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뽀얗다.
한마디로.
뽀얗고 보들보들한 몸이 감겨 오자 참지 못할 정도였다. 태협은 허리를 계속해서 흔들었다. 파과의 아픔은 잠시였는지, 연은 끙끙거리면서도 생각보다 잘 따라왔다.
태협은 며칠 참았던 것을 해소하려는 양, 그가 할 수 있을 만큼 밀어 넣었다. 가장 빠르게 가장 깊이. 그런데도 채워지지 않았다.
“하아, 씨발.”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걸출한 욕이 쏟아져 나왔다. 개처럼 기는 자세를 한 연의 상체를 들어 올렸다. 가벼운 몸은 별로 힘도 들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쑥 따라왔다.
여체는 만족스러웠다. 부들부들하던 몸이 땀에 젖어 달라붙는 게 느껴지자 그가 낮게 웃었다.
“……아으.”
그리고 신음을 참느라 가늘게 떨리는 목덜미에 태협은 입술을 묻었다. 은근히 데워진 온도가 마음에 들었다. 태협은 빠르게 치받았다.
구들을 통해 훈훈한 열기가 올라왔다. 땀이 식을 새를 주지 않았다.
흐응, 아래에서 처음과 다른 정욕에 휩싸인 신음이 들렸다.
“참지 마.”
“으응?”
“맥, 빠지니까. 참지 말고 소리 내라고.”
태협은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했고, 연은 그래도 되냐 물었다. 누가 듣지 않을까, 걱정 탓에 울대로 연신 삼키기만 하던 연의 신음이 입을 통해 빠져나왔다.
그 순간 태협은 뭉툭한 그것을 끝까지 집어 처넣었다.
“하읏! ……으응, 으으응……!”
신음은 가늘었다. 곧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리에 태협은 자제력을 잃고 거칠게 제 것을 욱여넣었다.
기어가려는 연의 허리를 바짝 붙잡고 태협은 더 세게, 더 깊숙이 저를 각인시켰다. 쑤석대는 움직임은 몇 번이고 계속됐다. 절정 끝에 매달린 여자는 버티려는 듯이 몸을 떨었다. 몸이 엉겼다. 태협은 겨우 붙들려 유지한 여체의 몸에서 뱀처럼 빠져나왔다.
지주대 같은 태협이 빠져나가자 연은 금방 쓰러졌다.
만족스럽게 웃은 그가 제 것을 싸고 있던 콘돔을 벗겨 냈다. 그리고 한 번의 사정으로 작아진 페니스를 훑었다. 손바닥에 정액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음경이 힘을 받아 머리를 세웠지만, 더 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 정도가 적당했다. 아니, 한 번이면 족했다. 콘돔을 아무 데나 버린 태협은 긴 다리로 침대를 벗어났다.
욕실로 가 몸에 대충 물을 끼얹고 수건으로 닦았다. 바닥은 후끈하다 느낄 정도로 따뜻했다.
연탄이라는 게 따뜻해지긴 하는구나.
건너편 침대에는 연이 부화 전의 병아리처럼 몸을 말고 누워 있었다.
태협이 연에게 다가갔다. 그러던 중에 발에 진흙 같은 뭔가가 밟혔다. 불만스럽게 내려다보니, 연이 들고 왔던 떡이 밟혀서 뭉개져 있었다.
에이씨, 방금 씻었는데.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걸레로 닦아 내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거 내 옷인데.”
걸레인 줄 알았더니 지 옷이란다.
“오다 하나 사 줄게. 그거 얼마 한다고. 더 비싼 거로 사 줄게.”
태협이 대답하자 연은 됐다, 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붉은 얼굴은 약이라도 한 것처럼 몽롱했다. 태협은 다가가 침대에 앉았다. 피부 결이 유난히 좋았다. 보들보들하면서 손에 착 감긴다. 태협이 연의 가는 허벅지와 둔부를 길게 쓰다듬었다. 손가락을 가랑이 사이에 넣으니 움찔거린다.
“흐응.”
중지 끝에 축축함이 느껴지자 또 박고 싶었다. 이미 부풀어 있던 욕망의 상징은 고통스러운 양 몸을 꺼떡거렸다. 누워서 그 장면을 목격한 연은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부끄럽냐?”
“아이다.”
아니기는, 발그레한 게 수치심이 치덕치덕 붙어 있었다. 태협이 손을 올려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정점을 희롱했다.
연은 반응할 여력도 없이 매우 지쳐 보였다. 태협은 거리낌 없이 손을 치우고 연의 옆에 누웠다. 연은 조금 거리를 벌렸다.
“뜨뜻하게 좋네.”
“…….”
“내 쪼메만 누워 있다 가께.”
작게 소곤대는 연에게 태협은 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가든가 말든가. 옷만 사 주면 될 일이었다.
????????????
다음 날 등굣길엔 연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렇게 박혔으니 힘들 수밖에. 우월감에 휩싸인 미소를 지으며 가파른 길을 내려왔다.
그리고 오늘은, 손을 뺐다.
하교하고 돌아오는 길에 태협의 손에 들린 건 편의점에서 산 먹을 것들과 콘돔 두 박스였다. 이 촌것들은 학생이 콘돔 사는 것도 처음 보는지 부담스러울 만치 빤히 쳐다봤다.
