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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53화 (53/121)
  • 53화. 붉은 벽돌성의 새벽 (4)

    아니, 물론 외부인을 배제할 타당한 정황이 있고 우리가 그걸 아직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도주한 살인마 에드워드 녹스를 두고 굳이 동료인 멜리사 위브를 더 유력한 용의자로 보다니.

    나는 매정하다는 말도 부족할 것 같은 이 기묘한 현상에 잠시 고개를 기울이고 눈을 굴렸다.

    방 안을 빙글빙글 떠돌던 시선이 아주 우연히 창밖으로 가 닿은 것은 조금 뒤의 일이었다.

    잘 닦인 유리창 너머로 여전히 건물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이 보였다.

    참 끈질기다는 감상이 든 것도 잠시, 어떤 섬광 같은 생각 한 줄기가 머릿속을 쌩하니 스쳐 지나갔다.

    언젠가는 공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 간밤에 수사국에서 일어난 일이 기자들에게 새어 나가는 것을 피하려 들었던 드레이크 부국장과 딜런 와이즈의 행동도 함께였다.

    어……, 혹시?

    “저, 수사관님. 혹시 도주한 에드워드 녹스에 대한 수색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내 질문에 잠시 음, 하는 침음성을 흘린 해리엇이 턱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쪽 담당이 아니라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아무래도 발견이 요원해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애초에 2년이나 수배자 생활을 했을 정도로 숨는 데는 도가 튼 놈이니까요.”

    “알 만하군.”

    해리엇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밀리엄이 한숨 같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인상을 쓴 채 미간을 꾹꾹 문질렀다.

    말마따나 알 만한 일이었다.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이기도 했다. 밀리엄이 눈치챈 어떤 사실을 나 역시 눈치챘다는 감각은 꽤 신기했으나 그저 그뿐.

    이건 그러니까, 요컨대 그거 아닌가?

    나는 조심스럽게 밀리엄의 눈치를 살폈다.

    수사국 체면과 직결되는 민감한 사안인 것 같아서였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밀리엄 쪽에서 먼저 직언을 꽂아왔다.

    “이 정도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쓸 생각들은 없다는 거겠죠.”

    착잡하지만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한 어조.

    서늘하게 내리깐 금빛 시선.

    차라리 찡그리는 쪽이 덜 불쾌해 보이지 않을까 싶은 무표정한 얼굴.

    마치 전에도 이런 상황을, 어쩌면 제법 여러 번 마주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태도.

    “어, 어떻게 그런…….”

    그제야 제 선배들의 의중을 이해한 듯한 해리엇 블레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인지 제대로 맺어지지조차 못한 말끝이 파르라니 고요 속으로 희미해졌다.

    이윽고 이어진 것은 착 가라앉은 침묵.

    나는 의자에 앉아 손에 닿는 서류 끝을 꼼지락대며 다시 한번 창밖의 기자들을 보았다.

    멜리사 위브를 범인으로 상정하고 움직이는 일부 수사관들의 동기는 바로 저들에게 있을 터였다.

    보다 정확히는, 저들이 운반한 정보를 접할 대중의 반응에 있겠지.

    아닌 게 아니라 이것은 전대미문의 대사건이다.

    다른 곳도 아닌 이곳, 왕국의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왕립수사국에서.

    자그마치 열한 명의 수사관과 그들의 수장인 수사국장이 하룻밤 사이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강력범죄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해 흉악한 범죄자들을 잡아들여야 할 수사국이 바로 그 범죄의 타깃이 되어, 심지어는 정말 뚫려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과정에서 한창 조사 중이던 흉악범이 탈출하기까지 했다.

    여기까지는 그래, 누군가는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겠지만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이다.

    조만간 신문에 수없이 오르내릴 테고 사람들은 열심히 입으로 실어나를 테니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칠 길은 없다.

    길어봐야 며칠이면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겠지. 왕립수사국의 체면은 높은 확률로 여기서 이미 한번 무너진다.

    그런데 만약 이 대사건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으로도 모자라 끝내 해결조차 하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때 대중이, 혹은 이 조직의 생사여탈권을 쥔 윗선에서 보일 반응은?

    거기까지 가면 수사국의 체면과 입지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없이 굴욕적이고 재앙적인 미래뿐.

    그러니 행방이 묘연해졌고 앞으로도 계속 묘연할 듯한 에드워드 녹스 대신 당장 자기네 손아귀에 붙들려 있는 멜리사 위브를 범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수사관들이 생긴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쨌든 사건을 해결하긴 했다’는 체면치레가 그만큼 간절한 상황일 테니까.

    그리고 일을 그렇게 처리해버리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는 건 이 조직이 꽤나 썩어빠졌음을 방증… 아, 이쯤 되니 밀리엄의 반응에서도 새로운 깨달음이 싹을 틔운다.

    그가 그만두기 전부터 수사국은 이렇게 굴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에 멜리사가 그러게 선배님이 그만두지 않으셨으면 좋았지 않냐는 둥 하는 소리를 한 적도 있었더랬지…….

