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히든루트 (2)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아주 오랜만에 마주하는 듯한 거대하고 화려한 캠벨 저택 앞에서 나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현관에 선 채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시선을 내리니, 허겁지겁 달려 나오고 있는 노집사 비어슨 씨의 모습이 보였다.
“나, 남작님. 미리 기별이라도 주셨으면 맞이할 준비를 해두었을 텐데…….”
“준비된 상태를 보러 온 게 아닌 모양이죠.”
“……예?”
“저도 충동적으로 왔다는 뜻이에요. 설마 제가 여길 비워뒀다고 그간 저택 관리에 소홀하셨던 건가요?”
지난 방문 이후 나는 별도의 인원 감축이나 물갈이 없이 기존의 고용인들을 그대로 유지해두었다.
이런 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였지만, 내 의도야 어쨌든 이곳에서 오래 일한 고용인들은 베로니카에게 지은 죄가 있는 입장 아닌가.
양심이 있고 이 저택에서 계속 일할 의사가 있다면 그들은 내가 이 집을 계속 방치하는 중이라고 해서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는 것은 물론 핑계다. 월급루팡은 모든 근로자의 꿈이고 나는야 지극히 상식적인 현대인.
집주인이 쓰지도 않는 저택 관리를 좀 소홀히 했다고 해서 이곳 고용인들을 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죄 없는 어린애를 그런 식으로 박대하는 일에 일조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이 고까워서, 이런 식으로라도 눈치를 주고 싶다는 고약한 심보가 발동한 것뿐이다.
그러나 그런 심보에서 비롯된 언행들이 으레 그렇듯, 마주한 결과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애당초 눈치 좀 보라고 말을 꺼낸 주제에, 정작 정말로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며 절절매는 집사를 앞에 두고 보니 죄책감을 동반한 찝찝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딱히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갑질을 해버린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세상에, 갑질이라니. 내 기준에 그것은 월급루팡보다 백만 배는 질이 나쁜 짓거리였다.
하여간 기분이 영 좋지 않아진 나는 이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을 정정하기로 했다.
“농담이에요. 저는 제대로 관리된 저택과 그렇지 않은 저택을 구분할 안목도 없는걸요. 쉬엄쉬엄 일하실 수 있을 때는 그러시는 게 좋죠.”
“그,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남작님. 남작님께서 부재중이실 때에도 저택을 부족함 없이 관리하는 것은 제 의무가 맞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지만요…….”
돌봄이 필요한 어린애를 홀대한 사람 입에서 의무 어쩌고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그리 좋게 들리지 않았으나 나는 그 부분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또 분위기가 썩어버릴 테고, 반쯤 충동적으로나마 이곳을 찾아온 입장에서 그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조지 캠벨이 없는 지금, 내가 들고 온 의문에 그나마 해답 비슷한 것을 내어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아주 오래전부터 캠벨 일가를 모셨다는 저 집사 양반뿐이니까.
“아무튼 비어슨 씨. 다른 고용인분에게 응접실로 차 두 잔을 준비해달라고 전해주시겠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마는… 두 잔이라면 혹 손님이 오실 예정인지요?”
“아니요. 한 잔은 비어슨 씨 몫이에요.”
“예……?”
“제가 좀 궁금한 게 있는데 달리 답을 주실 수 있을 만한 분이 떠오르지 않아서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을 전한 뒤에 바로 응접실로 와주세요.”
말을 마친 뒤, 나는 당황한 얼굴의 집사를 지나쳐 곧장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집사를 따라왔던 젊은 고용인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향했다.
***
‘레나와 헨리 씨가 죽었을 때, 사실 저는 남작님의 백부님께서 남작님을 데려가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레나의 어린 딸이 당연히 이곳에 오게 되리라고 여겼죠.’
붉은 찻물에 비친 베로니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나는 넬리 엘모어의 말을 회상했다.
조지 캠벨이 베로니카를 데려가지 않으리라 여겼다던 그녀의 말을.
그에 자연스럽게 뒤따른 것은 며칠 전부터 드문드문 떠올라 다른 생각을 방해했던, 아직 풀리지 않은 어떤 의문이었다.
기껏 데려가놓고는 그런 식으로 없는 사람 취급하며 홀대했으면서, 애당초 조지 캠벨은 왜 굳이 베로니카를 맡기로 결정한 걸까?
물론 엘모어 보육원의 실체를 알게 된 지금 ‘차라리 그곳에 맡겨지도록 두는 편이 나았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저 이제는 순수하게 궁금했다. 조카를 데려간 조지 캠벨의 심중에 대체 무슨 생각이 있었던 것인지.
나는 찻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가려다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집사를 보았다.
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베로니카가 갑자기 자기한테 물어볼 것이 있다는데 그야 당황스럽기도 했겠지.