오늘도 같은 자리에 내린 태협이 산을 탔다. 어제보다 오늘 더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아는 길이면 가깝게 느껴져야 정상이 아닌가.
태협이 돌부리를 툭 찼다. 그때,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귓속에 박혔다. 걸음이 잠시나마 느려졌다.
“지랄도 그런 지랄이 읎었단다.”
“며칠 만에 집에 와서, 눈 뒤집힌 거 밨나? 와, 내는 무스버 가지고.”
“그 쪼끄만 딸래미가 돈이 어뎄노. 고사리 손으로 겨우 밤 껍질 까가 입에 풀칠하는데. 그른데 와 가지고 돈 없다고, 멱살 잡고 내동댕이치고. 아는 아무것도 못 하고 벌벌 떨고. 밑에 정남이 아부지 없었으면 송장 칠 뻔했다인기라.”
“에휴, 그 착한 아가 어쩌다 그런 쌍놈한테 걸려 가꼬. 하늘도 무심타. 그냥 콱, 도망가 삐지 와 그 있나.”
“말이라고. 혼자 있어도 그것보다는 잘 살겠네.”
누구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모르겠으나 태협은 비웃었다. 여기에 착한 인간이 어딨겠는가. 그들은 전생에 죄를 지어서 이런 곳에 태어났을 것이다. 어쩌면 현생에 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
태협은 다분히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막 행복수우퍼를 지나갈 때였다.
“오늘은 쪼매 늦었네?”
연이 서 있었다. 어제와 다른 상의, 같은 하의를 입은 연은 오늘도 밝아 보였다. 태협은 가파른 경사 길에 있는 연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세상 저렇게 고민 없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따라 연의 이미지가 우스웠다. 영화나 개그 프로그램에서 우스꽝스럽게 망가지는 동네 바보처럼 느껴졌다.
저 애는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곳에 태어났을까.
딱 맞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얀 얼굴 그리고 묘하게 붉게 부푼 눈 아래 살에 끌린 듯 태협은 성큼성큼 걸었다.
걸으면서 든 생각은 이랬다.
그럼 동네 바보랑 몸을 섞는 저는 뭐지?
이번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태협은 연의 손목을 붙잡고 끌었다.
“어데 가노!”
“우리 집.”
단숨에 태협의 집에 도착했다. 연은 그의 걸음을 쫓는 데 힘을 다 썼는지 거친 숨 사이로 겨우 말을 꺼냈다.
“내, 밥 무그야, 하는데.”
이유도 궁색하고 치졸하다. 연에게 사 온 것을 보여 주었다. 단 과자와 도시락 음식이었다. 태협에게는 줘도 안 먹을 쓰레기였지만, 연의 눈에는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나 보다. 그녀는 털실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봉지 안에 손을 넣고 굴렸다.
우와, 소리를 낸 연을 태협은 거짓된 미소로 현혹했다.
“이거 먹게 해 줄게.”
거지 적선하듯 말하는 태도에 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분 나쁜지 연은 봉지를 닫았다.
“댔다. 니 다 무라. 내는 할매랑 먹을란다.”
다른 이유를 대며 단호히 거부한다. 돌아서려는 걸 태협이 잡아당겼다. 끌려온 연은 그의 허벅지 위로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무릎까지 오는 치마가 벌어지고 연이 놀란 듯 추슬러 내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더 빨랐다. 하얀 허벅지를 녹일 듯 주물거렸다.
“할매가 내 기다린다.”
“한 번만.”
“어?”
“한 번만 하고 가라고.”
은근히 애원하는 말투였다. 맘이 여린 여자는 또 흔들렸는지 어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어제, 그거?”
“어.”
“이 시간에?”
어스름하니 푸른빛이 도는 이른 저녁이었다. 연의 얼굴에는 걱정이 새겨져 있었다.
“진짜 다 들으면 우짜지? 요 바로 밑에 정남이네 가족 다 모여 있는데.”
“소리 안 나게 하면 돼.”
“그게 가능하나?”
네가 안 내면.
태협은 자신 없어 하는 연의 말을 일축하기 위해 입술을 섞었다 뗐다. 연의 얼굴이 금세 노을빛에 물들었다.
연이 곰곰이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다 그의 앞섶까지 바짝 당겨 안은 연은 귓가에 대고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그러면, 내 할매한테 말하고 오기만 하께. 쪼메만 기다리고 있어라.”
20분 후에 연이 돌아왔다.
그 이후 곧장이었다.
“한 번만이라며.”
연은 끙끙 앓는 소리로 지적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이쪽이 맛있네. 생각보다.”
태협이 솔직히 말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어제 만족하지 못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어제 만족하지 못해서인지 오늘 한 번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철썩철썩, 몸을 부대끼는 감각은 어제보다 오늘 더욱 생생했다. 어제는 조금 빡빡하더니, 오늘은 그래도 물도 제법 나오고 감도도 더 좋았다. 주름 하나하나가 저를 놓지 않으려 앙알대는 기분에 생각이 정지될 지경이었다.
버려진 콘돔 개수가 벌써 세 개였다. 그리고 연이 넘어갈 것 같아 태협은 잠시 쉬었다.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숨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페니스에 재빨리 콘돔을 씌웠다.
