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종말론자들 (4)
“모쪼록 평안히 머물다 가시길 바랍니다.”
교주가 한없이 호의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이비 소굴의 한복판. 평안함과는 한참 동떨어진 풍경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자니 기가 막혔다.
나는 내게 고개를 숙이는 교주를 향해 덩달아 고개를 숙이고서,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를 지나쳐 걸어나갔다.
그리고 바닥의 빈 자리에 다른 사람들처럼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잠시 끊어놓았던 의문점들을 하나씩 다시 되새겨보기 시작했다.
수상쩍은 석실 안에서 낯선 이들이 방언 같은 것을 중얼거리고 있는 환경은 혼란스러운 생각을 정리하기에 썩 바람직하지 못했지만…… 그거야 뭐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생긴 의문점들이란 당장 해답을 도출하기 어려운 것들뿐.
생각의 흐름은 자연히 내가 오늘 얻은 정보를 밀리엄과 제임스에게 어떤 형태로, 어디까지 전달하는 것이 좋은가 쪽으로 이어졌다.
그때 가서 선택지창이 뜨거나 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미리 생각해두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우선 예언서의 마지막장에 관해서는 확실히 전달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리아 오큘러스의 수상쩍은 태도와, 그녀가 우리의 조사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도 공유하는 게 맞겠지.
다만 메이슨 교단이 베로니카 캠벨을 몹시 중요한 인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은…… 어떤 이유에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건 그 두 사람을 향한 나의 신뢰와는 또 다른 문제다.
나는 밀리엄을 믿는다. 밀리엄 켄트우드는 기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신뢰하지 않기가 어려운 인물이다.
조력자로서의 제임스도, 그가 대관절 차후 어떤 역할로 변모할지는 모를 노릇이나 어느 정도는 신뢰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베로니카를 향한 그들의 신뢰는 어떨까?
물론 밀리엄은…… 그래, 아직도 영 실감이 나지 않지만 내 면전에다 대고 무려 ‘당신에게 구애를 해보겠다’는 선언씩이나 해둔 상태다.
나는 그 말이 숫제 고백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눈치를 밥 말아먹은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밀리엄에게 있어 메이슨 교단은 양친과 누이동생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정황이 너무도 명백해서, 가히 철천지원수라 할 만한 조직.
구애니 유혹이니 했지만, 베로니카 캠벨을 향해 밀리엄이 품게 된 감정이란 어느 정도일까.
그건 그녀가 모종의 이유로 메이슨 교단에 이득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한 치의 의심이나 망설임 없이 유지될 수 있을 만큼 단단한 감정인가?
그리고 밀리엄의 신뢰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제임스 로웰의 신뢰에 대해서는 논할 것도 없다.
기억을 찾고자 하는 제임스에게 중요한 상대는 베로니카가 아니라 밀리엄이니까.
둘 중 하나와 함께하기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제임스는 당연히 밀리엄을 선택할 것이다.
게다가 애당초 나 또한 내가 빙의하기 이전에 베로니카가 살았던 삶에 여전히 무지한 상태가 아닌가?
물론 교단의 신자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다른 형태로 교단과 연관 있는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전까지 나는 베로니카를 온전히 믿을 수 없다.
이 제작진은 전작에서도 플레이어블 캐릭터 중 하나인 제임스 로웰을 사건의 흑막으로 설정했던 전적이 있지 않나.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조금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베로니카 캠벨이 메이슨 교단에 있어 중요한 존재’라는 정황 하나만 분명한 지금보다 좀 더, 그 이유나 배경 같은 것이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한 뒤에.
그들이 나를 어떻게 여기든 거기에 내가 자의로 관여한 바는 전무하다고 당당하게 말해도 좋다고 판단될 때.
그때쯤 사실은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홀로 속앓이를 좀 했었노라고 진솔하게 고백하는 것이 더 나은 결정 아닐까.
밀리엄이야 그런 일이 있었으면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자기한테 말해주지 그랬느냐고 잔소리를 좀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의 잔소리를 듣는 기분이란 게 솔직히 그리 나쁘지 않기도 하고…… 아니, 내가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나는 재빨리 고개를 내저으며 또다시 불필요하게 끼어든 감상을 재빨리 내쫓았다.
그러고는 남들처럼 기도하는 척을 하기 위해 소리없이 입술만 달싹이며 계속해서 생각을 거듭해 나갔다.
마지막 예언에 언급된 ‘네 명의 기사’와 그들의 사명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메이슨 교단의 수뇌부는 대체 어째서 그들이 감당하지도 못할 세계멸망이라는 허무맹랑한 예언을 저다지도 강조하고 있는가.
