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검은 밤의 만찬회 (7)
아침이 되어 다시 만난 멜리사는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대주주?”
밀리엄의 되물음에 멜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한 긍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번 방금 들은 사실이 정확한지를 확인하기 위해 구태여 질문을 건넸다.
“피해자들이 전부 말인가요?”
“네. 에버렛 씨뿐만 아니라 나머지 네 사람 또한 이 호텔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답니다. 경영에 관여한 바도 적지 않았다고 하고요.”
피해자들이 이브리안 호텔의 대주주였다고…….
그것은 정말이지 뜻밖의 소식이었으나, 한편으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는 소식이기도 했다.
다행히 그런 의문을 품은 이가 나 하나는 아니었던 모양인지,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제임스의 질문이 이어졌다.
“수사관님께선 그러한 공통분모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의미라고 표현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멜리사가 어물거리며 전한 바에 따르면, 담당수사관들은 피해자들이 이브리안 호텔의 대주주였다는 정황에 근거하여 에버렛 삼남매를 유력 용의자로 보게 되었다고 했다.
“지배인에게 듣기로는 평소부터 호텔 경영과 관련하여 부친과 마찰이 심했다는 모양입니다. 피해자들은 공교롭게도 스티브 에버렛 씨의 경영방침에 동조했던 대주주들이고요.”
요컨대 에버렛 삼남매 중 하나가 도통 말을 들어먹지 않는 부친과 그 파벌의 주주들을 처리하고 경영권을 쥐기 위해 이런 사건을 벌였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메이슨 교단과의 연관성이야 차치하고라도, 그런 세속적인 동기로 말미암아 벌어진 사건이라기엔…….
“그런 것치고는 현장의 상태가 너무 거창하지 않았나?”
그렇지. 내 말이 그 말이다. 나는 밀리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이어나갔다.
경영권이니 상속이니 하는, 지극히 실리적인 동기를 가진 범인에게 굳이 번거롭게 그런 식의 현장을 세팅해놓고 피해자들이 더 오래 고통받도록 시간을 끄는 범행방식은 어울리지 않는다.
“확실히 그런 부분이 없잖아 있기도 하지만…….”
“위브 수사관님. 에버렛 씨가 자제분들과 마찰을 빚었다는 문제의 경영방침에 대해서도 혹시 알아내신 바가 있나요?”
“자세한 사정은 지배인도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전해 들은 건 자제분들이 스티브 에버렛 씨의 공격적인 사업확장에 여러 번 격렬히 반대의견을 내비쳤다는 이야기 정도고요.”
멜리사는 만약 에버렛 삼남매 가운데 범인이 있다면, 그 동기는 부친의 공격적인 경영방침이 사업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치리라 판단해서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솔직히 나로서는 고작 그런 이유로 사람을 다섯 명이나 죽일 수 있다고 보는 수사관들의 입장이 영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범인이 누구건 간에 사람을 다섯 명이나 죽인 시점에서 제정신은 아닐 것이 분명한데 굳이 이유의 경중을 논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다.
……하여간에, 지금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에버렛 삼남매가 용의선상에 올랐다는 사실이겠지.
왠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자식이 부친을 죽였을지 모른다고 의심해야 하는 비정한 상황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사실을 접한 에버렛 삼남매가 수사에 성실히 협조해줄 것 같지 않다는 강한 예감 때문이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막내야 그렇다 치고 위의 둘은 성격이며 성질머리가 만만치 않은 것 같았는데.
가능하면 그쪽을 상대하는 일은 멜리사에게 떠넘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전망은 썩 밝지 못했다.
정말이지 애석하게도 이 게임의 주인공은 멜리사가 아니라 베로니카였으므로.
***
에버렛 삼남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우리는 곧장 그들과 대면하는 대신, 며칠 전 스위트룸에 만찬 테이블을 세팅하러 올라갔었다는 직원을 만났다.
“제, 제게 물어볼 것이 있으시다고요…?”
자신을 잭슨 하디라고 소개한 직원은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말을 더듬으며 이리저리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자신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증언을 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 불안한 모양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불안이었으므로, 여기서는 아무래도 본인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날카로운 어조를 사용할 가망성이 높은 밀리엄이나 제임스 대신 내가 대화를 주도해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하디 씨. 대답하시기에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실 테니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치,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남작님…….”
그러나 반응을 보아하니 나라고 딱히 누군가를 안심시키는 데 소질이 있는 인간은 아닌 모양이었다.
혹시 내 말투도 좀 그런 구석이 있나. 아니면 역시 남작님 어쩌고 하는 타이틀이 문제인가…….
잠시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나는 여전히 바싹 긴장한 상태인 잭슨 하디를 향해 질문을 꺼냈다.
