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검은 밤의 만찬회 (4)
나는 곧장 모노클 아이콘을 눌렀다.
그리고 손에 쥐여진 모노클을 오른쪽 눈에 가져다 댄 채 식당 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식탁 위의 무언가가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마른침을 꼴딱 삼키며 싸늘한 시신들을 지나,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분의 식기가 준비된 식탁 위에서 반짝이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에그홀더였다.
고개를 기울인 순간 모노클이 제 본분을 마쳤다는 듯 파스스 사라졌다.
나는 조금 전까지 모노클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으로 에그홀더를 집어들었다.
[ ‘달걀이 든 에그홀더’를 발견했다. ]
그럼 에그홀더에 달걀이 들어있지, 뭐 다이아라도 들어있어야 하나?
대관절 이 물건의 어디에서 수상한 점을 찾아야 하느냔 말이다…….
나는 막막한 한숨과 함께 에그홀더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에그홀더가 빠진 식탁 위를 주르륵 훑어보았다.
작은 위화감이 느껴진 것은 그때였다.
차려진 식기는 5인분. 당연히 에그홀더 또한 내가 들고 있는 것을 포함해 각 식기 앞에 하나씩 다섯 개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계란을 먹은 흔적이 없는 것은 내 손에 들린 이것 하나뿐이었다.
나머지 네 개의 에그홀더 속 계란은 모두 껍질이 깨어진 채였고, 곁에 놓인 작은 스푼으로 파먹은 흔적도 있었다.
게다가 생각해보면, 애당초 며칠 전 차려진 만찬에 식기가 5인분이나 준비되어 있는 것도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넬리 엘모어가 남편과 약속이 있다며 보육원을 나선 것은 어제 오후의 일이 아닌가?
다른 네 사람이 먼저 모여 송년회를 즐기다 넬리 엘모어가 나중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라면, 첫날 차려졌다는 이 식탁에는 식기가 네 개뿐이라야 한다.
죽은 다섯 명이 이 스위트룸에서 송년회를 보내기로 했던 인원의 전부라면 말이다.
나는 손 안의 에그홀더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을 거듭했다.
어쩌면 범인은 이들의 송년회에 초대장 없이 난입한 불청객이 아니라, 애초부터 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 있던 내부자일지도 모른다.
제임스는 이것이 단독범의 소행이라면, 피해자들을 기둥에 묶어두기에 앞서 일단 의식부터 잃게 할 필요가 있었을 거라고 말했지.
내가 범인이라면 수면제를 준비해 음식에 타거나 식기에 묻히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찬은 코스 형태가 아니라 여러 요리들을 한꺼번에 올려놓고 각자 덜어먹는 식으로 준비되어 있는 상태.
누가 뭘 가져다 먹을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수면제를 묻히기에 가장 적당한 것은, 요리와 달리 개인마다 하나씩 준비되어 있는 식기 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자로서 모든 식기에 일일이 수면제를 바르고 앉아 있는 것은 수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다.
그러니 범인은 다들 당연하게,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식기 하나를 골라야 했을 터.
상식적으로는 물컵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모노클을 이용해 발견한 단서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에그홀더의 달걀을 먹는 데 사용했을 작은 스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를 들어 저 스푼에 수면제를 발라두었다고 한다면 어떨까.
거의 손댄 구석이 보이지 않는 요리들과 달리 에그홀더 속의 달걀들은 한 사람분을 제외하곤 전부 먹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시점에서, 최초에 이 방에 있었으되 달걀을 먹지 않은 한 사람을 범인으로 보는 것이 이상한 관점은 아닐 터.
“저기. 밀리엄, 로웰 씨. 이 식탁 말인데요…….”
나는 시신들을 살피고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돌려, 우선 식탁에 5인분의 식기가 준비되어 있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화두를 열었다.
“분명 이상하긴 하군요.”
“누군가 한 사람이 더 있었다는 건가…….”
턱을 매만지며 그렇게 중얼거리던 밀리엄의 시선이 돌연 내 손 쪽으로 향했다.
“베로니카, 그건?”
“아, 보시다시피 에그홀더인데요. 이것만 먹은 흔적이 없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려서요.”
“그러고 보니 이건 송년회 자리였다고 했지요. 그런데 달걀을 먹지 않았다, 라.”
밀리엄의 반응이 다소 뜻밖이었던 탓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아니, 송년회랑 달걀이 무슨 상관이지? 내가 모르는 이 세계의 상식 같은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나는 이 타이밍에 ‘그 둘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어도 되는 걸까?
