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푸른 달리아 (6)
호기롭게 혼자 중앙 홀까지 달려나오긴 했지만, 기실 나는 내 억지가 밀리엄을 완전히 설득했다고 기대하지 않았다.
아마 사람들을 어느 정도 구출하고 나면 이쪽으로 경관들을 보내겠지. 막상 혼자가 되고 나니 외려 그렇게 해주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했다.
다 좋으니까 직접 달려오는 무리한 짓만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식은땀에 젖어들던 밀리엄의 창백한 얼굴과, 그 상태로도 날 따라오겠다 말하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불안하지만 제임스나 멜리사가 잘 말려주길 바라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도달한, 중앙 홀 안쪽의 거대한 문 앞.
와중에 긴장을 하긴 한 모양인지 손 안쪽이 조금 축축했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문 너머의 광경이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교주… 벤자민 홉스가 있으리라는 기묘한 확신이 들긴 했으나 그저 그뿐.
그가 저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안에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지, 내가 들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확히 무엇일지까지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희뿌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억누르며 나는 거대한 문의 금색 손잡이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붙잡고 천천히 힘을 실었다.
육중한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서서히 열렸다.
넓어지는 문 틈새로, 지난번 지하에서 봤던 것과 흡사한 형태의 거대한 제단 같은 것이 보였다.
그 앞에 선 채 이쪽으로 몸을 돌리는 이의 낯익은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며 문 안쪽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반쯤 열렸다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닫히는 문을 뒤로하고서 나는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커다랗고 웅장한 예배당 안은 다행히 텅 비어 있었다. 신도들은 모두 바깥의 수많은 방에 나뉘어 갇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쿵쿵거리는 심장소리를 외면하며 제단 바로 앞까지 나아간 뒤에야 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상황을 찬찬히 살폈다.
교주, 벤자민 홉스는 지난번과 달리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로 두 계단 위의 강단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없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작은 유리잔이 두 개 올려진 쟁반을 든 이바나 엘모어가 있었다.
내가 계단 위로 한 발을 올리자, 쟁반을 내려놓고 이쪽으로 다가오려는 소녀에게 벤자민 홉스가 멈추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누구의 방해도 없이 안쪽으로 한 걸음 가까워진 시선 끝에서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보다 가까이 서있는 벤자민 홉스의 몸에 살짝 가려져 있긴 했으나 누구인지를 가늠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이는 아리아 오큘러스였다.
곤란하다. 여전히 쓰러져 있는 아리아 오큘러스와 교주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듯한 이바나 엘모어라니.
그러나 곤란한 티를 내어 좋을 것이 없으리라는 사실만은 분명했으므로,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눈앞의 교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언제 알아내신 겁니까?”
“당신 부하들에게 납치당하기 직전에 운 좋게요.”
결국 딱히 써먹어보지도 못한 채로 납치당해 이렇게 마주해버린 마당에 운이 좋았다고 말하자니 조금 우습기는 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드레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깨어났을 때 가방은 사라진 채였지만, 여기까지 몸수색을 하진 않은 건지 손에 집히는 물체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 들어 벤자민 홉스의 발치에 툭 던졌다.
“나는 운이 좋았고 당신은 조심성이 부족했죠.”
그는 시선을 내려 제 구둣발 끝에 굴러가 닿은 만년필을 물끄러미 보고는 아하, 하는 나직한 탄성을 터뜨렸다.
“어디서 잃어버렸나 했더니.”
벤자민 홉스는 굳이 허리를 숙여 만년필을 집어 들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들어 올려 나를 응시했다.
“본래는 제가 직접 뵈러 올라갈 예정이었습니다만 친히 여기까지 걸음해주실 줄이야. 계획했던 바와 다른 만남이긴 하나 우선은 어서 오십시오.”
공손하게도 건네오는 환영의 인사에서는 변호사 벤자민 홉스로서 베로니카 캠벨을 대하던 때 이상의 호의가 느껴졌다.
정말이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사람을 느닷없이 대로변에서 납치해온 주제에 저 정도의 호의라니.
“아주 태평해 보이네요. 경관들이 진입한 걸 알고는 있나요?”
“아, 밖이 소란스러웠던 게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안타까운 일이네요.”
“안타깝다니…….”
“여기에 혼자 오셨다는 건 경관들이 전부 신도들을 구조하는 작업에 투입되었다는 뜻이잖습니까. 그러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렇게 구조되어 오늘을 놓친 신도들은 끝내 낙원으로 향하지 못할 테니까요.”
낙원이고 나발이고 아주 꼴값을 떨고 앉았다.
나는 정말이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눈앞의 미치광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했다.
해야 할 말은 많았고 아직 알아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러나 진심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생각하는 듯한 얼굴의 벤자민 홉스를 마주하자 기가 막혀서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내가 말을 잇지 못한 탓에 대화는 잠시 끊기고 오묘한 침묵이 이어졌다.
