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76화 (76/121)

76화. 종말론자들 (3)

크고 웅장한 석실 안에는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무어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섞여 있는 행렬에 속한 이들은 그 사람들처럼 자리를 잡고 주저앉지 않았다.

그들은 대열을 유지한 채, 석실 앞쪽에 화려하게 꾸며진 제단 비슷한 곳으로 걸어 나가는 중이었다.

나는 대열에 끼어 걸어가는 한편으로, 이들이 정확히 무엇을 위해 제단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지를 가늠하고자 열심히 앞을 힐끔거렸다.

바닥에 주저앉은 이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모여 넓은 석실을 웅웅 울리며 정말로 사이비 소굴에 들어온 듯한 BGM을 형성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렇게 놀이공원 어트랙션 줄을 선 것처럼 잠시 멈췄다가 몇 걸음 앞으로 갔다가 또 잠시 멈추기를 몇 번.

대열의 제일 앞이 보이는 곳까지 도달한 내 시야에 제일 먼저 잡힌 것은, 어른 가슴께 정도까지 오는 번쩍번쩍한 금빛 받침대와 그 위에 자리한 한 장의 종이였다.

거리가 있어 내용을 볼 수는 없지만, 왼쪽의 찢어진 자국으로 보아 어딘가에서 뜯어내었을 것이 분명한 종이.

그것을 보자 자연스럽게, 밀리엄의 서재에 보관해둔 메이슨 교단의 예언서가 떠올랐다.

예언서라고 해야 할지 범행계획서라고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는 그 책의, 뜯어져 있던 마지막 페이지.

혹시 저기 있는 것은 바로 그 마지막장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앞을 응시하자니, 종이가 든 유리상자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듯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뜨는 맨 앞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그 옆에 동상처럼 서있는 인영이었다.

아리아 오큘러스의 그것처럼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베일을 뒤집어쓰고, 척 보기에도 거추장스럽고 화려한 차림을 한.

“교주님.”

나는 눈을 뜨고 상자 위에서 손을 뗀 맨 앞사람이 문제의 인물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꺼낸 호칭을 놓치지 않았다.

방금 분명히 교주님이라고 했지?

역시 아리아 오큘러스는 마스코트 같은 존재고, 교단을 이끄는 교주는 따로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교주님이라고 불린 이가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교주의 인사를 받은 이는 자기 차례가 끝났다는 듯 대열을 벗어나더니, 바닥의 빈자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무래도 저 내용불명의 종이가 든 상자 위에 손을 얹었다 뗀 뒤 교주와 인사를 나누고 바닥에 주저앉아 기도를 이어가는 것이 정해진 순서인 모양이었다.

나는 나 역시 눈치껏 그렇게 할 요량으로 잠자코 내 차례를 기다렸다.

기다리던 차례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받침대 앞에 선 나는 우선 곧장 상자 속의 종이로 시선을 옮겼다.

행여라도 수상해 보일까 서두르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하여 마침내 마주하게 된 종이 위에는.

‘네 명의 기사가 사명을 다한 1899년의 마지막 밤.’

예상했던 대로 종이는 예언서에서 뜯겨져 나간 마지막 페이지가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어진 내용을 읽은 나는 순간 눈을 감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종이 위의 문구를 다시 한번 들여다 보아야 했다.

‘네 명의 기사가 사명을 다한 1899년의 마지막 밤. 이방의 신께서 유랑을 마치시매 세계는 무너지고 이 땅의 누구도 새 시대의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리라.’

이게…… 뭐지?

네 명의 기사가 뭔지는 그렇다 치고, 이 내용은 아무리 봐도…….

‘세계는 무너지고’

아무리 봐도 그건데?

‘이 땅의 누구도 새 시대의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리라.’

종말론인데……?

갑자기 분위기 세계멸망이라니 이게 무슨 미친 전개야, 나랑 장난하냐!

…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을 애써 억누른 나는 보는 눈들을 생각해 일단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미 혼란스러워질 대로 혼란스러워진 머릿속은 좀처럼 정리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세워놓았던 전제가 완전히 무너져내린 기분이었다.

이날까지 내가 상상한 메이슨 교단의 실체란, 예언서를 빙자한 범행계획서의 실천을 통해 신도를 끌어모아 금전적 이익을 창출해내는 악질 영리단체 정도였다.

물론 그래. 그냥 그것만이라면 너무 싱겁겠지.

그래서 어떤 추가적인 비밀이나, 무언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반전 같은 게 존재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고르고 골라 종말론이라니.

아니……, 확실히 세계 내지 인류의 종말 같은 게 음모론자들의 단골 레파토리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메이슨 교단의 근간이 음모론을 통한 대중 선동에 기인하고 있다면 교단 차원에서 종말론을 긍정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다.

