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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81화 (81/121)
  • 81화. 검은 밤의 만찬회 (3)

    베네딕트 홀터스만 있었대도 충분히 당황스러웠을 사망자 명단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넬리 엘모어의 이름에 나는 조금 전의 밀리엄이 그랬듯 당황을 금치 못했다.

    “저, 위브 수사관님. 방금 말씀하신 넬리 엘모어가 혹시 엘모어 보육원의 원장인 그 엘모어 부인이신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

    이미 수잔 로이드와 윌 그렉슨의 건으로 엘모어 보육원에 대해 조사한 바가 있어선지, 멜리사는 우리의 당혹감을 이해한다는 듯 곧장 그렇게 확언해주었다.

    밀리엄은 입가를 손으로 감싼 채 침음성을 내뱉었고, 나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함께 엘모어 보육원을 방문했던 제임스 또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베네딕트 홀터스에 넬리 엘모어까지 한꺼번에 사망이라니.

    여러모로 심상치 않은 사건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드는 와중에, 밀리엄이 별안간 말을 꺼냈다.

    “하나만 더 확인하겠는데, 멜리사. 사망한 스티브 에버렛은…….”

    “……생각하시는 그 스티브 에버렛이 맞을 겁니다.”

    “이 호텔의 소유주인?”

    “네. 바로 그 스티브 에버렛 씨요.”

    멜리사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티브 에버렛이라.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이 호텔의 소유주라고 하니 그 또한 무언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지배인의 증언에 따르면, 에버렛 씨가 스위트룸에서 며칠간 지인들과 함께 소소한 송년회를 즐기겠다고 했답니다. 정황상으론 다른 사망자들이 그 지인들인 것 같고요.”

    호텔 스위트룸에서 며칠씩이나 즐기는 송년회가 잘도 소소하겠다…….

    별 의미 없는 감상에 잠시 차게 식었던 생각은 이내 문제의 ‘지인들’에 베네딕트 홀터스와 엘모어 부부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으로 이어졌다.

    성 조나단 병원과 엘모어 보육원은 메이슨 교단 소유의 기관들이다.

    베네딕트 홀터스는 교단의 신도였고, 엘모어 부부 또한 높은 확률로 그러했을 터.

    이 시점에서, 병원장과 보육원장과 호텔 소유주를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준 공통분모가 메이슨 교단이었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아무튼 조금 전에 에버렛 씨의 자제분들께 로비로 내려와 주십사 연락을 드린 참인데… 아, 저기 오시네요.”

    눈을 가늘게 뜨고 고민하던 나는 멜리사의 말에 그녀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먼 발치에서 경관의 안내에 따라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세 명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가 하나. 남자가 둘.

    환한 샹들리에 아래서 덩달아 환하게 빛나는 진한 금빛 머리가 셋이었다.

    점차 가까워지는 그들을 보며 나는 시시각각 커지는 기시감에 고개를 기울였다.

    왜 이런 기분이 들지?

    ……라고 생각하자 마치 그 의문에 대한 대답처럼, 시야에 잡히는 그들의 얼굴 윤곽이 뚜렷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안개로 만들어낸 칼날처럼 흐릿한 듯 예리한 회색 눈과 마주친 탓이었다.

    맙소사. 기시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나란히 걸어오고 있는 세 사람 중 둘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얼굴의 여자. 그녀의 왼쪽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건장한 남자.

    ‘배교자들을 처단해야 해요. 이대로 두고 보시다간 그들의 사특한 욕망이 우리의 낙원행까지…….’

    어제 지하동굴에서 교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리디아라는 이름의 여자와.

    ‘그럼 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누구 덕분에 즐거운 취미활동에 지장이 생겨서.’

    나에게 동굴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알려주었던 남자가 내 눈앞에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이브리안 호텔의 오너인 스티브 에버렛은 슬하에 삼남매를 두었다.

    첫째인 리디아 에버렛.

    둘째인 레너드 에버렛.

    그리고 막내인 라이오넬 에버렛.

    “베로니카. 왜 그래요? 안색이 창백한데.”

    “그게…….”

    내가 메이슨 교단의 지하동굴에서 본 두 사람은 리디아와 라이오넬이었다.

    현장조사를 위해 스위트룸으로 들어서기에 앞서 나는 밀리엄과 제임스에게 그 사실을 조심스레 전달했다.

    “그럼 그 두 사람도 교단의 신도라는 뜻이군요…….”

    제임스가 중얼거리듯 말했고 밀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일단 그렇긴 한데 동생 쪽 행동이 뭔가 수상했다’는 이야기를 이어서 꺼내야 할지 망설이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야 꼭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든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니, 당장은 현장조사를 우선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뿐.

    나는 멜리사의 소개가 있기도 전에 나를 알아보던 리디아 에버렛을 잠시간 떠올렸다.

    그 전까지의 불쾌한 기색 따윈 거짓말처럼 지운 채 반갑게 인사를 건네던 얼굴.

