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6/11)
  • 5.

    신혜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보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가 좀 넘어 있었다.

    그는 요즘 일이 바쁜지 예전보다는 좀 늦게 들어오고 있었다. 전에는 일을 집에 갖고 와서 하는지 집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더라도 서재에 처박혀서 일을 했다면, 이제는 아예 자정이 넘어서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오셨어요?”

    머뭇거리면서 그의 눈치를 살폈다. 언제나 그가 기분이 나쁘지 않길 바랐다. 피곤하거나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의 이마의 주름이 조금 더 깊어졌고 그녀에게도 더 난폭해지는 듯했다. 그는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마치 가구처럼 그녀를 무심하게 지나쳐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일단 그가 자기 전에는 그녀는 잘 수 없었다. 이것을 그가 입으로 꺼내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삶은 그가 태양인 듯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당연히 그가 잔다고 말하기 전까지 그녀는 깨어 있어야 했다.

    다시 무심하게 보던 책을 들고 읽으려 했지만 책을 쥔 손가락은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오늘이 회사 마지막 날이었고 이미 어제 송별회식까지 마쳤다. 사람들은 끝까지 청첩장 안 돌리냐고 물었지만 신혜는 결혼하는 거 아니라고, 그냥 잠시 쉬다가 다시 회사 들어갈 거란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어색한 웃음들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오늘 회사 가서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오후엔 반차 쓰고 앞으로 일주일은 휴가로 처리하기로 한 터였다.

    내일부터 뭐를 해야 할까. 그를 기다리면서, 이 넓은 집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어느새 여름이 다가와버렸고 이제 날이 제법 더워져서 밤에 창을 열어야 했다.

    그가 배스가운을 입은 채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침실 문을 열고 나왔다. 계속 늦게 퇴근하고 있는데도 샤워를 하고 나더니만 여름에 비온 뒤의 풀처럼 생생해 보였다. 뉴스 채널을 그냥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신혜를 바라보며 말을 던졌다.

    “내일부터 안 나가지?”

    “네.”

    신혜가 아예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무심하게 답하자, 그가 개를 부르듯 그녀를 손가락으로 오라고 까딱거렸다.

    “들어와.”

    “피, 피곤하지 않으세요? 요즘 계속 늦으시던데…….”

    매일같이 그녀를 안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그녀가 필요하면 불렀고, 그와 잠자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부르는 것도 그녀가 떠나는 것도 그의 소관이었다. 가끔 끝났는데도 그녀를 안고서 몸을 만지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가끔 그녀의 가슴을 쥐고 잠이 들면 조용히 일어서 나오곤 했다.

    “안 올 거야?”

    그 말에 마지못하듯 신혜가 방 쪽으로 움직였다. 근처에 가자마자 팔을 낚아채어서 끌어당겼다. 그대로 방으로 끌려가 침대로 던져지고 곧바로 무거운 몸이 얹히면서 침대 스프링이 삐그덕거렸다.

    그가 입술을 빨아들이면서 입고 있는 옷 위로 가슴에 손을 대었다. 부드러운 살덩어리를 쥐자, 온몸이 긴장한다. 그는 그대로 턱으로 목을 비벼대었다. 차가운 손이 옷 속으로 들어가 가슴을 덮고 있는 레이스 브래지어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후크가 떨어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신혜가 겁먹은 듯 눈이 커졌다. 그러다 갑자기 귓가에 속삭였다.

    “집에 오면 브래지어 하지 말지?”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한 걸 하지 말라니. 겁먹은 듯 아무 말도 없는 게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가슴 쳐질까 걱정되나?”

    그러나 신혜는 아무 말도 없이 못 들은 척했다.

    “내가 집에 있을 땐 브래지어 하지 마. 일일이 벗기기 귀찮으니까.”

    얼마 전엔 좀 속옷에 신경 쓰라고 하더니 오늘은 속옷을 입지 말라고 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싶었다.

    그는 신혜의 가슴에 처음부터 집착했고 그 흥미가 줄지 않고 있었다. 잘 때까지 자기 가슴을 만지고 있는 그를 볼 때나, 아이가 젖을 빨듯 집요하게 자기 가슴에 달라붙어 있는 그가 가끔 소름 끼칠 정도였다.

    “왜 대답 안 하지?”

    “내일부터는 안 할게요.”

    그 간절한 말에 남자가 못마땅한 기색을 있는 대로 지었다.

    “좋아. 내일부터 하면, 정말 가만 안 둘 거니 그런 줄 알아. 아니, 어떻게 내가 벌을 줄지 상상해 보는 것도 좋겠네.”

    남자가 크림을 앞에 둔 고양이처럼 입 끝을 올리며 웃었다. 기괴한 그 웃음에 등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가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게 농담이 아닌 건 지난 몇 주 만으로 이미 충분히 잘 알지 않은가. 그대로 옷을 들어올리고 희미한 빛 아래에 제물처럼 드러난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내렸다. 신혜는 일부러 그가 빨기 좋게 자세를 바꿔주었다. 그 편이 더 몸이 편해지니까.

    이미 지난 몇 주 동안 남겨놓은 자국들이 이미 다양한 색의 멍으로 변해 있지만 남자는 주저하지 않았다. 가슴 끝이 아릴 정도로 강한 흡입이었다. 그러고 난 뒤에는 으레 그러하듯 유두를 잘근잘근 씹었다.

    멍하니 누워서 눈을 감고 그냥 조용히 이 시기가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게 신혜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었다. 그는 이제 그녀를 동참시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냉동 고등어를 안는 것보다 흥분한 여자를 안는 편이 더 즐겁거든.”

    그 말을 일전에 내뱉기까지 했다. 그녀의 몸이 어디를 만지면 흥분하는지 이제 그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숨을 앗아갈 정도로 거친 키스, 가슴을 만지는 손길은 거칠었다. 결국 준비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밀고 들어온 남성이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퍽퍽 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자 자기도 모르게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부드러운 면 시트, 온몸을 덮고 있는 크고 육중한 남자의 몸. 넓고 적막한 어두운 침실에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자기가 작게 내는 신음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앗, 앗, 앗. 응.”

