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푸른 달리아 (8)
“아리아 오큘러스!”
내 외침에 그녀가 천천히 나를 돌아보았다. 입가에는 조금 전의 미소를 그대로 머금은 채였다.
“그러고 보니 진작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건물 상층부에 폭탄을 설치해뒀어요. 간부들의 방은 다 그쪽에 있거든요.”
대체 어느 틈에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아까 전 기절한 그녀를 데려갔던 대여섯 명의 신도들을 생각하고 이를 꾹 악물었다.
그때 우리가 있던 곳이 바로 건물 상층부다.
“처음부터 기절 따윈 한 적도 없었던 거지? 끌려간 것도 아니었고!”
“그저 한없이 순진하고 어리석었을 뿐인 평신도들에게까지 악감정이 있지는 않아요. 그들이 탈출하는 걸 막을 셈도 아니고요.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이미 맡은 바 역할을 완수해준 친구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어요?”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길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조금 전과 같은 폭발음이 다시 한번 건물을 뒤흔들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향했던 그 아련한 기대의 결과와 상관없이, 아리아 오큘러스는 처음부터 피아벨 대수도원을 무너트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자, 남작님. 이제 선택지를 드릴게요.”
“이 와중에 무슨…….”
“정신을 잃어서 완전히 짐덩어리인 데다, 데려가봤자 헛소리나 지껄일 게 분명한 이 쓰레기를 어쩌시겠어요?”
아리아 오큘러스가 칼끝으로 벤자민 홉스를 가리키며 섬뜩한 미소와 함께 물어왔다.
[ 1. 버리고 갈 거야. 죽고 싶은 모양이던데 죽으라지. 아니면 네가 지금 죽이든가.
2. 선택지고 나발이고 같잖은 질문 하지 말아줄래? 당연히 데리고 갈 거야. ]
솔직히 말하면 1번을 선택할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빠져나가야 하는 와중에 정신을 잃은 성인 남자라니 완전히 짐덩어리인 것도 사실이고, 기껏 살려서 데려가봐야 살린 보람도 없이 헛소리나 지껄여대리라는 것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선택지고 나발이고 같잖은 질문 하지 말아줄래? 당연히 데리고 갈 거야.”
“어째서요?”
“어째서는 무슨 어째서야. 네가 방금 교단 간부들을 죄다 날려먹었잖아! 이 쓰레기만이라도 데려가서 진실을 밝히고 제대로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들어야지!”
“범죄자가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물론 나는 법의 심판 같은 데 연연해하는 인간이 아니다. 이 정도 쓰레기를 살리겠다고 위험을 감수하느니 그냥 버리고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걸 살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쓰레기 무단투기라면 모를까.
하지만…….
“하지만 그래야 한다고 믿는 사람을 알아.”
나는 그 사람이 또 좌절하길 바라지 않는다. 또 무너지길 바라지도 않는다.
상처 입은 그 신념을 이것으로 치료해보겠다 자만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위로 정도는 될 수 있으리라 믿어보고 싶다.
“게다가 아득바득 우겨서 여기까지 혼자 왔는데 이거 하나 못 주워가면, 나야말로 그 사람을 볼 낯이 없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이건 포기 못해.
이를 악물고 뇌까린 나는 축 늘어진 벤자민 홉스의 한쪽 팔을 힘껏 들어올려 내 어깨에 걸쳤다.
다른 쪽 팔은 이바나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하나, 내가 부탁한다고 쟤가 말을 듣기는 할까 하는 걱정이 머리를 스쳐간 순간.
“그럼 도와드릴게요.”
산뜻하게 말한 아리아 오큘러스가 벤자민 홉스의 다른 쪽 팔을 들어 자기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는 이바나에게 앞서 가서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조력의 손을 내밀어오는 아리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벤자민 홉스를 질질 끌며 예배당 문 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앞서간 이바나가 예배당의 문을 당겨 열었다. 서서히 열리는 문틈으로 아까와는 사뭇 다른 중앙 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는 경관 제복을 입고 있었고 누군가는 하얀 옷을 입은 채였다.
저 멀리 열려 있는 수도원 정문으로 급하게 달려나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절대 나가지 않겠다 발버둥 치다 경관에게 반쯤 들쳐업힌 상태로 끌려나가는 이도 있었다.
온갖 비명과 수많은 발소리와 이런저런 외침들이 귓가를 때리는 와중에, 익숙하고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직선으로 날아와 꽂혔다.
“남작님!”
제임스와 경관 몇 명이 때마침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계속해서 걸음을 움직였다.
이윽고 달려온 경관들이 벤자민 홉스를 넘겨받았다. 대충 눈을 맞추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우리는 황급히 중앙 홀을 가로질렀다.
건물 정문 앞에 다다라서야 뜀박질을 멈췄다. 그 즈음에는 중앙 홀에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남은 몇도 발 빠르게 건물 밖으로 내달리는 중이었다.
