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장 (4/13)
  • 4장

    그날 이후 태협의 별칭은 연이 남친이 되었다.

    “여이 남친, 니 우리 여이한테 잘해라.”

    “맞다. 여이 울리지 말고!”

    눈에 띄게 나쁘게 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늘 잘하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태협은 그럴 때마다 지체 없이 인상을 썼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에게 훈계를 듣는 것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기준에서 ‘잘’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해 줄 수 있는 게 자신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감히. 태협은 이를 갈았다.

    그리고 망할 오지랖은 연에게서만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새로운 구경거리가 생긴 양 태협의 집에 관심을 가졌다. 기척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어물쩍 살펴보고 간다.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태협이 낮게 욕을 뇌까리자 하교 시간에 맞춰 마중 나와 있던 연이 그의 날개 뼈에 손을 대고 밀었다.

    “다 니 극정해서 그러는 거 아이가. 연탄 마시고 뒤지뿔까 봐. 젊은 애 초상 치를 수도 없고.”

    “그 전에 화병이 나 뒤지겠네.”

    “니는 꼭 말을 해도 그리해야겠나.”

    연은 등을 꼬집었다. 태협은 내색도 하지 않고 불만을 터뜨렸다.

    “어쨌든 다음에 또 오면 가택침입으로 신고하든가 할 거니까,”

    “아, 것참 쫌스릅다. 쫌스르버.”

    연이 날개 뼈에서 손을 떼고 허리에 손을 올렸다. 완력이 사라지자 태협이 뒤를 돌았다. 저보다 무거운 사람을 밀고 와서인지 겨울인데도 연의 동그란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했다.

    이마의 움직임에 땀방울은 관자놀이까지 내려갔다. 태협이 그 움직임에 집중하는 사이, 연이 잔소리를 쏟아 냈다.

    “글고 동네 사람들이 와서 쪼매 디다볼 수도 있지, 뭐 훔치 가는 것도 아이고. 팍팍하구로.”

    연이 동네 사람을 적극적으로 두둔하자 태협은 사납게 을렀다.

    “훔쳐 가든 안 가든, 서울에서 이 짓 하면 가택침입으로 쇠고랑 찬다.”

    “근데 우짜노, 여기는 부산인데.”

    “부산은 대한민국 아니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그렇게 팍팍하게 살면 니 진짜 연탄불에 뒤진다.”

    반박하려는 태협을 연이 강제로 돌리고 밀었다.

    “알았다. 알았다. 내 아짐한테 말해가 니가 뒤지든 말든 내비두라 하께. 그럼 되제?”

    “넌 내가 뒤지길 원하는 눈치다?”

    “머라노, 여서는 이게 안부 인사고 일상인데 니가 못 받아드리니까 이카는 거지.”

    “서울,”

    고마해라 고마해. 태협이 연의 힘에 밀려 강제로 앞으로 나갔다. 살벌한 설전과 달리 태협의 입가에는 어느새 장난스러운 미소가 맴돌았다. 쪼그만 게 은근히 힘이 셌다. 그는 다리를 끄는 척 연에게 무게를 지탱했다. 머지않아 힘들어 낑낑대는 소리가 들리고 연은 손 대신 정수리를 대고 밀었다.

    비켜 달라고 하면 될걸. 자존심도 은근히 세다.

    “근데 니 정상적으로 쫌 가면 안 되나?”

    그러다 못 참겠는지 연이 한마디 한다. 태협은 모른 척 물었다.

    “뭐?”

    “니 80kg 넘제?”

    “78인데.”

    “그거나 그거나. 구청에서 김치랑 쌀 포대 이고 오는 것보다 더 힘들다.”

    연이 멈춰 서더니 아무 집 계단 위에 앉았다. 끄는 힘이 없어져 잠깐 휘청한 태협이 층계에 앉은 연을 내려다보았다. 딱 높이가 그 높이였다.

    이제 슬슬 펠라티오를 시켜 볼까. 그런 생각을 했다가 금방 지웠다.

