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일단 집중하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을 자랑하는 승규였다. 꽤 시간이 지나 있는 걸, 배가 고파 알게 되다니. 일요일 오후인데 월요일에 출근해서 일할 걸 대비해서 일하고 있다는 게 가끔 한심하기도 했다. 일은 계속 꼬리를 물고 일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계속 일을 하게 되었다. 지난 십 년간 일을 하고 승진하고 연봉은 오르고 쓰지도 못할 돈은 계속 쌓이고 주상복합 아파트를 사고, 차를 세 대 사고 땅도 사고 나름 리조트 숙박권도 사고 이것저것 사긴 했다. 그러나 인생의 공허함을 메워줄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또 약간의 빈 시간도 못 이기고 바로 머리가 딴 생각을 하지 않는가. 나가서 커피 한 잔에 가볍게 요기하고 다시 일이나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나 거실에 나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소파에 웅크린 채 자고 있는 여자였다.
아침에 잠자리를 한 후에 입힌 하얀 셔츠로 몸을 가리려고 애쓰면서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햇빛을 못 본 듯한 새하얀 속살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볕 좋은 검은색 가죽 소파에 여자는 웅크리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세상 모르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 자는 머리맡에 털썩 앉았다. 여자는 정말 평온하게 자고 있다, 그가 손을 들어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인기척에 깨었는지 눈꺼풀이 가늘게 떨리더니 눈을 떴다.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비슷한 광경이 과거에도 있었더랬지. 그를 기다리다 지쳐서 소파에서 자다가 깨서…….
그때 신혜가 놀랐는지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하얀 긴 와이셔츠 사이로 길쭉한 다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최대한 허벅지를 가리려 해도 가려질 리가 없었다. 순간 움찔하며 그의 손을 피하려고 하자, 그가 더 빨랐다.
그대로 그녀를 낚아채어서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손아귀를 움켜쥔 채 막무가내로 끌고 가는 남자의 손에 질질 끌려갔다. 우드 블라인드가 내려가 있어서 어두운 방 안에 들어가기 무섭게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침대에 밀쳐졌다.
하얀 셔츠에, 살짝 솟아 있는 가슴의 융기, 그리고 셔츠에 비춰 보이는 작은 유두까지, 그대로 셔츠를 한입 물었다. 침에 축축하게 젖은 천이 가슴의 정점에 쏠렸다. 여러 날 시달린 여린 살은 이미 상처가 나 있어서 작은 자극에도 쓰라려왔다.
허벅지를 벌리면서 자신의 몸 위에 자리잡은 남자가 입고 있는 브이넥 티셔츠를 벗어 휙 던져버렸다. 창의 우드 블라인드로 희미하게 들어온 오후 햇살에 비추인 남자의 단단한 가슴은 위협적이었다. 키만 해도 자신보다 20센티미터 이상 크지 않던가. 남자와 여자의 육체적 차이는 아직까지 그녀를 무섭게 만드렀다. 그녀가 아무리 저항해 보고 밀어봤자 그에겐 한입거리일 게 분명하니까.
넓은 어깨, 그에 비해 좁은 허리나,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팔이나 가슴까지, 이미 체격 자체가 달랐다.
남자가 딴 생각에 빠진 자신에게 집중을 요하듯 입술을 구해 왔다. 살짝 망설이듯, 거칠게 숨을 쉬고 있는 입술을 자신의 입으로 덮어버렸다. 그대로 입술을 가르며 들어온 혀가 요리조리 자신의 혀를 얽매고,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제압했다. 남자의 큰 손이 셔츠의 단추를 열고 있었다. 하얀 가슴이 오후 햇살이 스며든 방에 모습을 드러내자 남자의 목울대가 움직이면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정말 맛있다는 듯이. 그가 하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당신 가슴,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드는데.”
이 말을 그녀의 가슴에 대고 속삭였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대로 유두까지 입으로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이미 푸르스름한 자국이 군데군데 목과 가슴께에 나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날 괴롭혔든 말았든 자기가 만지고 싶은 대로, 깨물고 싶은 대로 깨물고 빨았다.
입술로 유두를 씹듯이 깨물었다. 과즙이라도 나올 것처럼 살짝 단단해진 그곳에선 단맛이라도 나는 듯했다.