나는 문을 짚고 서서 멜리사와 제임스를 향해 반쯤 고함치듯 물었다.
“밀리엄은요?”
“바깥의 마차로 옮겨뒀습니다.”
“옮겨둬요?”
“뜯어말렸는데도 부득불 일을 돕다가 혼절하는 바람에…….”
그건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일찌감치 나갔다니 차라리 잘됐지 싶었다.
중앙 홀에서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제임스가 정문을 통과했다. 멜리사 역시 망설이는 이바나의 손을 냉큼 잡고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남작님! 하고 외치는 제임스와 멜리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아리아와 함께 문을 빠져나가려던 찰나였다.
등 뒤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쿵쿵 내려앉는 섬뜩한 진동이 연달아 들려왔다.
괜히 뒤를 돌아보았다가 공포감에 발이 묶일까 싶어 문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등 뒤의 아리아 오큘러스가 내 몸을 휙 돌려세웠다.
“남작님.”
그녀의 등 뒤로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부분 부분들이 보였다. 급하게 아리아를 끌어당기려 했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아리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차마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을 만큼 미친 생각이었다.
“너…!”
“이바나나… 다른 아이들을 부탁드려요. 그 애들은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요.”
“넌 늦었다 이거야? 미친 생각 하지 말고 당장…….”
“한참 늦었어요. 평생 우릴 외면한 세상의 심판을 얌전히 받아주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도망칠 기력이 있는 건 또 아니라서요.”
그렇게 말하는 아리아의 목소리에서는 절대 세상이 자신들을 심판하게 두지 않겠다는 어떤 결의마저 느껴졌다.
그 굳은 결의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인정하지도 말리지도 못했다. 눈앞에 자살하려는 상대가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게 자살이 맞는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다급하게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에드에 대해서는 미리 사과드릴게요. 저로서는… 저조차도, 도무지 그 애를 막거나 설득할 수가 없었어요. 부디 몸조심하시길 바라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아리아 오큘러스가 내 몸을 훅 떠밀었다. 나는 순식간에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언젠가 저 숲속의 탑에서 그러했듯, 그러나 그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에 뒤이어 안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리며 문과 건물이 흔들렸다.
죄송했어요. 문득 그런 말이 들린 것 같기도 했다.
멍하니 서 있던 나는 멜리사와 제임스에게 반쯤 들리다시피 한 상태로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는 동안에도, 멀어지는 문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피아벨 대수도원은 서서히 붕괴했다.
경관들과 함께 신도들을 데리고 충분히 안전하다고 판단된 지점까지 도망쳐온 나는 마차로 돌아가 쉬라는 멜리사의 말을 듣는 대신 붕괴하는 건물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벤자민 홉스의 신병은 숲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또 다른 수사관들에게 인계되었다.
신도들도 경찰 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었으므로 멜리사를 비롯한 수사관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듯 발빠르게 움직이느라 여유가 없어 보였다.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딱딱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무너지는 대수도원을 지켜보던 내게 다가온 건 제임스 로웰이었다.
내 어깨 위로 담요를 덮어준 그는 내가 아니라 대수도원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엘모어 보육원 아이들은 전원 무사히 구출했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다행이지요.”
“고생 많으셨어요, 로웰 씨. 비단 오늘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요. 사실 로웰 씨하고는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는데.”
“글쎄요. 이 땅에 이 사건과 상관없는 사람 따윈 없지 않을까요.”
그야 스케일이 제법 엄청나긴 했지만, ‘이 땅’씩이나 운운하는 건 좀 오버가 아닐까?
그러나 자기 인생이 안개 속을 헤매는 와중인데도 기껏 나서서 열심히 도와준 사람에게 딴죽을 걸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메이슨 교단 사건은 이것으로 일단락이 된 것 같지만, 아직 뒷처리가 잔뜩 남은 데다 풀리지 않은 떡밥도 남아 있는 상태다.
그러니 아마 당분간은 게임도 끝나지 않겠지. 어쩌면 여기서부터는 제임스 로웰의 기억을 찾는 시나리오가 이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 사실을 슬퍼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쯤은 기뻐해도 좋은 걸까…….
그런 착잡한 생각에 마뜩잖은 기분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였다. 풀숲 쪽에서 바스락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제임스가 먼저 그쪽을 돌아보았고, 나 역시 바위에서 일으킨 몸을 소리가 난 쪽으로 휙 돌렸다.
어깨에 걸쳐져 있던 담요가 땅으로 미끄러졌지만, 그걸 주울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불청객이 과감하게도 곧장 모습을 드러낸 탓이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리볼버 아이콘을 눌렀다. 그러고는 곧장 손 안에 들어온 총을 꽉 붙들고서, 눈앞에 나타난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에드워드 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