    연은 연신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의외로 약한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야.”

    살짝 부르고 태협이 연의 앞에 앉았다. 연은 어이없다는 듯이 그의 등을 발로 밀었다.

    “아.”

    태협이 앞으로 엎어졌다. 미친, 조그맣게 욕을 읊조린 그는 고개를 돌려 연을 노려보았다.

    “쫌만, 기다리 봐라. 숨 좀, 돌리고, 밀어주면 된다이가.”

    눈치 없이 역정이다. 태협이 짜증 난다는 듯이 손을 털었다.

    “너 바보냐?”

    “니 계속 바보라고 할래?”

    “업히라고.”

    “뭐?” 연이 믿지 못해서 반문했다.

    “등에 업히라고. 업어 줄 테니까.”

    대답은 같았다. 사람 하나를 지고 산행이라니. 미친 짓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었다. 태협이 등을 내주는 동안 연의 낯빛은 시시각각 변했다. 의심하다 미안하다 계면쩍다 호기심 어리다 마침내 반색했다.

    “니가 내 업어 준다고? 문 일이고.”

    아니면 말고, 반쯤 일어선 태협의 어깨에 연이 다람쥐처럼 냉큼 매달렸다. 태협의 손이 엉덩이 밑을 받쳤다.

    “내 무겁제? 개안나?”

    “어.”

    한 번에 상반된 두 질문이 몰려왔다. 어느 것에 대답했는지 모호했지만, 두 사람 모두 지적을 달지는 않았다. 연은 좋을 대로 생각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고 태협은 연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다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복한 온도감이 밀려왔다. 사 준 오리털 패딩을 입어서인지, 평소보다 체온이 조금 높았다.

    그것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난 태협이 천천히 경사를 탔다.

    스무 걸음쯤 걸었을까.

    “니는 100kg 넘제?”

    태협은 연의 억양을 따라 하며 놀렸다.

    “아이그등.”

    연이 화답하듯 목을 감쌌던 손으로 태협의 뺨을 매섭게 문질렀다.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태협은 개의치 않았다.

    대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천천히 한 걸음 밟아 올랐다. 꾸준히 걷는데 기이했다. 사람의 온기와 무게감이 힘든 시간을 잊게 했다.

    연이 가벼워서일까, 좀처럼 힘들지가 않았다. 그때 그의 머리를 부산스럽게 꼬던 연이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억수로 편타.”

    “…….”

    “엄마 등맨키로.”

    가족이 있긴 했나 보다. 생각하는데 연이 금세 제 말을 정정했다.

    “아이다. 내 거짓말했다. 사실은, 엄마 등에 한 번도 안 업히 봤다.”

    “…….”

    “엄마 등에도 안 업혀 봤는데 따뜻한 걸 우째 아냐고. 안 글나? 내 진짜 바보 다 됐는갑다.”

    우울하게 중얼거리는 연에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태협이 그만 나불나불해라, 한마디 툭 던졌다. 잠시 조용하던 연이 태협의 가슴을 톡톡 두드렸다.

    “근데, 내 하나만 물어도 되나?”

    조용조용한 목소리에 태협도 한껏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뭐?”

    “협아, 니, 집에 언제 돌아갈 생각이야?”

    움직임도 멈출 만큼 깊은 파문이 일었다. 잊고 있었다. 자신은 돌아갈 사람이란 걸. 갑자기 기적이 사라지고 다리가 무거워진 기분이 들었다.

    “모리나?”

    “……어.”

    “그면, 니 돌아갈 때 꼭 말해 도라.”

    그리고 다리를 종종, 흔든다.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도 부른다. 태협은 가슴 한쪽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부탁 하나 더 해도 되나?”

    태협은 대답을 안 했으나 연은 속삭였다.

    “저번맨키로 불러 주면 안 되나?”

    “……뭐?”

    “왜 있다이가. 저번처럼, 연아 연아 불렀던 거. 듣기 억수로 좋아 가지고 또 듣고 싶다.”

