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검은 밤의 만찬회 (13)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는 멜리사가 보였다. 침울한 표정으로 서 있는 수사관들도 보였다.
같은 마차를 타고 온 루크 엘모어가 곧장 자수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내게는 그러한 사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좀 앉으시는 게 좋겠다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말이 이어졌다.
수사국에 도착하기 전까지도 나는 말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무언가 착오가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밀리엄 켄트우드가 이렇게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허망하게 하차할 리 없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마차 안에서는 외려 침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제임스는 내가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러나 수사국에 도착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잘못 전해진 소식에 대한 정정 따위가 아니었다.
이미 한참을 운 듯 벌건 눈을 한 멜리사 위브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전부 자기 탓이라며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 물은 사람은 오히려 제임스였다.
제임스의 질문을 들은 수사관은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름 모를 수사관이 끌어다 준 의자에 앉은 나는 한참 동안 말을 잃은 채로, 뚜렷한 목적도 없이 그저 주변의 풍경을 살폈다.
온몸의 감각이 통째로 마비된 듯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들은 소식을 부정해줄 누군가를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저 나타나는 것 자체로 그것이 잘못된 소식임을 증명해줄 단 한 사람을.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선득한 깨달음은 한참 뒤에야 찾아왔다.
밀리엄 켄트우드가 죽었다.
내가 넋을 놓고 있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것은 깨달음이라기보다 인정에 가까웠다.
밀리엄이 죽었다는, 도무지 믿을 수 없고 납득되지 않는 사실에 대한 뼈아픈 인정.
그러한 인정과 함께 찾아든 것은 지독한 혼란이었다.
밀리엄 켄트우드는 전작의 주인공이고, 이번 작의 주요 조력자 캐릭터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니.
도저히 이게 맞는 전개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건 배드엔딩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시스템창이 너무도 고요했다.
마치 이 스토리에서 배드엔딩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베로니카의 사망뿐이고, 밀리엄의 죽음은 본래 예정되어 있던 전개라고 말하는 것처럼…….
거기까지 생각하자 일순 가슴께가 뻐근해지며 심장이 덜그럭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단지 이제부터 밀리엄이라는 조력자 없이 게임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아주 알싸하고 혼란스러운 감정.
나는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감정의 파도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울고 있는 멜리사 대신 근처에 있던 수사관 하나를 붙잡아 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다짜고짜 설명을 요구하는 내 얼굴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사관은 잠시 내 안색을 살피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남작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일단 안정을 취하신 뒤에 들으시는 편이…….”
“아니요. 저는 지금 듣고 싶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요.”
내 말을 들은 수사관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내 나직한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뒤이어 전해진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래봐야 밀리엄의 죽음만큼은 아니었지만.
“켄트우드 씨를 죽인 사람은 리디아 에버렛 양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이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이 앞뜰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느닷없이 에버렛 양이 총을 쐈다고 하더군요.”
리디아 에버렛은 라이오넬의 면회 요청을 받고 수사국을 방문한 참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방문 소식을 들은 밀리엄이 어쩐 이유에선지 멜리사 대신 그녀를 맞이하러 나가겠다고 했고, 건물에 들어서기 전 모종의 대화를 나누다 갑작스럽게 사건이 발생했다고.
“그럼 지금 에버렛 양은…….”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현재 심문 중인 상황입니다. 동생 쪽과 마찬가지로 계속 입을 다물고 있기는 합니다만…….”
“제가 만나볼 수 있을까요?”
“예?”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어오는 수사관을 잠시 올려다보았다가, 말을 정정했다.
“아니, 꼭 만나봐야겠다고 말씀드리는 편이 좋겠네요.”
그녀가 밀리엄과 무슨 대화를 했고, 무슨 생각으로 총을 쏘았든, 내 앞에서도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으리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으므로.
***
“어머, 안녕하세요.”
모두가 말리는 와중에 기어이 억지를 부려가며 마주한 리디아 에버렛은, 나를 향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살가운 인사를 건넸다.
“당신이 생각이란 걸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안녕할 리 없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요.”
“밀리엄 켄트우드의 일로 제게 화가 나신 건가요?”
“지금 그걸…….”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고 되물으려던 나는 순간 멈칫했다.
나는 지금 화가 난 건가?
무의식적으로 튀어 나가려던 말만 보아도, 확실히 그런 것 같기는 했다. 나는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분노의 방향이 리디아 에버렛에게 향하는 것은 과연 자연스러운 일인가?
상식적으로 내가 지금 분노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건 애정캐를 허망하게 죽여버린 제작진일 텐데…….
나는 아까부터 전혀 납득가는 방향으로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생각들을 욕하며 이를 악물었다.
미친 듯이 널뛰기를 해대는 감정들은 차치하고, 지금은 대화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에버렛 양, 어째서 켄트우드 씨를 쏜 거죠?”
“감히 궁금해하지 말아야 할 것을 궁금해하더군요.”
