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푸른 달리아 (7)
벤자민 홉스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디서 난 건지 모를 날카로운 칼을 손 안에서 빙빙 돌리며, 서늘하게 웃는 낯으로 아리아 오큘러스가 말을 이었다.
“교주님의 말 같잖은 설명으로는 백년이 가도 남작님을 납득시킬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어느 틈에 정신을 차린 걸까. 어디서부터 들은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그저 기절한 척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방금까지 쓰러져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멀쩡하기 그지없는 낯으로 빙글빙글 웃고 있는 아리아 오큘러스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벤자민 홉스가 그녀의 이름을 씹어뱉으며 으드득 이를 갈더니, 이바나를 향해 사납게 외쳤다.
“이바나, 당장 저걸 제압해!”
그러나 이바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않았다기보다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이바나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선 채 혼란스러운 얼굴로 벤자민 홉스와 아리아 오큘러스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나를 찌르던 어느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라 조금 속이 쓰렸지만, 어쨌든 무언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이바나를 향해 아리아 오큘러스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너 좋을 대로 하렴. 저 사람 말대로 날 제압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그게 네가 원하는 바라면.”
“저, 저는…….”
이바나가 덜덜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여전히 혼란한 얼굴이었지만 아리아를 제압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
“어머나. 이를 어쩌죠, 교주님? 이바나는 교주님보다 날 좋아하는 모양이에요.”
“이 간악하고 배은망덕한 것! 네가 이 모든 일의 주범이란 걸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지금도 그리 속속들이 알아차리신 것 같진 않은데요. 진작 알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걸 보니.”
아리아 오큘러스가 벤자민 홉스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두어 발자국 다가왔다. 여전히 손 안의 짧은 칼을 빙빙 돌리고 있는 채였다.
그 즈음 나는 벤자민 홉스가 그녀의 칼을 불안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왜 저러지?
오늘 죽어야만 낙원으로 향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이 어째서 남의 칼을 겁낸단 말인가? 고맙다고 넙죽 모가지를 들이밀어도 모자란 상황일 텐데.
그리고 그 순간 아리아가 칼을 멈췄다. 정처 없이 돌아가던 칼끝이 향한 곳은 벤자민 홉스가 아니라 내 쪽이었다.
놀란 내가 몸을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못한 채 헉, 하고 숨을 들이켠 사이 벤자민 홉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이면 안 돼……!”
그때였다. 능숙하게 칼을 돌려 잡은 아리아가 칼 손잡이를 들어 벤자민 홉스의 뒷목을 턱 내려쳤다.
메이슨 교단의 교주는 싱거울 정도로 맥없이 쓰러졌다.
나는 나를 여기까지 납치해온 장본인이 내뱉기엔 다소 괴상한 말을 남긴 채 쓰러진 벤자민 홉스의 모습을 떨떠름하게 훑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기절한 벤자민 홉스를 잠시 일별한 뒤, 한쪽 입꼬리를 비릿하게 끌어올리며 그를 비웃듯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생각하는 것 하고는.”
“……날 죽일 생각은 없다는 소리야?”
아리아 오큘러스는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꼭 아직 고민하고 있다는 무언의 대답처럼 보여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다행히 손에는 여전히 리볼버가 들린 채였다. 사람에게 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물론 남작님께는 그 부분이 무척 중요하겠지만, 우선은 당면한 오해부터 해결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오해?”
“에드가 말한 ‘배신자’는 조지 캠벨 경이 아니에요.”
나는 순간 에드가 누군가 했다가, 에드워드 녹스의 애칭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당황했다.
아리아 오큘러스가 애칭을 부를 정도로 에드워드 녹스와 가까운 사이란 말인가? 이 상황에 그건 별로 좋지 않은 징조처럼 느껴지는데.
그러나 아리아는 내 표정이 썩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눈치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 애가 남작님께 말한 배신자는 남작님의 모친 되시는 레나 캠벨 부인이랍니다. 교단 내에서는 아직도 레나 엘모어라고 불리지만요.”
“레나 엘… 어머니가 왜 배신자인데?”
“우릴 이렇게 만드는 데 일조한 주제에 혼자 도망쳐서, 본래대로라면 우리처럼 망가졌어야 할 당신을 교단 밖으로 빼돌리는 데 성공했으니까요.”
나는 아리아 오큘러스의 목소리에서도 묘한 원망이 묻어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레나 엘모어를 배신자라 여기며 원망하는 건 에드워드 녹스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총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요컨대 에드는 남작님을 질투하는 거예요. 자기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는 것 같고요. 정작 처음에 그 애에게 당신을 죽이라고 지시했던 저 정신 나간 남자는 기이하게도 그걸 실패라고 질책하지 않은 데다, 외려 그 이후론 당신을 죽이려는 에드를 처리하려 들었지만.”
“그건 내가 듣기에도 참 기이한 짓 같은데, 어쨌든 요지는 어머니도 엘모어 보육원 아이들을 살인자로 키우는 일에 일조했다는 거지?”
내가 거기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던 건지, 아니면 표현이 너무 직접적이었던 까닭인지 아리아가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그녀는 굳이 그 부분을 짚는 대신, 하던 설명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제가 알기로 그분은 예언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일을 주로 하셨다지만, 어쨌든 교단의 중요한 일원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다른 고위급 신도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서요.”
아리아 오큘러스가 말하는 ‘우리’란 아마 예언을 실행할 살인마로 키워진 엘모어 보육원 출신자들을 의미하는 거겠지.