“그럼 하디 씨. 조심스럽게 여쭙겠는데, 테이블 세팅을 하러 가셨을 때 스위트룸에 계셨던 손님들이 몇 분이었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어…….”
잭슨 하디는 척 봐도 기억을 더듬는 모양새로 눈동자를 굴리며 말을 늘였다. 그리고 한동안의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다섯 분이 계셨습니다.”
“확실합니까?”
훅 끼어든 밀리엄의 질문에 잭슨 하디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는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눈을 또렷하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대답했다.
“네. 다섯 분이 계셨어요. 왜 식기를 5인분 놓아야 하는지 생각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확실할 겁니다.”
하긴 인원이 그보다 적거나 많았다면 자연히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다섯 분이 계셨기 때문에 5인분의 식기를 준비하는 데 의문이 들지 않았다’는 잭슨 하디의 근거는 퍽 타당했다.
자,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문제의 다섯 명에 넬리 엘모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그저께까지 멀쩡히 엘모어 보육원에 있었으니까.
잭슨 하디가 보았다는 다섯 명 중 한 명은 높은 확률로 범인일 터였다.
그렇다면 이 남자에게 피해자들의 얼굴을 확인시킨 뒤, 용의자들 가운데 그날 본 다섯 번째 손님이 누구인지를 지목하게 하면 만사형통 아닌가?
“하디 씨. 그렇다면 그날 보신 다섯 분의 얼굴도 전부 기억하고 계십니까?”
“아, 그, 그건…….”
그러나 당연하게도 일은 그렇게 술술 풀리지 않았다. 제임스의 질문에 영 신통찮은 반응을 보이며 다시 불안해하는 잭슨 하디가 그 증거였다.
그는 잠시간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입술을 꾹 깨물고 뒷머리를 긁적이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면목이 없다는 듯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죄송합니다. 에버렛 사장님을 포함해 이번에 돌아가신 네 분까지는 확실히 기억하는데, 사실 다섯 번째 손님은 제가 얼굴을 직접 뵌 게 아니라서요.”
그럼 그렇지. 되도 않는 요행 같은 걸 바란 내가 멍청했다.
곁에 앉은 밀리엄이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소파 등받이로 허물어졌다. 제임스 또한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두 사람을 보고 지레 겁을 먹었는지 다시금 종전의 불안감 가득한 낯을 하는 잭슨 하디를 향해 다시 말을 꺼냈다.
“직접 본 게 아닌데 다섯 명이 있다는 걸 아셨다면, 목소리를 듣거나 실루엣을 보신 건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 제가 테이블을 세팅하는 동안 네 분께선 거실에 계셨는데, 딱 한 분만 테라스에 나가계셨거든요.”
“그 한 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나는 정보가 있다면 전부 말씀해주세요.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요.”
내 부탁을 들은 잭슨 하디는 곱슬거리는 짧은 흑발을 헝클어트리며 미간을 찌푸린 채 ‘으음…….’ 하고 다시 말을 끌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열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아주 사소한 거라도 좋다’고 말한 쪽은 나였으므로 나는 최대한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을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잭슨 하디가 드문드문, 딱히 정리되지 않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실루엣은 죄송스럽게도 보지 못했지만 목소리는 들었습니다. 젊은 신사분인 것 같았어요. 그리 특색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다시 듣는다고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목소리를 들으셨다는 건 그 사람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겠군요.”
“네, 맞아요. 에버렛 사장님과 대화중이셨죠. 별로 훈훈한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았지만요…….”
“대화 내용을 기억하시나요?”
“계속 이어 들은 것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애당초 저따위가 들어도 좋을 대화는 아니라고 생각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데다…….”
“그러셨군요……. 그 사람이 에버렛 사장님에게 사용한 호칭이라거나, 서로 어떤 말투를 썼는지라도 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 호칭은 듣지 못했지만 신사분이 사장님께 존대를 하셨던 건 기억합니다. 사장님께선 편하게 말씀하셨고요.”
잭슨 하디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것이 전부였다.
다섯 번째 손님이 젊은 남자였다는 것.
스티브 에버렛과 썩 호의적이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존대를 사용한 반면에, 스티브 에버렛은 그에게 하대를 했다는 것…….
다른 정보라고 해봐야 다섯 번째 인물과는 별개로, 테이블 세팅이 끝난 뒤 스티브 에버렛이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식사를 치우러 올 필요가 없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는 이야기가 더해진 정도였다.
나는 연신 죄송해하는 잭슨 하디에게 ‘협조해주셔서 감사하고 이만 가보셔도 좋다’는 말을 건네며 생각을 찬찬히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