태협은 급한 마음에 안으로 곧장 쑤셔 넣으려 했지만, 저항감이 느껴졌다. 조금 전과 다르게 빡빡했다.
“아, 내 아프다.”
태협이 요령 없이 입구에 끝을 맞추고 넣으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연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진짜로 아프다, 고.”
에이씨, 태협이 이를 드러내고는 연의 가랑이 사이에 앉았다.
“야! 뭐 하노!”
연이 당황해서 소리를 높였다.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연의 다리를 활짝 벌리고는 입술을 들이밀었다. 생경한 감각에 연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헉, 숨을 들이마셨다.
“야아! ……아, 으으, 야, 그만! 으읍.”
그리고 소리가 너무 컸다고 생각했는지 제 입을 가로막았다.
그사이에 태협은 정점을 핥고 물었다. 입구를 적시는 게 처음 목적이었으나 아래에서 느껴지는 맛에 취해 태협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빨면 빨수록 혀에 스미는 맛은, 별거 없는 것 같기도 하면서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미끈한 애액이 나오고 태협이 다시 핥았다. 혀를 구멍 앞에서 깔짝이다가 손가락을 넣어 휘저었다.
“흐읍!”
안쪽에서 떨리는 감각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위에서는 신음 소리가 쏟아진다. 하프 연주처럼 부드럽고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다른 여자애들이 내는 건 꽹과리 같았다. 그런데 연이 내는, 은근히 숨죽인 그 목소리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울부짖게 만들고 싶었다.
태협이 입술로 정점을 물었다. 동시에 부풀어 있던 공알이 자극을 받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처럼 부르르 떨리다가 겨우 움직임을 멈추었다.
태협이 입을 떼고 제 것을 집어넣었다. 야물게 조여 물던 내벽은 힘이 빠져 드나들기가 훨씬 수월했다.
태협은 대중없이 찔러 대며 제 흥분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여체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침대가 튼튼하고 이불은 폭신해서 다행이었다. 바닥에서 했으면 약한 몸에 멍 자국이 제대로 찍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시발 존나 좋네.”
“으응!……아아.”
태협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 오르가슴에 전신을 덜덜 떨 때, 제 것을 풀어놓았다.
하아, 태협은 바로 빠져나오지 않고 연의 가슴 위에 얼굴을 얹었다. 방의 열기에 비하여 서늘한 몸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심심할 일은 없겠다. 그런 확신이 든 순간이었다.
섹스는 새벽 내내 이어졌다.
어제 쪼메 있겠다던 연은 정말 조금만 있다가 새벽녘에 빠져나갔었다. 그런데 오늘은 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옆에 서늘한 피부 결이 만져졌다. 습관적으로 일찍 일어난 태협은 아래 눈이 부푼 연을 깨우려다가 탐탁지 못한 표정을 하고 일어섰다.
학교 늦으면 지 탓이지.
태협이 바닥에서 내려왔다. 물컹이는 뭔가가 밟혔다. 태협이 벗긴 연의 옷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옷을 사 준다고 했었다. 그가 검지 손톱으로 미간을 긁었다.
약속을 어긴 게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사 줘야겠다. 그러니 옷은, 사과의 의미였다.
????????????
오늘은 조금 늦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제 먹었던 컵라면 등의 용기들이 다 정리되어 있었다. 여자가 정리해서 나간 모양이었다.
태협의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간편식과 브랜드 매장에서 산 옷과 속옷이 들려 있었다. 아무래도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었다. 이걸 입히면 보기에도 좋지 않을까.
태협이 담벼락에 기댔다. 이쯤이면 나올 때가 됐을 텐데.
예상이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연이 얇은 걸레짝 같은 얇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나왔다. 저녁 추위에 턱이 떨리는지 뱀이 낼 법한 소리를 내면서 나오다가 그를 보고 걸음을 멈춰 섰다. 두 사람이 마주치고 연이 눈을 살살 휘어 접었다.
꼴에,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도 잘 안다.
“오늘은 쫌 늦었네? 밨나? 연탄 또 꺼트린 것 같아서 불 피워 났는데, 집은 뜨시드나?”
연의 모든 질문에 태협은 가타부타 대답 없이 검지를 까딱였다. 이곳으로 오라는 명령이었다. 여자는 두말없이 수건을 얇은 줄에 매달아 놓고 대문을 나섰다. 태협은 느긋하게 움직여 방으로 들어갔다. 옷을 꺼내 보니 새것처럼 보여 신경이 쓰였다. 태협이 얼른 옷을 헤집고는 구제시장의 옷들처럼 쌓아 놓았다.
이어 연이 들어왔다.
“뜨시네. 좋네.”
언 발을 녹이듯 비비적댄 연은 방에 들어와 한참 동안 몸을 떨었다. 찬물에 목욕을 했는지 가슴까지 오는 긴 생머리 끝이 살짝 얼어 있었다. 태협이 딱딱한 머리끝을 주시했다.
오늘따라 대답이 없는 태협에게 연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옷을 발견했다. 동그랗고 순진한 눈은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거 뭔데? 니 옷 샀나?”
니거 산 기가? 물어보는 연을 태협은 대놓고 비웃었다.
여자들은 꼭 저러더라, 자기 거인 줄 알면서 물어보는 거.
꼴에 여자라고. 그러면서 태협은 놀리듯 입가를 비틀었다.