“아, 아파요. 좀 살살…….”
그러나 남자 귀에 그런 애절한 호소가 들릴 리가 없었다. 이미 여자 옷을 벗기고 가슴이 나온 뒤로 그는 이성이고 뭐고 내던진 지 오래였던 것이다.
왜인지 모르지만 이 가슴이 마음에 들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지 않고 꽤 소담하면서 하얀 살성이 부드러웠다. 그리고 여자는 몸에 색소가 많이 연한 편인지 머리색이나 눈썹도 연한 갈색을 띠고 있었지만 연핑크의 입술처럼 유두도, 유륜도 색이 연했다. 심지어 음모조차 가느다란 머리카락처럼 부드러웠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고, 달걀 흰자처럼 부들거리는 가슴살. 그걸 한입 베어 물면 그 부드러운 살이 입에 들러붙는 듯했다. 이 몸은 그의 것이었다. 법적으로 그가 산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분간은 그 혼자 차지할 터였다.
부드러운 음모를 어루만지다 허벅지를 벌리고 그곳에 다시 손을 들이밀었다. 가느다란 몸이 움찔거렸을 뿐 일절 반항하지 않았다. 여자가 순순히 자신에게 항복한 데 대한 만족감과 함께 일말의 불안감 역시 있었다.
그냥 단순히 유순한 사람인 걸까. 아니면 자포자기한 걸까. 그러나 여자의 눈에 언뜻 보이던 그 강한 눈빛은 순수한 자포자기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항복한 이 몸을 승자가 즐길 시간이었다.
신혜는 남자가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처박고 게걸스레 빠는 걸 슬쩍 보다 도로 눈을 감아버렸다. 남자의 한손 역시 자신의 가슴을 욕심스레 쥐고서 만지고 있었다. 지난 몇 주 동안 익숙해진 것 중 하나였다.
남자가 가슴에 있는 손을 풀고 자신의 단단한 허벅지를 끼워 넣었다. 점점 더 단단하고 뜨거워지는 것이 허리에 닿고 있었다. 그가 불편한지 바지를 속옷채 벗어던졌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성을 어루만졌다. 몸의 상처가 조금 신경이라도 쓰이는지 겉부터 조심스레 만져왔다. 건조한 그곳에 손가락을 들이밀고 조금 왔다갔다 하면서 통로를 넓힌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이 늘어나자 살짝 통증이 왔다. 신음이 나올 거 같은데 참았다. 곧 그가 자신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가장 피하고 싶은 그 순간이 다시 와버렸다. 이미 죽음 앞에 포기해 버린 어린 동물을 찍어 누르는 작살처럼 그의 것이 그녀의 몸을 꿰뚫었다. 좁은 통로를 조금씩 벌리면서 들어오는 그것에 부들부들 허벅지가 떨리는 듯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그가 들어왔고 마침내 끝까지 들어와서 그녀의 안쪽을 다 채워버렸다.
“신기하네요. 이렇게 작은데도 몸을 뚫어버리지 않고 다 들어와버리니.”
그가 진짜 신기한 모양이었다. 워낙 가냘프고 말라서 정말 그의 남성에 몸이 꿰뚫리는 듯했다. 신혜가 양미간에 인상을 쓰고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가 다시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속 깊은 곳이 아프지만 그냥 참는다. 속절없이 흔들리는 거 외엔 방법이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그냥 멍하니, 흔들리고 아파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까슬까슬한 허벅지의 털이 그녀의 허벅지에 닿으면서 따끔거렸다. 심지어 몸에 난 털조차도 그녀와는 전혀 다른 것이 전혀 다른 종인 듯도 했다.
왠지 냉동된 생선처럼 눈을 감고 움직이기만 하는 여자가 마음에 안 들어버렸다. 뭐가 불만인 걸까. 여자에게 성의 즐거움을 교육이라도 시켜야 하는 걸까. 이 여자는 단순히 그의 쾌락을 위해 이곳에 있을 뿐인데. 그러면서도 여자를 괴롭히고 싶은 가학 심리가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목석처럼 누워서 냉동 고등어 흉내내는 여자 안는 것도 슬슬 지겨워.”