    거의 무릎을 몸 앞으로 끌어당겨서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남자에게 당한다. 이제 수치심이고 뭐고 더 이상 남아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남자는 이미 자기 몸의 구석구석을 여러 번 보았고 그 주인이기도 했다.

    그의 거칠게 쳐올리는 동작에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살과 살이 만나 나는 소리가 제법 크게 울리고 있었다.

    끈질기게 쳐올리면서 온몸을 격렬하게 껴안으면서 입술을 구하면서 허리를 크게 치면서 사정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한 방울까지도 마저 그녀의 몸 깊숙한 곳에 풀어놓았다. 드디어 끝이 났다.

    그러나 남자는 그녀의 몸을 안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의 몸이 바싹 그녀의 등 뒤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불조차 없이 그의 몸에 붙어 있는 게 창피했다. 벗은 어깨에 땀이 식으면서 소름이 살짝 돋았다.

    “추워?”

    살짝 떠는 걸 그가 본 모양이었다.

    “네, 조금요.”

    그러자 그의 몸이 더욱 바싹 그녀의 몸을 안았다. 뜨뜻한 몸이 등뒤에서 느껴진다. 자신과 체온이 다른 뜨끈한 몸이 아주 약간은 위안이 되었다. 살짝 땀이 베인 몸, 남자에게서 나는 익숙한 애프터쉐이브 냄새, 이제 수염이 살짝 올라와서 살짝 거친 턱선. 지난 몇 주 사이에 익숙해진 많은 것들 중 하나였다. 그가 졸음이 오는지 가슴을 만지는 손에서 살짝 힘이 빠지고 어느 순간 깜빡 잠이 든 듯했다.

    “주무세요.”

    이 말을 남긴 신혜가 슬며시 일어서서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 벗은 채로 방으로 움직인다. 희미한 조명에 여자의 벗은 등이 매혹적이다. 다시 끌어올까 했지만 그냥 가게 놔두었다. 그녀에게 주는 그의 작은 온정이었다.

    방에 들어온 신혜는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미적지근한 것에 그대로 몸서리를 쳤다.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면서 물티슈를 꺼내어 닦아내었다. 요즘 샤워를 자주 해서 보습로션을 계속 발라도 건조했다. 제일 끔찍한 것은, 남자가 몸에 남기는 이 흔적이었다.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혹시 아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닌데, 남자는 태연하게 수술했으니 안 생길 거라고 한다.

    앞으로 4년. 과연 그때 이 생활이 끝나는 걸까? 끝난 뒤에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녀의 인생은?

    *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나자 신혜는 부엌에서 달려나왔다. 승규가 평소보다 일찍 들어온지라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의 장점이라면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던가.

    “오셨어요?”

    인사만 하고 바로 레인지 앞으로 돌아갔다.

    “뭐해?”

    간만에 일찍 퇴근했다고 해도 여덞시가 훨 넘은 시각이었다. 한참 밀리는 강남의 도로에서 이미 한 시간 이상 보낸 터라 슬쩍 짜증도 나 있었다.

    “저녁 먹을 준비 하고 있었어요.”

    혼자 먹는 것치고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접시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명란젓을 넣은 계란찜이 이미 식탁 위에 올라와 있었고, 레인지 위에선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한 번도 안 쓴 오븐에서 생선이라도 굽는지 생선 굽는 냄새마저 났다.

    “저녁 드셨어요?”

    사실 그가 먹고 들어왔길 희망했다. 그와 같이 밥 먹는 건 주말로도 충분히 힘들었다.

    “생각 없어. 빨리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오지?”

    “일단 밥 좀 먹고…….”

    “씻을 테니까 정리 간단하게 해놓고 방으로 들어와.”

    자신에 대한 분노였을까, 아니면 그녀에 대한 분노였을까.

    이 말을 던지고 샤워를 하러 들어간 승규는 찬물 아래 멍하니 잠시 서 있었다. 아직도 세상엔 용서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너무나 많다. 그중 하나는 자신. 절대 행복해선 안 되는 자신. 외롭고 고독하게 어서 이 생이 끝나기 기다려야 하는 자신.

    욕실을 나왔을 때, 신혜는 방에 없었다. 그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면서 나가보니 신혜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뒷모습, 과거에 익숙했던 그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그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 과거의 민승규는 없다.

    “기계에 넣으면 되는 거 왜 힘들게 직접 해?”

    사실 시간을 끌려고 했을 뿐이었다. 아직도 그와 잠자리는 피하고 싶었다. 아파서가 아니라 무서워서였다. 그렇게 몰고 가는 그가 증오스럽기까지 했다.

    “얼마 안 되어서요.”

    뒤에서 그가 허리를 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유신혜 씨, 여기서 지금 뭐하는 거지? 내가 간단하게 정리만 하고 들어오라고 했을 텐데.”

    “그, 정리가 아무래도 설거지는 해야…….”

    “내가 신혜 씨 여기에 있게 하는 건 몸으로 빚 갚으라고 하는 거지 이렇게 집안일 하라고 있으라고 한 거 아니잖아. 당신 가장 큰 임무가 뭔지 생각 좀 해보지?”

    그의 손이 가슴으로 올라와 옷 위로 가슴을 쥐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고 뒤에서 단단한 허벅지가 붙었다. 지금 그가 심술을 내고 있었다. 이 집 구석구석 안기지 않은 곳이 없었다. 샤워할 때도 그대로 들어왔고, 식탁 위에서도, 심지어 그녀 방에서도 그는 안았다.

    “잠시만요. 저 아직 고무장갑 끼고 있어요. 이거라도 좀 뺄게요.”

    다급해진 신혜가 물을 틀어서 거품을 닦아내고 장갑을 빼려고 했지만 마음이 급해서 잘 빠지지 않았다. 그런 신혜가 우스운지 그가 작은 소리로 귓가에 웃었다. 귓속의 솜털이 곤두설 것 같다. 그의 낮은 목소리, 절정의 그때의 낮은 한숨, 가끔 보여주는 눈가에 주름을 잡으면서 웃는 미소. 길고 강한 팔로 자신을 안고, 긴 다리로 자신을 속박한다. 분명 자기가 미친 게 분명했다.