“어.”
“진짜가?”
“어.”
“니 끼가?”
“어.”
“그카면, 함 입어 바라!”
순진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구했다. 태협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입기에는 조금 작은 사이즈들이었다. 심지어 치마도 사 왔다. 조금 눈을 굴리던 태협이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는 연에게 이실직고했다.
“장난이야. 니 거.”
“와, 니 장난도 칠 줄 아나? 근데 재미 한 개도 없는 거 알제?”
“……말했잖아. 옷 사 준다고.”
태협이 동문서답하고 옷을 연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은제? 묻는 연을 보고 있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나만 신경 썼다는 사실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진짜 내 꺼가? 물은 연에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확인을 받았으니 냉큼 받아 들고 줏대 없이 팔다리를 끼워 넣을 차례였다. 예상외로 연은 고개를 저었다. 태협은 속이 타서 인상을 썼다.
“뭐 하냐, 안 입고.”
“댔다. 내는 그런 거 안 어울린다.”
태협이 숨을 삭혔다.
그래 봤자, 트레이닝복이었다. 연은 어렸을 적 산 것처럼 보이는 치마 아니면 면바지를 입고 다녔다. 심지어 겨울인데도.
그것보다 이게 훨씬 어울릴 텐데,
여러 번 권해 봤지만, 연은 기어코 받지 않겠다 했다. 태협은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여성복 매장에 들어가서 골랐던 시간을 떠올렸다. 나름 골라서 샀다. 이런 게 어울릴 것 같아서. 사 준 사람의 정성이란 게 있는데 한사코 거부만 하니 화가 났다.
“입으라고.”
“니 낀데 내가 우째 입냐고.”
“니 거라고.”
“아이다, 내는 안 받을라니까 냅삐리라. 그리고 그거 비싼 거다이가. 내한테는 안 어울,”
“아, 진짜 궁상맞게! 시발 그냥 입으라고!”
태협이 버럭 화를 냈다. 궁상맞게 구는 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혹은 제 정성을 몰라준다고 화가 난 것은 가린 채로.
이유가 어찌 됐든, 태협은 화가 났으니 소리를 질렀다. 표정이 험상궂었다.
연은 놀란 듯이 몸을 움츠렸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태협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게 거절당했다는 수치심에 이대로 옷을 활활 타오르는 연탄에 던져 버리고 싶은 얼굴을 했다.
그러나 자제력을 발휘하여 주먹을 꽉 쥐었다. 말했다시피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었다. 조금 꾸민 모습을 보고 나면, 남은 찜찜함이 없어질 것이다.
“입어.”
태협이 화를 삭이고 연에게 옷을 건넸다. 연은 주춤주춤 다가와서 품에 안았다. 부자연스러운 미소였지만, 그래도 보들보들한 옷의 촉감이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고맙다. 내 이런 건 처음 받아 바서, 쑥쓰릅네.”
수줍은 표정을 짓다가 바닥에 널브러져 앉고는 하나씩 펼쳐 본다. 금세 태협은 마음이 풀려 미간을 곱게 폈다.
옷을 뒤져 보던 연이 화들짝 놀라서 그를 보았다. 그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게 뭐꼬. 남사시릅다! 이건 또 얼라들 옷 아이가? 뭐 이리 작노!”
그가 특별히 산 레이스 속옷과 몸에 쫙 달라붙는 원피스였다.
“오늘 입어.”
“치아라. 내 못 입는다!”
반항하던 연은 태협의 눈치를 보았다. 그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내 이런 거 한 번도 입어 본 적 없어 가꼬.”
당장 입으라고, 그는 강압적인 말투로 을러댔다. 잠시 울상을 짓던 연은 남우세스럽다는 듯이 원피스를 보며 인상을 지었다.
몸을 섞을 때보다 더 내외한다.
이런 옷을 처음 본 것처럼 굴고 있었다. 어째서? 밖에만 나가더라도 이런 옷을 입은 사람은 천지였고, 티브이만 보더라도 심심찮게 나왔다.
주변 상황을 생각하다 보니 생각이 다른 곳으로 빠졌다. 태협이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여자에게는 가족이 없는 걸까.
연은 늘 혼자 있었다.
그때 사부작사부작, 쥐새끼가 움직이는 것처럼 작은 움직임을 느꼈다. 한사코 거부할 때는 언제고 연은 기다린 듯이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히고 있었다.
갑작스레 드러난 나체에 태협의 눈이 만족스럽게 휘어 접혔다.
정교하게 깎은 듯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허리선에 아랫배가 뭉쳤다. 전신이 불긋불긋했다. 태협이 남긴 자국과 홍조가 보기 좋게 어우러졌다. 태협은 편안히 벽에 등을 기대어 감상했다.
멋없는 스포츠 브래지어와 흰색 면 팬티를 벗기자 목울대가 떨렸다. 스트립쇼를 본 적이 있었다. 벗고 뭐 하는 짓인지, 왜 저런 것에 열광하는지, 태협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심장이 격렬하게 떨리는 게 아랫도리가 아플 정도였다.
뒤이어 가슴과 음부가 레이스 천 쪼가리에 의해 감춰졌다. 그 순간, 태협은 연에게 몸을 가릴 것을 선물한 게 제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태협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연은 검정 원피스까지 모두 입은 상태였다. 허리와 가슴 부분이 남아 붕 떴지만, 영 볼품없진 않았다.