그렇게 불러놓고는 응접실에 온 직후부터 차가 준비된 지금까지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으니 불안해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일 터다.
대충 생각을 정리한 나는 이제 그만 그를 긴장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심산으로 천천히 운을 떼었다.
“집사님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저택에 계셨다고 들었어요.”
“오래…되기는 했지요. 남작님의 조부님께서 살아 계실 적 들어왔고, 전대 남작님께서 작위를 승계하실 즈음 집사가 되었으니까요.”
“그럼 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무렵에도 당연히 계셨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집사님, 저는 그 무렵 백부님께서 절 맡기로 결정하신 이유를 알고 싶어요.”
절 그렇게나 싫어하셨으면서 말이에요. 내가 일부러 덧붙인 말에 집사가 움찔 몸을 떨었다. 나는 그 틈새를 곧장 파고들었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대답은 금세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미간을 찡그린 집사는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도 좋을 텐데 그러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알고 있거나, 최소한 짐작 가는 바라도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 호재였으므로,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짧은 기다림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엔 흐릿한 기억을 더듬는 듯하다가, 그 다음에는 말을 꺼내도 좋을지 고민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렇게 영영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입이 열린 것은 거기서 또 한참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망설임이 뚝뚝 떨어지는 대답은 반쯤 열린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온 후에야 이어졌다.
“전대 남작님께선 기실 고용인에게 속내를 쉬이 드러내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당연히 속 이야기를 꺼내시는 일도 거의 없었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모신 세월이 긴 탓인지, 내색하지 않으셔도 이따금 보이는 것들이 있더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는 집사의 표정이 마치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어린 동생이나 조카를 추억하는 사람의 그것 같다고 느끼며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남작님의 백부님과 아버님께선 본래 아주 우애가 깊은 형제였습니다. 그런 두 분 사이에 분란이 일었던 것은 단 한 번뿐이었죠.”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결혼하겠다고 하셨을 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미 알고 계신다니 굳이 말을 아낄 필요는 없었겠군요. 예,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건 일개 고용인에 불과한 저조차도 주제에 헨리 씨를 원망했을 만큼 큰 불화였고….”
집사는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진다는 듯 이마를 문지르며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모르긴 몰라도 어지간히 살벌한 시기를 보낸 모양이었다.
그즈음 나는 어쩌면 조지 캠벨이 레나 엘모어가 메이슨 교단에서 차지하고 있던 연구자로서의 입지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보육원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교단 내부와 깊숙이 얽힌 인물이기 때문에.
동생의 인생까지 복잡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토록 격렬히 반대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불화는, 일단 진화된 듯 보여도 실상 그렇지 못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그래도 원체 우애가 좋으셨던 터라, 느리게나마 점차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긴 했더랬습니다만.”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저희 부모님이 돌아가신 거군요.”
“불행한 사고였지요. 그분께선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지만요.”
집사는 조지 캠벨이 며칠 밤을 술로 지새우면서 ‘그 여자가 기어이 내 동생을 죽게 만든 것’이라 중얼거렸다는 이야기를 주저하며 전해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레나 엘모어와 헨리 캠벨 부부는 베로니카와 관련된 모종의 이유로 교단에 의해 제거당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아무튼, 집사의 감대로라면 헨리 캠벨은 조지 캠벨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기 전에 사망했다.
조지 캠벨은 동생을 사랑했던 만큼 동생 부부를 원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복잡한 감정은 고스란히 혼자 남은 조카에게로 향했을 터.
“그리고 잔뜩 취하신 채로 다른 말씀도 하셨습니다. 당신께서 남작님을 맡지 않으면 남작님은 결국 죽게 될 거라는…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었지요.”
“제가 죽게 될 거라고요?”
“예. 그런 말씀을 몇 번인가 반복하시다가 어느 날 돌연 남작님을 데려오셨고요.”
“하지만 그러곤 방치하셨죠. 비단 백부님뿐 아니라, 이 저택의 모두가 저를요.”
내가 원망할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일단 그런 내색을 했다.
그러자 집사가 다시금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 고용주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었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고.
그러고는 덧붙이기를.
“그분께서 남작님을 미워하신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야 그랬을 것이다.
이유도 대강 짐작이 갔다.
베로니카를 보면 끝내 완전히 화해하지 못했던 동생과, 자신들을 그런 갈등으로 인도했던 레나 엘모어가 떠올라 화가 났겠지.
이해는 간다. 다만 그 화풀이를 어린애한테 해댔다는 점에서 변호의 여지가 없다고 여길 뿐이다.
나는 그런데도, 심지어 자기 행동에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으면서도 ‘하지만’을 입에 담는 집사를 지그시 응시했다.
“하지만 죽지는 않기를 바라셨을 겁니다. 남작님을 맡으신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으리라고 저는 감히 짐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