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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52화 (52/121)
  • 52화. 붉은 벽돌성의 새벽 (3)

    솔직히 말해서, 에드워드 녹스가 탈출한 것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체포 시점에 인물정보가 떴으니, 제임스가 죽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그 치 또한 그렇게 맥없이 퇴장할 것 같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에드워드 녹스의 탈출이 또 다른 사건의 시작과 이런 식으로 맞물리게 될 것까지 예상하지는 못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멜리사가 범인으로 몰렸다는 점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수잔 로이드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고사하고 멜리사와 접촉하는 일조차 요원하다.

    그러니까 이건… 그건가. 멜리사가 가진 정보를 듣기 위해 사건을 파헤쳐 그녀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퀘스트?

    조금 전 부국장실에서 드레이크 부국장이 밀리엄과 나에게 건넨 제안은 이 상황을 더더욱 그런 대목으로 해석하게 만들었다.

    ‘켄트우드. 나는 자네가 수사에 힘을 빌려주었으면 좋겠네. 아예 복귀를 하라는 건 아니야. 내 선에서 공식적으로 협력을 요청한 탐정 정도의 입장이라고 생각해주게.’

    ‘남작님께서도 성 조나단 병원 사건 해결에 큰 활약을 보여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이번에도 고견을 청하고 싶습니다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메이슨 교단의 일원인 테오도어 와이엇이 죽고, 수잔 로이드의 정보를 쥔 레귤러 캐릭터 멜리사 위브가 범인으로 몰린 사건이 아닌가.

    나는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이라면 당연히 메인 스토리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리라는 확신 하에 부국장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 과제 007. ]

    탐정의 칭호 달성! (보상 : 모노클 1개)

    덤으로 모노클도 하나 얻을 수 있었다.

    거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문제는 그 뒤에, 그러니까 부국장이 자리를 비우고 우리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임하기 위해 복도에서 딜런 와이즈와 마주하고 있는 바로 이 시점에 일어났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게임이 아니겠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조금 불쾌한 형태의 문제라서 문제였다.

    “아직도 만나게 해줄 수 없다니. 우리가 수사에 협력하기로 한 걸 자네도 들었을 텐데?”

    “들었지. 하지만 협력에는 다양한 방향성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애석하게도 나는 자네가 멜리사 위브에 대해 충분히 객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선 용의자이기에 앞서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한 멜리사의 증언부터 직접 들어보고 싶다는 밀리엄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한 딜런 와이즈가 날 선 목소리로 빈정대듯 말했다.

    나는 기가 막혀서 조용히 실소를 터뜨렸다. 객관성을 논하자면 말투며 눈빛에서부터 밀리엄에 대한 적개심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본인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누가 봐도 밀리엄을 수사에 끌어들인 제 상관의 결정을 몹시 못마땅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게 수사관으로서의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그가 밀리엄에게 개인적으로 영 좋지 못한 감정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해서 굳이 지적할 마음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밀… 켄트우드 씨가 안 된다면 저라도 위브 수사관님을 만나보고 싶은데요.”

    “죄송하지만 남작님께서도 이 친구와 긴밀한 관계이신 이상, 이 사안에 관해서는 신용해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제 선배에게 봄날이 온 걸 자기 혼자만 알고 있을 수는 없다며 폴짝거리던 멜리사 위브가 직장동료들에게 흘려놓은 말이 있기는 한 모양인지, 오늘 처음 만난 내 요청도 먹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막말로 밀리엄이나 내가 멜리사에 대해 정말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대면조차 하지 못하게 할 건 뭐란 말인가?

    그러나 정직을 당하지도 않았고 어제 살해당하지도 않은 유일한 수석수사관 딜런 와이즈는, 밀리엄과 내가 흡사 멜리사 위브를 몰래 풀어주기라도 할 잠재적 공범쯤 되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다른 방식으로 협력해. 용의자 심문은 이쪽이 전담한다.”

    그 말을 끝으로 더 마주하고 서 있기도 싫다는 듯 쌩하니 사라져버리는 딜런 와이즈의 뒤통수를 보고 있자니 고개가 절로 내저어졌다.

    나는 다시 실소를 터뜨렸다가, 혀를 내둘렀다가, 이내 반쯤 입을 벌린 채 밀리엄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밀리엄, 혹시 저 사람이랑 싸웠어요?”

    “어떻게 알았냐고 묻기도 민망한 상황이군요…….”

    한숨처럼 중얼거리며 미간을 꾹 누른 밀리엄이 당부하듯 말을 이었다.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말하는 족족 막거나 채가려 들 테니까. 그리고, 면목 없지만… 그런 사람이 저 친구만 있는 것도 아닐 거예요.”

