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묵시록 (7)
유리창 너머에 앉아 있는 루크 엘모어는 일견 음울한 듯하면서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다섯 명이나 죽여놓고 자수한 사람의 얼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평온함이었다. 심지어 그 다섯 명 중엔 자기 친부모도 포함되어 있는데.
기묘한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가증스럽다거나 소름 끼친다는 감상은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멜리사의 배려로 얻은 독대의 기회였다. 무언가 말을 꺼내야 할 텐데, 머릿속이 복잡해서 무슨 말부터 꺼내야 좋을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럼, 아직 나에게 미치지는 않으신 내 친애하는 숙녀분.’
하…… 젠장, 또 이러네.
가뜩이나 정돈된 바 없던 생각들은 어제저녁의 일 때문에 완전히 흩어져 먼지처럼 머릿속을 부상하고 있다.
어떻게든 정신줄을 붙들고 생각을 이어가보려 해도 자꾸만 어제의 일이 떠올라 뇌리를 지배하고야 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조만간 피아벨 대수도원에서 벌어질 네 번째 사건을 생각하다가도 돌연 밀리엄과의 일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찾아오는 것은 낭만적인 감상 따위가 아니라 지독한 혼란이었다.
그래,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제저녁 끝내 인정해버린 바대로 나는 밀리엄 켄트우드를 좋아한다.
문제는 어제의 일이 <블루 달리아>의 예정된 전개 중 하나인지, 아니면 내가 이 몸뚱어리에 들어와 얻은 자유행동의 영역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자일 수도 있을까. 밀리엄 켄트우드와의 연애…… 비슷한 것은 애초부터 <블루 달리아>의 전개에 포함된 것일까?
만약 그런 거라면 이미 손쓸 도리가 없어져버린 내 감정이야 그렇다손 치고, 밀리엄의 감정에 의미를 부여해도 되는 건가. 어제의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전개라면 말이다…….
“생각이 많아 보이시는군요, 남작님.”
왠지 껄끄러운 기분으로 인상을 쓰고 있자니 유리창 너머의 루크 엘모어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 즈음에서 나는 일단 쓸데없는 혼란일랑 집어치우고 현재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어올려 루크 엘모어를 향했다.
“다 엘모어 씨 덕분이죠.”
사실 전부까진 아니고 일부 정도지만, 어쨌든 루크 엘모어와 그가 일으킨 사건 역시 내 번뇌의 이유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일부러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루크 엘모어가 조용히 시선을 내리며 미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것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금방이라도 정말 죄송하다는 말이 튀어나올 것 같은 태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저 때문이라면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그렇다고 사과를 듣고 싶지는 않고요.”
살인자의 사과 따윌 받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나는 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
잠자코 입을 닫는 루크 엘모어의 표정은 조금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듣고 싶지 않으시다니 말은 않겠지만 아무튼 죄송하다는 표정.
그걸 보고 있자니 정말로 기가 막혔다. 사람을 다섯 명이나 죽여놓고 인간의 도리나 감정을 챙기려 드는 태도가 황당했다.
저러다 지난번 앤서니 롭이 그러했던 것처럼 별스러운 개똥철학 같은 걸 늘어놓겠군 싶기도 했다.
하지만 별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루크 엘모어에게 물어보려 작정하고 온 것 중에는 그의 범행동기도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그걸 위해 또 살인자의 철학 따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 뭐 어쩌겠는가. 아무리 어이가 없고 정신이 아득해져도 일단은 듣고 봐야지.
기실 수잔 로이드나 앤서니 롭과 달리 루크 엘모어는 범행동기를 물어오는 질문에도 순순히 대답을 했다고 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나치게 간단해서 도리어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대답에 대한 부연설명까지 순순히 내놓지는 않았다는 점이라나?
“엘모어 씨. 범행동기가 속죄라고 하셨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정작 무엇에 대한 속죄인지는 진술하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인가요?”
루크 엘모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입이 앤서니 롭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내 앞에서 조금이나마 가볍기를 바라며 말을 이어갔다.