여기까지만 감상하기로 하고 태협은 연의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차가운 밤공기의 향을 담고 있는 머리칼 사이에서 숨을 들이마셨다. 이미 바짝 선 음경이 연의 허리와 등 사이를 지분댔고, 가슴으로 올라온 손이 옷감 위에서 부지런히도 움직였다.
“잘 어울리네.”
“그래. 고맙다. 잘 입긴 해 보께.”
어정쩡한 말을 끝으로, 연이 간신히 입은 옷을 태협이 끌어 올렸다. 치마는 허리 위까지 올라가고 검은색의 레이스 팬티가 드러났다. 연을 침대 위로 민 태협이 팬티를 젖혔다. 다리 사이는 바짝 말라 있었다.
“하, 시발 나 오기 전에 좀 만지고 있기라도 해라.”
“머라노.”
“오자마자 들어가게. 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연은 물이 부족했다. 당장이라도 처넣고 허리를 흔들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제대로 한 발 쏘지도 못할 것이었다. 젤이라도 사 왔어야 했나. 질구에 어제처럼 입을 들이댄 태협은 조급하고 게걸스럽게 핥았다.
“아으응! 흐읍…….”
태협의 어깨에 종아리를 올린 연은 입을 손으로 막고 바들바들 떨었다. 조소를 흘린 태협은 연이 말한 부위를 더 난폭하게 핥았다.
그럴수록 감싸 오는 서늘함이 좋았다. 연의 몸은 내내 차가웠다. 심지어 관계를 가질 때에도. 그래서일까, 질리지 않고 힘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연의 아래가 적당히 젖어 들었다. 자신의 욕구 충전도 잊고 말다니. 태협이 바지를 벗어 내리자 잔 근육으로 감긴 몸에 불뚝한 페니스가 튀어 올랐다.
연은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눈으로 그의 물건을 핥았다.
“대놓고 밝히네.”
“니만 하겠나.”
반박하는 연의 얼굴은 발그레했다. 그것도 보기 좋게. 태협은 쇄골까지 붉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옷을 입히지 말걸, 다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 녀석의 해소가 먼저였다.
“하아…….”
뭉툭한 끝이 입구에 닿았다. 오늘로 세 번째 밤. 횟수로는 그것 이상으로 드나들었지만, 여전히 연은 순진하게 눈을 동그랗게 떴고, 밀려 들어오는 쾌락을 버티지 못하고 허리를 휘었다.
“아아! ……으응.”
태협이 있는 힘껏 올려쳤다. 뒤틀리려는 골반을 단단히 부여잡고 올라가는 타이밍에 맞춰 연을 내렸다. 살이 세차게 부딪혔다. 질 안에서 조여 오는 감각에 머리가 아찔해지고 눈앞이 아득해진다. 어쩐지 사정을 빨리할 것 같았다.
그러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태협은 최대한 버텼다. 버티고 버티다가, 그 내부가 바스러지듯 허물어졌을 때 제 것을 풀어놓았다.
후욱, 폐가 뚫린 것처럼 바람이 빠져나간다. 몸에 경련이 일 만큼 관계는 만족스러웠다. 한 번도 이런 마음이 든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태협은 그녀의 정점을 느리게 문지르면서 빠르게 페니스를 빼냈다. 붙잡듯 조이는 쾌감이 뇌를 주무르는 것 같았다.
입구까지 뺀 태협이 다시 콘돔을 씌웠다. 그리고 몸을 움츠린 연에게 경고했다.
“빼지 말고, 다리 벌려.”
오늘도, 태협이 만족할 때까지였다.
????????????
학교에 와서는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여기 애들은 한참 수준이 떨어졌다. 학생만 떨어질까.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걸 수업이라고 하고 있는지. 선생의 영어 발음은 거슬리다 못해 후지기까지 했다.
겨우 7교시를 버텼을 때, 그에게도 자유가 찾아왔다.
하교 시간이었다. 태협은 지나가다 말고 반에서 꽤 촐랑대는, 스판덱스 재질의 옷을 입은 남자애를 말로 붙잡았다.
“야.”
남자애는 표정이 구겨졌다가 상대가 태협인 것을 알아보고 표정을 바로 풀었다.
우습다고 생각한 태협이 서론도 없이 물었다.
“여기 근처에 여고가 어디 있냐.”
“여고는 왜……. 아, 여기는 여고 없어.”
학교 안에는 비교적 사투리가 덜 심했다. 달동네가 심한 편인 걸까. 아니면 그 여자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태협이 비슷한 질문을 다시 던졌다.
“그럼 다른 학교는. 공학이라든지.”
“아, 공립은 위로 5분 걸어가면 있고, 상고 하나 있긴 한데. 왜? 싸우러 가나? 여기 평정할라고?”
“뭔 상관이야. 미친놈아.”
지나치게 궁금해하는 얼굴이었다. 마치 상고 짱과 싸우러 가냐는 듯 기대하는 얼굴. 그게 기분이 나빠 태협은 대뜸 욕설을 내뱉었다.