우리 교단의 신도가 되면 종말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선택받은 신인류가 될 수 있다거나 하는 말로 사람들을 꾀어냈을 것 또한 자명하다.

이 정도 진상이야 그리 대단치도 놀랍지도 않은 축에 속한다는 뜻이다. 사이비가 그렇지 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래서 이놈들이 뭘 어쩌려고 하는가에 있다.

뭐 백년, 이백년 뒤라면 그러려니 하겠어. 하지만 1899년의 마지막 밤이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교단 상층부는 대체 무슨 생각이지?

예언서가 메이슨 교단의 범행계획서라는 나와 밀리엄의 가설은 과연 옳았나?

물론 나도 이제 와서 그 가설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계획서에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목표를 기재하는 것이 기본 아닌가?

연쇄살인사건을 일으키고 테러를 자행하는 것은,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능력과 여건만 받쳐준다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목표가 맞다.

하지만 세계를 멸망시키는 건 아니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그 말도 안 되는 걸 이들은 예언서 마지막장에 적어놓고, 심지어 신도들에게 공개하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러지?

잠시간 감고 있던 눈을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뜨고 상자 위에서 손을 내린 뒤에도 나는 좀처럼 생각의 방향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

일단 이 광경과 저 예언이 아리아 오큘러스가 나를 탑에 가둔 이유라는 건 알겠다.

그렇다면 저 황당무계한 예언에 대해 그녀가 취하고 있는 스탠스는 무엇인가.

그녀는 내가 어떤 결론에 이르길 바라서 나에게 이를 접할 ‘기회’를 주었을까…….

잠시 입술을 사리물고 새 의문에 사로잡혔던 나는 일단 혼란한 머릿속을 어떻게든 진정시킬 시간이나마 벌어보기로 결심했다.

한시라도 빨리 바닥에 앉아 기도하고 있는 이들 쪽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앞사람들이 그러했듯 교주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 몸을 슬쩍 돌렸을 때였다.

얼굴을 몽땅 가리고 있긴 하지만 대강 눈치를 보아하니 조금 전부터 날 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 교주가 별안간 양손을 뻗어 내 두 손을 붙잡아왔다.

나는 뒷걸음질을 칠 새도 없이 당황했다가, 다음 순간에는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돌이켜보면 아스톤 홀의 자선파티에서도 이랬더랬다.

아리아 오큘러스가 갑자기 손을 뻗어 내 손을 붙잡고는…… 본인 피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바랐을 말’을 늘어놓았었지.

사람만 바뀌었을 뿐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에 나는 우선 너무 당황한 티를 내지 않기로 했다.

그때야 그냥 초대장을 받고 간 거였지만, 지금은 초대고 뭐고 그냥 내가 쫄래쫄래 범의 아가리로 기어 들어온 입장이니까.

저쪽에서 날 대하는 반응에 일일이 당황하는 티를 내며 외부인으로서의 이질감을 뽐내다간 불필요한 의심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의연한 얼굴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작게 헛기침을 하며, 대충 교주의 얼굴이 위치해 있을 것 같은 부분을 응시했다.

그러자 베일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이곳까지 와주시다니!”

생각보다 초장부터 큰 소리가 나긴 했으나, 그걸 제하고는 특징 없이 무난하기만 한 음성이었다.

남자라는 것 말고는 나이도 무엇도,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지 여부조차도 전혀 가늠되지 않는 목소리.

그것은 내가 이 석실에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울리는 음성이었지만 주위의 누구도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도들과 인사를 나눌 때는 한번도 말을 하지 않기에 목소리를 숨기고 있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군요. 이 자리의 모든 신도들을 대표해 환영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교주가 나를 정말로… 부담스러울 정도로 환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난데없이 찾아든 살가운 환영의 인사에, 아스톤 홀에서 아리아 오큘러스가 했던 말이 어쩔 수 없이 다시 떠올랐다.

‘당신은 저희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니까요.’

정작 그녀 본인은 내가 신경 쓸 필요 없는 말이라며 내 의문을 일축해버렸지만…….

나는 그녀가 없는 와중에도 또다시 이런 상황에 놓였다.

게다가, ‘신경쓸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부분에 가장 신경을 깊이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참된 플레이어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내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베일 속의 교주를 응시하며, 나는 내심 눈을 가늘게 뜬 채 이 정황과 새로운 질문을 뇌리에 각인시켰다.

벌써 두 번째 받는 환대인 만큼 이것만은 부정할 길이 없다. 메이슨 교단에 있어 베로니카 캠벨은 아주 중요하고 달가운 존재다.

그건 이제 알겠는데, 문제는 그 이유가 대관절 무엇이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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