그 말을 한 그가 갑자기 그녀의 몸에서 휙 비켜났다. 몸속에 있던 것이 거칠게 빠져나가자 자기도 모르게 읍 하고 작은 신음을 흘렸다.
눈을 뜨고 남자를 바라보며 깜박거렸다.
“남의 돈 받아먹고 사는 거 얼마나 어려운 줄 모르나 보네? 술집에서도 당신같이 목석처럼 굴면 인기 없다고. 웃지도 않는 여자 내가 왜 힘들게 않아?”
“날 여기 앉힌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잖아요.”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답이 나갔다. 뭔가 가슴에서 울컥했다.
“그럼 나가던가.”
“나가면요?”
“나가면 뭐, 소송 들어가는 거지. 철저하게 벗겨 먹여주지. 내가 그건 좀 잘하거든. 소송까지 가면 다행이고, 아님 뭐 다른 사금융에 넘겨버리던가. 그런 데 가면 그 고운 몸 보전하기 힘들어질 거야. 요즘 세상이 흉흉해서 말이지.”
신문에서 사채 썼다 사창가로 끌려간 여자 얘기야 심심찮게 등장하는 거 아니던가. 눈을 질끈 감고 어떻게든 이 사람 뜻대로 해주면서 사 년을 버텨야 하는데 시작부터가 힘들었다. 지금 자기를 도발하려고 괴롭히려고 한 얘기란 걸 알면서도 또 거기에 넘어간 바보 같은 자신을 원망했다.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시킬 맘이라도 나게 만들어.”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요?”
“그 가련한 표정부터 어떻게 하지 그래?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싫은데 돈 때문에 꾹 참는 거예요 라고 노골적인 표정을 지으면 누가 하고 싶어질까 응? 안 그래? 그런 거 보는 것도 한두이틀이지. 갈수록 당신 질리는 거 알아? 웃어도 지루해지는데 그렇게 도살장 끌려온 소 같은 표정이나 짓고 쯧쯧. 몸 파는 것도 다리 하나만 벌리는 줄 알아? 고객 끄는 기술 하나 없이 그냥 막 대주기만 하는 거 같지?”
그의 비아냥거림에 신혜는 입매를 굳히고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여기에 그대로 넘어가 도발해 봤자였다. 가슴에 입는 상처 같은 건 나중에 핥을 시간이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엎드려요.”
또 갑작스레 그가 지시했다.
“네?”
어리둥절해서 뭐라 하기도 전에 그가 우악스레 먼저 손을 갖다대고 그녀의 몸을 뒤집고 일으켜 세웠다. 강제적으로 엎드린 상태에서 그가 허리를 쥐었다. 그리고 등 뒤에서 그의 남성을 그녀 안으로 넣기 시작했다.
“정상위로 하면 가슴 만지기가 어려워서요. 일단 시작은 했으니까 끝내긴 해야지.”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는 남자가 징그럽기까지 했다. 남자는 말대로 그녀의 가슴을 집요하게 만지고 있었다. 단단해진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잡아당겼고. 한 가득 쥐었다 놓았다 반복하면서 괴롭혔다. 계속해서 깊숙이 점점 쳐들어오는 그의 남성과 집요한 괴롭힘에 점점 정신이 나가고, 힘이 빠졌다.
등 뒤에서 그가 허리를 쥐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서 자꾸 팔이 꺾이자 답답했던지 그가 자신의 허리를 안고 움직였다. 그대로 이불자락을 쥐고 있는 손에서도 힘이 풀렸다. 결국 신혜의 팔이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지자 그가 대신 엉덩이를 쥔 채로 빠르게 움직였다.
거의 상체를 그녀의 등에 갖다대어 뒤에서 완전히 감싸 안고 있었다. 귓가에 남자의 거친 호흡소리가 들리고 그가 거친 동작으로 크게 한 번 갖다 박고 낮은 신음을 귓가에 흘렸다. 그리고 그녀와 함꼐 거의 옆으로 쓰러졌다.
그는 몸을 뺄 생각도 하지 않고 신혜를 안고서 가슴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의 품에 완전히 갇힌 채인 신혜도 기운을 완전히 소진해서 가뿐 숨만 몰아쉴 뿐이었다. 허벅지 사이로 미적지근한 게 흘러나오는데 몸에 힘이 빠져서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옆의 남자도 그새 잠이 들었는지 규칙적으로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가 일어나기 전에 나가야 하는데 몸이 나른하고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 일어나야지…….