평정하고 말고가 없었다. 구태여 그런 걸 하지 않아도 다 가질 사람이란 걸 태협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태협은 벙 찐 남자애를 지나쳐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차에 올라타 기사에게 근처 상고로 찾아가라고 했다. 그 여자가 인문계에 다닐 것 같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그리고 내려서는 그 자리에서 죽치고 기다렸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태협의 눈이 바빴다. 연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에는 후문에서 기다렸다. 상고의 여학생들이 태협을 동물원의 공작 보듯 쳐다보고 몇몇은 번호를 물어봤다. 그는 꺼지라고 위협하고는 또다시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려도 역시 연은 나오지 않았다.
……설마 인문계인가.
아니면 스무 살이 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기엔 다소 어려 보였는데.
결국 태협은 소득 없는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경사를 타는데 반대편에서 연이 추운지 손을 비비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늘 입고 다니는 옷을 입고 있었다. 짧게 잘린 면 트레이닝복 하의, 낡아서 헤질 것 같은 상의.
말 더럽게 안 듣지. 순간 화가 올랐다.
“왔나? 늦게 왔네. 내는 할매랑 밥 뭇는데, 니는 뭇나?”
화도 나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학교는 어디냐 언제 마치냐, 나이는 얼마냐, 그런 것 따위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연이 먼저 대홧거리를 채 갔다. 태협은 짜증이 난다는 얼굴로 연을 지나쳤다.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도 안 들린다. 더 짜증 났다.
태협이 자존심을 버리고 뒤를 돌았다. 눈이 마주치자 연은 사르르 웃었다. 허물어지려는 입가를 굳게 다잡고 태협은 턱짓으로 제집을 가리켰다.
이번엔 다행히, 연이 뛰어왔다.
풀지 못한 화 덩어리는, 기어코 밤에 터졌다.
낮게 욕설을 내뱉은 태협은 연의 가는 목을 한 손으로 쥐었다. 뒷덜미를 물린 사슴처럼 아찔한 모습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복수하듯이 아프게 물었다.
“아아! ……머심아야! 진짜, 아프다, 흐응.”
연의 몸이 격렬하게 튀어 올랐지만, 태협의 팔과 다리에 갇힌 채 빠져나갈 수 없었다. 태협은 손톱으로 꽃잎 사이에 가려져 있던 공알을 아프게 긁고 질구에 손가락 두어 개만 깔짝깔짝 넣고는 연을 괴롭혔다. 연은 괴로운 듯 몸을 뒤틀었다.
“아, 쫌……. 하읏…….”
갈 듯 말 듯, 가게 하지 않는다. 정점에 올랐을 때 쑥 빼내서 오히려 허무감만 들 것이다. 그럴 때마다 연은 둔부를 밀어 그에게 바짝 붙어 왔고 태협은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네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다른 여자애들이라면 엉겨 붙는 게 짜증 나 밀어 버렸을 테지만. 아니, 넣고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만 농락하고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이곳에서 무료함을 달래 줄 사람은 이 애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분풀이를 했다. 추삽질이 순간순간 끊겼을 때, 연은 태협의 팔을 손톱자국이 나도록 세게 잡았다.
“아.”
아파서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린 태협이 어이없다는 듯 평소보다 눈을 크게 떴다. 연이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니 내한테 화난 거 있나? 와 이래 삐딱한데?”
연의 얼굴엔 조바심이 들어차 있었다. 상대의 행동이 삐딱한데 이유는 모르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태협이 부어 버린 정점을 약하게 쓰다듬었다.
“없어.”
“근데 와 계속,”
“계속 뭐?”
“와 계속 그카냐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연의 얼굴이 달아오른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무안하거나 부끄러우면 고개를 숙인다. 안 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연의 단순한 행동 패턴을 태협은 금세 파악했다.
“뭘?”
“모르나.”
“모르는데?”
“그럼 댔다. 비키라. 내도 짜증, 아 쫌!”
연은 태협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렸다. 그러나 몸이 45도쯤 뒤로 넘어가 그에게 기대어 있어서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너 몇 살이냐?”
이 와중에 왜 나이가 그렇게 궁금한지. 연은 눈에 쌍심지를 켰다.
“머하러 알라고 그라는데. 치아라.”
왜 그런 말을 하느냐 묻는 말에 적개심이 담겨 있었다. 태협이 답을 찾으려는 듯 입 속을 헤집었다. 연이 숨구멍이 막히자 헐떡였다. 겨우 입을 떼고 한마디 했다.
“몰라, 모린다!”
나이를 모르는 게 말이 되나. 태협의 호적상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심장 수술 탓에 학교를 한 학년 늦게 들어간 탓이었다.
이렇듯 한 해가 늦고 빨라질 수 있으나 모두가 평등하게 가진 게 나이였다.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그렇지.
“말하라고.”
태협이 두 손을 가슴 위에 얹고 쥐어짰다. 정점에 손톱을 넣고 긁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괴롭혔다.
연은 괴로워 몸을 떨었다.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둔부가 그의 중심을 거세게 비볐다. 무게를 실어 비비는 감각에 태협은 그만 자제를 못 하고 연의 하얀 허벅지 위에 백탁액을 흩뿌렸다. 부풀어 올랐던 것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연은 놀란 듯 몸을 멈췄다.
연이 뒤를 돌았다. 수치스러움에 발개진 태협의 얼굴이 보였다.
