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요람에서 무덤까지 (3)
난 고용인들까지 눈치를 볼 만큼 대놓고 애를 박대했다기에, 법정 관계상 억지로 떠맡기라도 한 줄 알았지.
그런데 저토록 자연스럽게 ‘데려가지 않으실 줄 알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니.
뭐……. 불행한 사고로 양친을 잃은 어린 조카를 보육원에 내팽개쳤다는 오명을 피하고 싶기라도 했던 걸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여전히 기묘하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나는 잠시 미간을 찡그린 채 고개를 기울였다가, 내 표정을 유심히 살피는 듯한 넬리 엘모어의 기색에 급하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베로니카가 충분히 유복한 환경에서 잘 자랐다고 생각해 안심한 듯한 사람 앞에서 굳이 조지 캠벨의 실체를 들춰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괘씸한 아동학대범이긴 하지만 오늘은 일단 ‘평범하게 조카를 아끼는 백부’였던 셈 쳐주자…….
나는 이 와중에 행여라도 진상을 아는 밀리엄이 무어라 말을 얹진 않을까 싶어 잠시 그와 눈을 맞추었다.
다행히 그는 내 눈웃음의 의미를 눈치채준 모양으로, 아무 말 않을 테니 안심하라는 듯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러고서 적당히 화기애애하게 누그러진 분위기를 틈타 은근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원장님. 실은 제가 이번에 후원할 만한 보육원을 알아보다가, 남작님께 이곳을 소개받아 함께 오게 된 참이라서요.”
“아, 켄트우드 씨라고 하셨지요? 좋은 결심을 하셨군요.”
“이게 다 남작님 곁에서 좋은 영향을 받은 덕분이죠.”
생각지 못하게 돌연 나를 향해 눈을 휘며 낯뜨거운 허풍을 치는 밀리엄 덕에 헛기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왜 계획에 없는 능청을 떨고 난리야? 대본대로 하란 말이다, 대본대로!
그는 찻잔을 들지도 내려놓지도 못한 애매한 상태로 콜록거리는 내게 얄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금세 다시 넬리 엘모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말인데, 괜찮으시다면 원장님께서 직접 보육원 안을 좀 안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행히 이번에 흘러나온 것은 사람 속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애드리브가 아니라 지난밤 미리 상의해놓았던 바로 그 대사였다.
그리고 그 대사는 밀리엄 특유의 부드럽고 건실해 보이는―물론 그는 실제로도 아주 건실한 편이지만― 표정과 시너지가 아주 좋았다.
나는 밀리엄의 부탁을 받은 넬리 엘모어의 시선이 일순간 벽에 걸린 시계 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선약이라도 있는 걸까? 그런 거라면 작전을 좀 수정해야 할 텐데.
잠시 동안 시계를 보며 시간을 가늠해보는 듯하던 그녀는, 이내 다시금 밀리엄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휴, 그럼요. 남작님과 옆의 신사분도 함께 가시는 건가요?”
“아, 허락하신다면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가 함께 갔다가 또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을 주체하지 못하면 켄트우드 씨가 제대로 설명을 듣기 곤란하실 테니까요. 차가 너무 잘 우려져서 남기고 나가기가 아쉽기도 하고요.”
제임스의 사양에 이어 내가 이유를 덧붙이자 넬리 엘모어는 나를 보며 조금 아쉬워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우리만 남기고 방을 비운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 듯 금세 몸을 일으켰다.
밀리엄이 능숙한 태도로 넬리 엘모어를 에스코트해 원장실을 나서기까지는 금방이었다.
두 사람의 뒷모습이 닫히는 문 너머로 사라지고, 복도를 걷는 두 개의 발소리가 충분히 멀어졌을 때, 나와 제임스는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렇다고 불쾌한 것은 또 아니지만.
부모님이 갈라섰을 당시에 나는 여덟 살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그때의 기분을 묻는다면, 나는 퍽 홀가분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얼굴을 맞대기만 하면 곧장 충돌과 불화로 이어지고, 한 공간에 있을 때면 늘 냉전 중인 사람들.
어떤 여덟 살짜리는 그런 부모라도 가족이니 끝까지 함께해주길 바랄지 모르는 일이지만, 여덟 살의 나는 그렇게 이어지는 나날에 아주 넌덜머리가 나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이혼하기로 했다는 말을 꺼냈을 때 나는 그들의 결론에 만족했다.
자식 된 도리로 환영할 일은 물론 아니었고 조금쯤은 서운했던 것도 같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어찌 되었건 나에게 그것은 일종의 해방에 가까웠던 것 같다.
요컨대 내 유년기에 어떤 상흔이 존재한다면 그건 사이 나쁜 부모와의 살얼음판 같은 하루하루였지 그들의 이혼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그렇다. 내 부모님은 이혼이란 걸 했고, 그들의 결혼생활이 남긴 단 하나의 결과물이었던 나를 키우게 된 사람은 엄마였다.
혹자는 그것을 잘못된 표현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엄마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너희 엄마가 언제 너를 키웠냐, 너는 그냥 혼자 잘 자랐다’고 말하니까.
