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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110화 (110/121)

110화. 푸른 달리아 (9)

“안녕, 아가씨. 피차 좋은 밤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네.”

지명수배자 주제에 얼굴도 가리지 않은 채 나타난 에드워드 녹스가 사납게 웃으며 인사 같지 않은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서, 그는 여유롭게도 잠시 대수도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드워드 녹스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무어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거리가 다소 벌어져 있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나는 총을 쥔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끼고 바짝 힘을 주었다.

레너드 에버렛에게 총구를 겨누고도 끝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던 일이 선득하니 떠올랐다.

이번에는 쏠 수 있을까.

튜토리얼 때는 거리낌 없이 당길 수 있었던 방아쇠가 이제는 지나치게 무겁기만 하다. 이유야 뻔하다. 내가 결국 저들을 인간으로 인식해버린 까닭.

불안감에 목이 타들어갔다.

나는 에드워드 녹스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어금니를 악물었다.

어째선지 아무 말도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그저 내 옆에 서 있기만 하는 제임스를 신경 쓸 새는 없었다.

잠시간 말없이 무너지는 대수도원을 바라보던 에드워드 녹스가 이내 다시 내 쪽으로 눈길을 옮겼다.

형형한 눈빛이다. 마치 무언가,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어떤 상황을 상상해내고야 만 것 같은 인간의 눈빛.

에드워드 녹스는 정말이지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리고 묻기를.

“아가씨, 아리아는 어디에 있지?”

저쪽엔 없던데. 섬뜩한 중얼거림과 함께 에드워드 녹스는 수도원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이미 저쪽을 확인하고 온 참이라니 간도 크다는 생각과 함께,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아리아 오큘러스의 마지막 말은 에드워드 녹스를 조심하라는 경고였다.

그리고 그 에드워드 녹스는 지금 내 앞에 나타나 아리아 오큘러스의 행방을 묻고 있다.

굳이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아리아의 경고대로라면 내가 여기서 무슨 대답을 한들 에드워드는 결국 나를 죽이려 들 것이다.

그러니까 적어도 여기서는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 도리일 터다.

누구에 대한 도리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리아 오큘러스에 대한 도리일까. 에드워드 녹스에 대한 도리일까. 혹은 둘 모두에 대한?

“대수도원에 남았어.”

바스락. 내 말을 들은 에드워드 녹스가 이쪽으로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희번뜩 뜬 눈과 반쯤 기울어진 고개가 조금 비틀린 걸음과 맞물려 섬뜩한 장면을 연출했다.

나는 그의 모습이 마치 걸어다니는 시체 같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교주를 살려서 데리고 나온 주제에… 아리아는 죽게 내버려뒀다고?”

반쯤 이성을 잃은 듯한 목소리가 허공을 맴돈다. 나는 달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내버려둔 게 아니라고, 불가항력이었다고 말해봤자 변명처럼 들리겠지.

사실은 내버려둔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평생 자기들을 외면한 세상의 심판을 얌전히 받아주고 싶지는 않다던 아리아 오큘러스의 심정을 순간적으로나마 이해했다.

그래서 그 이상의 설득을 시도하지 못했다. 그건 결국 내버려둔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이 와중에 그녀가 원했던 일이라 존중했다고 말하는 건 더욱 우스운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벤자민 홉스 또한 자신이 저기서 죽길 바랐던 것은 마찬가지.

내가 바란 형태는 아니었다 해도, 결국 죽겠다는 두 사람 중 하나만 살려 빠져나왔다는 이 결과가 변하지는 않는다.

결국 나는 자기변호를 포기했다. 대신 어떻게든 이 대화가 빨리 끝나도록 유도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잠깐 제임스 쪽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그가 경관들을 이쪽으로 불러오려는 시도라도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어서였으나, 애석하게도 제임스 로웰은 어찌 된 영문인지 나와 에드워드의 대화를 관망하듯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조금 전부터 이상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그를 향해 무어라 말을 꺼내볼까 하다가, 이내 그 또한 포기한 채 다시 에드워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일부러 냉정한 척 표정을 굳히며 질문을 던졌다.

“내가 그녀를 살려서 데리고 나올 거라고 믿었나 봐? 날 두 번이나 죽이려고 했으면서, 당신이 아쉬워지니 나한테라도 기대해보고 싶어졌어?”

“그래. 나도 참 멍청했지. 아가씨가 결국 저 간악한 탐정놈이나 비열한 수사관놈 같은 위선자인 줄 진작 알았다면 네 번째가 이렇게 늦어지진 않았을 텐데.”

