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94화 (94/121)
  • 94화. 묵시록 (2)

    메이슨 교단에 대한 이야기라니.

    당황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나에게, 라이오넬이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교단의 뒤를 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까?”

    “맞기는 한데…… 어, 어떻게 아셨죠?”

    “그날 남작님은 엿들은 게 아니라고 하셨지만… 왜, 격한 부정은 긍정이라고들 하잖습니까. 아무래도 내 동지가 맞지 싶어 나름대로 뒷조사를 좀 했습니다. 최근에 남작님과 켄트우드 씨가 연루된 사건들은 하나같이 교단과 연결되어 있더군요.”

    “솔직히 엿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동지라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목적이 같다고 생각했다는 소립니다.”

    “에버렛 씨도 교단의 뒤를 캐고 계셨다는 뜻인가요?”

    “내 경우는 안에서 헤집고 있었던 것에 가깝지만요.”

    딱히 성과가 좋았던 것도 아니고요. 라이오넬 에버렛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일순 떠오른 것은 루크 엘모어의 말이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라이오넬 에버렛과 리디아 에버렛이 다르다는 말.

    어쩌면 루크 엘모어 또한 교단에 대해 어떤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고, 더불어 라이오넬의 진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광신도인 리디아 에버렛 대신 라이오넬이 죄를 뒤집어 써버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거라면?

    대체 얼마나 좋지 못한 감정이기에 친부모까지 살해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한다면 루크 엘모어에게서 앤서니 롭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받은 것도 이해가 갔다.

    자신은 그저 죽어 마땅한 인간들을 죽였을 뿐, 무고한 이에게 피해가 가는 것까지 두고 볼 정도의 미치광이가 아니라고 온몸으로 변명하는 듯한 그들의 행보는 확실히 닮아 있었다.

    “어쩌다 그런 일을 하게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 소중한 사람들을 손쓸 길 없이 망쳐버린 무언가가 있다면, 누구라도 그 시커먼 속내를 까뒤집어 만천하에 고발하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가족분들 말씀이시군요.”

    “내 가족들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지만, 누군가는 아직 돌아갈 수 있는 지점에 서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내 딴에는 한 명이라도 더 빠져나가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탐정놀음까지 하고 있었더랬죠.”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가족들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 따윈 완전히 접어버린 듯한 단정적인 표현에 되려 내 입안이 씁쓸해졌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스티브 에버렛은 죽었고 레너드 에버렛은 살인미수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으며 리디아 에버렛은 어느 모로 보나 메이슨 교단의 광신도가 분명하니까.

    “그래서 저희에게 협조해주시겠다는 건가요?”

    “협조라니. 나는 그저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쪽의 짐을 떠넘기려는 겁니다.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전부를 살리겠다는 망상보다는 돌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는 일에 집중하고 싶거든요.”

    시간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려던 나는, ‘전부를 살리겠다는 망상’이라는 표현에서 주춤했다.

    라이오넬 에버렛의 말은 마치 머지않은 미래에 메이슨 교단의 신도 전부가 죽을 만한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소리로 들렸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예언서의 제일 끝자락에 적혀 있던 사건이었다.

    찢겨져나간 마지막 예언의 바로 앞 내용. 정황상 네 번째 기사의 사명으로 추정되었던 바로 그것.

    “혹시 12월 25일에 피아벨 대수도원에서, 마땅히 자격 있는 자들에게 낙원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는 게…….”

    “변명할 수고를 덜었군요.”

    “그게 신도들을 다 죽이겠다는 소리라고요?”

    “그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종말이란 게 오기 전에 말이죠.”

    라이오넬은 생각만으로도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확 찡그린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땅히 자격 있는 자들’이란 표현이 모호해서 정확히 누굴 가리키는 건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는데, 설마 신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을 줄이야.

    높은 확률로 게임의 클라이막스가 될 네 번째 사건은 어째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도 스케일이 남다를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요컨대 각자 그릇에 맞는 일을 해보자는 겁니다. 나는 그날까지 무슨 수를 써서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교단에서 빼내기 위해 노력할 테니…….”

    “우리는 교단의 비밀을 파헤쳐서, 어떻게든 계획 자체를 저지하기 위해 움직여 달라?”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그렇습니다.”

    “일단 책임 운운할 문제는 아닌 것 같네요. 말마따나 각자 주력하던 일에 집중하자는 거잖아요.”

    “그렇게 받아들여 준다면 고마울 따름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내가 아는 교단 내부의 사정에 대해 말해보도록 하죠.”

    라이오넬이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헛기침을 했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그를 응시했다. 말은 곧장 이어졌다.

    “그날 석실 앞에서 대충 짐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메이슨 교단 내부는 두 파벌로 나뉘어 있습니다.”

    “교주의 파벌과 ‘배교자들’로 말인가요?”

    “맞아요. 구체적으로는 종말이 진정 오리라고 믿는 파벌과 그렇지 않은 파벌이죠.”