    태협의 얼굴이 불에 타오르는 연탄처럼 변했다. 연탄을 들이마셨을 때 정신이 왔다 갔다 하면서 부른 걸 연은 기억하고 있었다.

    괜히 부끄러웠다.

    “싫어.”

    “글나? 알았다.”

    그러면서도 금방 포기하는 연의 말에 울컥했다. 너는 서울로 올라갈 거고 이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포기하겠다, 그런 생각이 뻔히 보여서였을까.

    태협이 허리를 곧추세웠다.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갈무리하고 싶었으나 끄는 발만 무겁게 만들었다. 태협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걸음을 묵묵히 옮겼다.

    그리고 길 끝에 파란 대문이 보였다.

    “이따 갈게, 내리도.”

    “오느라 죽는 줄 알았네.”

    태협이 멋없이 엄살을 피웠다. 연은 미소를 띤 채 고맙다, 한마디 했다. 멋쩍었다. 사실은 거짓말이었다.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내일도 업어 줄 수 있을 것 같고, 모레도 업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연은 이따 갈게, 한 마디 남기고 등을 돌려 들어갔다.

    ????????????

    울컥한 이유를 찾아야 했다. 진심으로, 태협은 제가 왜 울컥했는지가 궁금했다. 쏟아진 연의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깐 달걀처럼 매끈한 피부가 드러나고 울듯이 미간을 찌푸린 모습에 아래가 터질 듯이 부풀었다.

    “야.”

    움직임에 열중한 연은 대답이 없었다. 무시당해 화가 난 태협이 연의 골반을 잡고 박아 내린 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야, 대답 하라고.”

    하응, 감질난다는 얼굴을 한 연이 대답 대신 얇고 짧은 신음을 흘렸다. 태협이 품에 기대려는 연을 밀어냈다. 약간의 칭얼거림에 또, 부푼다.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는 것은 태협이 더 잘 알았다. 인내심이 떨어지기 전에 재빠르게 요구했다.

    “너 울어 봐.”

    연이 황당한 듯 눈을 굴렸다.

    “울으라고?”

    “어, 울어 보라고. 꼴릴 것 같으니까.”

    연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다가 거짓으로 우는 소리를 냈다.

    “흐, 흐엉, 흐엉.”

    “돌았냐.”

    태협이 우는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를 드러냈다. 비난조에 연은 억울한 듯 미간을 모았다.

    “여서 우찌 울라는 긴데?”

    “그냥 울어 보라고.”

    “갑자기 어떻게 우냐고. 슬픈 생각이라도 하까.”

    “어, 해 봐.”

    연은 머리를 굴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근데 그른 게 읎따. 울만큼 슬픈 일이.”

    세세하게 훑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덮어놓고 없다는 꼴이 괘씸했다.

    “그래, 동네 바보가 슬픈 일이 어딨겠어.”

    놀리는 말에 연은 골이 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태협의 힘에 곧 주저앉혀졌지만.

    어떻게 확인하지.

    태협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연의 골반을 잡고 슬슬 앞뒤로 슬슬 흔들었다.

    다시금 쾌락이 찾아오고 연은 태협에게 매달렸다. 울리는 건 포기했나 보다 생각하면서.

    그러나, 딱 절정 직전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을 매단 태협이 움직임을 멈췄다.

    “또 왜?”

    “너 못 가면 울잖아.”

    애석하게도 그는 끈질긴 사내였다. 태협은 그 이후 줄 듯 주지 않는 방식으로 연을 괴롭혀 댔다. 연은 괴로운지 자세를 꼬았다. 그 일이 반복되자 마침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의 말대로였다.

    “그렇지?”

    “몰라.”

    태협이 비열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난제를 해결한 듯이 시원했다. 역시, 울컥한 이유는 한 치의 예상도 빗나가지 않았다.

    그가 울컥한 이유는 연이 우는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였다. 그걸 몸이, 머리가 기억했고 흥분으로 이어졌음이 분명했다.