머릿속으로 할 말을 고르던 나는, 이바나가 조금 전 내려놓았던 쟁반 쪽으로 다시 걸어가려는 것을 보고 돌연 정신을 차렸다.
나는 쟁반 위에 올려진 두 개의 작은 유리잔과, 그 안에서 찰랑이는 정체불명의 액체를 빠르게 일별했다.
깊이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누구를 위해 준비된 것이든 마시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직감만이 강하게 온몸의 감각을 지배했다.
나는 예배당에 들어서던 시점부터 언제든 필요할 때 누를 수 있도록 주시하고 있던 리볼버 아이콘으로 재빨리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묵직한 감각이 손 안 가득 느껴지기 무섭게,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을 맞은 테이블이 넘어지며 쟁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리잔들이 바닥과 충돌해 산산조각 나는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이바나가 다급히 뒷걸음질을 치고, 유리잔 안에 들어 있던 액체가 쏟아져 나와 바닥을 적시는 것까지 확인한 나는 다시 벤자민 홉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제야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바로 옆에서 울린 총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었다.
“왜요. 저게 당신 몫의 낙원 입장권이라도 됐나 보죠?”
“……저와 이바나의 몫이었지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가장 고통 없이 갈 수 있는 길이었고요. 정말로 잔인하시군요, 저 어린아이에게까지.”
나는 ‘저 어린아이에게까지’라는 대목에서 반사적으로 이바나를 보았다가, 어쩐지 나를 원망하고 있는 듯한 아이의 시선을 목도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내가 쏟은 액체가 독약이라는 정황이 확실해지자 더욱 그랬다.
고작해야 열몇 살쯤 되었을 어린애를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람에게 칼을 꽂을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오늘 독약을 마시고 죽는 것이 고통 없이 낙원으로 향하는 길이라 세뇌시킨 쓰레기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진정시키며 벤자민 홉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한 자 한 자를 꼭꼭 씹어뱉는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내 딴에는 나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결과였다.
“예언서의 앞부분을 봤어요. 종말이니 낙원이니 하는 허무맹랑한 개소리를 진심으로 믿어서, 고작 그딴 이유로 사람들을 그렇게 죽여왔나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희생이었지요. 그것은 오랜 세월 저희 교단의 존재가치 그 자체였고… 제 대에서 그 사명을 마칠 영광을 얻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열심히 개소리를 지껄이던 벤자민 홉스가 돌연 씁쓸한 표정을 지은 것은 그때였다.
“하지만 오랜 대업의 달성을 눈앞에 두고 이런 시련이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은 하나같이 예언서의 내용과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더랬죠.”
숫제 비아냥에 가까운 내 지적을 들은 벤자민 홉스의 씁쓸한 시선이 별안간 자기 뒤에 쓰러져 있는 아리아 오큘러스에게 가닿았다.
“귀한 일에 쓰고자 사력을 다해 기른 아이들이 믿음을 잃고 제 사명을 등져버리다니. 정말이지 마음 아픈 일이에요.”
예언서의 범행계획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살인자로 길러냈을 아이들에게 귀한 일이니 사명이니 운운하는 꼴은 역겹기 짝이 없었지만, 나는 애써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 ‘아이들’이 당신의 통제를 벗어난 게 성 조나단 병원 사건부터인가요?”
“잘 알고 계시는군요.”
“바꿔 말하자면, 에드워드 녹스에게 백부님 일가를 죽이도록 한 것까지는 당신의 지시대로였다?”
내 질문에 벤자민 홉스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나직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나는 내 말의 어디에 웃을 부분이 있었는지를 고민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는 사이 대답이 이어졌다.
“배신자 조지 캠벨과… 쥐새끼처럼 몰래 저희의 뒤를 캐고 다니던 안젤리나 캠벨을 처리한 사건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라면 예, 그렇습니다.”
조지 캠벨을 ‘배신자’라 지칭하는 벤자민 홉스의 표현에서 나는 에드워드 녹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물었을 때 들었던 대답.
‘배신자의 핏줄이니까.’
그때 에드워드가 언급한 배신자란 역시 조지 캠벨을 의미했던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벤자민 홉스가 날 대하는 태도는 에드워드 녹스의 그것과 너무도 상반되어 있지 않나.
“당신의 통제를 벗어난 아이들 가운데, 에드워드 녹스도 포함되어 있나요?”
“제일 먼저 제 말을 거역하고 날뛰기 시작한 아이지요. 아시다시피, 감히 두 번이나 당신을 죽이려 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는 내가 배신자의 핏줄이기 때문에 날 죽이려는 거라고…….”
“거기서부터는 제가 설명해드려야 할 것 같네요.”
내 의문을 끊으며 들려온 것은 벤자민 홉스가 아닌 다른 이의 목소리였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를 생각할 필요 따윈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