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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114화 (114/121)

114화. 히든루트 (4)

이쯤 되면 그래, 베로니카가 어떤 식으로든 위험해질 팔자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레나 엘모어와 조지 캠벨은 같은 위험으로부터 베로니카를 지키려 했던 걸까?

그렇다면 베로니카에게 닥칠 위험이란 누구에 의한 것이었을까.

당연하다는 듯 떠오르는 것은 만악의 근원인 메이슨 교단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베로니카에 대한 교단과 교주의 태도는 한결같이 호의적이었다.

죽이면 안 돼……!’

심지어 벤자민 홉스가 아리아에 의해 정신을 잃기 직전 외쳤던 그 말은 아주 절박하기까지 했다. 정말 기이하게도.

그래서 나는 이곳에 왔다.

“안녕…하신 것 같지는 않네요.”

유리벽 너머의 벤자민 홉스는 며칠 사이 눈에 띄게 수척해진 상태였다.

듣기로는 달리 자살기도를 하지만 않을 뿐, 삶의 희망을 죄다 잃기라도 한 듯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나.

하지만 그런 것치고 그는 나를 퍽 반기는 눈치였다.

나는 잔뜩 퀭해진 채 절망에 차 있던 눈이 나를 목도한 이후부터 기괴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물론 딱히 희망이나… 대강 그 엇비슷한 종류의 긍정적인 무언가로 보이는 빛은 아니었다.

그것은 차라리 어떤 광기에 가깝게 느껴졌다.

끝내 실패하고 몰락하고 절망했으나, 그렇게 떨어진 지옥에서 자신이 영영 외롭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을 얻은 듯한 표정.

나는 그 몹시도 기괴하고 상당히 불쾌한 얼굴을 보며 어쩔 도리 없이 미간을 찡그렸다.

대체 이 상황의 무엇이 저 남자로 하여금 저런 표정을 짓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심정이 들었지만 그럴 수야 있나.

나는 물어야겠다 결심하고 온 질문들을 떠올리며 불쾌감을 애써 억눌렀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곧장 첫 번째 궁금증을 꺼내들었다.

“서론은 생략하죠. 우선은 그날의 설명을 이어 듣고 싶어요.”

“그날의 설명이라 하심은.”

“백부님이 어째서 배신자인가요?”

에드워드 녹스가 말한 배신자는 레나 엘모어였다. 하지만 저 남자는 조지 캠벨을 배신자라 칭했고.

벤자민 홉스는 내 질문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는가 싶더니, 별안간 쇳소리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꺼낸 질문의 어디에 웃음을 유발할 만한 지점이 있었나 싶었지만,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미친놈을 상식적으로 이해하려 들면 못 쓴다. 갑자기 웃고 싶어졌나 보지, 뭐.

그렇게 내가 의미 없는 의문을 쳐내는 사이 웃음을 멈춘 벤자민 홉스는, 여전히 웃음기가 남은 낯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감히 교단의 뜻에 반해 자기 조카를 빼돌리려 했기 때문이지요.”

그는 마치 조지 캠벨이 국외로 빼돌리려 했던 조카가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고, 나는 몹시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조지 캠벨에게 동기라곤 헨리 캠벨 하나다.

그리고 그 헨리 캠벨의 외동딸이 베로니카 캠벨이니, 조지 캠벨의 조카라고 칭해질 인물도 당연히 베로니카 하나뿐인데.

그야 물론 나는 베로니카 캠벨이 아니지만, 그걸 저 남자가 알고 있을 리도 만무한데.

왜 저런 표현을 사용하는 거지?

그것은 정말이지 기묘한 화법이었지만, 굳이 꼬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질 만한 의문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곧장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그날… 당신이 정신을 잃기 직전에, 날 죽이면 안 된다고 했던 이유는 뭐죠?”

그 뒤에 이어진 대답은 앞선 답변만큼이나 기묘하고, 짜증 날 정도로 추상적인 것이었다.

“무사히 귀환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찌 여행의 끝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왜 하필 그 시점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그렇게 되물어온 순간 나는 이전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어떠한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벤자민 홉스는, 교주로서 나와 마주한 이래 단 한 번도 나를 ‘남작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

“남작님!”

벤자민 홉스와의 면회를 마치고 나오던 나는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복도를 가로질러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멜리사가 보였다.

“위브 수사관님.”

며칠 만에 만나는 멜리사 위브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피곤한 낯을 하고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만면에 떠오른 반가운 기색이 없었다면 좀비가 걸어오고 있다고 착각했을 법한 몰골이었다.

딱한 모습이었지만 이해하지 못할 모습은 또 아니었다.

메이슨 교단 사건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수사국 전체가 밤낮없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며칠 전까지 조사에 협조하면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이었으므로.