    뒤에서 옷 속으로 들어온 손은 가슴을 쥐었다 놓는 그 손은 현실이었다. 자신의 몸에 와닿는 단단한 몸 역시 현실적이었다.

    “다른 생각하면 재미없는데? 집중 좀 하면 안 돼?”

    목덜미에 뜨거운 입김이 느껴진다 싶더니만 잘근잘근 이빨로 물고 있었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후들거리기 시작할 때 그가 스커트 자락을 걷고 속옷 속으로 손이 들어왔다.

    “이제 좀 익숙해진 거 같군. 전처럼 아파하는 것 같지도 않고? 몸이 익숙해지니까 별 거 아니지?”

    그녀를 약 올리기라도 하듯 말을 건네면서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신혜는 숨기기라도 하듯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그의 시선에서 숨겼다.

    “기왕 집에 모셔뒀는데 가끔 기름칠이라도 해둬야지.”

    마치 기계라도 되는 양 말을 하는 그가 밉다.

    수염이 올라오기 시작한 턱에 스친 가슴이 따끔했다. 아니 마음이 따끔했다.

    그는 신혜의 가슴을 노골적으로 좋아했다. 무엇보다 입으로 빠로 이빨로 깨물고 하는 거친 행위 때문에 가슴 주변에 멍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달력에 날짜 잘 표시하고 있어? 이제 얼마나 되었더라도? 아, 두 달 좀 넘은 거 같네. 시간 정말 빨리 가.”

    남자는 얕은 한숨을 살짝 뱉어내면서 계속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자꾸 다리에서 힘이 빠지면서 거의 그에게 몸을 기대다시피 했다. 등 뒤에서 허리를 잡고 가슴을 만지면서 그가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읍!”

    좁은 통로를 벌리면서 들어오는 것에 살짝 약한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여유있게 부드럽게 리드미컬하게 그의 허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몸속을 채운 그것도 점점 더 커지고 단단해졌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그녀의 여성 역시 익숙해지고 점점 더 뜨거운 액을 쏟아내면서 몸을 맞추었다. 두 달 동안 익숙해진 것 중 하나였다.

    “다리에 힘 좀 주지 그래?”

    자꾸 신혜 몸이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려 하자 그가 허리를 좀 더 세게 부여안으면서 투덜거렸다.

    “이 자세 많이 불편한가?”

    혼잣말이라도 하듯 그가 말을 했지만 놓아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신혜의 몸을 돌리더니 자신을 마주보게 했다. 번쩍 들어 거의 싱크대 위에 올려놓다시피 했다.

    “스웨터 벗지? 가슴이 안 보이잖아.”

    그 말에 신혜가 기계적으로 옷을 벗어서 던졌다. 하얀 백열등 아래 상반신이 드러나는 데 이제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처녀다운 부끄러움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난 두 달 넘게 그에게 안겨온 몸이었다.

    그가 긴 손가락을 뻗어 구슬처럼 단단해진 유두를 살짝 튕겼다.

    “색이 좀 진해진 거 같네. 남자 손을 타서 그런가.”

    그 뒤에 낮은 웃음을 내었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들어 올려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아올리고 남자의 목을 껴안았다. 자연스레 그가 원하던 대로 가슴이 얼굴에 오자, 열심히 빨기 시작했다.

    “아…….”

    감각의 파도가 밀려오고 신혜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남자는 점점 더 빠른 리듬을 타기 시작했고 몸속에서 익숙해진 욕망이 파도처럼 밀려들다 거대한 해일이 되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그도 절정이 다가오는지 허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도 밤이 기려나. 새벽에 놓여나 방으로 돌아갈 때 욕실에서 샤워를 하면서 뜨거운 물줄기 아래 잠시 서 있곤 했다. 자긴 도대체 여기서 무얼 하는 걸까. 그냥 부평초처럼 흘러가기만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대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들. 그냥 뭘 할지 몰라 낮에도 멍하게 있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 게 다였다.

    누구 하나 마음 편하게 연락할 사람조차 없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집안이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고 대학교 때에는 제대로 사귄 친구조차 없었다. 회사 들어간 뒤에 그냥 친구들과 1년에 몇 번 만나서 저녁 먹고 차 마시고 가끔 문자하거나 전화하고 이게 다일 뿐이었다.

    아무에게도 자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토해 낼 수가 없었다. 그냥 이렇게 세상에 고립되어 있다가 놓여난다면 어떻게 되는 걸. 4년 뒤에 서른두 살인 유신혜는 무얼 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그가 자신을 길들이고 있었다.

    전혀 몰랐던 것을 가르치고 교활하게 그녀를 끌어들인다. 그냥 돈에 협박당해 이곳에 들어온 여자를 공범자로 만들고 있었다. 돈으로 몸을 사는 남자와 돈에 몸을 파는 여자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타락해 가는 걸 방관자처럼 바라만 봐야 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

    “네, 고모?”

    거의 죽어 있다시피 한 핸드폰이 울렸을 때 화들짝 놀랐다. 낯선 번호에 받지 말까 싶다가 받아보니 고모였다. 아버지의 여동생, 과거에야 할머니 살아 계실 때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할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 돌아가신 뒤에는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었다.

    이제 제법 날이 더워져서 해질녁의 붉은 해가 통유리 너머로 내리쬐고 있었다. 블라인드를 쳐서 해를 가리지만 지고 있는 붉은 햇살이 거실까지 블라인드 사이로 드리웠다.

    <왜 네 엄마랑 연락이 안 되는 거야?>

    아버지 살아 있을 적에만 해도 언니 언니 이러면서 잘도 찾아오더니만 이제는 네 엄마이다.

    “엄마 지금 미국 이모댁에 놀러가셨어요.”

    자세한 사정은 얘기할 수 없었다. 언제나 아버지 앞에서야 좋은 낯이었지만 신혜와 엄마 앞에서는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집안 다 말아먹고 놀러갈 돈이나 있니?”

    신혜가 아무 말 없자 말을 툭 내뱉었다.

    “우리 지연이 결혼한다.”

    “어머…… 축하드려요.”