    “매일 울어라.”

    “정신 나간 소리 하고 있네. 치아라.”

    태협이 눈물을 훑으려 연의 뺨을 길게 핥아 올렸다. 연이 “드릅다, 왜 남의 얼굴을 핥노.” 한 마디 하며 눈총을 보냈다. 태협은 웃었다. 귀여웠다.

    그리고 다음은 아랫도리를 해소하기 위해 올려치는 데 박차를 가했다.

    넘어가는 모습 또한 귀여웠다.

    ????????????

    “오늘 할매 집에서 밥 먹는 거 알제? 할매 음식 짜도 티 내지 말고,”

    태협에게 업힌 연이 쫑알쫑알 주의사항을 늘어놓았다. 태협은 고개를 돌려 피했다. 어제 이야기할 때가 딱 좋았었다.

    오늘은 딱 어디에 버려두고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연이 태협의 가슴을 툭툭 때렸다.

    “알았제?”

    “알았다고.”

    오늘은 할매 집에서 밥을 먹기로 한, 세 번째 자리였다. 왔다 갔다 하고 또 밥까지 먹으려면 시간을 여간 잡아먹는 게 아니었다. 여러모로 짜증스러운 자리에 초대받은 태협은 애꿎은 연의 머리카락만 괴롭혔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연이 강행하는 통에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집에 다다르고, 태협은 제집 마루 위에 연을 올려두었다. 연은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할매가 부르면 고분고분 대답도 하고, 짜증 내지 말고. 니는 아가 말로 다 까묵거든? 말만 좀만 더 곱게 하면은 사람들이 다 좋아할 낀데. 우리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착하고…….”

    문을 벌컥 열었던 연이 다시 닫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열었다가 또 닫는다. 잔소리를 피해 멀찍이 떨어져 있던 태협이 다가왔다.

    “왜?”

    “아, 아이다! 밥 무러 가야지!”

    연이 눈에 띄게 당황한다. 수상히 여긴 태협이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에 매정하게 입술을 뒤틀었다.

    “착한 사람만 있다며.”

    방은 도둑이 든 듯 엉망이었다. 훔쳐 갈 거라고는 없을 테지만, 훔쳐 가기 위해 뒤진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옷가지가 엄청나게 널브러져 있었다. 태협이 전화를 들었다.

    “경찰서죠?”

    연이 놀란 듯 태협을 돌아보았다. 태협은 투철한 신고 정신이 있었다.

    “예, 그럼 당장 올라와 주십시오.”

    “니 뭐 하는 짓……. 진짜 했나?”

    “어.”

    전화를 끊은 태협은 곧장 다른 곳에 또 전화를 걸었다.

    “집에 도둑이 들어서요. 예. 옷가지랑 이불류 새것으로 들고. 네. 매트리스는 됐습니다.”

    두 번째 전화도 용건만 간단히 끊었다. 연의 하, 속에서 뭉친 숨을 풀어놓았다.

    “내는 니가 일이 커지는 걸 좋아하는지 한 개도 몰랐다.”

    신랄한 비꼼에도 태협은 얄궂게 어깨를 으쓱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남자들이 와서 이불을 싹 깔아 주고 갔다. 20여 분이 지나 경찰도 들이닥쳤다. 없어진 물건이 없냐 물어보고, 없다고 하니 그럼 순찰 주기를 확대하겠다는 말만 하고 갔다.

    한바탕 소동이 일자 주민들이 모였다가 헤쳤다. 둘만 남게 되자 태협은 달동네 사람들 사이에 범인이 있다, 호언장담했다. 연은 그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라니까. 우리 동네 사람들은 다들 착해 갖고 남의 것은 손 안 댄다.”

    “동막골 사람들이야?

    “동막골이 어딘데? 니 동막골에서 왔나? 서울에서 왔다매?”

    “그거까진 알 필요 없고. 그런 쪽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더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고 싶은 건 당연한 거라고.”

