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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68화 (68/121)
  • 68화. 요람에서 무덤까지 (2)

    레나 엘모어의 딸을 저렇게나 반가워하는 마당이니, 대화의 물꼬를 레나 엘모어 이야기로 터놓으면 이후의 조사 또한 한층 수월해지리라.

    “원장님께서 저희 어머니와 자매 같은 사이셨다니 다행이에요. 실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온 거거든요.”

    저는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서요……. 하고 말을 흐리자 넬리 엘모어가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런……. 뭐든 물어보셔요. 제가 아는 바에 한해서는 얼마든지 대답해드릴 수 있답니다.”

    그리고 넬리 엘모어의 지극히 협조적인 언사가 끝나기 무섭게, 이전보다 조금 커진 듯한 선택지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 1.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해요. ]

    [ 2. 원장님께서는 어머니와 어쩌다 친해지셨나요? ]

    [3. 어머니가 어떻게 아버지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셨는지 혹시 아세요? ]

    어째 좀 크다 했더니 선택지가 3개라서였군.

    나는 3개로 늘어난 선택지를 들여다보며 며칠 전 1막이 종료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리고 1막 종료 보상으로 쿨타임 없이 총알 한 발을 더 쏠 수 있게 되었더랬지.

    어쩌면 그건 총을 두 발이나 쏠 수 있게 되어도 게임 진행이 싱거워지지 않을 만큼 난이도가 상승하리라는 어떤 암시가 아니었을까?

    선택지가 3개로 늘어난 것도 그 일환일지 모른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피할 도리가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일단 회중시계를 꺼내 세이브를 한 뒤 다시금 눈앞의 선택지에 집중했다.

    선택지가 뜬 걸 보면 세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순간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 이유가 쓸 만한 정보를 택하기 위한 거라면 하나, 필요 없는 정보를 걸러내기 위한 거라면 두 개를 들을 수 있을 터.

    만약 하나만 들을 수 있으리라고 가정했을 때 이 시점에서 꼭 들어야 할 이야기는 뭘까?

    내 시선이 향한 곳은 첫 번째 선택지였다.

    다소 광범위한 질문이긴 하지만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정보량도 가장 많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대화를 시작하기에 제일 무난한 질문인 것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해요.”

    “레나의 어린 시절이라…….”

    애틋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린 넬리 엘모어는 손으로 입가를 매만지며 아련하게 말끝을 흐렸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꽤나 좋은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듯, 넬리 엘모어의 다정다감해 보이는 얼굴 위로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레나는… 뭐라고 해야 할까. 아주 똑똑한 아이였어요. 절 포함한 다른 또래 원생들은 정말이지 비교할 거리조차 안 될 만큼이요. 그래선지 원장님, 그러니까 제게 이 자릴 물려주신 전대 원장님도 레나를 친딸처럼 곁에 두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레나에게 원장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 하셨던 것 같아요.”

    ‘남작님의 어머님께서는 엘모어 보육원에서 가장 영특한 아이였지요.’

    어린아이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잔잔한 넬리 엘모어의 회상을 듣자 베네딕트 홀터스의 말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두 명이나 제일 먼저 그 점부터 언급할 만큼 아주 특징적으로 똑똑한 아이였단 말이지…….

    “좋은 입양 자리가 여러 번 들어왔는데도 번번이 거절하기에 저 역시 레나가 당연히 원장님 뒤를 잇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고요.”

    “아…….”

    “여하간 그렇게 영특해선지 워낙에 호기심도 모험심도 많아서, 보육원 뒤편의 숲속을 하루 종일 탐험하다 돌아오는 날도 더러 있었어요. 전 겁이 많고 소심한 아이였어서 함께 가본 적이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한번쯤은 같이 가볼 걸 그랬지 싶네요.”

    여전히 은은하지만 어딘지 씁쓸한 미소가 어린 얼굴로 말을 이어가던 넬리 엘모어는 돌연 입술을 꾹 깨물며 눈시울을 붉혔다.

    “너무 일찍 먼저 떠나보내고 나니, 그 애를 기억할 좋은 추억들이 더 많았다면 좋았겠다는 욕심이 자꾸만 들어서…… 어휴, 죄송합니다. 남작님 앞에서 이게 무슨 주책인지…….”

    “그런 말씀 마세요, 원장님. 어머니가 원장님께 그 정도로 좋은 친구셨다니 저는 오히려 기쁜 걸요.”

    내 말에 넬리 엘모어는 기어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톡톡 훔쳤다.

    그녀는 그 뒤로도 한동안 감상에 젖은 기색을 지우지 못하며 몇 번이고 헛기침을 하다가, 겨우 진정이 됐는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남작님께서 기쁘시다니 제가 다 뿌듯하군요. 무어 더 궁금한 점은 없으신가요?”

    [ 1. 원장님께서는 어머니와 어쩌다 친해지셨나요? ]

    [ 2. 어머니가 어떻게 아버지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셨는지 혹시 아세요? ]

    나이스!

    나는 다시 떠오른 선택지창에 내심 쾌재를 부르며 그 기쁨이 한창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끔 노력했다.

    내가 지금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전 이야기를 성장한 뒤에야 전해 듣고 있는 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저 반대편에 말없이 앉은 채 덩달아 안쓰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의 환상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그렇게 잠시간 고민하던 나는, 넬리 엘모어에게서밖에 들을 수 없을 것 같으면서 동시에 보육원 바깥 세상과 적당히 연관되어 있는 이야기를 듣기로 결심했다.