    동갑내기 사촌 지연과는 고등학교도 같은 데 나왔지만 노는 친구들도 완전히 달랐고 학교에서는 별로 얘기도 한 기억이 없다.

    “우리가 친척이라고 몇 명 있지도 않잖니. 너라도 와야 할 거 아냐.”

    “네.”

    “너 요즘 뭐하니? 아직도 거기 다녀?”

    “아뇨. 지금은 그만두고 쉬고 있어요.”

    “허, 쉬어? 너 그렇게 놀면 먹고는 살 수 있어?”

    “모아놓은 돈도 좀 있고, 좀 쉬다가 다시 취직하려고요.”

    그 말에 고모가 혀를 끌끌 찼다. 피가 섞인 조카지만 사랑 받아본 적도 없었고 언제나 사촌과 경쟁상대로 볼 뿐이었다. 아마도 지연이 결혼한다고 자랑하는 전화한 거겠지.

    “청첩장 보냈는데 못 받았니?”

    “네.”

    집에 우편함에 없던 듯하다. 열흘에 한 번 정도는 집에 들러 간단하게 청소하고 우편함을 정리하곤 했다. 고모가 과연 그녀가 어디 사는지 알기나 할까.

    “언제예요?”

    “통 소식이 없어서 전화라도 한 게 다행이네. 지연이 신랑이 의사야.”

    “네, 잘 됐네요.”

    엄마 말로는 별볼일없는 집안 남자애랑 만나서 고모가 한숨을 쉰다는 얘길 얼핏 들은 기억이 났는데 헤어진 모양이었다.

    “너도 이제 결혼해야지. 근데 아버지도 안 계시고 집에 돈도 없고 어디 좋은 사람 만나겠어?”

    “그러게요.”

    이런 데 맞장구쳐주는 거 외엔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좋은 사람 만나겠다는 희망조차 이제 없는데. 이런 생활을 하는 유신혜가 누굴 만나겠는가.

    “이번 주 토요일 두 시야.”

    고모가 호텔 어디 주소를 알려주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까지 걸었는데 안 갈 수 없고 토요일이면 승규가 집에 있을 텐데 그동안 한 번도 주말에 외출해 본 적이 없었다. 말하면 가지 말라고 잡을 수도 있었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지고 도시에는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21층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야경. 도로는 또 정체인지 자동차 헤드라이트들이 느릿하게 전진하고 있고, 점점 불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불야성처럼 번쩍거렸다. 옥외광고판의 화려한 광고들, 불켜진 높은 빌딩들, 가로등, 네온사인으로 도시 전체가 밤을 거부하듯 불을 켜고 있었다.

    저 넓은 서울 하늘 아래, 저렇게 많은 사람 중에 외로움을 호소하거나 얘기할 상대 하나도 없다는 건 이십몇 년 살아온 유신혜가 얼마나 잘못 살았는지 말해 주는 증거일까. 성격이 특별히 모나지도 않았고 좀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편이긴 했다.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집안이 몰락하는 걸 보여주지 않으려는. 점점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되어가고 있었고, 유학이다 결혼이다, 취직이다 하면서 멀어져가는 걸 그냥 지켜보면서 잡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소외되었다.

    승규는 머리를 닦으면서 욕실을 걸어나왔다.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닦는데 방으로 불러놓은 신혜가 그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눈을 피해버렸다.

    “무슨 할 말 있어?”

    좀 초조한지 입술을 물어뜯으면서 계속 입술을 달짝거리거나 그를 곁눈질을 하다 바라보면 막상 딴청을 부리는 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게 분명했다.

    “저기, 토요일 낮에요. 잠시 외출하면 안 될까요?”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까지는 내 스케줄에 맞추라고 내 분명히 말했는데?”

    “사촌 결혼식이 있어요. 거기 다녀오고 싶은데. 세 시간 정도면 충분해요. 네?”

    간절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촌?”

    “네. 동갑내기 사촌이요. 고모 딸이에요.”

    “결혼식 가서 뭐하게? 그냥 선물이나 주던가 돈 봉투나 온라인으로 보내지.”

    승규는 시큰둥하게 그녀를 약 올렸다. 신혜가 포기하려 하는 거 같지 않았다.

    “꼭 오라고 전화까지 했단 말이에요. 가게 해주세요.”

    “주말에 내가 시간 비워놓으라고 안 했어요?”

    “주말에 계속 어디 안 나가고 계속 있었잖아요. 한 번만 나가게 해주시면 안 돼요?”

    간절하게 그를 바라보며 호소했다.

    “가게 해주면 뭐해 줄 건데?”

    사실 조금은 농담이 반쯤 섞여 있었다. 그런데 신혜는 진담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뭐 해 드려야 좋으신데요?”

    정색을 한 신혜 표정에 심술이 나버렸다. 어떻게 괴롭힐까. 순진하고, 성실하고, 정직해서 마치 과거의 그와 같아서 더 괴롭히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대로 가느다란 손목을 낚아채서 잡아당기자 그대로 끌려들어와 그의 가슴에 부딪쳐버렸다. 그대로 가느다란 허리를 잡아서 무릎 위에 올려버렸다. 놀라서 동그래진 눈,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그동안 그렇게 괴롭혀도 본성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

    얇은 여름 원피스 속에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는지 가슴 끝이 살짝 도드라져 있었다. 그걸 옷 위로 잡아당겼다. 신혜가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몸을 빼내려다 그 자세로 굳었다. 그가 작은 반항에도 얼마나 화를 내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원피스를 벗겨서 가슴을 드러냈다. 원피스 속에는 팬티 한 장 입고 있는 게 다였다. 가슴을 입으로 한입 가득 베어 문 채 그대로 허벅지 안쪽을 더듬거리다 팬티를 내려버렸다. 신혜는 그가 뭘 하는지 몰라서 멍한 표정으로 그의 손길에 놀아날 뿐이었다.

    “불 꺼주시면 안 돼요?”

    눈치를 보면서 요구해 왔다. 여전히 밝은 데서 안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

    그가 심술을 부리자 신혜가 인상을 썼다. 아무래도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어느날은 불을 끄고 어느 날은 불을 끄지 않는다.

