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111화 (111/121)
  • 111화. 히든루트 (1)

    메이슨 교단 사건은 당연하게도 크나큰 후폭풍을 불러왔다.

    종교단체의 교주가 신도들과의 집단자살을 계획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기엔 충분했겠으나,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나는 절대안정을 위해 병상에 감금당한 밀리엄과 사라진 제임스 대신 수사국에 출두해, 지금껏 우리가 조사를 통해 알아낸 내용들을 낱낱이 공개했다.

    수사국에서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과 예언서에 적힌 사건들을 비교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벤자민 홉스는 좌절한 채 침묵을 고수했다.

    그러나 보육원 아이들이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을 들은 루크 엘모어가 입을 열면서, 우리가 알아낸 진실들에 점차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자신 또한 메이슨 교단의 신도였다고 양심선언을 한 라이오넬 에버렛의 증언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자신이 교단 내부에서 그들에 대해 파헤치고 있었다거나 신도들을 설득해 빼돌리고 있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는 그가 조금 답답했지만, 그 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대신 그를 변호하고 나서지 않았다.

    피아벨 대수도원 상층부의 폭탄이 터지면서 사망한 교단의 간부들 중에는 사회 저명인사나 정부의 요인들도 더러 포함되어 있었기에, 메이슨 교단 사건의 영향은 순식간에 전국 단위로 퍼져나갔다.

    요약하자면 왕국 전체가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덕분에 나 또한 며칠간 꽤나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분주함은 날카로운 살인의 감각으로부터 나를 그럭저럭 안전하게 유리시켜주었지만, 대신 여남은 문제들에 신경 쏟을 여유를 빼앗아갔다.

    결국 수사국에 협조하며 이런저런 조사를 도운 지 나흘째 되던 날, 나는 일라나 데이 국장을 찾아가 향후의 조사에서 손을 떼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베로니카보다 약간 어린 딸이 있다는 그녀는 의외로 우는 소리에 약했다.

    그렇게 여유를 되찾기 무섭게, 며칠을 미뤄두었던 수많은 생각들이 다시금 머릿속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녹스가 남긴 마지막 말.

    돌연 사라져버린 제임스 로웰.

    그리고 히든루트로의 진입…….

    앞선 두 가지가 이 ‘히든루트’의 내용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 있으리라는 사실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래서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일단 제임스를 찾으러 가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대관절 그가 어째서, 어디로 사라져버렸는가에 대한 단서가 전무한 상황이다.

    게다가 그 앞의 문제에 먼저 신경을 기울여보려 해도.

    ‘나는 그날, 분명히 네 숨이 끊어진 걸 확인했는데!’

    그건 그거대로 난제가 아닐 수 없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상대를 앞에 두고 네 숨이 끊어진 걸 확인했다니.

    물론 에드워드 녹스는 이전에도 그와 비슷한 발언을 한 바가 있었다. 아스톤 홀에서 말했었지.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고…….

    ……아, 모르겠다. 진짜로 모르겠다!

    솔직히 머리라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러자니 기껏 머리를 예쁘게 정돈해준 켄트우드 저택의 솜씨 좋은 하녀에게 미안해질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닫혀 있는 병실 문에 이마를 콩콩 박는 것으로 답답함의 표현과 노크를 대신한 뒤 문을 열었다.

    환자복을 입고 베개에 기대어 앉아 있는 밀리엄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 밀리엄.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라고 말하는 건 좀 오버겠지만, 나는 그가 깨어 있는 걸 본 게 며칠 만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살짝 웃었다.

    그러자 밀리엄이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드디어 얼굴을 보네요.”

    부드러운 말씨에 다정한 시선. 그러나 나는 그의 환대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내가 들어선 순간 그가 다급히 취한 행동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는 손에 작은 쪽지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그것을 왈칵 구겨 환자복 주머니에 쑤셔넣었고, 지금은 어째 내가 그 모습을 보지 못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주머니에 숨긴 게 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참은 채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뭔지는 몰라도 내게 알리고 싶지 않거나 알릴 수 없는 무언가겠지. 그렇다면 당장은 굳이 억지로 알아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문제로도 머릿속이 충분히 복잡한 데다가…… 나라고 그에게 숨기는 것이 없지 않은 입장이니까.

