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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83화 (83/121)
  • 83화. 검은 밤의 만찬회 (5)

    에그홀더와 다잉메시지.

    명확한 의미를 유추하기 힘든 두 개의 단서를 찾아낸 뒤 로비로 돌아온 우리는 어째선지 진이 다 빠진 듯 퀭한 눈을 하고 있는 멜리사와 재회했다.

    밀리엄은 우릴 위해 현장을 조사하던 인력을 잠시 물려준 것에 고마움을 표한 뒤, 그녀에게 우리가 추측한 정황을 전했다.

    물론 다잉메시지의 존재에 대해 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멜리사는 피로에 찌든 표정을 하고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가며 밀리엄의 설명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일단 고견에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 내용은 지금부터 저희가 올라가서 재차 확인해보도록 할 테니, 저…… 혹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부탁?”

    “그게…….”

    멜리사가 영 겸연쩍은 얼굴로 슬쩍 시선을 옮겼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까 보았던 에버렛 삼남매와 더불어 의자에 앉은 또 한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나는 그들을 보는 멜리사의 눈이 한층 퀭해진 것을 확인하며, 아무래도 저 네 사람 혹은 저 중의 일부가 그녀를 급작스런 피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순간 리디아 에버렛이 멜리사를 향해 매섭게 눈을 흘겼다.

    멜리사는 놀란 사람처럼 어깨를 살짝 헐떡이더니 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현장조사를 마치고 시신을 운반해 내려올 때까지 유족분들과 대화를 좀 나눠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 아무래도 단단히 신경을 거슬러버린 것 같거든요…….”

    “확실히 그래 보이긴 하네요.”

    리디아와 레너드 에버렛은 멜리사를 신경질적으로 노려보고 있었고, 아까 보지 못했던 남자는 양손에 얼굴을 묻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다.

    부정적인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건 심드렁한 표정으로 기둥에 기대어 허공을 내다보고 있는 라이오넬 에버렛뿐이었다.

    그들과 멜리사를 번갈아 바라본 밀리엄이 이내 한숨을 푹 쉬며 멜리사를 질책했다.

    “유족을 울 정도로 몰아붙이다니, 멜리사…….”

    “그, 그런 적 없습니다! 엘모어 씨는 양친을 잃고 충격을 받으셨을 뿐이지 저 때문에 울고 계신 게 아니에요. 정말로요!”

    하지만 리디아 에버렛과 레너드 에버렛이 저토록 불쾌감을 사방팔방 뿌려대고 있는 건 일부분 본인 탓이 맞다는 소리렷다…….

    그렇게 생각한 직후에야 나는 방금 멜리사의 입에서 ‘엘모어 씨’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래, 유족분들이라고 했지. 그럼 저기 앉아 울고 있는 저 사람은 어제 엘모어 보육원에서 소개를 받았던…….

    ‘안녕하십니까, 캠벨 남작님. 루크 엘모어입니다.’

    나는 보는 내가 다 착잡해질 정도로 애처롭게 울고 있는 루크 엘모어의 정수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내 다시 멜리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족은 저기 계신 분들이 전부인 건가요?”

    “아, 네. 헤일 부인과 홀터스 병원장님께는 따로 연락 드릴 유족분들이 계시지 않아서요.”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로비 한복판의 네 사람 쪽을 보았다.

    ‘그럼 잘 부탁드린다’는, 구체적으로 뭘 부탁드린다는 것인지도 애매한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현장으로 향하는 멜리사의 발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그러니까 대충 짐작해보자면… 본인이 현장조사를 마치고 시신을 수습해 내려올 때까지 유족들을 잘 달래서 붙들어 놓고 있어달라는 뜻이었겠지?

    나는 그런 짐작과 함께 네 명의 유족을 한명 한명 잠깐씩 응시했다.

    루크 엘모어부터 시작해 리디아 에버렛과 레너드 에버렛을 지나 라이오넬 에버렛에 이르기까지.

    시선은 부드럽게 움직였으나 머릿속은 복잡했다.

    당연하게도 저들을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위로에 재능이 없는 것도 물론 사실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리디아 에버렛과 라이오넬 에버렛의 존재 자체가 내 머릿속을 신나게 헤집어 놓고 있었다.

    저 둘을 여기서 다시 만난 게 전개상의 우연일 리 없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거기까진 확실한데 그 뒤가 문제였다.

    덕분에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쨌든 멜리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그들에게 다가가고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순간.

    내내 팔짱을 낀 채 허공을 보고 있던 라이오넬 에버렛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변함없이 심드렁한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고 느꼈을 때, 마치 그게 착각이 아님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가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그것은 명백히 나에게 건네는 인사였으나, 일순 등 뒤로 오소소 솟아오른 소름 탓에 나는 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 소름이 라이오넬 에버렛의 인사 때문인지, 아니면 마찬가지로 나에게 향해 있는 리디아 에버렛과 레너드 에버렛의 시선을 연이어 발견한 탓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저히 말을 걸 상황이 못 되었던 루크 엘모어의 경우야 차치하고, 기실 에버렛 남매와 대화를 이어가는 일은 예상 외로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밀리엄과 제임스는 다르게 느꼈을 가망이 크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리디아 에버렛은 스위트룸에 올라가기 전 잠시 마주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아주 살갑게 대했다.