예언서의 마지막장 내용을 확인해버린 지금. 이 뒤로 내가 두 조력자들과 함께 파헤쳐야 할, 메이슨 교단의 ‘더 깊은’ 진실은 무엇인가.
2부에 들어선 <블루 달리아>의 시나리오는 대관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그렇게 온갖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와중, 느닷없이 청명한 종소리가 사람들의 기도 소리를 뚫고 석실 안을 울렸다.
나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도를 멈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대기도인지 무엇인지가 끝났음을 직감하고 덩달아 몸을 일으킨 나는, 내가 들어온 입구의 반대쪽에 있는 문을 통해 석실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왠지 미련이 남아 돌아본 제단 쪽에 더 이상 교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높으신 분답게 먼저 자리를 떠난 건가.
눈 감고 생각 정리를 하느라 교주의 행동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워졌다.
나는 석실 밖으로 향하는 행렬의 제일 끄트머리에 있었다.
나와 내 뒤의 몇 명이 빠져나오기 무섭게 석실의 문이 닫혔다.
문제는 그 뒤에 발생했다.
사람들 뒤를 따라가다 보면 지상으로 이어지는 출구를 마주할 수 있겠지, 했던 나의 속 편한 발상을 완전히 무너뜨려버리는 문제였다.
석실 밖에는 예상 밖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었다.
그리고 석실을 빠져나온 수많은 신도들 또한 여러 갈래로 갈라져 각각의 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들의 걸음엔 하나같이 망설임이 없었고, 나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는 이도 당연히 없었다.
저 많은 길 중에 어느 것이 바깥으로 통하는 길이지?
전부 다라면 좋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어쩐담?
남은 회중시계는 하나뿐인 상황. 갈래길을 하나씩 전부 들락거려보자니 오가는 신도들 눈에 수상쩍어 보일 것이 너무도 자명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제가 초행이라서 그런데 나가는 길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도 좋은지조차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잔뜩 당황한 채로 신도들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석실 문앞에 덩그러니 홀로 남아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쪽으로 걸음을 옮겨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찰나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교주님.”
가까운 어딘가에서 다소 격양된 듯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주님’이라는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슬쩍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개의 인영이 시야에 잡혔다.
한 명은 아까 보았던 교주였고, 다른 한 명은 진한 금발을 하나로 바싹 틀어올린, 예리한 인상의 낯선 여자였다.
거기까지 확인한 나는 일단 급하게 가까운 돌벽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배교자들을 처단해야 해요. 이대로 두고 보시다간 그들의 사특한 욕망이 우리의 낙원행까지…….”
“염려는 이해하지만, 리디아. 지금 우리가 신경 써야 하는 건 교리를 저버리고 사욕을 좇는 배교자들이 아닙니다.”
여자의 이름은 리디아인 것 같았다.
낙원행이 어쩌고 하는 걸 보니 과연 종말론을 채택한 사이비 종교답게 ‘멸망한 세계 이후의 낙원으로 갈 수 있다’는 식의 감언이설로 신도들을 긁어모은 모양이기도 했다.
전자는 딱히 알고 싶은 정보가 아니었고 후자는 대강 짐작했던 바였으므로, 내 신경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정보에 쏠렸다.
배교자들.
교리를 저버리고 사욕을 좇는.
그들을 처단해야 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건, 애초에 메이슨 교단 자체는 그 허무맹랑한 종말론을 진심으로 신봉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저 리디아라는 여자가 그것을 강하게 믿을 뿐, 실상은 영리추구조직이 맞고 교주가 적당히 말을 맞춰주고 있는 상황인 걸까.
그리고 다른 걸 떠나서… 교주가 방금 말한, 그들이 지금 신경 써야 하는 일이란 뭐지?
한두 마디만 더 들으면 대충 윤곽이 잡힐 것도 같아서, 둘의 대화를 계속 이어 들으려던 순간이었다.
발밑에서 탁,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시선을 내리니 작은 돌멩이 하나가 데구르르 굴러가는 것이 보였다. 아뿔싸.
행여 내 모습이 보이면 어쩌나 싶어 돌벽에 좀 더 바싹 등을 대려던 것이 화근이었다.
나는 어금니를 악물며 부주의한 내 수족을 향해 내심 육두문자를 날렸다.
아니나 다를까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듯 운을 떼었던 교주가 헉, 하는 숨소리와 함께 말을 멈췄다.
이쪽으로 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순간 들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주가 내뱉는 몇 번의 헛기침 소리에 이어 조금 황급한 듯한 발소리가 이어졌다.
발소리는 점점 멀어지다가 이내 아예 사라져버렸고, 나는 그제야 용기를 내어 돌벽 바깥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보았다.
교주와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있던 자리는 텅 빈 상태였다.
……라고 생각했을 때, 교주가 서 있던 곳 즈음의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