    나는 정말이지 거듭할수록 착잡해지기만 하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킬 요량으로 풀썩 엎어져 차가운 책상에 뺨을 가져다 댔다.

    검지를 눈앞까지 주욱 끌고 오자니, 손가락 아래 깔려있던 종이 한 장이 함께 눈앞으로 딸려왔다.

    깔끔한 필기체로 적혀 있는 이름이 비스듬히 눈에 들어왔다.

    [ ‘알버트 브레너 수사관의 신상정보’를 획득했다. ]

    드레이크 부국장의 말에 따르면 아까 건물 뒷문 안쪽에 쓰러져 있던 시신이 브레너 수사관의 것이었지.

    시스템창이 반응한 것을 보면 이것도 사건해결에 필요한 정보란 건가, 하고 종이를 슬그머니 들어 올리려는데 문득 이상한 기시감 같은 것이 들었다.

    브레너. 브레너라.

    왠지 낯이 익은데, 비단 아까 한번 들었기 때문만은 아닌 듯한…….

    “아!”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밀리엄과 해리엇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로 향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사건을 담당한 왕립수사국의 브레너 수석수사관은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남작의 범행동기를 유추하기 어렵다고 밝혔으며…….’

    그래, 맞아. 브레너.

    그것은 분명 캠벨 남작 일가 사망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의 성이었다.

    [ 키워드 ‘알버트 브레너와 캠벨 남작 일가 사망사건’ 획득 ]

    내 기억력에 감탄할 여유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곧장 떠오른 시스템 문구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간밤에 사망한 알버트 브레너가 캠벨 남작 일가 사망사건의 담당 수사관이었다는 사실과 이번 사건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그런 게 아니라면 굳이 이 타이밍에 시스템창이 반응할 이유가 없는데.

    “베로니카, 무슨 일입니까?”

    늘 그래왔듯이 파스스 사라지는 문구를 마지막까지 노려보고 있자니 옆에서 밀리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잖이 당황한 듯한 목소리였다.

    그럴 만도 하지.

    사람이 갑자기 책상 위에 엎어지질 않나, 그러다 별안간 이상한 탄성과 함께 몸을 세우질 않나, 그러고는 대뜸 허공을 노려보고…….

    무슨 일이기에 그러느냐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그게 더 부자연스러울 상황인 것이다.

    “아, 그게…….”

    하지만 동시에 조금 난감한 상황이기도 했다.

    시스템창의 반응 여부를 근거로 정보의 경중을 저울질하는 내 방식에 대해 밀리엄에게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

    이런 와중에 알버트 브레너가 캠벨 남작 일가 사망사건을 담당했었다는 것이, 굳이 그에게 언급씩이나 해야 할 만한 정보일까?

    밀리엄도 유족이었던 사건인 만큼 어쩌면 그 또한 진작에 알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인데.

    그리고 그런 내 고민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곧장 새롭게 떠오른 시스템창이 내 시야를 채웠다.

    [ 1. 그냥 정신을 좀 차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기합을 넣어봤어요, 하하. ]

    [ 2. 브레너 수사관님이 백부님 사건을 담당했던 분이라는 게 떠올라서요. ]

    또다시 마주한 선택지.

    지난번 잘못된 선택으로 요단강에 발목을 담그고 왔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한 탓에 나는 우선 회중시계를 불러내어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선택지를 들여다보며 조금 전의 고민을 빠르게 되풀이해보았다.

    으음…….

    이렇다 할 답이 떠오르지 않는 와중에 뇌리를 스친 것은 아까 전 밀리엄이 해리엇에게 해준 조언의 내용이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지론인데, 옳은 답을 도출해내기 위해 적절한 질문만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물론 그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었지만, 그 논리대로라면 옳은 답을 도출해내는 데 반드시 쓸모 있어 보이는 정보만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법도 없는 게 아닐까?

    하물며 이 정보는 당장에 어디다 갖다붙여야 좋은지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시스템창이 인정해준 ‘언젠가 유의미해질’ 정보가 아닌가.

    결국 나는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따위의 소리를 들을 각오와 함께 2번을 선택하기로 했다.

    “브레너 수사관님이 백부님 사건을 담당했던 분이라는 게 떠올라서요.”

    “……알고 있었습니까?”

    “기사에 나왔었으니까요. 다 지난 일인 만큼 이번 사건과는 관련이 없겠지만, 그래도 갑자기 아는 이름을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달지.”

    나는 밀리엄의 옆에서 덩달아 나를 보고 있는 수습 수사관의 존재를 의식하며 말했다.

    물론 캠벨 남작 일가 사망사건은 베로니카에게도 밀리엄에게도 ‘다 지난 일’이 아니었으나, 공식적으로는 끝난 사건이고 이 자리엔 해리엇이 있다.

    둘만 있는 자리가 아니니 말을 잘 골라야지. 밀리엄도 그 부분을 고려해가며 적당히 필터링을 거쳐 들어줄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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