    요컨대 내가 문제의 쪽지를 외면한 것은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밀리엄에게 결코 말할 수 없는 어떤 비밀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

    나는 ‘히든루트’에 진입하면서 얻게 된 이 유예에 대해 씁쓸하게 생각하다가, 내심 고개를 내저으며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 동안 온갖 일에 시달리면서 미처 하지 못한 것중에는 밀리엄에게 내 입으로 전하고픈 말도 있었으므로.

    나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양손을 내려다보며 잠시 주저했다.

    아마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오른손이 떨리는 걸 보면 굳이 언급하지 않는 게 나에게는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직접 말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을 열었다.

    “저, 밀리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말을 꺼낸 직후 더욱 떨리기 시작한 손을, 크고 따스한 무언가가 돌연 붙잡아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물끄러미 내 무릎 위를 다시 내려다보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밀리엄을 마주 보았다.

    떨리는 내 오른손을 단단히 붙잡은 밀리엄이 다른 손으로 내 뺨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웃고 있었다.

    “알아요, 베로니카. 아니까,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한텐 직접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배후가 있었다곤 해도…… 당신 부모님과 여동생을 죽인 인간이잖아요. 당신이 바란 그 인간의 끝은, 그런 게 아니었을 것 같아서…….”

    에드워드 녹스를 내 손으로 죽여버려서 미안하다고 말할 셈은 아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죽을 상황이었으니 그런 사과는 적절치 않지.

    다만 나로서는, 에드워드 녹스의 최후가 밀리엄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의 마지막에 밀리엄이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래서, 그가 전달받았으리란 걸 알면서도 굳이 내 입으로 다시 한번 전하고 싶었다.

    일종의 자백이었다. 아주 이기적인 자백.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 다른 목적은 조금도 없는.

    그러나 횡설수설 이어진 내 말을 잠자코 듣던 밀리엄은, 내 손을 두 어번 토닥이더니 쓴웃음을 지으며 다정하게 말을 꺼냈다.

    “바라지 않았던 일인 건 사실이에요.”

    “그럴 것 같았어요…….”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아닐걸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으려던 순간, 뺨을 매만지던 밀리엄의 손이 부드럽게 목 뒤로 넘어가 반대쪽 어깨로 향했다.

    나는 눈을 말똥히 뜬 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순식간에 어깨를 감싼 밀리엄의 팔이 천천히 나를 그에게로 끌어당겼다.

    얼결에 밀리엄의 품에 파묻혀버린 나는 결코 두껍지 않은 환자복 아래에서 뛰는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눈을 깜빡였다.

    한 팔로 나를 끌어안은 밀리엄이 내 어깨를 다독이며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에드워드 녹스가 맞이한 최후의 형태 같은 건 나한테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요, 베로니카. 물론 그에게 합당한 법의 심판을 내릴 수 있었다면 좋았겠죠. 하지만 이젠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이 사무치지 않습니다. 알아야 할 건 다 알았으니까.”

    “그럼 뭐가…….”

    “나는 그저… 당신이 평생 그런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랐어요.”

    그는 말하는 내내 내 어깨를 다독거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는 지독할 정도로 다정한 말을 건넸다.

    내가 그런 경험을… 사람을 죽이는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랐다고.

    별안간 눈가가 뜨끈해지는 통에 나는 입술을 꾹 사리물어야 했다. 그럼에도 금방 눈밑에 물기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에게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안심하다가, 어쩌면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이 자세조차도 그가 날 배려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욱신거렸다.

    “……솔직히 좀 힘들었는데.”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만나고 싶었어요.”

    이렇게 해주고 싶었거든.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나를 조금 더 꽉 끌어안았다.

    나는 밀리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떨리는 숨을 내쉬며 눈물을 조금 흘렸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울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울지 않았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무언가가 그렇게 지나갔다.

    나는 눈가가 말끔히 말라 그를 보아도 창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야 그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고개를 들었다.

    코앞에서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밀리엄이 보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와 눈을 마주쳤다.

    다정하기 그지없던 공기가 미약하게 흔들렸다고 생각한 순간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베로니카.”

    “왜요?”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전부인 거죠?”

    그는 지극히 조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소 난데없는 질문이라, 나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밀리엄에게 하고 싶었던 말.

    ……혹은 하고 싶은 말이라.

    어이없을 정도로 번뜩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몹시 하고 싶은 동시에 결코 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으므로.

    나는 밀리엄을 올려다보며 그저 빙긋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오늘은요.”

    하고 싶은 말. 숨기고 있는 것.

    기실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말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일 터였으나 나는 그렇게나마 여지를 남기고 싶었다.

    그런 여지라도 남기고 싶은 충동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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