물론 대부분 농담이었고, 설사 그들이 엄마를 책잡거나 헐뜯을 의도로 그렇게 말했다 해도 나는 엄마의 양육방식이 남에게 욕을 먹을 정도로 글러먹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의 표본 같은 사람이다. 당연히 늘 바빴지.
아빠와는 이복동생이 생긴 이후로 점점 만남이 뜸해지다가, 어느 시점엔가 더는 연락도 주고받지 않게 되었다.
그 와중에 다행히 내가 굳이 바쁜 엄마의 신경을 분산시키지 않아도 좋을 만큼 손이 덜 가는 아이였을 뿐, 엄마와 나 사이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외로운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그게 어디 나 혼자만의 고독이었겠는가.
멀쩡히 같이 사는 부모님과 충분한 시간을 함께하는 아이들이라고 외로움을 모르고 자라지는 않으리라.
어쨌든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나는 모난 구석 없이 잘 자랐다.
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내 딴에는 그랬다. 엄마가 생각하기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갓 고등학생이 된 딸을 두고 혼자서 해외 지사로 떠나버리지도 않았겠지.
다시 말하지만 엄마와 나 사이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만큼 자랐다고 믿었고, 그 믿음에 기반해 엄마의 인생에 찾아온 더 좋은 기회를 거머쥐었다.
만약 엄마가 나 때문에 그런 기회를 날려버렸다면 나는 오히려 그 점에 평생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녀에게 있어 아주 오래된 합의 같은 것이었다.
나에게 나의 인생이 있듯 엄마에겐 엄마의 인생이 있고 엄마가 나를 위해 그것의 일부를 희생해야 할 의무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합의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맹세컨대 나는 단 한 순간도 엄마를 원망한 적이 없다.
정말이지 단 한 순간도.
이따금 찾아와 나를 조금쯤 서글프게 만들었던, 그 어쩔 수 없는 고독의 밤에조차도.
***
사심을 완전히 제외한 상태에서 오직 플레이어로서의 효율만을 놓고 평가했을 때, 제임스는 정말이지 밀리엄만큼이나 좋은 파트너였다.
오늘 처음 만난 생판 타인의 공간을 허락 없이 수색하는 일에 거부감이나 거리낌이 있을 법한데도, 그는 마치 이것이 직업인 사람처럼 대범하고 능숙하게 움직였다.
불운하게도 기억이 날아가버려서 그렇지 다른 것은 몸이 알아서 기억하고 있다는 듯.
무언가 있을 법한 곳을 골라 뒤졌다가, 이렇다 할 수확이 없는 경우 빠르게 원상태로 복구시키는 능력까지 탁월했다.
어찌나 능숙하던지 순간순간 ‘저 작자 사실은 기억상실이고 뭐고 전부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런 능숙함을 숨기지 못한다는 점이야말로 그가 연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일 터였기 때문에, 나는 그 이상의 의심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게다가, 설령 저게 다 연기면 또 어떻단 말인가.
그렇다고 한들 제임스가 있었던 덕에 내가 지난번의 배드엔딩을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기억을 정말 잃었든, 잃은 척을 하고 있든, 그로 말미암아 후반의 전개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의 제임스 로웰은 아무리 생각해도 플레이어의 조력자 캐릭터가 맞았다.
존재 자체로 밀리엄의 멘탈을 시시각각 깨트리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당장 내 코가 석 자인 마당에 내가 게임 캐릭터의 멘탈 복지까지 신경 써줄 이유는…….
‘내게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요.’
이유는…….
‘나는 과거에 아주 옳지 못한 선택을 했습니다. 당신이 편을 들어줄 만한 인간이 못 돼요.’
……으!
생각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나는 도움이라곤 하등 되지 않으면서 자꾸만 떠올라 괜히 사람을 심란하게 만드는 잡생각들을 치우기 위해 열심히 도리질을 쳤다.
그러고는 열심히 방 곳곳을 뒤지고 있는 제임스를 본받아, 빠르게 원장실 이곳저곳을 향해 눈을 굴렸다.
제임스가 책장을 뒤져보고 있으니 나는 책상 쪽을 살펴보는 게 좋겠지.
책상 뒤편으로 걸음을 옮긴 나는 일단 책상 양쪽에 딸린 여섯 개의 서랍을 왼쪽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처음 세 번은 별다른 수확이 없었다. 잠긴 칸은 없었고, 안에서 수상한 메모지나 정체불명의 열쇠가 발견되는 칸도 없었으며, 당연히 시스템창도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식은 기분으로 오른쪽 최상단의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웬 낡은 종이가 몇 장 들어 있었다.
아래의 두어 장은 첫 장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제일 위에 놓인 종이는 입양증명서였다.
설핏 내린 시야에 낯익은 이름이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수잔 로이드.
입양 후의 성명란에 자살한 수잔 로이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만 이상한 점은 그 위의 칸, 그러니까 ‘입양 전의 이름’이 적혀 있어야 마땅한 칸에 글자 대신 숫자가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