    밝은 데서 안기는 걸 신혜가 꺼리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밝은 데서 안기면서 자신의 얼굴 표정이나 몸이 드러나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부드러운 살을 움켜쥐면서 파고들었다. 그의 시선이 위험하게 번뜩이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는 자기가 그녀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 과시라도 하듯, 그녀를 안았다.

    어느 순간 그의 얼굴이 가슴을 거쳐 옆구리 그리고 아랫배까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순간 겁이 난 신혜가 다리를 오므려버렸다.

    “다리 벌려.”

    그러나 여전히 오므리고 있는 다리를 벌리려 하지 않았다.

    “싫어?”

    그가 부드럽게 어루만지자 더욱 굳어버렸다.

    “다리 벌리라고 말했는데?”

    그의 명령을 거부했다가 돌아오는 건 더욱 큰 고통밖에 없는 걸 이제는 알았다. 하나 반항하면 벌은 세 개였다. 집요하고 고집스레 원하는 걸 관철시키는 성격이었다. 힘으로든 뭐든 절대 이길 수가 업었다.

    원하지 않아도 다리를 벌려야 했다. 그가 천천히 벌어지는 다리를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곳에 자기 얼굴을 파묻었다.

    순식간에 놀란 신혜가 발버둥을 치며 몸을 틀려 했지만, 그가 그렇게 되게 놔두질 않았다. 그대로 골반을 잡고서 얼굴을 묻어버렸다. 부드러운 검은 음모 속에 얼굴을 파묻고 그대로 작은 진주를 입에 물어버렸다.

    순간적으로 신혜가 놀랐는지 소리를 내었다

    “아, 으……. 하지 마요. 더, 더러워요.”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에 문 것을 빨았다. 그러면서 손가락을 부드러운 속살을 만지면서 안으로 집어넣었다.

    “하아, 하아……! 읍!”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개진 신혜가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집어넣은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자 촉촉하게 젖어 있던 그곳이 소리가 날 정도로 젖어들기 시작했다. 곧 습윤한 그곳까지 혀를 집어넣어 핥기 시작했다.

    신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자신의 그곳에 망측하게 얼굴을 파묻고 뭐하는 짓인지.

    손가락으로 헤집기 시작하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대로 높은 곳까지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입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에 손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참으려 했지만, 어느 순간 그가 그 손마저 제압해 버렸다. 고양이처럼 가르릉거리는 자신의 이상한 목소리, 그러나 점점 높은 곳까지 짜릿하게 올라가듯 하다 갑자기 눈앞에서 별이 터지고 귓가가 멍해졌다.

    눈을 떴을 때 그가 혀를 낼름하더니만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낯선 씁쓸한 맛. 자신의 여성에선 이런 맛이 날까.

    “내가 제일 짜릿할 때가 언제냐면, 성녀처럼 순진해 보이는 당신이 온몸이 발갛게 되어서 신음을 억지로 참다가 결국 몰려서 터트릴 때, 바로 그때야. 아닌 척하면서 당신도 즐기고 있잖아? 안 그래?”

    신혜가 아니라는 듯 도리질을 치려 했지만 어느 순간 그가 자신의 하체를 그녀의 몸에 맞추며 허벅지를 가르며 그의 남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보름달처럼 하얗고 둥근 엉덩이를 쥐고 그대로 한 번에 깊은 곳까지 쳐들어온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깊숙이 그녀 몸속에 심어 넣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아니에요!”

    신혜가 소리쳤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당신을 즐겁게 해줬으니 이제 내가 즐길 차례야. 가만히 있어.”

    그러면서 그가 신혜의 통통한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순간 고통에 그를 둘러싼 벨벳처럼 부드러운 몸이 수축하자 그가 얕게 신음을 흘렸다.

    평소엔 무서울 정도로 일절 소리를 내지 않는 그가 오늘은 평소보다 얕은 신음을 좀 더 많이 내뱉고 있었다. 그의 손이 자신의 허리를 꼭 쥐고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깊이 치고 들어오고 그 이상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들어오길 여러 번.

    그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 그녀의 작은 신음, 그의 거친 숨소리.

    그가 갑자기 자신의 몸을 빼내더니 손짓을 했다.

    “위로 올라와.”

    그녀가 순순히 올라가서 그를 품어서 앉고 그의 입에 자기 가슴을 물려주었다. 지난 몇 달 사이에 익숙해진 것. 그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둘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는 잠자리에서 주로 벌어졌고 다른 대화는 거의 해본 기억도 없었다.

    그녀가 아는 건 그가 잠자리에서 뭘 좋아하는지 뿐이지 인간 민승규에 대해 아는 건 많지 않았다. 아마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신혜가 낮에 이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는 털끝도 관심이 없다. 다만 그의 물건이 허튼 짓을 하지 않나 의심해서 감시의 눈초리는 늦추지 않았지만.

    “좀 빨리 움직여.”

    그가 엉덩이를 찰싹 소리가 나게 치자 자기도 모르게 몸속에 힘이 들어갔다.

    “크윽!”

    하는 낮은 신음을 내뱉더니 그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자세가 바뀌면서 그의 몸에 깔리고 이제는 그가 그녀의 허리를 쥐고 빠르게 움직인다.

    그리고 귓가에 낮은 신음과 함께 몸속으로 뜨거운 것이 쏟아졌다.

    잠시 후 나른하게 늘어져 있을 때

    “좋아, 갔다 와도 돼. 3시간 허락해 주지.”

    느긋한 목소리로 허가를 내주었다. 마치 팁이라도 주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였다.

    *

    부산하게 오가는 사람들. 고모는 분홍색 한복을 입고 손님 맞기에 바쁘다. 다른 고모네 인사 정도만 하고 혼자 주춤거리며 멀뚱하게 서 있었다. 안에 들어가 앉는 것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밖에 누구 하나 아는 사람도 없다. 이미 축의금도 내었고 식이 시작하기까지 십여 분 정도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래 내려가서 신부 얼굴 보고 오기까지 했는데도 시간이 꽤 남았다.

    “유신혜!”