씨발. 낮게 읊조린 태협은 연의 무게감도 단숨에 이기고 일어나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제 손으로 몇 번 흔들고 부푼 그것에 콘돔을 씌우더니 세차게 들어갔다.
“아읍……!”
뻑뻑하여 잘 들어가지 않았다. 씨발, 또 젤을 잊어버렸다. 태협은 후회하면서도 빼지 않았다. 오히려 속력을 높였다. 다행히 하는 동안에 샘이 촉촉이 젖어 들어, 이후로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응응……. 흐우, 흐읍.”
연은 입에 이불을 물었다. 윽윽,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신음했다. 태협은 막힌 길을 뚫어 주듯이 연의 턱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한 손을 연의 입 안에 넣고 혀를 자극했다.
위와 아래 모두 자극받은 그녀는 계속해서 신음을 토해 냈다. 연의 신음이 격앙될 때마다 그의 움직임도 더 거세져만 갔다. 아랫배가 뭉근하고 겨우 지탱한 팔이 무너지자 마침내 담금질이 멈추었다.
태협은 그가 넣을 수 있는 가장 깊숙한 곳에 선단을 처넣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아, 미친.”
쾌락에 돌아 버릴 것 같았다. 한 번 싸고 곧바로였으나 무시무시한 쾌락은 가시지 않는다. 죽지 않아 저조차 당황스러울 판이었다.
나이고 뭐고. 태협은 욕을 난잡하게 지껄였다. 몸에서 뽑아낸 콘돔을 아무 데나 버렸다. 제대로 묶지 않고 버려져 바닥에는 흰 정액이 아무렇게나 흘러내렸다.
태협이 앞으로 쏟아진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자 시야가 트였다. 문득 연의 허리가 생생히 다가왔다.
한 꺼풀 화를 가라앉힌 태협이 연의 연한 가죽을 쓰다듬었다. 심지어 시원하다. 다른 애들은 땀이 나서 진득진득한 게 기분이 나쁘던데.
“야, 내일부터 나랑 먹어.”
“뭐슬? 밥을?”
“그럼 뭐 먹냐, 니 보지나 먹을까.”
“아, 상스릅다. 상스러버.”
연이 태협의 등허리를 내리쳤다. 음경의 뿌리가 바짝 섰다. 미친 머심아. 중얼거린 연은 일부러 무시하고 다른 것을 물었다.
“근데 니 그것 때문에 화났나.”
연이 태협을 노려보았다.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태협은 연의 고개를 돌리고 귓가에 목소리를 박아 넣었다.
“아니.”
“아니면 와 화난 긴데? 말을 해라.”
“너 때문에.”
답도 없다는 힐난에도 태협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여체를 쓰다듬고 왜 따뜻해지지 않는 걸까, 살이 좀 더 찌면 더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다음 날, 그래도 빨리 재웠기 때문인지 연은 아침에 잠에서 깨 있었다. 옆자리에 이미 깨어 있던 연은 태협이 눈을 뜨자마자 곱게 웃었다.
“인났나?”
태협은 자는 모습을 보였다는 부끄러움에 첫마디부터 틱틱거렸다.
“뭐야.”
“우야면 이렇게 생깄는데? 서울 머심아들은 다 이렇나?”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이 유난히 생생해 태협은 심장에 누군가 두드리는 듯한 묘한 기분을 받았다.
대꾸할 말이 없다. 그는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켜고 시선을 피했다.
“아침이다. 인나라.”
연은 쳐다본 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태평했다. 처음 태협을 보고 얼굴이 붉어졌던 것이 옛일인 양.
참 이상하게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태협은 연의 어깨를 잡아채서 품안으로 당겼다. 순식간에 그의 품에 안긴 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고, 아침에 내 아무것도 안 했다. 와 이라노.”
놀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음으로 눈꺼풀에 입을 맞추고는 아침에 뜻 없이 일어나 있던 그것을, 곧바로 집어넣었다. 긴 시간 안겨 녹진하게 풀어져 있던 내벽이 짜 맞추듯 조였다. 태협은 낮고 짧게 짓쳐 넣었다. 그렇게 연은 신음에 허덕이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때문에, 등교가 조금 늦었다. 기사에게 기다리라고 한 태협은 따뜻한 물로 씻고 보송보송한 수건으로 몸을 닦은 후 낡은 옷을 입고 있는 연에게 경고했다.
“내가 준 거 입어라.”
“아까워서 어째 입노.”
“오늘도 안 입고 있으면,”
“알아따. 을릉 가라. 내 고마 입고 있으께.”
그의 강압적인 목소리에 연은 콧잔등을 찡긋거리더니 그러겠다고 한다. 조금 마음이 풀린 그가 망설인 끝에 입을 열었다.
“내려가.”
어딜? 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태협을 보았다.
“학교 가야 할 거 아니야. 데려다줄 테니까 가자고.”
연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가자고 하는데도 요지부동이다. 그 모습이 답답해서 교복 가져다줘? 태협이 물었다. 연이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아이다.”
“뭐가 아니야. 학교 안 다니냐. 옷 입고 나와. 데려다준다니까.”
연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약간은 어두운 목소리를 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못 들을 정도는 아니어서 셔츠를 깔끔하게 잠그던 태협의 주의를 끌 수는 있었다. 연이 땅에 박혔던 시선을 천천히 들고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내, 학교 안 다니는 거 맞다고.”