결국 기절하듯 잠이 들었던 거 같았다. 퍼뜩 인기척에 깨었을 때 밤이었다. 어두운 공간에 옆에서 자고 있는 뜨거운 몸이 느껴졌다.
그의 옆에서 잔 게 처음이었다. 그의 침대에, 등 뒤에 있는 게 그라는 걸 알자 정말 펄쩍 뛰고 싶었다. 일단 조심스레 움직이려던 차에 등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수정아, 수정아, 조금만, 응?”
그녀를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껴안았다. 다정하게 어르는 듯한 목소리는 그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았다. 상냥한 목소리로 그녀를 안고 목덜미에 턱을 부벼대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가슴을 쥔 손에서 곧 힘이 빠졌다.
이 사람도 다른 여자에게는 상냥하구나. 왜 자기에게만 이렇게 못되게 구는 걸까…….
*
모니터 앞에서 자꾸 숫자가 두 개로 보이려 했다. 어찌나 피곤한지 그렇게 안 빠지던 볼살이 드디어 조금 빠지기까지 할 정도였다. 아침에 출근할 때 화장대로 파운데이션을 바르다 보면 눈밑 다크서클이 흉할 정도였다. 안 되겠다 싶어 잠시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 있는데 살짝 졸고 있을 때 밖에서 우르르 여자들이 들어오는지 하이힐이 타일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유신혜 말이야. 좀 달라지지 않았어? 왜 매일 데려다주고 가끔 태우러 오는 남자들 있잖아.”
“남자들이야, 남자야?”
“그걸 어떻게 알아?”
“차가 한두 대야? 세 대잖아. 무려 세 대! 그중 두 대는 외제차고, 한 대는 국산 대형차라면서?”
“능력도 좋아. 남자 셋을 농락하고.”“에이. 설마. 걔가 뭐가 봐줄 만하다고.”
“근데 왜 매일 태워다 주겠어? 삼 주째야. 지금 난리도 아냐. 다른 층에도 소문이 자자하다드만. 출근할 때 술냄새도 난다면서?”
“전에 누가 그러는데 선릉역 있는 데 룸살롱 있는 거리 있잖아. 거기서 봤댄다. 거기서 남자랑 팔짱 끼고 모텔로 들어가더래.”
“어머, 어머. 그럼 룸살롱 나가는 거야?”
“그렇다던데. 그래서 룸살롱에서 본격적으로 일하려고 그만두는 거래.”
“야, 룸살롱에선 아무나 일해? 걔 얼굴도 몸매도 별거 없잖아. 옷도 촌스럽게 입고 다니고.”
“요즘 좀 예뻐진 거 같지 않아?”
“역시 여자는 남자 양기를 섭취해야 피부도 좋아지고 그러는데…….”
그런 얘길 아무렇지 않게 하는 여자들 대화가 소름이 오싹 돋았다. 빨리 그만두고 여길 탈출하지 않으면 그 전에 말라죽을 거 같았다.
“확실히 애가 전에 없던 색기가 생긴 거 같아. 전엔 그냥 좀 맹추 같았잖아. 지난번에 왜 셔츠 사이로 살짝 브래지어가 보이는데 장난 아니더라.”
이 목소리는 낯익은 게 천 대리 같았다.
“어땠길래?”
자기 속옷까지 훔쳐봤다는 게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검정색이랑 핑크색 레이스가 섞여서 아주 요염하던데, 그거 진짜 룸살롱 아가씨들이나 입을 법한 그런 거더라. 혹시 알아, 진짜 룸살롱에 나갈지?”
“에이, 유 대리 그렇게 막 나가지 않아.”
누군가 설마 그러니까
“왜 그런 말 있잖아.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하기야 얌전한 고양이긴 하지.”
강제로 부뚜막에 올라앉은 건지 스스로 올라간 건지 누가 안다고.