    “아이라니까!”

    연은 답답한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태협은 웃을 뿐 연의 말을 귓등도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디론가 고정된 태협의 눈은 놀릴 거리를 찾은 것처럼 빛이 났다.

    “그럼 저건 뭔데.”

    “머가?”

    연이 뒤를 돌았다. 그리고 참혹함에 입을 벌렸다.

    “자가 왜 저걸 입고 있노.”

    “그러게. 네 친구잖아. 가서 물어봐.”

    낯익은 인물이 낯선 옷을 입고 있었다. 본 대로 말하자면, 행복수우퍼의 손자 지훈이 태협의 옷을 입고 있었다.

    언젠가 지훈이 찜콩, 하고 침을 발랐던 그 옷이었다.

    행복수우퍼에 들어온 두 사람은, 태협의 집에서 나올 때와 표정이 완전히 상반되어 있었다.

    “팍팍 좀 퍼 무라! 입맛 떨어지구로, 드럽게 깨작깨작대네. 묵기 싫으면 나가라!”

    할매의 불호령에 연의 어깨가 들썩였다. 숟가락을 이용해 밥을 왕창 퍼 올려 새빨간 낙지젓을 올렸지만 영 입맛이 없고 입 안이 썼다. 평소 맛나게 먹던 짭조름한 찬들도 소금 씹듯 간신히 넘어간다.

    “야 보레이. 니도 머심아 앞이라고 내숭 부리나.”

    오늘따라 연의 태도가 소극적인 것이 못내 신경 쓰여 할매는 불평을 가장한 걱정을 터뜨렸다. 걸신들린 양 먹던 년이 제 남친 앞이라고 깨작질을 하는 것인지. 이유가 어찌 됐든, 할매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이 억울함에 소리를 빽 질렀다.

    “아이다! 내가 야 앞에서 내숭을 와 부리는데.”

    태협이 연을 향해 눈을 흘겼다.

    왜 부리긴.

    “글면 프뜩 처먹고 가든지, 와 깨작깨작 먹으면서 똥 매래운 개새끼맨키로 버티고 있냐고.”

    무엇 때문인지 이유를 알 것 같았던 태협은 소리 없이 웃었다. 연은 얄미운 나머지 태협을 향한 두 눈을 부라렸다. 그리고 잠시만 기다리 바라, 작게 말하고는 밥을 크게 퍼 입에 넣었다. 할매는 그제야 만족하고 식사를 이어 갔다.

    어느덧 공기의 바닥이 보였다. 마지막 밥풀 하나까지 긁어먹은 연이 마음을 다잡은 듯 눈을 초롱초롱하게 떴다.

    “할매.”

    “와.”

    태협은 그들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처음에 듣기 싫고 알아먹지도 못했던 사투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톡 쏘는 말투는 밑도 끝도 없이 따지는 것 같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사람들의 말투가 원래 이렇다는 것을.

    숟가락을 반상에 탁 올려놓은 연이 마음을 먹은 듯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지훈을 눈짓으로 가리키다가 입을 움찔거렸다.

    “지금 뭐 이상한 거 못 느끼겠나.”

    그러나 할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들어줄 성정이 아니었다. 딱, 쇠숟가락으로 한 대 맞고 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머라노. 처묵었으면 가라. 갠히 뻐팅기지 말고. 오늘은 과일 없다.”

    차진 소리에 태협도 덩달아 인상을 찌푸렸다.

    때릴 때가 어디에 있다고 그렇게 무식하게 때리는지. 태협이 본데없이 노려보자 할매가 비웃었다.

    “하이고야. 찔러 죽이겄다, 죽이겄어.”

    비아냥대는 말에 기분 나쁜 티를 내는 태협에게 연이 주의를 시키더니 결국, 이야기를 꺼냈다.

    “할매, 지후이 달라진 거 모리겠나?”

    “달라짔다고? 어데가? 보자 보자, 어. 쪼매 더 잘생기짔네.”