    교주에게 하던 말을 되새겨보자면 그녀는 퍽 신실한 신자인 것 같았는데…….

    뭐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밀리엄과 제임스를 따라 사건현장인 스위트룸으로 들어섰다.

    열린 문을 지나기 무섭게 음식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고 보니 현장이 만찬장처럼 꾸며져 있었다고 했지.

    스위트룸의 널따란 거실을 지나 식당으로 향할수록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으음.”

    나보다 몇 걸음 먼저 식당에 도달한 밀리엄이 어딘지 불쾌한 듯한 소리를 내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범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어지간히 취미가 고약한 자인 모양이군요.”

    나는 밀리엄의 찡그린 얼굴을 지나쳐 식당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가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곧장 이해했다.

    기실 사람을 다섯 명씩 죽여대는 인간에게 고상한 취미를 기대하는 것이 더 우습겠으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는 확실히 악취미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중앙의 식탁에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으나, 음식냄새에 희미하게 시큰한 냄새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차려진 지 며칠은 족히 지난 듯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아직 수사국에 옮겨지지 않은 듯한 다섯 구의 시신이 보였다.

    시신들의 목에는 밧줄이 단단히 감겨 있었고, 각 밧줄의 끝은 식당 안에 세워져 있는 기둥에 하나씩 연결되어 있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밧줄의 길이에 있었다.

    시신들의 목에 감긴 밧줄은 하나같이 그 길이가 몹시 애매했다.

    기둥에 바싹 붙어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식탁의 음식이나 물컵에 닿을 수 있는 길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식탁의 무언가를 짚기 위해 몸을 움직이면 식탁에 닿는 대신 목이 졸려왔으리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음식이야 그렇다 치고, 사람이 물을 못 마신 채로 며칠을 버틴다고 했더라? 사흘이었던가?

    범인은 피해자들을 아사시키거나, 혹은 탈수로 사망하게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문득 들었다.

    굳이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그런 죽음을 맞게 하려 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취미가 고약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가 생긴다.

    나는 다른 피해자들과 다를 바 없이 기둥에 묶인 채 죽어 있는 넬리 엘모어의 시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명히 아는 얼굴이다. 저기 죽어 있는 사람은 우리가 만난 넬리 엘모어가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가 넬리 엘모어를 만난 것은 불과 하루 전의 일이 아닌가?

    나는 어제 오후 늦게 ‘남편과 선약이 있다’며 보육원을 나서던 그녀를 똑똑히 기억한다.

    남편과 함께 사망한 정황으로 보아 문제의 선약이 이 스위트룸에서의 송년회였으리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넬리 엘모어가 기둥에 묶여 있었을 시간은 인간이 탈수로 사망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는 건, 이 악취미적인 현장연출은 정말 연출일 뿐이고 실상 피해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

    사인이야 부검을 해보면 어느 정도 나오게 될 테니 우리가 크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아니지.

    다만 현장을 이렇게 꾸며놓았다는 점에서, 범인이 괴상한 부분에 구애받는 괴상한 인간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덧붙여서 그것 이외에 이 현장을 보고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한다면…….

    “단독범의 소행이라면, 피해자들을 기둥에 묶어두기에 앞서 일단 의식부터 잃게 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요?”

    제임스가 가늘게 뜬 눈으로 현장을 훑어보며 말을 꺼냈고, 나와 밀리엄은 거의 동시에 제임스 쪽을 보았다.

    그 시선이 다소 부담스러웠는지 순간 어깨를 움찔해 보인 제임스 로웰은,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주눅 든 사람처럼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어,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다는…….”

    “확실히, 다섯 명이나 되는 피해자들을 그들이 전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일일이 상대해가며 기둥에 묶는 건 지나치게 수고스러운 일이죠. 저도 로웰 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밀리엄이 아주 조금 사나운 시선으로 제임스를 응시하며 말했다.

    무슨 동의를 저런 표정으로 하나 싶을 정도로 서늘한 얼굴이었으나 나는 그의 심경을 십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굳이 그 부분에 태클을 걸고 싶지 않았다.

    제임스 로웰은 기억을 잃은 거지 성격 개조를 당한 게 아니니 당연히 저럴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제임스가 본능적으로, 조금씩이나마 이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게 밀리엄 입장에서 그리 보기 좋은 장면인 것도 아닐 터.

    뭐, 그렇다고 해서 중재가 필요한 상황도 아닌 것 같으니까…….

    나는 두 남자 사이에 다시 흐르기 시작한 어색한 공기를 애써 외면해주기로 결정한 채 다시 한번 현장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좀처럼 이거다 싶은 것이 보이지 않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시선이 간 곳은, 모노클 아이콘 옆에 떠 있는 4라는 숫자였다.

    신경 쓰지 못한 사이에 네 개나 생긴 데다, 솔직히 모노클은 회중시계만큼 크리티컬하게 중요한 아이템도 아니니 여기서 하나 사용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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