정확히 몇 명을 지칭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언서 속 ‘기사’ 역할을 맡은 네 명은 전원 포함된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나는 처음 엘모어 보육원을 찾았을 때 원장실에서 발견했던 네 장의 입양증명서를 떠올렸다.
그때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마지막 한 장은 높은 확률로 아리아 오큘러스의 것이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해낸 나는, 기실 내가 미안할 이유는 전혀 없음에도 괜히 조금 죄책감이 드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질문을 꺼냈다.
“너희는, 그러니까… 교단에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거야?”
“말하자면 그랬던 거겠죠. 굳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해야 했냐고 묻고 싶으신가요?”
“아니…….”
“그 밀리엄 켄트우드 씨와 교제하시는 분치고는 의외의 대답이네요.”
“그렇게 물으면, 다르게 사는 법은 몰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할 거잖아.”
아리아 오큘러스는 조금 전에 이어 조금 당황한 낯을 했다. 역시 예상대로였던 모양이다.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해버린 나는 한층 더 착잡해졌다.
한 방향, 그것도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밖에 살지 못하도록 강요받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 아이들이 저희를 그렇게 만들어버린 어른들에게 앙심을 품고 복수하는 이야기 또한, 시원하다기보다는 서글픈 법이지.
물론 인간의 상식 선에서야 어떤 이유로든 살인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말함이 마땅하지만… 그래도 심정적으로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딱히 이들에게 정의로운 일침 같은 걸 가하고픈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내게는 그런 구구한 설교를 늘어놓는 것보다, 아직 남아 있는 의문점들을 해소하는 일이 훨씬 중요했다.
“교단에 복수하고 싶었다면 패트릭 헤이즈 씨를 죽일 필요는 없었던 거 아냐?”
“안젤리나 캠벨 부인이 헤이즈 씨에게 조사를 의뢰했다는 걸 교주가 진작 알고 있었던 터라 우리로서도 별수가 없었어요. 애초에 제가 그분의 조수 노릇을 하게 된 것도 감시를 위해서였고, 그러다 결국 죽이라는 지령이 떨어졌을 땐.”
“너희 계획이란 게 궤도에 올라버린 상태라 주모자인 네가 교주의 의심을 사서는 안 되는 시점이었다?”
아리아는 나를 쳐다보며 작게 실소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대화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성 조나단 병원 사건 때는 교단을 무너뜨리고 난 뒤의 우리에게 기적적으로 평범한 미래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헛꿈을 버리기 전이라서, 범인이 밝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남작님과 켄트우드 씨를 죽이려 들었어요.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 가만 생각해보니 차라리 두 분이 헤이즈 씨의 빈자리를 메워주셨으면 좋겠다 싶더군요. 어째선지 교주가 남작님만은 살려두려는 모양이라 훨씬 안전할 것 같기도 했고요.”
“미안한데 좀 헷갈려. 대체할 사람을 미리 정해두지 않은 상태에서 헤이즈 씨를 죽였다는 건 애당초 그 역할이 너희 계획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소리잖아. 다 털어놓고 협력해 주십사 부탁할 것도 아니고 상의하에 움직일 것도 아닌데 자리가 차든 말든 그게 너희랑 무슨 상관이야?”
내 물음에 아리아 오큘러스가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답을 내놓았다.
“그 자리에 서는 이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교단을 무너뜨려줄지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으니까요.”
“기대하신 것치고는 나한테 좀 과격했던 것 같은데. 냅다 탑에 가둬버리질 않나.”
“머리로는 결론을 냈는데도 당신에 대한 감정이 계속 복잡했거든요. 저 사람이라면 정말로 내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엔 우리처럼 망가지지 않았으니 죽일 수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가.”
“지금은 어때?”
“결국 살아서 여기까지 와주셨으니 전자라고 봐야겠죠.”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끄러미 아리아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발치에 쓰러져 있는 벤자민 홉스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너희는 안 믿는 거지? 종말이니 낙원이니 하는 거.”
“안 믿어요. 그딴 걸 믿은 쓰레기들 때문에 우리 같은 아이들이 생긴 셈이니까요. 개인적으로야 진짜 종말이 와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온 편이긴 하지만…….”
말끝을 흐린 아리아의 눈길이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이바나에게 향했다.
아직 완전히 늦어버리지 않은 어느 날의 자신을 보는 눈이었다.
그녀는 한동안 그렇게 이바나를 바라보다가, 짧은 실소와 함께 못다 한 말을 끝맺었다.
“설마하니 그런 게 정말로 오겠어요?”
사실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이제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얼굴로 아리아 오큘러스가 물어왔다.
당연하지만 대답을 바라는 질문은 아닌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이 정도면 사건의 내막에 대한 정리는 대충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싶은데. 더 물어봐야 할 게 뭐가 있었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렵지 않게 다음 의문에 도달했다.
그래서 메이슨 교단이 베로니카 캠벨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대관절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조금 전 말한 내용으로 봐서는 저쪽 역시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기필코 무너뜨리겠다고 칼을 갈아가며 버텨낸 것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이날까지 내부자로 지낸 짬밥이 있으니 최소한 나보다는 좀 더 그럴듯하게 추정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나는 누가 봐도 한껏 누그러진 표정으로 예배당의 높다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리아 오큘러스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열고자 했다.
그러지 못한 것은,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느닷없는 폭발음이 울려왔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건물이 진동했다.
나는 폭발음이 들려온 천장 너머로 고개를 들었다가,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아리아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여전히 천장을 향한 얼굴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