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검은 밤의 만찬회 (6)
두 사람은 ‘그냥 쉬지 뭐하러 왔냐’고 염려 어린 말을 하면서도, 본인들 또한 할 말이 남아 있기는 마찬가지였는지 기꺼이 나를 들여보내주었다.
“어쩌면 제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한 감상으로, 리디아 에버렛 양과 레너드 에버렛 씨는 부친께서 돌아가신 사실에 크게 상심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나는 밀리엄이 내어준 소파에 앉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러자 밀리엄과 제임스의 표정이 동시에 오묘해졌다.
그에 뒤이어 밀리엄이 ‘영 탐탁잖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헛기침을 하는 사이,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마침 저희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저희가 라이오넬 에버렛 씨에게서 받은 느낌이, 남작님께서 두 사람을 상대하며 느끼신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요컨대 라이오넬 에버렛이라고 부친의 죽음에 상심한 것 같지는 않았다는 소리였다.
물론 사람은 상황과 장소에 따라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생물이다. 사람에 따라 그 능숙도가 다르긴 하겠지만.
어쨌든 에버렛 삼남매가 유난히 그런 부분에 재능이 있어 자신들의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은, 특히 리디아 에버렛은 슬퍼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이 상황 자체를 몹시 귀찮고 성가셔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꼴사나워 보이거나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혹은 그게 어른스러운 대처라 생각해 구태여 슬픈 티를 내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말로 남의 눈을 의식했다면, 굳이 제삼자들이 보기에 위화감이 들 정도로 성가신 체를 하지도 않았겠지.
요컨대 스티브 에버렛의 죽음에 대해 오늘 삼남매가 보인 반응이란 지극히 진실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세 사람 다 부친과 사이가 나빴던 걸까요?”
“자식 셋이 전부 저런 태도를 보일 정도라면… 고인 되신 분께 죄송한 말씀이나 스티브 에버렛 씨 쪽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지.”
“글쎄요. 문제가 꼭 한쪽에만 있었으리라는 보장은 없죠…….”
나는 스티브 에버렛이 문제적 부친이었으리라는 제임스의 가설에 조금의 이의를 제기했다.
레너드 에버렛이야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리디아 에버렛과 라이오넬 에버렛은 분명 메이슨 교단의 신도였다.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 모두를 문제 많은 인간으로 일반화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최소한 리디아 에버렛은 교주와 독대해 자기 의견을 설파할 만큼의 위치에 있는 인물.
그 정도의 위치에 있는 신도가 알고 보면 멀쩡하고 반듯한 인간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외려 지나치게 근거 없는 선해가 아닌가?
물론 베네딕트 홀터스와 엘모어 부부가 피해자라는 정황상 스티브 에버렛 역시 교단의 신도였을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이 경우 어째서 가족인 데다 같은 사이비 종교에 몸담기까지 하고 있는 부친과 자식들의 관계가 영 좋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긴 하지만…… 그것도 글쎄.
‘배교자들을 처단해야 해요. 이대로 두고 보시다간 그들의 사특한 욕망이 우리의 낙원행까지…….’
말은 배교자라고 했지만 진짜로 교단을 등지고 아예 나가버린 상황이었다면 ‘그들의 사특한 욕망’이 저희들에게까지 미칠 것을 걱정하진 않았겠지.
그러니까 리디아 에버렛이 사용한 ‘배교자’라는 표현은 실상 여전히 교단에 속해 다른 신도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단자들을 의미했을 터다.
따라서 메이슨 교단이 현재 모종의 기준으로 분열되어 있는 상태라고 판단한다면, 똑같이 교단에 몸담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목적과 같은 믿음을 가졌으리라 보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상한 아버지와 이상한 자식들이 충돌하면서 콩가루가 터져 나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고.
물론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서 의문점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리디아 에버렛과 라이오넬 에버렛의 관계가 그렇다.
라이오넬이 리디아와 교주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으니, 파벌이 갈려있다면 리디아와 라이오넬은 다른 쪽에 속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둘이 스티브 에버렛의 죽음에 보이는 태도는 큰 차이가 없단 말이지…….
혹시 파벌이 셋 이상인가?
아니면 정말 교단과는 관계없이 스티브 에버렛이 글러먹은 아버지였기 때문에 자식들이 저렇게 한 마음 한 뜻으로 멀쩡한 건가?
으음…….
한동안 인상을 쓰고 고민하던 나는, 어쩐지 방에 들어온 이후부터 묘하게 밀리엄이 조용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슬쩍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맞은편의 1인용 소파에 앉은 밀리엄은, 심각한 얼굴로 살짝 아래쪽의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조금 전까지의 내가 저랬을까 싶은 얼굴.
그러나 저 아래 감춰진 고민 또한 나와 같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
나는 그래봐야 밀리엄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그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방금까지 나와 제임스가 나눈 대화의 무언가가 또다시 밀리엄의 상처나 역린을 건드린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워서였다.
