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붉은 벽돌성의 새벽 (2)
경계 선 어투에 내가 위화감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이유를 물으려던 순간이었다.
“왜 만날 수 없다는 거지?”
밀리엄의 날카로운 질문이 허공을 갈랐다. 결코 곱지 않은 어조. 서슬 퍼렇게 날이 선 듯한 음성. 심지어 존대도 아닌.
그 목소리를 들은 수사관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봉착한 사람처럼 눈을 크게 치켜떴다.
순간 의아해진 내가 밀리엄 쪽으로 다시 시선을 옮긴 것과 거의 동시에, 서늘한 표정을 한 밀리엄이 마차의 문을 휙 열어젖혔다.
밀리엄과 수사관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허공에서 마주쳤다. 수사관이 눈썹을 꿈틀하며 입을 열었다.
“밀리엄 켄트우드?”
“설명을 듣고 싶은데, 딜런 와이즈.”
그 말에 딜런 와이즈라고 불린 수사관이 허,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둘이 아는 사이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인사를 나눌 만큼 친근한 사이는 또 아닌 모양이지만, 어쨌거나.
“내가 왜 외부자에게 설명씩이나 하는 수고를 들여야,”
“설명해주게, 와이즈 수사관.”
딜런 와이즈가 밀리엄보다도 날이 선 목소리로 거절을 말하던 시점에, 그의 등 뒤에서 또 다른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뚜벅뚜벅 걸어와 모습을 드러낸 목소리의 주인은, 딜런 와이즈보다는 테오도어 와이엇의 그것에 가까운 제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였다.
그를 발견한 밀리엄이 팔짱을 풀고 비교적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드레이크 과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확실히 오랜만이군. 켄트우드. 그리고 처음 뵙겠습니다, 남작님.”
나는 용케 베로니카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온 드레이크 과장이란 남자를 향해 얼떨결에 꾸벅하고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한가하게 자기소개를 주고받을 시간 같은 것은 주어지지 않았다. 밀리엄의 질문이 곧장 다시 이어진 까닭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라네. 일단 내려서 자리를 옮기지. 남작님도 함께 가시죠.”
드레이크 과장은 바깥의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한 태도로 나직하게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밀리엄과 함께 마차에서 내려 수사국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과정에서 나는 그가 경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작은 수첩과 만년필을 손에 든 수많은 사람들이 왕립수사국 건물의 높다란 쇠울타리에 덩굴식물처럼 달라붙어, 울타리 안쪽을 오가는 수사관들에게 목청껏 질문을 던져대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갑자기 기자출입을 통제하는 겁니까! 어서 대답해주세요!”
말하는 것으로 들어보아 그들은 평소 왕립수사국에 출입하던 기자들인 듯했다. 갑자기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할 만한 간밤의 사건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지?
설명해주겠다는 말을 들었으니 곧 알게 될 일인데도 어쩔 수 없는 궁금증이 치밀던 와중에, 기자들의 외침 중 하나가 유독 선명하게 귀에 와 박혔다.
“건물 안에서 수사관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수사관들의, 시신이라고?
***
드레이크 과장과 딜런 와이즈를 따라 도착한 곳은 수사국 건물의 뒷문이었는데, 그쪽에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명백히 외부인으로 보이는 나와 밀리엄이 자신들과 달리 경비를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불만 섞인 고함을 쳐댔다.
그렇게 요란하기 이를 데 없는 길목을 지나 마침내 수사국 건물에 발을 들인 순간, 나는 지레 기겁을 하고 말았다.
문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몸 아래의 카펫에 검게 말라붙은 웅덩이가 피라는 사실을 유추하는 일은, 쓰러진 이가 이미 죽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시신은 수사관 제복을 입고 있었다.
나만큼이나 당황한 듯 걸음을 멈춘 밀리엄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혼란스레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불쌍한 브레너 수사관의 시신이지. 묵념은 나중에 표하고 일단 따라오게.”
“들어오는 길에 수사관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만, 사실입니까?”
“막는다고 막았는데 결국 새어 나갔나 보군.”
잠시 밀리엄을 향했다가 다시 정면으로 돌아가는 드레이크 과장의 얼굴에서 일순 짙은 낭패감이 비쳤다.
나는 앞서가는 두 사람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가, 발끝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을 받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흠칫 놀라 물러서고 말았다.
내 발에 채인 것은 묵직하고 네모난, 그러나 피에 흠뻑 젖어 본래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기 힘든 정체불명의 물체였다.
[ ‘피 묻은 조각품’을 발견했다. ]
슬쩍 집어 들어서 살펴볼까 생각했을 때 저 앞에서 나를 재촉하는 드레이크 과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니, 일단은 저쪽을 우선하는 편이 옳을 듯했다.
건물 안은 바깥과는 다른 의미로 소란스럽고 분주했다.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수사관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시야에 잡혔다.