회사에서는 계속 시끄러운 소문이 있었지만 결혼하나 뭐 청첩장 언제 주냐 이런 얘기 들에 신혜가 일절 답하지 않아서 그 뒤 묻는 사람이 없었는데 뒤로는 이런 소문이 돌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냥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냥 이대로 조용히 지나가기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오래 볼 사람들도 아니었고 당장의 일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니까. 그냥 조용히 동면하는 개구리처럼 납작하게 몸을 붙이고 추위가 지나가기 기다려야 했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꾸벅꾸벅 졸다 퍼뜩 눈을 떴다. 틀어놓은 케이블 방송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어느새인가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그는 오늘도 늦는다. 일찍 들어와봤자 10시이고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새벽에 들어와서 옷만 갈아입고 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는 언제쯤 들어올까.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묶인 개처럼 그를 기다린다.
그때 오토락이 딸깍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이 집의 주인이 들어온 것이다.
“여어!”
그가 손을 들어서 그녀에게 인사까지 건네었다. 술을 먹었는지 위스키 냄새와 담배 냄새가 섞여 슬쩍 났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술자리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걷는 모양새나 얼굴에는 술을 마신 티가 조금도 나지 않았다. 밤마다 대리기사가 모는 차에 실려 들어오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는 술에 취해도 반듯했다.
그녀 옆에 털썩하고 앉더니 입고 있는 재킷의 단추를 풀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했다.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신혜가 냉장고 디스펜서에서 얼음과 생수를 따라 갖고 왔다.
“드세요.”
그가 유리컵을 쥐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목울대가 꿀꺽하고 움직였다. 물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자, 갑자기 기이한 주문을 했다.
“양말 좀 벗겨줘.”
“네?”
“양말 좀 벗겨 달라고.”
두 번 말했으니 세 번째 말할 때는 분명 화를 낼 것이다. 신혜는 급하게 무릎을 꿇고 그의 발치에 앉았다. 쭉 뻗은 다리의 구김 하나 없는 양복 바지의 단을 살짝 위로 올리고 양말을 내렸다. 그가 벗기기 편하게 다리를 살짝 들어주었다. 한쪽 양말을 벗긴 뒤에, 다른 쪽도 마저 벗겼다. 일어서려 할 때 그가 발을 뻗었다.
길쭉한 하얀 발. 남자치고 피부가 하얀 편인데 키가 커서인지 발도 길쭉하고 날렵했다. 그 발을 뻗어 그녀의 가슴을 향했다. 발가락으로 가슴을 쿡 찌르자 뒤로 흠칫 하고 물러섰다.
“큭!”
그가 그녀를 보고 갑작스레 웃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옷 벗겨줘.”
“네?”
“옷 벗기라고. 다시 말해 줄까?”
그 말에 신혜가 그의 옆에 앉아 헐겁게 풀어놓은 넥타이를 풀어서 옆에 놓고 재킷을 벗겼다. 그가 팔을 들어주는 동작 정도는 도와주었지만 정말 그대로 보고만 있었다. 이미 단추 하나가 풀린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기 시작했다. 작은 단추가 자꾸 손에서 빠져나간다. 그동안 그가 그녀의 몸을 만졌어도 그녀가 먼저 그의 몸에 손을 댄 적은 없었다. 단단한 가슴, 그녀의 융기한 가슴을 납작하게 누르는 그 가슴에 손이 간 적은 없었다. 하얀색 주름조차 가지 않은 와이셔츠를 벗겨서 재킷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저건 내일 세탁소 좀 보내.”
어느새 날이 제법 더워져서 6월이 되어 있었고 신혜도 이번 주에 퇴직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를 본 게 늦봄이었던 듯한데 어느새인가 계절이 바뀐 것이다.
“아, 정부라서 가정부가 할 일은 안 하시나?”
그녀의 대답이 없자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내일 보낼게요.”
하얀 와이셔츠 속에는 하얀색 속옷, 이제 벨트를 풀고 바지를 벗겨야 하는데 차마 손이 가지 못했다. 주저하는 그녀를 보고 그가 다시 말했다.
“뭐 해? 마저 벗겨야지.”
결국 떨리는 손으로 벨트를 푸르고 지퍼를 내렸다. 바지 속에 입고 있는 검정색 브리프가 눈에 들어오자 고개를 살짝 돌렸다. 자기도 모르게 귀까지 벌개져버렸다. 한 달이 다 되었는데도 아직 그의 몸을 보는 게 무서웠다.