“여전히 바쁘신가 봐요.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원래 이런 직업인걸요. 이번 사건은 일하는 보람도 충분히 있고요.”

멜리사가 씩씩하게 말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차마 마지막으로 퇴근한 게 언제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때아닌 철야와 과로에 시달리는 수사관들을 의리도 없이 내버려둔 채 혼자 잘 먹고 잘 쉬고 있다는 사실이 괜스레 미안해져서였다.

그러나 얄팍한 죄책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초대형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민간인’치고 나는 이만하면 차고 넘치는 공헌을 한 셈 아닌가.

사건 관계자로서의 의무는 충분히 다 했으니 이제는 플레이어로서의 역할에 집중할 때다.

그러니까 며칠 만에 만난 멜리사가 걸어 다니는 시체 같은 몰골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내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내심 고개를 주억이던 나에게, 퀭한 눈의 멜리사가 돌연 질문을 건네왔다.

“저, 남작님. 로웰 씨로부터는 여전히 아무 소식이 없는 상태인가요?”

대수도원에서 함께 사람들을 구하러 다니며 동지의식이라도 싹튼 모양인지, 그녀는 밀리엄의 안부보다도 제임스의 소식을 먼저 물어왔다.

나는 씁쓸한 미소와 함께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사건 다음 날 종적을 감춘 이후로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제임스 로웰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밀리엄은 ‘이제 퇴원도 했으니 본격적으로 그의 행방을 찾아봐야겠다’고 말했고 나 또한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문제는 단서라 할 만한 것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애초부터 가지고 들어온 짐이 적은 탓도 있었겠으나, 그가 켄트우드 저택에서 쓰던 방에는 아주 작은 소지품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이 쓰기는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끔하게 정돈된 방을 보며 나는 어쩐지 제임스가 충동적으로 사라진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 감이 잡히지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걸까.

기억을 되찾고 싶으니 곁에 있게 해달라며 밀리엄에게 매달릴 땐 언제고…….

“남작님.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요. 혹시 로웰 씨, 기억을 되찾은 게 아닐까요?”

……음?

때마침 튀어나온 멜리사의 가설에 나는 그녀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멜리사는 아주 긴밀한 이야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추고, 꽤나 진지한 투로 말을 이어갔다.

“일전에 로웰 씨가 저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거든요. 본인이 선배님한테 뭔가 크게 잘못한 게 있는 모양인데 혹시 아는 게 없냐고요.”

“저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긴 해요. 아는 바가 없어서 대답하진 못했지만.”

“저도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어서 모르겠다고 했는데, 어쩌면 로웰 씨가 그 잘못을 기억해낸 게 아닐까 싶어요. 기억해내고 보니 도무지 선배님을 볼 염치가 없어서 말없이 떠나버린 거죠.”

멜리사의 추측을 들으며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생각에 잠겼다.

글쎄. 그 작자가 밀리엄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딱히 염치가 없다는 이유로 떠났을 것 같지는 않다.

챙길 염치란 게 있는 인간이 미쳤다고 그런 짓을 했겠는가?

하지만 기억을 되찾았을지 모른다는 가설 자체는 아주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제임스 로웰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은 거라고 가정해보자.

기억을 되찾고서, 굳이 아무 말 없이 사라져버릴 만한 이유는 뭘까.

다시 생각해봐도 ‘밀리엄을 볼 면목이 없어서’ 같은 상식적이고 멀쩡한 이유는 아니리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내가 아는 제임스 로웰은 뻔뻔하게 밀리엄과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으면 했지 결코 그로부터 도망칠 위인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도망이 아니라면, 그가 갑작스레 종적을 감추며 의도한 바는 대관절 무엇인가.

그리고 그렇게 사라져 향할 만한 곳이라면…….

아, 설마.

갑작스레 뇌리를 스쳐 간 발상에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런 뒤 멜리사를 향해 다급히 말했다.

“위브 수사관님. 감사해요.”

“어…… 네?”

“덕분에 로웰 씨가 갔을 만한 곳이 떠올랐어요.”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멜리사에게 짧은 인사를 건넨 뒤 그대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 시점에서, 기억을 되찾은 제임스 로웰이 향했을 만한 장소.

그곳은…….

***

“베로니카, 어딜… 가자고요?”

“그레이스톤 섬이요. 밀리엄.”

선명한 금빛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되물어오는 밀리엄을 향해 나는 다시 한번 또렷이 그곳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곳에 가서 로웰 씨를 찾아봐요.”

찾아보자고 말했지만, 기실 나는 제임스 로웰이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반쯤 확신했다.

그레이스톤 섬.

사람이 살지 않는 남부의 고도. <레드 헤링>의 배경이 되었던, 바로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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