    신혜는 누구 아는 사람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 이름을 부른 당사자는 신랑 하객인 듯한 한쪽에 모여 있던 젊은 남자였다. 인상이 익숙한데 어디서 봤던 사람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 기억나? 서지운. 너랑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아.”

    신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키가 훨씬 크고 몸이 자랐는데도 안경이나 살짝 곱슬거리던 머리카락 이런 특징들이 바뀌질 않아서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워낙 내성적이고 남자아이들과 익숙하지 않아 몇 마디 나눠본 기억이 없었지만 6학년 때 반에서 인기 많았던 남자애였다.

    “너 전에 머리 길게 길러서 헤어밴드 하고 다녔었잖아. 여전히 헤어스타일이 똑같네. 그래서 금방 알아봤어.”

    사실 엄마가 관리를 거의 안 해줘서 할 수 있는 게 그런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미 단발이었던 머리는 그세 꽤 자라서 목 뒤로 한참 넘어가버렸다.

    “신부 친구?”

    “아니요. 사촌.”

    자기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신랑이 학교 선배야.”

    신부인 지연의 남편이 지금 공보의로 있다고 고모가 전화해서 자랑하지 않았던가.

    “아, 그렇구나.”

    “지금 레지던트 3년차야. 너는 어떻게 살아?”

    “나? 나는 그냥 학교 졸업하고 회사 다니다 지금은 쉬고 있어.”

    별로 할 얘기가 없는데 말을 시키니까 또 성실하게 답한다. 아마 초등학교 때 나누던 대화도 이 정도였던 기억이었다. 잠시 말이 없어지고 어색한 침묵이 흐를 때 누군가 그를 불렀다. 지운은 그쪽으로 손을 한 번 흔들더니 아쉬운 듯 신혜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나중에 봐. 난 친구들에게 가볼게.”

    “예, 아니 응.”

    지운이 떠난 뒤 갑자기 지연의 동창이자 신혜 동창들이 신혜를 우루루 둘러쌌다. 아까 보고서 그냥 아는 척만 좀 했을 뿐이었다.

    “누구야, 그 사람?”

    “아, 초등학교 동창인데 지연이 신랑 후배래.”

    “결혼했어?”

    “몰라.”

    초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얘기했는데 결혼했는지 신혜가 알 리가 없었다.

    “여자친구는 있대?”

    “몰라. 근데 있지 않을까? 초등학교 졸업한 뒤에 지금 처음 만나서 얘기 몇 마디 나눈 게 다야.”

    “그나저나 신혜 너 만나는 남자는 있어?”

    신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만나는 남자는 아니었다. 같이 살긴 해도.

    “아니.”

    “거봐, 없잖아.”

    신혜를 두고 자기들끼리 뭔가 속삭였던 모양이다.

    “근데 신랑 공보의라면서? 학교 어디 나왔대? 그래도 경기도 보건소에 있다면서? 선 본 거지?”

    다시 화제는 이런 얘기로 돌아갔다.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선본 거래.”

    “아, 역시.”

    “그나저나 왜 전 남친이랑 오래 사귀었잖아.”

    다들 속닥속닥 듣는 사람 있나 확인하듯 주위를 둘러보며 얘기를 주고받았다.

    “대학 때 만나던 남자랑 오래 끌었잖아. 지연이가 헤어지고 싶은데 몸정이 쌓여서 못 헤어지겠다고 전에 하소연하더라.”

    이런 얘길 당사자 결혼하는 데서 하는 얘기가 뭐냐고 신혜는 묻고 싶었다.

    몸정이 쌓여서 못 헤어지겠다는 말, 그 말은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잠자리에서 느껴지는 만족감 같은 걸까? 그랑 하는 잠자리는 굉장히 수치스러웠지만 자기의 몸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만들어주기는 했다. 있는지도 몰랐던 여성에 대해서. 그리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성욕, 가끔 그의 몸을 만지고 싶을 때도 있었고, 그와의 잠자리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몸에 정이라도 쌓이는 걸까?

    결혼식 끝나고 난 뒤 사진 찍고 밥까지 먹고 난 뒤에 시계를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일렀다. 사진 찍고 후식까지 먹고 일어섰을 때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었다. 아직 한 시간 좀 넘게 시간이 남아 있었다. 신혜가 일어서서 나가려는 걸 지운이 본 모양이었다.

    “가는 거야?”

    “응.”

    “그럼 잠깐 얘기라도 할래? 차 한 잔 마실 시간은 있지?”

    아직 한 시간은 여유가 있다. 간만의 휴가인데 이대로 그에게 돌아가기는 싫었다. 한 시간 정도 차 마시는 정도는 괜찮겠지?

    카페에 들어오고 얼마 안 되어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여름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흔한 소나기였다. 지나가는 빗방울이 뜨겁게 달군 아스팔트에 닿자마자 김이 올라오고, 마치 곧 다가올 장마를 예고하는 듯했다. 눅눅한 것은 신혜의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카페 안의 온도는 차가웠다. 신혜가 살짝 몸서리를 치자 지운이 자기 양복 재킷을 벗어 건네주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추운 거 같아서.”

    안경 너머의 눈이 다정하게 웃었다.

    남자와 단둘이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몰라 뜨거운 커피를 앞에 두고 멍하니 있었다. 그가 꺼내는 화제에 맞춰 따라가려고 애쓰면서. 지운 역시 신혜와 예상치 못한 재회에 당황했는지 가벼운 안부, 날씨, 이런 얘기를 하다 결국 입을 다물었다.

    “부모님은 잘 계셔?”

    아마 할 얘기가 없으니 꺼낸 모양이었다. 오래 소식이 끊겨 있었으니 당연히 잘 모르겠지.

    “아버지 돌아가신 지 좀 되었고 엄마는 지금 미국에 가 계셔.”

    이건 사실이었다. 그 짧은 문장 안에 긴 얘기들이 숨겨 있긴 하지만.

    “집에서 뭐해? 회사 관두니까 좋아?”

    “아무것도 안 해. 너는 레지던트니까 바쁘지?”

    “나 그냥 병원에서 사는 거지. 간만에 나오니까 진짜 좋다. 예쁜 아가씨랑 차 마시니까 더 좋고.”