“죄송하지만 저는 범상한 사람이라, 살인이 어떻게 속죄가 될 수 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그들은 이제껏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어왔고, 앞으로도 기꺼이 그렇게 살아갈 이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 의해 고통받는 인생들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며 자랐죠. 아주 괴롭고 죄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루크 엘모어는 여전히 애매모호하지만 적어도 멜리사나 다른 수사관들에게 일관했다는 침묵보다야 훨씬 구체적일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하는 ‘그들’이 스위트룸에서 죽은 다섯 명이라는 사실을 유추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들에 의해 고통받았다는 인생들이란 게 의미하는 바는 모호했지만, 맥락상 루크 엘모어가 그걸 지켜보고 자라면서 대단한 죄책감을 느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친부모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할 만큼의 죄책감을 말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 편은 아니셨나 보군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신들의 삶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셨으니까요. 사람을 죽이는 고통을 짊어지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돌고 돌아 여기도 개똥철학이 맞았군.
나는 양친을 죽이는 것으로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졌다고 말하는 남자를 말없이 응시하며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고통’이라는 대목에서는 기이하게도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는 조금 전에도 ‘고통받는 인생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어쩌면 거기서 사용한 고통과 방금 말한 고통이 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딱히 근거가 있는 발상은 아니었으나 굳이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그러고 보면 수잔 로이드도 앤서니 롭도 에드워드 녹스도 엘모어 보육원 출신이었다.
그러다 종래에는 교단의 계획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가 되었지.
게다가…… 별로 돌이켜 보고 싶은 기억은 아니지만 이바나 또한, 교단의 브로치를 달지 않았던 나를 거리낌 없이 찌르지 않았던가.
마치 누군가 그렇게 가르치기라도 한 것처럼…….
“저, 엘모어 보육원은 혹시……..”
“남작님. 염치없지만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엘모어 보육원이 사실은 메이슨 교단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살인자를 양성하는 곳이었을지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쳐 확인을 받으려던 순간, 루크 엘모어가 돌연 화제를 틀었다.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부탁이고 뭐고 무시한 채 끊긴 질문을 이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루크 엘모어의 시선이 퍽 간절해 보이는 탓에, 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저러나 싶은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해보라는 의미에서 말을 멈추자 루크 엘모어가 곧장 말을 이어갔다.
“저희 보육원을 인수해서 맡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보육원을 제가요?”
“직접 운영해주시는 수고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인수만 하신 뒤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시고….”
“메이슨 교단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게 해달라?”
간절한 얼굴로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던 루크 엘모어가 일순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정곡을 찔린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아셨냐’거나 ‘교단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계시느냐’고 되묻는 대신, 금세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조금 전의 내 질문을 굳이 이어갈 필요가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루크 엘모어가 가졌다는 죄책감이 ‘메이슨 교단의 영향권 아래 있는 엘모어 보육원 아이들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확신을 얻은 덕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신 여기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게 좋을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겠다고 말하는 게 좋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러는 게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네 번째 사건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당장은 보육원을 인수하고 말고 할 겨를이 없는 데다 그 이후의 일은 어찌 될지 장담할 수가 없다.
이 와중에 무작정 그러겠다는 말을 건넨다면 그건 무책임한 약속이 될 것이다.
속 빈 약속 한 번이야 뭐 어려울 것도 없겠으나, 만약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이 약속이 내 발목을 붙잡는 또 다른 무언가가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지 않나…….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느라 내가 말을 아끼는 사이, 루크 엘모어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불안해진 것인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게 어려우시다면, 부디 다가오는 12월 25일에 아이들이 피아벨 대수도원에 가는 것만이라도 막아주십시오.”
“교단에서 그날 저지르려 계획하고 있는 일 때문인가요?”
“……그것까지 알고 계시니 분명 절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까지 데려다 낙원행 운운하며 죽여버리려 했단 말인가? 나는 순간 입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험한 육두문자를 꾸역꾸역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 살인자를 이해하고 싶진 않았으나 놀라울 정도로 절절하게 이해가 됐다.
나는 멜리사와 약속한 시간이 거의 끝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노력해볼게요. 대신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선 내에서라면 뭐든 대답해드리겠습니다.”
“혹시 교단 내에…… 교주의 파벌도, 스티브 에버렛 씨의 파벌도 아닌 제3의 파벌이 존재하나요?”
내 질문에 루크 엘모어는 잠시 당황한 듯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가, 이내 시선을 올려 나를 직시하며 대답했다.
“아니요.”
“아니라고 하기엔 본인의 행동부터가….”
“……저희는, 또 다른 파벌 같은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밖에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요.”
“뭐든 대답해주겠다고 하신 지 1분도 안 지났는데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선 내에서라고도 말씀드렸고요. 정말 죄송하지만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루크 엘모어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그러니까… 최후의 속죄 같은 거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