그러나 바빠 보이는 와중에 미안하게도 전체적으로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걸음이 이어질수록 발치에 매달리는 불길함도 점점 묵직해졌다.
간밤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이는 풍경…….
질서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수라장을 지나 도착한 곳은 ‘부국장실’이라는 명패가 붙은 방 앞이었다.
드레이크 과장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곧장 방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그런 그를 따라 들어가는 밀리엄의 고개가 조금 기울어지는 것을 보며 덩달아 방 안쪽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가장 나중에 들어온 딜런 와이즈는 잠시 복도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내 문을 닫아 잠그고는 보초라도 서듯 문앞에 바짝 붙어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드레이크 과장은 나와 밀리엄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했다.
얼결에 자리에 앉고 보니 눈을 가늘게 뜬 채 미심쩍은 시선으로 드레이크 과장의 눈치를 살피는 밀리엄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과장님, 여긴 부국장실이 아닙니까?”
“아까 말하는 걸 잊었는데, 이젠 부국장이라네.”
“데이 부국장님께서는….”
“1계급 강등되어 현재는 정직상태에 계시지. 얼마 전에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거든. 지금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지만.”
[ 키워드 ‘왕립수사국 내부의 불미스러운 일’ 획득 ]
지금이든 나중이든 나한테는 중요한 문제인 모양인데 이건 또 어딜 가서 캐낸담…….
나는 느닷없이 떠올랐다 파스스 사라지는 시스템 문구를 응시하며 내심 착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당장은 드레이크 과장, 아니 부국장이 해주는 설명에나 귀를 기울이는 편이 좋을 터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밖에서 기자들이 떠들던 이야기는 사실이야. 수사관 열한 명이 간밤에 살해당했네. 다른 어디도 아닌 여기 이 스칼렛 맨션 안에서.”
한둘도 아니고 무려 열한 명이 하룻밤 사이에…?
나는 헉, 하고 숨을 들이쉬며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밀리엄의 반응을 확인했다.
그는 당혹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정으로 부국장을 응시한 채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수사국 내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피해자가 열두 명이나 된다니, 나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어.”
“열두 명이라니, 방금은 열한 명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수사관이 열한 명이라고 했지.”
부국장이 한층 어두워진 얼굴로 기다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아주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국장님을 현역 수사관이라고 칭하기는 무리가 있지 않겠나.”
……테오도어 와이엇이 죽었다고?
부국장의 설명은 이어질수록 혼란의 연속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밀리엄이 깊은 날숨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레이크 부국장은 그런 밀리엄의 반응을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다가, 이내 손깍지를 껴 무릎 위에 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래, 자네는 무슨 일로 왔다고 했지?”
“남작님께서 아스톤 홀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셔서 동행한 참입니다.”
“그 사건이라면 위브 수사관이 담당이던가. 여러 모로 곤란하게 됐군.”
으음, 하며 앓는 소리를 내는 부국장의 태도에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까 딜런 와이즈가 ‘멜리사 위브 수사관은 만나실 수 없다’고 말했을 때의 다소 묘한 어감이 불길하게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불길한 느낌을 받은 것이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밀리엄이 조금 전보다 훨씬 주저하는 목소리로 부국장을 향해 말을 꺼냈다.
“저, 설마 말씀하신 열한 명 중에 위브 수사관이,”
“아, 그건 아닐세. 그건 아니네만…… 나참,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드레이크 부국장은 뭐라 대답을 해야 좋을지 난감하다는 얼굴로 한동안 관자놀이를 긁적이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말의 내용이란 실로 당혹스럽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멜리사 위브 수사관은 지난밤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현재 구금되어 조사를 받고 있네.”
***
네 명의 평수사관과 일곱 명의 수석수사관, 그리고 왕립수사국장 테오도어 와이엇이 간밤에 살해당했다.
밤사이 건물에 남아 있던 이들 중 생존자는 단 하나, 멜리사 위브뿐이었고 그녀는 현재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상태다.
설상가상 수사국 지하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에드워드 녹스는 탈주…….
수사국은 글자 그대로 비상이 걸렸는데, 내부적으로는 멜리사 위브가 범인이라는 파와 에드워드 녹스가 탈주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수사관들을 전원 살해했다는 파로 나뉘어 의견 차를 빚고 있단다.
특별수사본부를 꾸려야 할 만큼의 대형사건인데 열 명뿐인 수석수사관 가운데 일곱이 사망했고 남은 셋 중 둘은 전 부국장 일라나 데이와 마찬가지로 정직상태라 조직 내부는 그야말로 엉망진창.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징계를 중지하고 두 수사관을 불러들일 예정이지만 그런다 한들 여전히 인력은 모자란 상황이다.
한 마디로 노답도 이런 노답이 없다는 소리지. 이들한테든 나한테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