    그러나 밀리엄과 제임스가 잠시라도 대화에 끼어들라 치면 금세 싸늘한 어조로 그들의 개입을 원천봉쇄하려 들었다.

    레너드 에버렛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리디아와 달리 말투가 조금 퉁명스럽고, 어딘지 나를 관찰하려는 듯한 시선이 영 껄끄러울 뿐이지 기본적으로는 대화에 지장이 없는 상대였다.

    그러나 그 역시 밀리엄이나 제임스가 나와 자신의 대화에 끼어드는 것은 도끼눈을 뜨고 경계했다.

    결국 두 사람의 말에 제대로 된 대꾸를 건네는 이는 라이오넬뿐이었다.

    바로 그 라이오넬 에버렛이야말로 내가 가장 대화를 나누고 싶은 상대였지만, 상황이 그러한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두 사람에게 양보한 채 리디아와 레너드의 상대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상심이 크시냐, 애도를 표한다, 따위의 상투적인 위로로 시작되어 이리저리 가늠할 길 없이 뻗어나간 대화는 멜리사와 경관들이 시신을 운반해 내려온 직후에야 끝이 났다.

    그사이 일말이나마 진정한 상태였던 루크 엘모어는 멜리사가 부탁하기도 전에 양친의 시신을 직접 확인하겠다고 나섰다가 다시 한번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번엔 비통하게 오열하는 대신 그저 주저앉은 채,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지만… 글쎄.

    그것이 그만큼의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사람은 없었으리라.

    반면 에버렛 삼남매의 태도는 담담하다 못해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은 멜리사가 시신의 신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기 위해 가족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까지 누구 하나 앞으로 나서서 부친의 시신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시신을 확인하기 두려워하는 눈치는 절대 아니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였다.

    그러다 결국 멜리사의 부탁을 받아 시신을 목도한 뒤에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네. 아버지가 맞네요. 이제 됐나요?’

    멜리사를 향해 날카롭게 묻던 리디아 에버렛의 음성은 질문이 아니라 ‘이제 좀 저걸 내 눈앞에서 치우라’는 서늘한 타박에 가깝게 들렸다.

    이후, 시신들을 운구용 마차에 하나씩 실으라고 지시한 멜리사는 유족들과 우리에게 밤이 늦었으니 이만 귀가하시는 게 좋겠다고 권고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호텔을 나서려던 그때에, 뜻밖의 제안을 건네온 이는 다름 아닌 리디아 에버렛이었다.

    ‘번거롭게 오가실 필요 없이 여기서 묵으시는 건 어떨까요?’

    ‘여기서… 말입니까?’

    ‘네. 저와 동생들이 쓰는 층에 마침 빈 방이 두 개 더 있답니다. 평시에는 손님을 받지 않는 방들이지만, 늘 말끔한 상태를 유지하라고 지시해뒀으니 당장 쓰시기에도 불편함은 없으실 거예요.’

    부족한 물건이야 직원들에게 일러 준비시키거나 댁으로 사람을 보내 챙겨오도록 하면 된다.

    이 늦은 시각까지 여기 붙들려 계시느라 남작님께서 피곤하실 텐데 한시라도 빨리 쉬게 해드리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그것은 거절할 만한 구실을 전부 봉쇄했다는 점에서 기실 제안이라기보다는 강요에 가까운 호의였으며, 좀체 그 속을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말마따나 우리는 리디아 에버렛에 의해 거절할 구실을 몽땅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물며 아무리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한들 리디아는 부친을 잃은 딸이었으므로, 그 상황에서 그녀가 건네는 호의를 내치는 것은 객관적으로 좋게 보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밀리엄은 ‘남작님께서 피곤하실 텐데 한시라도 빨리 쉬게 해드리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리디아의 말에 어느 정도 설득당하기까지 한 듯 보였다.

    그리하여 완전히 말려버린 우리는 결국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이브리안 호텔에서 묵게 되었다.

    한참 넋을 놓고 있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루크 엘모어만이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며 엘모어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마음 같아선 제일 좋은 방을 내어드리고 싶은데, 애석하게도 아버지께 선수를 빼앗겨버리고 말았네요. 누추한 방에 모시는 것을 용서하세요, 남작님.’

    리디아 에버렛이 겸연쩍어하며 직접 안내해준 방은, 분명 사건이 발생한 스위트룸보다야 못했지만 충분히 넓고 호화로운 방이었다.

    나는 그 멀쩡하기 그지없는 방의 상대적 누추함을 강조하기 위해 죽은 자기 아버지를 괘씸한 경쟁자라도 되는 양 입에 담는 리디아 에버렛의 언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잠시의 경악이야 어쨌든 날 안내해준 리디아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방에 남아 쉬는 대신 밀리엄과 제임스가 묵게 된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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