 게 다인데. 심지어는 못 볼 꼴도 많이 보여 줬다.

    “왜라니.”

    태협은 자신의 통통한 입술을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로 괴롭혔다. 비참해 보였다.

    비참함.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가 붙은 태협이 연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의아하다는 얼굴로 태협의 볼 가죽을 주물럭댔다.

    “니…… 안태협 맞나?”

    어리벙벙해하자 태협이 연의 손 위로 손을 겹쳤다.

    “나도 이해 못해. 너 따위 아무것도 아닌데, 찾지 말아야지 하면서 찾고 네 생각만 하고 있어. 나도 나를 몰라.”

    그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듯 보이면서 대체적으로 무책임했다. 모른다는 말로 버틸 만한 일이 아니었다.

    10년 후, 아니 한 달 후라도 후회할지도 모른다. 연이 믿지 못하자 태협은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널 찾는 건 그냥, 습관이니까.”

    지독한 습관, 혹은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

    연이 7년 전 일을 떠올렸다. 태협에게 습관이랄 게 있었던가.

    아, 자신을 볼 때면 늘 뾰족한 눈썹 산을 만들었다. 행복한 순간이든, 불행한 순간이든. 지금도 그의 눈썹꼬리는 올라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그런데 네가 뭘 안다고 그런 게 가능하니 마니.”

    태협이 말하다 터져 버린 듯 입술을 디밀었다. 입술이 빨아들이는 소리가 작은 주방을 완벽히 채웠다. 소리는 점점 젖어 들었다.

    잘 모르겠다. 그 말이 어느 정도의 감정인지는. 과분하다는 것만 잘 알겠다.

    연은 받아 줄 듯 말 듯 소극적으로 대했다.

    설탕처럼 단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욕심을 부렸다간 손쓸 새 없이 중독되어 버리고 말 텐데. 연이 태협의 어깨를 밀었다.

    “야.”

    태협이 짐승처럼 낮게 목을 떨었다. 연은 가쁜 숨을 내려놓기 위해 눈을 감았다.

    “잠시만.”

    굳게 주먹을 쥐고 사이를 벌렸다.

    “바, 밤이 늦었으니까 내일 보자.”

    “싫어.”

    “내일, 협아. 내일. 응?”

    연은 혼란스러웠고 부담스러웠다. 내일이라고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태협은 놓지 않았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만 가슴 앞에서 미끄러졌다.

    그 혼란스러운 감정이 태협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태협의 입꼬리가 보기 좋게 밀려 올라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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