    할매는 연과 태협에게는 다르게 어화둥둥 지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연은 답답해 죽을 것처럼 가슴을 쳤다.

    “아이, 그게 아이라.”

    “뭐 달라진 게 있드나.”

    무가 달라짔드노? 할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훈을 보았다. 그리고 당최 알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연이 입을 벙긋거렸다.

    할매는 현재 시력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백내장 증세였다. 약을 먹고 있지만, 속도만 늦출 뿐 눈앞이 가뭇가뭇한 것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연이 단전에서 끌어 올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웃고 있는 태협에게 고개를 저었다. 연은 체념한 듯 혹은,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백기였다. 반대로 승기를 잡은 태협은 다 가진 표정으로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연이 설거지를 끝내고 태협과 함께 행복수우퍼를 나왔다. 나오자마자, 오만함을 단 채 빤히 보고 있는 태협에게 되레 큰소리쳤다.

    “아 아이가. 쪼매 실수도 할 수 있지.”

    아이니까 좀 봐달라는 말을 연은 반성 없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연의 태도에 기분이 나빠진 태협이 미간에 주름을 그렸다.

    “도둑질이 실수?”

    “쌔빈 게 아니라캐도. 고마 빌린 걸로 해 도라. 옷뿐이다이가.”

    연은 최선을 다해서 지훈이라는 아이를 방어했다. 태협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훔친 게 있을지 어떻게 알고,”

    “아이라! 지훈이가,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내 옷도 들고 가고 한다.”

    “네 옷을 훔쳐 간다고? 변태 또라이 새끼네, 당장 신고해서…….”

    태협이 다시 핸드폰을 들었다. 연은 놀라 그의 팔을 붙들었다.

    “와이카는데. 니 진짜. 아가 우찌 된 게 이래 정이 없노.”

    “변태 또라이 맞잖아. 여자 집에서 옷을 왜 들고 가냐고.”

    엎친 데 덮친 격이었는지 태협은 변태 새끼라며 공분했다. 연은 분을 참지 못하고 태협의 어깨를 퍽 치듯이 밀어냈다.

    “야! 지후이 나쁘게 말하지 마라!”

    솜방망이 같은 주먹이라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은 나빴다. 이 와중에 또 그놈 편이지. 태협이 이를 갈았다.

    “남의 집에서 옷을 왜 훔쳐 그러게.”

    “그렇다고 아한테 또라이 새끼가 뭐고 또라이 새끼가. 후이 나쁘게 말하지 마라. 후이도 놀리는 사람이 누군지, 싫어하고 공구는 사람이 누군지 다 안다고!”

    연은 ‘또라이 새끼’라는 말은 뻐끔거리기만 할 뿐 직접 소리를 내지 않았다. 부러 태협은 더 크게 말했다.

    “또라이를 또라이라고 하지.”

    “하지 말라 캤다! 니! 내 화낸다! 화낸다캤다!”

    “아니, 더한 짓도 할 거거든. 미친 변태 새끼들은 콩밥이라도 먹여야…….”

    태협이 핸드폰을 열고 번호를 입력했다. 연의 동공이 급격하게 떨렸다.

    “경찰서죠?”

    태협이 112를 입력할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전화가 연결되고 경찰서냐고 묻자 그제야 연은 놀라서 태협의 팔에 매달렸다.

    “아니, 내가 사과하께. 내가 사과하면 된다이가. 옷도 내가 찾아 주께. 그러니까 어? 하지 마라.”

    핸드폰을 들지 않은 팔에 매달려 연이 애원했다. 태협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붙박혔다. 기분 좋은 미소도 함께였다. 붙잡고 안겨 드는 감촉이 늘 그랬듯 보드랍다.

    그리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그렁그렁한 눈이, 꼴리게 한다. 아 시발, 여기서 박고 있는 사람들 눈알만 다 뽑고 싶었다.

    태협이 나쁜 생각을 하는 와중에 연은 태협을 설득하기 바빴다.