순간 태협의 눈빛이 달라졌다. 약간의 동정 끝에 비웃음이 찾아왔다.
“자퇴했냐?”
고등학교 과정은 의무교육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러려니 했다. 저 태평스러움의 근본은 게으름이었다.
너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
그의 손에는 피자와 치킨이 들려 있었다.
저녁을 사 오느라 조금 늦었다. 연이 먼저 밥을 먹고 있을까 봐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행복수우퍼 앞에서 잠깐 멈췄다. 유리문 안을 기웃거리자 연의 다 낡아 빠진 신발이 보였다.
이를 꽉 깨문 태협이 문을 발칵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에 있는 미닫이문도 드르륵 열었고, 다음 순간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아! 밥 무러 왔나?”
연은 밥을 먹고 있었다. 닭을 튀기느라 30분 쯤 늦었을 뿐인데 먼저 먹고 있다.
그러나 태협이 화난 이유는 그뿐만 아니었다. 연에게 선물해 준 옷을 웬 남자아이가 입고 있었다. 다행히도 하의는 연이 입고 있었지만.
속이 끓었다. 연은 약속을 잊은 얼굴로 이리로 앉으라며 바닥을 두드렸다.
“여 앉아라. 할매, 야 앉아도 되제? 자가 은근히 마이 묵드라. 밥 쫌 마이 풀게?”
연이 거리를 벌렸다. 네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기엔 작은 개다리소반. 거기에 제 자리가 어딨다고. 앉고 싶지 않았다. 어울리고 싶지도 않았다.
태협이 휙 돌아 걸어 나왔다. 문도 쾅 닫았다.
야야! 하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번엔 태협도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태협은 문을 닫고 피자 상자를 아무 데나 던졌다. 몇 분이 지나 문이 벌컥 열렸다. 연이었다. 몇 년을 입어 낡은 반소매 옷을 입고 있는 연.
급히 뒤쫓아 왔는지, 추운 날씨인데도 볼록한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했다.
“너 뭐냐?”
연이 입을 떼기도 전에 태협이 날카롭게 외쳤다. 큰 목소리에 연은 놀란 듯 몸을 떨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도 지지 않았다. 맞서서 반발했다.
“우짜면 그래 버릇이 없노! 할매 화 마이 났다이가!”
도저히 영문을 모른다는 목소리, 그러나 영문을 모르는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식사야 혼자 하면 된다. 옷도 어차피 연에게 준 옷이었다. 누구에게 준들 무슨 상관이냐만, 화가 났다. 화가 났으니 태협은 화를 낼 뿐이었다. 태협이 치미는 분노감을 삭이려 눈을 감았다가 떴다. 진정되자 주변이 잘 보였다.
문득, 연의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 날씨에 반소매. 얼굴도 창백했다. 태협은, 씨발, 연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중얼거리고 손을 앞으로 까딱거렸다.
“뭐?”
“들어오라고!”
“싫다!”
연은 평소처럼 숙이지 않았다. 할 말은 해야겠다는 반응에 태협의 얼굴이 화기로 타올랐다. 연은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지 기관총처럼 쏴 댔다.
“니 할매 앞에서 매번 그게 무슨 태돈데! 앵간치 해라. 앵간치. 내한테 그러는 건 이해하는데, 할매는 으른이다. 얼라가 무시하고 그를 사람 아이라고! 니가 얼마나 잘났는지 모르겠는데, 아니, 잘났어도 그렇게 막 나가면 안 된다. 아나?”
연은 다름 아닌 태협이 할매 앞에서 무례하게 군 것에 많이 화가 나 보였다. 연에게 혼이 나는 태협의 얼굴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본인이 그렇게 잘못을 했나 싶은 억울함 그리고 감히 네가 뭔데 설교를 하냐는 반항심.
태협도 적개심이 일어 한 발자국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
“선택해라. 내랑 가서 할매한테 사과를 하든가, 아니면 ……내를 안 보든가.”
연이 태협을 설득하듯이 차분히 말했다.
“할매는 내한테 소중하다. 내는 내 소중한 사람 막 대하는 사람 더 보고 싶은 생각 읍따.”
연의 대거리에 태협의 입가가 뾰족하게 올랐다. 그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연이 황당한지 짧은 숨을 토해 냈다.
“시발.”
태협은 어이없어서, 진심을 다해 비웃었다.
“같잖게.”
“…….”
“몇 번 놀아 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지? 서울 계집애들이나 부산 계집애들이나. 하여간 분수도 모르고.”
태협이 무너진 자존심을 세우려는 것처럼 나쁘게 말했다. 연은 충격을 받은 건지, 아니면 정말 실망이라도 한 건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낸 니가 애는 착하다고 생각했그든?”
“…….”
“그도 아닌가 보네. 이제 니랑은 진짜…….”
연은 말을 잇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문이 바람을 일으켰다. 방바닥에서 쓸쓸한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씨발!”
태협이 발에 걸린 것들을 거칠게 걷어찼다. 걷어찬 페트병은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아 흘러나온 물이 방 안을 아무렇게나 적셨다.
잠시 머리를 감싸고 생각하던 태협이 코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쉬운 거 없는 건 이쪽이었다. 지 따위가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