    신혜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사귀는 사람은 있어?”

    “아니, 없어. 친구들이 궁금해하던데…… 너는?”

    “나 없어. 있으면야 벌써 장가 갔지. 집에서 선보라고 성화인데 시간이 있어야 선을 보든 소개팅을 하든 하지. 집에서 주로 뭐해?”

    “그냥 책 보고…… 공부 좀 하고. 사실 거의 아무것도 안 해.”

    “이직 준비 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냥 당분간 쉬려고. 몇 년 동안 앞만 보고 달린 거 같아서 이 참에 좀 전환 좀 해보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좀 쉬고 싶어.”

    “앞으로 무슨 일 하고 싶은데? 하고 싶은 거라던가 그런 거 없어?”

    “사실 잘 모르겠어. 그냥 대학 졸업하고 취직 무턱대고 하고 난 뒤에 그냥 열심히 일만 한 거 같아서. 하고 싶은 게 뭔지 이제 찬찬히 생각해 보려고.”

    사실 요즘 하고 싶은 게 뭔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었다. 이 책 저 책 보면서 전부터 관심있던 허브 키우기 같은 것도 해보고, 뜨개질이나 손 자수 같은 것도 해보는 게 재미있긴 했다. 그러나 그런 걸로는 4년 후를 대비하기엔 모자랐다.

    인생에 미래라는 게 있는 걸까. 지금 현재를 열심히 성실히 사는 것 외에 짧은 계획도 세우기 힘든 현실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하는데, 자긴 유감스럽게 그렇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잡아먹히는 벌레 같은 존재였다는 점이다.

    “나 초등학교 때 너 좋아했다. 기억나? 내가 너 가끔 괴롭혔는데.”

    갑작스런 고백에 신혜 얼굴이 빨개졌다.

    지운이 기억하는 유신혜는 수줍음도 많고 내성적이어서 늘 뒤에 조용히 있는 여자아이였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해서 눈에 띄지만 언제나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떄 학원에서 만나도 신혜가 피해 버리거나, 남자아이 쪽으로는 근처도 오지 않으니 말 한 번 건내볼 타이밍조차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앨범에 나오는 전화번호도 아는데 연락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전화번호 알려줘. 가끔 문자라도 보낼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지운의 말에 신혜가 머뭇거렸다. 지운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되는 걸까? 아니 알려주지 말아야 할 이유라는 게 있을까. 지운과 사귀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것뿐인데……. 승규가 안다면 화를 내겠지. 근데 승규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냥 집에 혼자 있을 때 그냥 문자만 보내보는 거 정도는 괜찮겠지?

    “혹시 만나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그 말에 지운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신혜는 즉각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대답이 나와버렸다.

    “아니, 그런 사람 없어.”

    “그럼 전화번호 알려줘.”

    결국 신혜는 지운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주려고 핸드폰을 폴더를 열었다. 요즘 이런 거 쓰는 사람 어디 있냐고 바꾸라고 다들 그랬지만 스마트폰을 쓰기엔 유신혜는 너무나 가난했다. 핸드폰 액정 시계가 어느새 네시 반이 넘어 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나 그만 집에 가봐야 돼.”

    지운의 전화번호를 저장하자마자 부산하게 일어서서 갈 준비를 시작했다. 지운이 아쉬워하면서도 순순히 보내주었다.

    “태워다줄게.”

    “아냐, 됐어.”

    “집 근처까지 태워다 줄게. 아직도 전에 살던 데 살아?”

    “아니. 이사했어. 다른 데야.”

    “비도 많이 오잖아. 차에 우산 있어. 택시 잡기도 어려울 거야. 그냥 타고 가. 나도 그 근방이니까.”

    그냥 지운과 실랑이질하기도 싫었고 앞으로 만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간만에 승규가 아닌 사람과 얘기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에 조금만 더 욕심을 내보았다.

    지운이 능숙하게 모는 낡은 차, 와이퍼가 계속해서 빗물을 닦아내고, 차는 따뜻하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늑해서 잠이 다 올 정도였다. 승규의 집까지 그 아쉬운 십오분은 금세 가버렸다. 지운은 좋은 얘기상대였고 일단 나오기 시작하자 둘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신혜의 백 속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안 봐도 누구인지 알았다. 그녀의 주인이 그녀를 찾는 거겠지.

    “여보세요? 아 지금 집에 가고 있어요.”

    승규 목소리가 지운에게 들릴까 신경 쓰인 신혜는 조심스레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지운은 집에서 온 전화이겠거니 해서 별 생각 않는 듯했다.

    <비 많이 오는데 집에 어떻게 올 거야?>

    퉁명스런 목소리였다.

    “아, 친구가 태워다 준데요. 안 나오셔도 돼요.”

    <친구 누구?>

    “초등학교 동창요. 집에 거의 다 왔어요.”

    <알았어. 빨리 들어와>

    이 말을 한 승규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신혜는 옆의 지운의 눈치를 보면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운은 승규의 아파트 바로 앞까지 태워다주겠노라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현관 앞에 차를 대자마자 뛰어내린 신혜는 손을 한 번 흔들고 뛰다시피 현관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내내 조마조마 초조했다. 화가 많이 나 있으면 안 되는데,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으면 어떻게 하지?

    막상 그는 거실 소파에서 와인을 한 잔 하던 모양이었다. 탁자 위에 긴 레드와인 병과 치즈 자른 것, 그리고 크리스털 잔이 놓여 있었다.

    “좀 늦었네?”

    사실 비가 와서 우산도 안 갖고 나간 신혜를 걱정해서 전화한 거였는데 단칼에 거절하자 기분이 좀 상한 상태였다. 간만에 일도 안 하고 집에서 서성거리자 계속 시계만 보게 되는 것이었다. 언제쯤 오려나? 막상 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침대에서 뒹구는 것밖에 없으면서.

    “네, 친구랑 차 한 잔 하다가요.”

    그가 탐색하는 듯 그녀를 살피더니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원피스 잘 어울리네요.”

    “네?”