    “진짜 나쁜 아는 아이다. 아가 그렇게 보여도 똑똑하고 착하다. 내가 잘 말하께. 어?”

    전화는 이미 끊었지만, 못 본 듯했다. 태협은 장난으로 경찰서죠? 여기 행복수우퍼 앞인데요, 하며 놀려 댔다.

    태협이 한창 연을 놀리는 재미에 빠졌을 때, 행복수우퍼의 미닫이문이 쇳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문 안에서 태협의 옷을 입고 있는 지훈이 나왔다. 한 손에는 쭈쭈바를 든 채로.

    연과 태협이 엉겨 붙어 있는 모습을 본 지훈이 손에 들고 있던 쭈쭈바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왜 저러지, 태협이 생각한 순간 지훈은 흉측한 소리를 내더니 괴팍한 모습으로 달려왔다.

    “씨발년! 씨발년!”

    순식간의 일이었다. 연은 힘에 밀려 차고 거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태협이 손써 볼 틈도 없었다. 연을 밀어 버린 지훈은 머리끄댕이를 잡고 바닥에 찧었다. 연의 고통에 찬 고함이 밤하늘을 울렸다. 태협은 본능적으로 지훈의 손을 꺾고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무자비한 발길질을 가했다.

    소란에 할머니부터 마을 사람 전부가 모였다. 태협은 이성을 잃은 것처럼 눈을 부라렸다.

    “씨발, 좆변태 새끼가!”

    눈알이 뒤집힌다는 게 이런 거구나.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맹세코 그 순간이 처음이었다.

    “뭔 일인데, 와이라노! 야야! 아 죽갔다!”

    마을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태협을 말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도무지 화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밀어내도 황소처럼 달려들어 흠씬 두들겼다. 눈에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그 순간.

    “하지 마라, 진짜 하지 마라.”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등 뒤를 감싸 안는 온도가 익숙했다. 듣도 못한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던 태협이 힘없는 말림에 맥없이 끌려갔다.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뭔 일인데. 여이 남친이 지후이를 와 패노.”

    “아이라, 내가 저짝에서부터 봤그등? 지호가 갑자기 또 여이 머리카락 붙잡고 찧고.”

    “후이가 또? 와 그라노 후이야.”

    저마다의 얘기들로 바빴지만, 태협의 눈에는 헝클어진 머리의 연만 보였다. 태협이 연의 턱을 부여잡고 확인하듯 들어 올렸다.

    “괜찮아?”

    “어, 잠시만.”

    태협의 걱정 서린 물음에 짧게 대답한 연은 곧장 할매에게 달려갔다.

    “할매 괜찮나?”

    연이 놀라 주저앉은 할매를 일으켰다. 할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여, 연아.”

    “내는 괜찮다, 지후이가 또 놀랬는갑다.”

    “머, 머리는.”

    “괜찮대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태협은 화가 끓었다.

    저 등신.

    연이 할매를 부축할 때 태협은 성난 얼굴을 하고 연의 손목을 바투 잡고 끌었다.

    “야!”

    연이 붙들린 손을 빼내려 했지만 빼어지지 않았다. 태협이 가는 길이 홍해 갈라지듯 나누어졌다. 그는 연을 끌고 가는 내내 욕을 했다.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피습받은 장본인이 거기서 도대체 누구를 위로한단 말인가.

    “쫌! 노아 바라!”

    연이 태협의 손을 마구 때렸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기어코 잇자국이 팰 정도로 세게 물었다. 태협이 뿌리치듯 놓자 연의 몸이 기우뚱 흔들렸다.

    태협이 얼른 다가가 부축에 나섰지만, 연이 앙칼지게 치워 냈다.

    “그래도 아를 그렇게 때리면 우야는데! 갸가 몸은 중학생으로 보여도 정신은 다섯 살밖에 안 된 안데!”

    비난하고 가르치려 들었다. 작게 욕설을 읊은 태협이 이를 드러낸 채로 화를 냈다.