    “어머니가 어떻게 아버지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셨는지 혹시 아세요?”

    짐짓 조심스러운 척 꺼낸 질문에 넬리 엘모어는 여전히 물기가 조금 맺혀 있는 눈꼬리를 살포시 휘며 후후,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알다마다요. 그 일 때문에 보육원이 아주 발칵 뒤집어졌더랬죠…….”

    넬리 엘모어가 다시 과거를 되짚는 얼굴로 돌아가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레나 엘모어와 헨리 캠벨이 만나게 된 계기는 베네딕트 홀터스가 레나를 만난 계기와 비슷했다.

    헨리 캠벨은 형이 막 후원하기 시작한 엘모어 보육원을 우연히 방문했다가, 보육원의 최고참 원생 중 하나로 원장 밑에서 보육원 운영 일을 배우던 레나 엘모어를 만났다.

    부유한 귀족 출신의 법학도였던 헨리와 한평생을 보육원에서 보낸 레나는 대관절 어떤 식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던 걸까.

    어쩌면 동화처럼 첫눈에 반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것은 넬리 엘모어가 알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으나, 어쨌든 그녀는 헨리 캠벨이 레나와의 첫 만남 이후 현관 카펫이 닳도록 엘모어 보육원을 드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여가 지나, 레나가 성년이 되자 그사이 변호사가 된 헨리는 기다렸다는 듯 레나에게 청혼을 했다.

    넬리 엘모어는 늘 그녀보다 똑부러지고 여유만만했던 레나가 그토록 심각하게 오랫동안 고민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고 한다.

    레나는 오랜 고민 끝에 헨리의 청혼을 승낙했지만, 젊은 연인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조지 캠벨의 불 같은 반대에 부딪쳤다.

    분기마다 막대한 후원금을 보낼 뿐 단 한 번도 보육원을 방문한 적은 없는 조지 캠벨이 태풍처럼 찾아왔던 그날을 넬리 엘모어는 아주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원장실을 반쯤 뒤집어 엎으며 후원을 그만두겠다 협박하고, 레나를 향해서는 ‘멀쩡한 내 동생 인생을 망칠 생각 말아라. 너 하나 처리하는 것쯤 일도 아니다’라며 사납게 협박을 했다나…….

    이 대목을 전하던 넬리 엘모어는 잠시 나를 보며 그분께는 그분 나름의 사정이 있으셨을 테니 작고하신 백부님께 너무 서운한 마음을 갖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나는 대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처리하네 마네 했다는 건 좀 쇼킹하지만, 이건 어차피 내가 서운해할 일도 아닌 데다가, 애당초 아동학대범이 사실 협박범이기까지 했다고 해서 새삼 놀랄 것은 없지 않나?

    하여간 그런 일이 한 번도 아니고 수차례쯤 반복되자 종국에는 넬리 엘모어조차 레나에게 ‘정말 큰일 나기 전에 승낙을 무르는 게 어떻겠냐’고 설득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때 그 말을 들은 레나는 조금만 기다리면 알아서 잘 해결될 거라는 이상한 소리를 했고, 얼마쯤 지나자 정말 레나가 말한 대로 조지 캠벨이 뜻을 굽혔다는 것이다.

    넬리 엘모어는 똑똑한 레나가 어련히 알아서 돌파구를 찾았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조지 캠벨이 엘모어 보육원에 대한 후원을 거둬들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레나 엘모어는 헨리 캠벨과 행복한 결혼식을 올렸으며, 꾸준히 보육원을 방문해 계속해서 원장에게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이듬해 베로니카가 태어났다.

    넬리 엘모어가 전해준 레나 엘모어와 헨리 캠벨의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부부가 마차사고를 당해 한날한시에 사망했고, 어린 딸이 혼자 남았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서 이어질 필요가 없는 내용이었으니까.

    [ 과제 010. ]

    부모님의 러브스토리 달성! (보상 : 모노클 1개)

    나는 뵤로롱 떠오른 시스템창을 가만히 응시했다.

    생판 남인 입장에서 그리 깊은 감명을 받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득템은 땡큐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 끝난 줄 알았던 넬리 엘모어의 말이 다시금 이어졌다.

    “레나와 헨리 씨가 죽었을 때, 사실 저는 남작님의 백부님께서 남작님을 데려가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어?

    “그래서 레나의 어린 딸이 당연히 이곳에 오게 되리라고 여겼죠. 이제 와선 민망한 소리지만, 제 딸처럼 아껴주어야겠다는 다짐도 했었고요.”

    어……?

    줄줄 이어지는 말의 내용은 조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조지 캠벨이 베로니카를 데려가지 않을 줄 알았다니.

    “저, 그 말씀은…… 백부님께서 자의로 저를 맡으셨다는 뜻인가요?”

    “그럼요. 그분도 평범하게 조카를 아끼는 백부셨을 텐데, 결혼을 반대하셨을 때의 모습이 워낙 인상 깊게 남아서 저도 모르게 그분을 오해했던 모양이에요.”

    그게 오해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았지만 확실히 기묘한 일이었다.

    보육원에 던져버릴 수도 있었는데 굳이 자의로 데려가놓고는 그렇게 대했다고?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심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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