수사관들의 질문에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했다던 리디아 에버렛의 입은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다소 수수께끼 같은 대답이긴 했으나 답을 추측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리디아 에버렛의 입장에서, 밀리엄이 궁금해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가는 김에 그 부분을 좀 더 파달라는 뜻이죠?’
“그가 당신에게, 메이슨 교단에 대해 묻던가요?”
“그랬지요. 교묘하게 다른 이야기를 하는 척 굴긴 했지만… 눈치라면 저도 제법 좋은 편이라서요.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눈치라 저로서도 정말이지 어쩔 도리가 없었답니다.”
리디아 에버렛은 정말로 ‘어쩔 수 없이’ 밀리엄을 쐈다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다시 치밀어오르려는 모종의 감정을 꾹 억누르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요컨대 리디아가 밀리엄을 죽인 것은 그가 그녀에게서 메이슨 교단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 했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게 동기라면 그래, 그것까지는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었다.
교주와의 대화로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리디아 에버렛은 아주 신실한 신도인 듯했으니, 교단의 뒤를 캐고 다니는 전직 수사관의 행동을 위협으로 간주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녀가 내게 보이고 있는 태도였다.
리디아는 밀리엄과 나의 대외적인 관계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 내 앞에서 지극히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조금 의아해하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내가 밀리엄의 죽음에 아무런 감정적 타격을 입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는 양.
대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저런 태도를 보이게 만든 걸까.
혼란스러운 한편으로 몹시도 끔찍한 기분이 든 나는 결국 더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리려다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마지막으로 물어야 할 것 같은 말이 떠오른 탓이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리디아 에버렛과 눈을 마주치며,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같은 질문을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했다면, 당신은 나를 쐈을까요?”
리디아 에버렛은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을 정도로 말간 미소와 함께,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세상에. 그럴 리가요.”
대체 내가 무엇이기에 그러느냐고 물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한없이 끔찍한 감각에 사로잡힌 채 취조실을 빠져나가는 것뿐이었다.
***
밀리엄의 시신은 수사국 지하의 영안실에 임시로 안치된 상태라고 했다.
마침 취조실 또한 지하에 있었던 까닭에, 영안실을 찾아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 거기까지는 정말로,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영안실 앞의 복도는 무덤처럼 고요했다. 나는 그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영안실’이라고 적힌 팻말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저 문 너머에 밀리엄의 시신이 있을 것이다. 문고리를 잡아 돌려 안으로 들어가면 직접 확인할 수도 있겠지.
그러고 나면 조금은 실감이 나려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나는 꼭 실감이란 걸 해야 하는 걸까?
밀리엄이 허망하게 죽었고, 그게 높은 확률로 게임 전개의 일부이고, 이제부터는 그가 없는 이 세계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 모든 걸 내가 굳이 인정해야 하나……?
나는 문손잡이를 잡으려던 손을 거두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에 등을 기댔다.
차갑고 단단한 문에 간신히 의지하던 몸은 오래 지나지 않아 힘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문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은 꼴로 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사실은. 솔직히 말하자면.
실감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억지를 부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 뒤에 내가 느끼게 되리라고, 무의식중에 깨달아버린 어떤 감정이 두려워서였다.
반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지금도 이토록 혼란스러운데, 밀리엄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완전히 실감하고 난 나는.
그때 나를 집어삼키고 말 감정은…….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은 그것의 이름을 어렴풋이 떠올리기 무섭게, 서늘한 무언가가 한쪽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여전히 멍한 기분으로 손을 들어 그것을 훔쳐냈다.
그렇게 젖은 손가락에 잠시 닿았던 시선을 시야의 오른쪽 아래로 움직인 것은 아주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움직인 시선 끝에 회중시계 아이콘이 보였다. 아이콘 옆의 숫자는 1.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기억을 더듬어 마지막 세이브 지점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수사국으로 향하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 밀리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떠오른 선택지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내 행동을 강제할 무언가가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무모한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어쩔 수 없이 회중시계 아이콘을 눌렀다.
다음 순간 손에 잡혀 온 묵직한 회중시계를 내려다보자 무모한 생각은 점점 깊어졌다.
이걸 지금 사용하는 건 어떨까.
물론 나는 지금 살아 있다.
이후로 어떤 죽음의 위협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고, 이 뒤의 어느 지점에서 새 회중시계를 획득하게 될지 또한 모른다.
더군다나 밀리엄의 죽음이 스토리상 예정되어 바꿀 수 없는 사건이라면 나는 마지막 남은 귀중한 회중시계를 낭비해버리는 꼴이 된다.
그걸 알면서도 시도해보고 싶다면, 단지 살아 있는 그를 한 번 다시 만나는 것으로 끝나버릴지라도 기꺼이 이 기회를 낭비해보고 싶다면.
나는 미친 걸까?
별안간 퍽퍽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상황에 웃을 수 있다니 정말 미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상관없겠지.
막말로, 미친 사람이 미친 짓을 하는 게 뭐 그리 이상한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