    아, 내 파트너는 아무래도 아주 끝내주는 직장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

    ‘그런 사람이 저 친구만 있는 것도 아닐 것’이라는 밀리엄의 말을 실감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멜리사 위브가 그러했듯 간만에 만난 밀리엄에게 반가움을 표하는 수사관들도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조사를 이어가기 위해 협조를 구해야 할 수사관들은 대부분이 밀리엄에게 한없이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분명 드레이크 부군장의 지령이 전달되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료 하나를 얻어내기 위해 한참씩 입씨름을 하거나 악의적인 비아냥을 견뎌내야 할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남작님, 켄트우드 씨. 와이즈 수사관님이 보내셔서 왔…… 앗!”

    곱슬거리는 금발을 하나로 질끈 묶고 커다란 안경을 낀 수사관이 테이블 위에 서류뭉치를 내려놓다가 우르르 쓰러트렸다.

    자책하듯 눈을 질끈 감는 상대를 조금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밀리엄이 이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반갑습니다. 내 착각이 아니라면 초면인 것 같은데.”

    “아, 네! 맞습니다. 제가 아직 수습이라서요….”

    이름 모를 수사관은 넘어진 서류들을 주섬주섬 정리하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얼굴로 말끝을 늘어뜨렸다.

    딜런 와이즈가 보내서 왔다고 했지. 그런데 수습이고.

    아주 대놓고 불청객 취급을 하는군.

    상대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아 새파란 수습을 떠넘지듯 붙여놓는 행태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노골적인 적의를 보이는 이들과 계속 마주하는 것보다야 이 편이 덜 피곤하겠다 싶기는 했다.

    기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이것 또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장해물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충 기분을 갈무리하고 있자니 수사관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켄트우드 씨에 대한 이야기는 위브 수사관님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멜리사… 위브 수사관에게 말입니까?”

    “예. 정말로 존경스러운 선배님이셨다고, 계속 수사국에 계셨다면 제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셨을 거라고요.”

    “그건 좀 민망한 평가로군요…. 위브 수사관과 꽤 가까운 사이였던 모양이죠?”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제 지도담당이십니다.”

    그 말에 밀리엄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영원히 신참일 것만 같던 후배가 이제 누군가의 지도를 담당할 만한 경력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감개무량한 모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드리지 못했네요. 수습 수사관 해리엇 블레어입니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멜리사보다도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수습 수사관, 해리엇 블레어는 다급히 자기소개를 한 뒤 나와 밀리엄을 번갈아 보며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데 말을 꺼내도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종전의 놀란 표정을 거두고 책상 위의 서류들을 마저 정리하고 있는 밀리엄을 한번, 그의 정수리를 보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해리엇을 한번 응시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블레어 수사관님.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아, 네! 아니, 아니, 그게….”

    할 말이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본인이 갈등하고 있는 모양이었으므로, 나는 우선 잠자코 해리엇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의 영 미심쩍인 반응을 뒤늦게 인식한 듯 밀리엄이 묘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렸을 즈음, 잔뜩 주저하는 목소리가 허공을 타고 흘러나왔다.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것이 적절한지 잘 모르겠어서요….”

    “이건 내 개인적인 지론인데, 옳은 답을 도출해내기 위해 적절한 질문만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오, 상당히 프로페셔널하고 선배 같은 발언…….

    나는 약간의 선망을 담아 밀리엄을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밀리엄이 어째선지 헛기침을 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기껏 멋진 말을 해놓고는 왜 저런담.

    여하간 자신을 직시하며 건넨 밀리엄의 조언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해리엇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 아니 켄트우드 씨는… 위브 수사관님이 정말 범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기를 바라고, 솔직히 그럴 사람도 아니라고 보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무시해선 안 되겠죠.”

    “그거야 물론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도 비단 그분이 제 지도담담이라서 편을 들려는 건 아니에요. 저는 다만….”

    “다만?”

    “위브 수사관심을 아예 범인으로 정해두고 수사에 임하시는 것 같은 선배님들이 계셔서…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해리엇의 말을 내내 사무적인 표정으로 듣고 있던 밀리엄의 얼굴이 별안간 묘하게 굳었다.

    단지 각별한 후배가 몹시 난처한 상황에 처했음을 다시 한 번 인지한 정도로 새삼스럽게 지을 만한 표정은 아니었다.

    게다가 방금 해리엇이 꺼낸 말에는 내가 듣기에도 확실히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며칠씩 지난 것도 아니고 고작 간밤에 일어난 사건에서 외부인의 범행일 가능성을 벌써 배제시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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