    라이오넬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득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들어본 바 교주의 파벌은 말도 안 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일단 신실한 종교인에 가까운 반면, 후자는 교단을 그저 지극히 유용한 사업의 일환으로 보는 이들인 모양이었다.

    “누님은 교주의 오른팔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형도 따지자면 그쪽 파벌이었고요. 반면에 아버지는… 누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배교자들’의 주축 같은 입장이셨죠. 스위트룸에서 죽은 나머지 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잠깐만요. 그럼 혹시…….”

    “맞아요. 피해자들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누님이나 형이 범인일 거라고 생각해서 두 사람의 방을 뒤졌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누님의 방에 문제의 유리병들이 있더군요.”

    “그래서 리디아 에버렛 양을 감싸기 위해 그것들을 에버렛 씨 방에 숨기신 거고요.”

    “그냥 없애버려야겠다는 고민을 수십 번쯤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 우리 남매가 용의선상에 올랐고…… 누님이나 형이 잡혀가는 걸 볼 바엔 그냥 내가 다 뒤집어쓰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누님을 살려서, 종말 따위 오지 않는 세상을 직접 확인하게 만들고 싶기도 했고요.”

    “어…… 이런 말씀 드리고 싶지 않지만 진짜 헛생각 하셨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멍청한 발상을 다 했나 싶은데, 심지어 루크가 범인일 줄은…….”

    라이오넬 에버렛이 씁쓸하게 인상을 쓴 채 웃었다.

    그러고 보면 루크 엘모어는 저 사람을 라이오넬 씨라고 불렀었지. 이쪽도 루크라고 부르는 걸 보니 역시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당신이 공연한 오해로 그런 일을 하고 붙잡혀간 덕분에 루크 엘모어가 자수한 거라는 이야기를 꺼낼까 하다가 그냥 조용히 입을 닫기로 했다.

    안 그래도 여러 모로 복잡해 보이는데 굳이 받아들이기 복잡할 생각 하나를 더 얹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는 루크 엘모어의 이야기를 꺼내는 대신, 다른 질문을 몇 가지 던져보기로 했다.

    “저, 에버렛 씨. 성녀… 그러니까 아리아 오큘러스는 어느 쪽 파벌에 속해 있나요?”

    “그 질문엔 답하기 어렵군요. 개인적으론 교주 쪽 파벌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직접 대면한 적이 없거든요.”

    그렇구나. 직접 만난 적이 없다고…….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실망한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며 잠깐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러고 난 뒤 다음 질문으로 말을 돌렸다. 이 질문은 다소 민감한 부분을 건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았으므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조금 전에 레너드 에버렛 씨도 교주 쪽 파벌이라고 하셨잖아요. 사실 그… 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교주나 에버렛 양은 저를 좀 특별대우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형님분은 왜 저를 죽이려고 하신 걸까요?”

    “그건…….”

    잠시 말을 멈춘 라이오넬 에버렛이 이마를 문지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을 해도 될 텐데 굳이 저렇게 고민하는 것을 보면, 짐작 가는 바는 있으나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어쨌든 그에게는 가족과 관련된 민감한 문제일 터였으므로, 나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라이오넬은 한참 만에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형은 종말을 병적으로 두려워했습니다. 정말로 간절하게 낙원의 존재를 증명받고 싶어 했죠. 그래서… 물론 이것도 내 추측일 뿐입니다만, 남작님의 대답을 듣고 극도로 불안해졌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원치 않는 대답을 건넨 남작님에게 살의를 품을 만큼이요.”

    “아니, 애당초 제가 뭐라고 그런 질문에 답을 하고말고…….”

    “착각이 아니니까요.”

    “네?”

    “교주나 누님에게 특별대우를 받는 느낌이었다고 했던 것 말입니다. 착각이 아닐 거예요. 교단 상층부에서 남작님은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나도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형은 뭔가 알았던 건지도 모르죠, 하고 중얼거리는 라이오넬 에버렛 탓에 나는 또다시 애매모호한 의문에 휩싸였다.

    대관절 베로니카 캠벨의 무엇이 교단 상층부로 하여금 그녀를 특별대우하게 만든단 말인가?

    “혹시 제가 백부님의 작위와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일까요?”

    “아, 그건 아닐 겁니다.”

    “거 이유도 모르신다면서 그건 또 어떻게 확신하시는지.”

    “……안 그래도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이참에 이야기하는 게 좋겠군요.”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런담……. 나는 모쪼록 너무 머리 아픈 이야기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라이오넬을 향해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이윽고 그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은 아니지만, 사실 교주는 몇 달 전까지 꽤 오랫동안 남작님에게 미행을 붙여뒀습니다.”

    ……뭐라고? 나는 휘둥그레졌을 것이 분명한 눈으로 라이오넬을 보며 방금 들은 말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머리를 팽팽 돌렸다.

    답을 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몇 달 전이면 베로니카가 조지 캠벨의 유산을 물려받기는커녕 그와 연을 끊다시피 한 채 살고 있었을 무렵.

    요컨대 베로니카는 캠벨 남작이 되기 전부터 이미 메이슨 교단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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