    “너 병신이냐?”

    “니 나쁘게 말하지 말라 켔제? 사람한테 병신이 뭔데!”

    오히려 구해 주고 걱정하는 사람을 비난한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아님 맞는 거 좋아해?”

    “맞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는데. 내는 세상에서 맞는 게 제일 무섭,”

    “그런데 시발 거기서 왜 처맞고 있냐고!”

    태협이 언성을 높였다. 들어 본 적 없는 크기에 기가 죽은 듯 연은 몸을 움츠렸다. 태협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대가리 땅에 찧어 죽을라고?”

    “안 죽는다. 주위에 사람도 많았고. 그리고, 후니 가가 좀 놀라서 그런 거지.”

    “아, 씨발. 끝까지 훈이, 훈이.”

    끝까지 감싸는 말에 태협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상황을 곱씹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분명히 자신은 잘못한 게 없었다.

    결론은 지훈이인지 나발인지를 연이 더 아껴서라고 나왔다.

    태협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쌓여 있던 연탄 덩어리를 발로 찼다. 그래도 화를 억누르지 못해 갈비뼈를 크게 팽창시켜서 숨을 들이켜고 내뱉는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어깨에서 심상찮음을 느낀 연이 꿀꺽 침을 삼켰다.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한참 씩씩대던 태협이 연을 돌려보았다. 호랑이와 눈이 마주친 기분이었다. 연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태협이 눈을 맞추려 했지만, 연은 필사적으로 피했다. 그게 살아남는 방법인 것처럼.

    태협이 떨리는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든 진정하려 노력했다. 지금껏 살면서 인생에서 이렇게 분노에 찼던 적이 있었던가.

    단연코 없었다. 심지어는 이곳 부산에 왔을 때조차 황당했을 뿐이었지, 이렇게 뇌가 끓고 뼈마디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화가 난 적은 없었다.

    겨우 화를 진정시킨 태협이 연의 턱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

    “맞는 거 좋아하면 말해.”

    “…….”

    “다음 날부터 기어 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박아 줄 테니까.”

    낮게 짓씹는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그냥 집에다 처넣고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정말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디 가서 병신 취급받는 짓도 그만하고 다니겠지.

    태협이 오들오들 떠는 연의 입술 위로 침을 하도 발라 부르튼 입술을 들이댔다. 뻣뻣하지만, 솜처럼 부드럽고 다정했다. 연은 어깨에 힘을 풀었다. 해칠 것 같지는 않았다.

    길었던 입맞춤은 태협이 끝냈다.

    “일단 가.”

    화를 심하게 냈다고 생각한 태협이 먼저 등을 돌렸다. 다섯 발자국쯤 걸었을까. 뒤가 허전했다. 여전히 연은 자리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고 있다.

    태협이 한숨을 내쉬었다.

    “화 안 낼 거니까.”

    “야.”

    연이 말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야, 하고 부른다. 태협은 어둠 속에서 뭐? 하고 물었다. 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내 좀 업어 도라.”

    “…….”

    “다리에 힘이 풀리따.”

    그 황당한 제안에 태협은 어이가 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 어이없게 만드는 데 선수였다.

    가로등 밑 연의 얼굴은 잘 보였다. 그래도 안심이 되고 진정이 된 듯 보였다. 존나 부려 먹네, 툴툴거리면서도 아픈 애한테 화를 낸 게 못내 미안했던 태협은 마지못한 척, 왔던 길을 돌아가 등을 내밀었다.

    등에 온도가 쌓였다. 다음으로는 연이 가진 독특한 향취가 밀려들었다. 경사의 끝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의 집을 발견했을 때 연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건 진짜 후이가 실수한 거 맞다.”

    “…….”

    “원래는 착한데, 가끔, 그렇다. 왜 글냐면,”

    “한마디만 더 해라.”

    “…….”

    “진짜 죽도록 박아 댈 거니까.”

    연이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죽도록 박아 대는 건 무서운 모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