그때 갑자기 그가 팔을 잡아 당겼다. 순식간의 그의 몸 위로 털썩 끌려갔다. 그대로 뒤통수를 낚아채어 입을 벌린다. 부지불식간이어서 입술을 벌리며 들어온 뜨거운 혀가 온 입안을 휘젓고 그가 마셨던 위스키의 맛이 온 입안에 퍼졌다. 혀를 휘감으며 입을 빨아들이고 혀를 휘감았다. 그대로 숨 쉴 여유도 없이 그의 혀에 계속 쫓겼다.
놓여나기 무섭게 그가 자세를 바꾸어서 그대로 그의 단단한 몸 아래에 깔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는, 역광을 받아서인지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싶을 때가 많았다. 그냥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만.
그가 목덜미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그가 시키는 대로 입고 있는 소매 없는 얇은 원피스 위로 길쭉하게 나와 있는 하얀 목에 거침없이 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도톰한 귓불을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손도 어느새인가 원피스 자락 속에 들어가서 브래지어를 푸르고 있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옷을 들어서 거의 가슴께로 둘둘 말아 올렸다. 환한 빛 아래 몸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가져갔다. 한쪽 가슴을 한 입 베어물고 다른 손으로 가슴을 괴롭힌다.
“불…… 꺼주세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처박고 있다 고개를 들고 그녀와 눈을 마주한 채로 삐뚜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건 안 되지. 내가 돈 주고 사서 돈 내고 사용하는 물건인데 구경은 해야 할 거 아닌가? 구경 좀 하고 싶은데?”
그의 단호한 거절에 그녀가 눈을 감아버렸다.
환한 불빛 아래에 검정색 가죽 소파에 창백할 정도로 하얀 몸이 누워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나, 쏙 들어간 허리나 제법 불룩한 가슴까지 완벽하다. 숨을 들썩이며 긴장해서 누워 있는 여자의 기다란 속눈썹이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목이 꿀꺽 하는 게 긴장해 있다. 다가올 순간이 무서운 거겠지. 아직도 몸을 들이대면 무서워서 발발 떨기만 한다. 이제 냉동 고등어 같은 여자 안는 것도 슬슬 시시해지는데 다른 방식으로 해볼까.
그녀의 입구를 슬며시 만져보았다. 부드러운 음모 속에 감추어져 있는 좁은 그곳은 단단한 그의 남성이 들어가기에 터무니없이 작은 듯했고 아직 제대로 젖어 있지도 않았다. 계속 시달렸으니 좀 아플 법도 하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놔줄 거냐면 그건 아니었다. 대신 그녀를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일에 동조를 시키면 될 일이었다. 아프지 않을 때까지 익숙하게 만들면 될 터였다. 쾌감이란 게 어떤 건지 몸이 알게 되면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움직이게 될 터.
그가 손가락으로 음모를 해치고 작은 살점을 살짝 쥐었다 놓았다. 신혜가 살짝 당황하며 다리를 흔들었지만 그의 몸에 눌려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가 그것을 살짝 쥐었다 놓는 그 순간, 아랫배에 뭔가 찌릿 하고 하는 것이 지나가는 듯했다. 순간 숨을 헉 하고 들이마시자 그가 다시 그것을 쥐고 손톱으로 가볍게 긁으면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신혜는 그가 전에 잠깐 했던 대로 그것을 쥐고 살짝 문지르자 순간적으로 온몸을 스치는 짜릿한 전율에 숨을 몰아쉬었다.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런 배덕감에 자신도 실망스러웠다. 단순한 돈에 오가는 관계인데 흥분할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몸이 아니게 되는 것 같았다. 이런 무서움 속에서도 몸에는 익숙치 못한 감정들이 쌓이고 입이 저절로 벌어져 작은 소리를 만들었다.
“아…….”
그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았는지 다시 손을 입구로 넣었다. 아까보다 조금은 느슨해져서 살짝 습기를 머금은 게 느껴졌다. 다시 손가락을 더 넣어서 입구를 늘리기 시작했다.