    신혜가 입고 있는 옷은 엄마가 예전에 입던 옷을 고쳐서 입고 있는 것이었다. 실크에 리넨이 섞여 윤기가 나는 남색 원피스는 하얀색 동그란 칼라가 달려 있고 가슴에 커다란 단추가 달려서 귀여운 디자인이었다. 소매가 없이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 있는 A라인의 원피스였다. 엄마가 자긴 이제 안 어울린다고 옷장에 처박아둔 걸 찾아내서 수선해서 입고 있는 것이었다.

    뭐가 그의 심기를 어지럽힌 걸까. 그는 왠지 어두운 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근데 벗어줘야겠어.”

    그가 등 뒤의 지퍼에 손을 올려놓자 가볍게 몸을 옆으로 빼서 살짝 손을 피했다.

    “좀 먼저 씻고요.”

    신혜의 가벼운 거절에 불편했던 심기가 이제 분노로 변하려 했다.

    “주말에 반나절 휴가 잘 썼으면 이제 일해야지, 안 그런가?”

    그의 비아냥거림에 눈을 내리깔고 야단맞는 선생님 앞의 학생처럼 그의 시선을 피했다.

    “직접 벗을래, 아님 내가 벗길까?”

    이제 자포자기. 돌아서서 지퍼를 내리려 하자, 채찍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나왔다.

    “내 눈앞에서 벗어.”

    넓어서 더 차가운 공간에 단둘밖에 없었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두 개의 별처럼 서로 다른 우주에서 서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을씨년스런 그 공간에 틀어놓은 에어컨 때문인지 온몸에 소름이 좌악 돋았다. 아마도 다가올 일 때문에 긴장이 되어 그렇겠지

    그는 매의 눈으로 서 있는 그녀를 마치 관람이라도 하듯 소파에 앉아 지켜보았다. 테이블 위로 올라가라 말하지 않는 걸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와인잔에 마시다 만 레드 와인을 한 잔 따르고 잔을 살살 흔들었다. 그녀의 온몸을 오가던 긴 손가락이 크리스털 와인잔을 쥐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을 희롱하던 입술이 붉은 액체를 마신다.

    그대로 눈을 감고 지퍼를 내려버렸다. 그리고 원피스를 위로 올려서 훌러덩 벗었다. 속에는 하얀 슬립을 입고 있었다. 원피스를 소파에 걸쳐놓은 뒤에 슬립을 벗었다. 그리고 검정색과 핑크색 새틴으로 된 브래지어를 벗어서 슬립 위에 올려놓고, 세트인 팬티까지 마저 벗었다. 무덤덤하게 그가 시키는 대로 벗고 있는 그녀를 그는 뱀처럼 유리눈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 와.”

    그가 시키는 대로 그의 앞에 다가가자 자신의 무릎 위에 끌어다 앉혔다.

    검사하듯 찬찬히 몸을 어루만졌다. 목부터 시작해서 그가 꼼꼼하게 몸을 살폈다. 가슴 부분을 만져보기도 했고 심지어 허벅지를 벌리고 그 아래 얼굴을 묻었다. 굳어 있는 여성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건조한 그곳이 그의 손가락을 밀어낼 듯했다. 거칠게 집어넣자 여자가 가냘프게 신음했다.

    환한 불빛 아래 이제 수치스럽다는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손짓을 해서 자신의 무릎 위로 올라오게 했다.

    입술을 겹쳐 혀를 휘감고, 이미 허벅지를 가르며 들어간 손가락이 부드러운 그 부분에 습기를 더하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인가 차가운 가죽 소파에 몸이 깔렸다. 목덜미에 이빨자국을 남기며 가슴으로 이동해 간다. 가슴에 이빨을 세우며 잘근잘근 씹었다.

    “좀 살살요. 아파요.”

    “내 물건 내가 손대는 데 양해 먼저 구해야 하는 건가?”

    비웃듯이 말한 남자가 목덜미를 물듯이 애무하더니만 가슴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작은 신음을 살짝 흘리면서 이제는 익숙해져서 남자가 더 가슴을 만지기 좋게 자세를 살짝 바꾸고 가슴에 매달려 있는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결 좋은 관리 잘된 짧은 머리카락.

    곧 다리 사이로 남자의 몸이 파고들더니만 남자가 바지를 내리고 단단해진 남성으로 몸속으로 들이밀기 시작했다. 제대로 만지지도 않아 건조한 그곳에 들어오자 정신이 확 깰 정도로 고통스럽다.

    평상시보다 성급하고 거칠게 들어오면서 입구에 상처가 생긴 듯했다. 찌릿하는 느낌이 남자의 움직임에 따라 더 강해졌다. 저도 모르게 두툼한 가슴을 밀어내려 했지만 남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계속 강한 힘으로 찔러 오기만 했다. 아직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윤활액도 없었고 압박감과 고통만 있었다. 저절로 몸이 굳어지고 작은 신음이 새어나간다.

    “자, 잠시만요.”

    그를 제지하려 해보았지만 그는 그녀의 손을 쥔 채로 반항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대로 끝까지 넣고서 익숙해질 시간도 주기 전에 그냥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갔다 들어올 떄마다 점점 더 자기 구역을 넓게 차지하기 시작한 그것은, 고통과 다른 것도 만들어낸다. 이제 촉촉해진 좁은 통로를 가득 채우면서 계속 점점 더 깊이 들어오고 있었다. 자궁 경부까지 찌를 듯이 들어왔다.

    “아, 응…… 응!”

    그가 사정을 두지 않고 쳐올리기 시작했다. 몸이 흔들리자 무게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다 그의 목을 안았다. 그는 그 결합이 마음에 들었는지 더욱 그녀의 허리를 세게 쥐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빨리 움직이다 답답한지, 그녀의 한쪽 다리를 자기 어깨에 얹고 깊숙이 들이밀었다.

    그냥 멍하니 자신을 잊었다. 여기에 자신은 없다. 그냥 사용당하는 중인 몸만 있을 뿐이었다. 그냥 신혜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버리고 껍질뿐인 여자가 그저 남자의 몸에 흔들릴 뿐이었다.

    곧 남자가 뜨거운 것을 뱉어놓고 천천히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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