일순 그런 고민이 들었지만, 그게 뭔지 알아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으리란 점에서 별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냥 상식이 부족한 인간이 되는 쪽을 선택하기로 결심하며 밀리엄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밀리엄. 송년회랑 달걀에 무슨 상관관계 같은 게 있나요……?”
내 질문에 밀리엄이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멀뚱히 나를 보았다.
그는 꽤나 당황한 눈치로 ‘어…….’ 하고 말을 끌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역시 모르는 게 이상한 상식 중의 상식이었나 보다.
아니, 그 정도의 상식이면 좀 거저 뇌내에 입력해놔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여간에 융통성이라곤 없는 게임 같으니.
“그, 연말에 식사자리에서 으레 하는 일이잖습니까? 다함께 달걀을 깨어 먹으면서 새해에는 껍질을 깨고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는…….”
난감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가던 밀리엄은 돌연 말을 멈추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고는 묘한 낯을 한 채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무어라 형언하기는 애매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낭패감과 안타까움과 죄책감이 고루 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간의 정적 속에서 나는 밀리엄이 이 타이밍에 그런 표정을 지을 만한 이유를 생각해보다가, 이내 그럴듯한 결론에 도달했다.
생각해보니 밀리엄은 캠벨 저택에서 투명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받으며 자랐던 베로니카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지.
혈육에게는 줄곧 외면당한 채 자랐고, 독립한 뒤에도 계속 홀로 지내온 사람이라 그런 종류의 풍습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한대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어쩌면 한 술 더 떠서, 그런 사람에게 ‘으레 하는 일이지 않냐’는 말을 꺼내 소외감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자책하는 중일지도 모르고.
나는 정말이지 안타까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밀리엄의 시선을 슬쩍 회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베로니카가 이런 종류의 상식에 무지한 이유를 알아서 납득해준 것은 달가운 일이었으나, 밀리엄의 착잡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영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갈 곳 몰라 하던 시선은 또 다시 손 안의 에그홀더로 향했다.
아무튼 간에, 그런 풍습이 있다면 이 멀쩡한 달걀은 더더욱 미심쩍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다 함께 깨트려 먹으리란 걸 알아서 스푼에 수면제를 발라놓은 주제에 정작 본인은 입을 대지 않았다니.
그럼 분명 옆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냥 자기 스푼만 깨끗한 상태로 두었으면 될 텐데, 굳이 그런 시선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노클이 에그홀더에 반응한 이유를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 아래를 내려다보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밀리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로니카. 미안합니다. 내가 너무 배려 없는 발언을…….”
“에이, 그게 뭐가 미안해요?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나는 부러 손사래까지 쳐가며 정말 괜찮다는 의사를 열심히 피력했고, 밀리엄은 그제야 종전의 심각한 표정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렸다.
여하간 에그홀더의 의미야 나중에 찬찬히 생각하도록 하고, 지금은 혹시 다른 단서가 더 있는지를 찾아봐야지.
그리하여 손에 들고 있던 에그홀더를 있던 자리에 도로 돌려놓고, 식탁에서 몸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잠시 내려간 시선 끝에는 가지런히 정돈된 한 사람분의 식기들이 놓여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다른 자리의 식기들과 달리 나이프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어딘가에 떨어져 있나 싶어 몸을 돌렸을 때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뒤의 기둥에 묶여 있는 중년 남자의 시신이었다.
나는 짐작건대 스티브 에버렛이거나 한스 엘모어일 시신을 향해 홀린 듯이 걸어갔다.
그렇게 대여섯 걸음쯤을 걸어 시신 앞에 도달해 몸을 숙이자 축 늘어진 시신의 오른손에 들린 나이프가 보였다.
기둥에 묶인 채 깨어나 가까스로 식탁 위의 나이프를 가져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단단히 묶인 굵은 밧줄을 끊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나이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이프의 날 부분에 희미하게 눌러붙어 있는 검붉은 자국을 발견했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날 부분을 만지자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 ‘피 묻은 나이프’를 발견했다. ]
아니나 다를까 나이프에 묻은 것은 핏자국이 맞았다. 하지만 대체 누구의 핏자국인 거지?
이곳에 있는 다섯 구의 시신 가운데 외상으로 사망한 듯한 시신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이건 범인의 피인가?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옮기던 와중, 말끔하게 목끝까지 잠겨 있는 시신의 하얀 셔츠 아래로 붉은 기가 비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강렬한 예감에 나는 시신의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작님?”
“베로니카, 지금 뭘…….”
등 뒤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며 내 행동에 의문을 갖는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단추를 전부 풀어낸 뒤 셔츠를 활짝 열어젖혔다.
시신의 배에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분명한 얕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037’
그것은 아마도 죽음을 직감한 이 남자가 제 배에 직접 새겨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다잉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