신혜는 처음 같은 압박감도 줄었고 갑작스레 몸에 열이 확 돌아서 당황할 찰나도 없이 다시 그가 몸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아프지도 않았고 그가 들어오면서 뭔가 낯선 것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랫배를 짜릿하게 만드는 그것이 점점 더 깊숙이 들어올수록 눈을 감고 있는데도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만들어지는 고통 속에 열기와 또 다른 낯선 것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온몸에 퍼져나가서 몸을 나른하게 만들고 무엇보다 아랫배에 조금씩 쌓여갔다. 몸을 짜릿하게 만드는 낯선 것, 아랫배를 자극하는 그것에 정신이 혼미해지려 했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듯했고 몸이 깊은 곳으로 부웅하고 올라가는 고양감마저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 내는 것조차 본인이 모를 정도였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의 등 뒤에 손을 두르고 등을 긁었다.
“응, 아……, 아……!”
어느 순간 높은 곳까지 끌려올라가 순식간에 폭발해 버렸다. 온몸의 근육이 떨리는 듯한 충격파가 몸속 깊은 곳에서 퍼져나왔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의 낯선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에 자신을 묻고 있던 그도 폭발했다. 뜨거운 것이 몸속 깊은 곳으로 퍼져나갔다.
정신을 차렸을 때 차가운 가죽 소파 위에서 남자의 등을 여전히 안고 있었다. 목가에 남자가 거친 호흡을 토해 내고 있었다. 신혜가 화들짝 놀라 손을 떼자 남자 역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를 곁눈질로 슬쩍 노려보더니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
문 열리는 소리에 시계를 보니 여덟시밖에 되지 않았다. 집에 들어올 사람이라곤 그밖에 없었다. 이렇게 일찍 퇴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식사는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 말고 손을 닦으면서 나와서, 상냥하게 물어보는 그녀에게 무뚝뚝하게 승규가 답했다.
“먹었어.”
그 말을 한 그는 바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신혜는 눈치를 보다 그냥 부엌에서 뒷정리를 하는 사이 그는 다시 자기 서재에 칩거했다.
침대 머리에 기대어서 책을 보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그가 자기 방으로 오라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보던 책에 책갈피를 넣어 책상 위에 놓으려는데 그가 그대로 손목을 쥐고 잡아당겼다. 책이 바닥에 떨어지자 신혜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질질 끌려가면서 그를 멈춰 세우려 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왜? 안 돼?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여태 없었던 거부에 살짝 인상이 써졌다. 눈을 부릅뜬 채 노려보는 승규의 눈치를 신혜가 살살 보았다. 얼굴이 빨개진 걸 보면 말하기 곤란한 모양이었다.
“오늘은 좀 힘들 거 같아요.”
“왜?”
“생리 중이에요.”
그녀의 머뭇거리면서 나오는 말에 승규가 굳었다.
신혜가 슬며시 눈치를 보았을 때 승규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읽기 어려웠다. 늘 그렇다.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움직일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신혜가 잠시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 꼭 하고 싶은데?”
정말 오늘 꼭 자기를 안아야만 하는 걸까.
그의 목소리에 숨은 흥분을 읽은 신혜가 주춤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그의 손이 매처럼 어깨를 틀어쥐었다. 절대 그냥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 듯한, 그의 강철 같은 손아귀가 양쪽 어깨를 감싸쥔 채 다시 그의 방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냥 안고 자려고 그 방으로 끌고 갈 리가 없었다. 처음 두 밤을 재운 이후 이 남자는 그녀를 이 침대에서 재운 적이 없었다. 심지어 처음조차 소파 위가 아니었던가.
“오늘 나랑 섹스할 수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즐겁게 만들어봐.”
그의 명쾌한 말에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다 순식간에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어두운 사이드조명에도 붉게 달아오른 작은 얼굴이 보였다.
“무릎 꿇고 시키는 대로 해.”
이제 그가 시키는 대로 잠옷 대신 입고 있는 실크 슬립은 가슴 선이 그대로 다 드러났다. 브래지어도 하지 않아서 핑크색 유두가 오뚝 서 있는 것까지 했다.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여자에게 그가 느긋하게 지시했다.
“뭐해?”
남자가 절대 봐줄 의사가 없음이 확실했지만 차마 남자의 바지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자 망설이고 있었다. 이 남자의 몸을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직접적인 성행위는 이 남자의 주도하에 되었고 사실 그녀는 이 남자의 몸을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었다.