네 번째라니?

자기 손에 부모를 잃은 밀리엄을 비열한 수사관이라 매도하는 뻔뻔함이야 둘째치고, 나는 내가 기억하는 바와 다른 에드워드 녹스의 셈법에 돌연 눈썹을 찡그렸다.

에드워드 녹스가 날 죽이려 한 것은 튜토리얼 때와 아스톤 홀의 자선 파티 때다.

물론 내가 시간을 돌리면서 아스톤 홀 테라스에서의 일이 다시 반복되긴 했지만, 에드워드 녹스가 돌아간 시간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할 리도 만무한데…….

“그렇게 살리고 싶었으면 직접 들어가서 데리고 나왔어야지. 그보다 당신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네 번째가 아니라…….”

“아니. 이건 네 번째가 맞아. 나도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착각을 하고 있는 쪽이 아가씨라는 것만은 확실하지……!”

부드득 이를 간 에드워드 녹스가 나에게 달려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 저번과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에드워드 녹스는 더 이상 도망 다닐 생각이 없다는 것. 그리하여 이 자리를 자신이 오를 최후의 무대로 삼았다는 것.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지난 번과 달리, 이번에는 제임스가 내 앞을 막아주지 않으리라는 것.

그러니까… 이 고비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내 결단뿐이라는 것을.

주어진 시간은 한없이 짧았고 결단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그보다도 짧았다.

나는 달려드는 에드워드 녹스를 향해 들고있던 리볼버를 겨누었다. 그는 정직하게 정면으로 달려들었으므로, 조준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예상대로 그는 제게 들이밀어진 총구를 보고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아리아 오큘러스를 살리지 못한 대가로 나에게, 자신의 죽음까지 짊어지게 만들겠다는 듯이.

그것이 마땅히 내 몫의 책임이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솔직히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책임질 생각이 없다면 죽으라는 극단적인 선택지 앞에서는 다른 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눈을 감지는 않았다. 한껏 가까워진 에드워드 녹스의 파란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커다란 총성이 귓가를 흔들고 숲속을 울렸다. 나는 총에 맞은 에드워드 녹스의 몸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 것을 보며, 총구를 내리지 않은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피가 쏟아지는 상처를 붙잡은 에드워드 녹스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대신 주춤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울컥 피를 토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한 발 더 뒤로 물러났다가 나무에 등을 부딪쳤다. 에드워드 녹스는 계속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제대로 끝을 내라는 양.

그럼에도 나는 망설였다. 이제 총구가 향한 곳은 그의 이마 중앙. 이번에 쏘면 진짜로 곧장 죽겠지.

그리고 그러는 사이 충분히 가까워진 에드워드 녹스가 핏발 선 눈을 부릅뜬 채 외쳤을 때.

“나는 그날, 분명히 네 숨이 끊어진 걸 확인했는데!”

좀 전까지의 망설임은 다 거짓이었던 것처럼, 상대를 죽여서라도 없었던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말을 들어버린 것처럼, 방아쇠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두 번째 총성이 울렸다. 얼굴에 피가 튀었다. 귓가가 먹먹했다. 처음엔 손에서, 그 다음엔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허물어지는 에드워드 녹스의 몸뚱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총을 떨어트렸다. 내 손을 떠난 총은 사라지는 대신 흙바닥 뒤로 요란하게 떨어졌다.

[ ‘더블 액션 리볼버’가 망가졌다. 더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 ]

기본 아이템이 느닷없이 망가져버린 상황이었지만 황당해할 새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나무에 등을 기댄 상태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귓가는 여전히 먹먹했으나 저편에서 가까워지는 발소리들이 얼핏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나는 에드워드 녹스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이 턱턱 막혀오고 눈가가 시큰거렸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서늘한 자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소름이 끼쳤다.

[ 과제 015. ]

에드워드와의 결판 달성! (보상 : 회중시계 1개 & 히든루트 진입)

그런 나를 축하라도 하는 양 떠오르는 시스템창을 허무하게 응시했다.

정신이 혼몽해졌다. 히든루트라니 이 와중에 저건 또 무슨 소리지, 하는 생각과 함께 시야가 기울어졌다.

옆으로 쓰러지는 내 머리를 받쳐오는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서늘한 손이었다.

나는 그것이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다음날 정신을 차렸을 때 들려온 것은, 제임스 로웰이 자취를 감추었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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