그러던 어느 시점에, 분명 허공을 향해 있던 밀리엄의 눈길이 돌연 나의 그것과 마주쳤다.
깜짝 놀란 나는 제게로 다가오는 맹수의 기척을 눈치챈 초식동물처럼 움찔 몸을 떨었다.
딱히 찔릴 만한 일을 한 게 아닌데도 그랬다. 시선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하지 못했다.
쉽게 말해 나는 얼었다.
그리고 밀리엄은 야속하게도 그렇게 얼어붙은 내 눈길에서 한참 동안 시선을 떼지 않았다.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이 버거울 정도로 지긋이 나를 향해 있었고, 그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역시 뭔가 건드렸나?
아무래도 주제가 가족이라 좀 그랬을까?
밀리엄은 양친이나 여동생과도 사이가 좋았으니, 남의 집안을 콩가루라고 아무렇지 않게 전제하는 대화가 영 마뜩잖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주 보기가 좀 불편해서 그렇지 막 착잡해보이거나 불쾌해보이는 눈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아닌가. 이건 너무 낙관적인 착각인가…….
그렇게 끝간 데 없이 뻗어나가는 상상으로 머릿속이 한계에 부딪치기 직전, 밀리엄이 별안간 살포시 눈을 휘었다.
푸스스하고 바람이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이어진 것은 그 직후의 일이었다.
갑자기 뭐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눈만 깜빡이고 있자니 뒤이어 밀리엄이 입을 열었다.
“또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군요.”
“그런 눈…이라뇨?”
“상처받기 쉬운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눈으로요.”
밀리엄은 빙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고, 나는 당황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꼭 속내를 들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를 어린애 보듯 한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만 수틀려도 상처받을지 모른다고 불안해 한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베로니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나는 자식을 죽이는 부모도, 부모를 죽이는 자식도 본 적이 있는 걸요.”
놀랍게도 그는 정말로 내가 그를 보며 느낀 불안을 완벽히 꿰뚫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할 말을 잃은 채 얼떨떨하게 목덜미를 매만졌다. 그 부근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건 뭐지?
생각하던 것을 완전히 간파당한 데 대한 민망함인가. 아니면 다른 생각도 간파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인가.
아니! 애당초 내가 하는 생각 중에 저 남자에게 간파당하는 일을 불안해해야 하는 것이 뭐가 있다고?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있을 리가 없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당신이 그렇게 자꾸 날 걱정해주고 배려해주면, 나는 약아빠진 인간이라 기분이 좋아져요.”
“거 약아빠진 인간이 다 얼어 죽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기분이 좋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나한텐 좋죠. 하지만 당신에겐 안 좋을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쉽게 상처받는 사람이 아닌 대신에,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쉽게 판단력이 흐려지는 사람이라서요.”
대화의 방향이 어째 심상치 않았다. 그것도 영 좋지 못한 방향으로 심상치 않았다.
판단력 운운한 순간 나는 밀리엄이 이 대화를 언젠가 그가 말했던 ‘정중한 구애’의 연장선상으로 끌고 가려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둘만 있어도 도망치고 싶을 상황인데 여기엔 나와 밀리엄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어떻게든 존재감을 피력해보란 의미에서 제임스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나와 밀리엄을 번갈아보다가, 나를 향해 코끝을 찡긋해 보일 뿐이었다.
저는 외려 이 대화가 갈 데까지 가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듯한 행태.
당연히 입을 열어주거나 헛기침을 해주는 협조성 따윈 보여주지 않았다.
“내 판단력이 흐려져서, 당신이 그저 좋은 사람이라 해주는 일들에 엉뚱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 곤란하잖아요.”
저게 정말 자기 판단력을 믿지 못해 하는 소리면 억울하지라도 않을 것이다.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지만, 굳이 이 타이밍에 저런 발화를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모를 만큼 순진한 편도 아니었다.
저 말을 ‘내가 착각할지 모르니 배려나 걱정을 베풀지 말아달라’는 충고로 곧이 받아들이기엔, 애석하지만 내게도 살아온 짬이란 게 있단 소리다.
밀리엄이 지금껏 구구절절 꺼낸 말의 진정한 의도란, 기실 ‘거리감이 느껴지니 날 조심히 대하지 말라’는 속 시커먼 선전포고에 가까웠다.
또 그러면 셋이 아니라 삼십 명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고 ‘판단력이 흐려진 척’을 하시겠다는 경고이기도 하겠지.
나는 선선히 웃는 낯으로 나를 보는 밀리엄을 향해 힘겹게 마주 웃어 보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내가 다시 저 작자 걱정 같은 걸 하나 봐라…….
하지만 그렇게 다짐하고 난 뒤에도 목덜미는 눈치 없이 뜨끈거렸다.
덕분에 나는 대화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와서까지 내가 밀리엄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생각이 대관절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끝내 답을 찾지 못한 것을 보면…… 글쎄.
뭔지는 몰라도 너무나 들키고 싶지 않은 나머지, 나에게조차 숨기고 있는 생각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