남자치고 좀 하얀 편인 피부에 작은 갈색의 젖꼭지. 그리고 배꼽 아래에서 시작되는 검은색 체모들. 그게 그냥 몸에 닿을 뿐이지, 능동적으로 자기가 움직여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그가 답답한지 속옷을 내리고 이미 살짝 형태를 띠기 시작한 그것을 꺼내었다. 여자의 손을 쥐어서 직접 쥐어주었다. 마지못해 그 흉측한 것을 손에 쥐었다. 자신의 몸을 해집는 흉기. 자신의 손에서 인간의 살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드럽고 뜨겁고 단단해지고 있었다.
신혜는 생각보다 부드러운 살에 조금 놀랐다. 뜨겁고 단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부드러울 줄은 몰랐다. 이렇게 부드러운데 어떻게 자기 몸을 가르고 들어올 때는 그렇게 폭력적인 걸까.
손으로 쥐고서 가볍게 흔들었다. 그러나 남자가 맘에 안 드는지 얼굴을 쥐고서 정확하게 입이 자기의 남성에 오게끔 조정했다.
입을 벌린 채 그것의 끝을 살짝 입에 머금었다. 짠맛이 난다. 살짝 구역질이 치밀어오를 거 같은데 꾹 참았다.
순간 승규는 여자의 작은 혀가 그의 것을 살짝 핥는 걸 보는 순간, 그대로 갈 뻔했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여자의 볼을 쥐고서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인도해 버렸다. 꼭 감은 눈의 속눈썹이 어두운 붉은 조명에 볼에 그림자를 만들어내었다. 동그란 하얀 이마나, 작은 귀 뒤로 넘긴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 그를 머금은 붉은 입술. 그의 단단해진 그것이 보드라운 장미꽃잎 같은 붉은 입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는, 그것만으로도 이미 시각적으로 가버릴 정도로 자극의 역치가 충분했다. 그러나 엄청난 인내심으로 참아버렸다.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미간에 주름이 갔다.
“당신이 여기 있는 동안 생각할 건 이 몸으로 나를 어떻게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나 뿐이야. 그게 당신이 빚 청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알아들었어?”
평소보다 더 탁하고 낮은 소리로 협박을 했다. 이건 자기에게 하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손대면 그대로 눈물을 터트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끝내 울지는 않았다. 눈물이 맺힐 듯한 눈망울로 잠시 그를 보다 눈을 꼭 감고 그의 것을 열심히 빨기 시작했다.
점점 더 단단해지는 그것이 자신의 입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크게 벌린 턱이 얼얼해지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사용된다라는 것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가 느릿한 그녀가 답답한지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쥐고 그대로 자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 깊은 곳까지 그대로 퍽퍽 치면서 들어오는 것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전혀 봐주지 않았다. 끝까지 자기 욕망에 충실했다.
그리고 남자가 손을 떼는 순간, 그대로 뒤로 밀려나 나자빠졌다. 그 순간 뜨거운 액체가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뿜어졌다.
남자는 무심하게 티슈를 뽑아서 자신의 몸에 묻은 체액을 닦아낼 뿐이었다. 그가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을 빼면서 쓰러진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희뿌연 체액이 입 주변과 목과 가슴께까지 잔뜩 튀어 있었다. 여자는 잠시 널브러져 있다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남자는 그대로 여자를 두고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욕실로 들어온 승규는 옷을 벗고 욕조에 샤워커튼을 치고 물을 틀면서 작은 소리로 욕을 했다. 제길.
다시 그의 분신이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자신의 정액으로 젖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죽었던 그것이 다시 살아나버렸다. 그런데 이미 눈물, 콧물로 엉망이 된 여자에게 다시 시키는 건 차마 할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대로 들어와버렸던 것이다.
꼭 감은 눈, 지저분해진 얼굴에 뿌려진 그 하얀 정액에 왜 그렇게 순간 또 갈 뻔한 걸까.
그냥 사용하기 위해 데려왔을 뿐인 여자였는데…….
신혜는 티슈로 얼굴에 묻은 끈적거리는 액체를 기계적으로 닦아내었다. 치욕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은 그의 노예이다. 이런 것은 당연하다.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을 세뇌시킨다. 그러나 눈물이 후두둑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남자가 나오기 전에 이 자리를 피하는 것 그것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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