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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50화 (50/121)
  • 50화. 붉은 벽돌성의 새벽 (1)

    덜컹.

    나름대로 포장해두었겠으나 썩 매끈하지 못한 길 위를 달리는 마차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거세게 흔들렸다.

    몇 번을 타도 영 익숙해지지 않는 승차감에 생전 안 하던 멀미가 다 날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멀미 따위를 신경 쓸 시점이 아니었다.

    나는 마차 창문 안쪽의 커튼을 동아줄처럼 붙잡은 채 어제의 일을 되새겼다.

    제임스의 병실을 찾은 멜리사가 착잡한 얼굴로 전해온, 심히 당혹스러운 소식.

    ‘수잔 로이드가 자살했습니다.’

    범행 사실은 전부 순순히 인정한 주제에, 유독 범행동기에 관해서만 이상하리만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왜 이런 짓을 했냐고 물었을 때 윌 그렉슨을 언급했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실상은 그저 예언서의 내용을 실행하기 위한 살인이었을 뿐이라 입을 닫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갑자기 자살이라니.

    왕립수사국의 경비 수준이 피의자가 자살씩이나 할 수 있을 만큼 형편없다는 실망스러운 사실이야 둘째치더라도….

    뭐라고 해야 할까, 다 끝난 줄 알았던 사건이 새로운 수수께끼를 던져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되새기자니 다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와서, 나는 커튼을 잡고 있던 손을 움직여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밀리엄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로니카,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습니까?”

    “아…… 하하, 그냥 멀미가 조금 나서요.”

    “이 길이 원체 조금 험합니다. 많이 힘들면 언제든 말해줘요.”

    이 길이 원체.

    여러 번 다녀본 사람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다시 한번 우리의 목적지를 상기시켰다.

    회색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 당장이라도 빗줄기가 쏟아져 내릴 듯한 이 아침, 나와 밀리엄을 태운 마차는 왕립수사국을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어제 오후.

    대체 감시를 얼마나 소홀히 한 거냐며 한바탕 잔소리를 쏟아낸 밀리엄과, 그 살벌한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나에게 멜리사는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수사국에 출두해줄 것을 요청했다.

    아스톤 홀에서의 일로 절차상 나 역시 참고인 조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실은 수잔 로이드와 관련해 조금 미심쩍은 정황이 있어 상의를 드리고 싶은데, 보여드려야 하는 게 외부반출이 불가한 자료라서…….’

    실상은 대충 그러했던 고로, 참고인 조사를 빙자해 수사국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수잔 로이드가 자살한 마당에 그녀와 관련된 미심쩍은 정황이라면 십중팔구 아주 중요한 정보일 터였다.

    …아. 정보라면 그러고 보니.

    “저, 밀리엄. 와이엇 국장님하고는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에드워드 녹스의 일이며 제임스의 간병이며 이리저리 정신이 없었던 탓에 조금 많이 늦어버린 감은 있지만,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그러나 어딘지 향수에 젖은 듯한 표정으로 드문드문 창밖을 응시하던 밀리엄은 내 질문에 ‘아….’ 하며 난처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답하기를.

    “별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습니다. 교단과 관련된 화제를 꺼내려 하면 자꾸 말을 돌리시더군요.”

    나는 면목이 없다는 듯 목을 긁적이는 밀리엄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뭐, 좀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래도 옛 상관이니만큼 용의자를 추궁하듯 이것저것 집요하게 캐묻기엔 무리가 있었으리라.

    “그럼 혹시, 예전이랑 비교했을 때 뭔가 달라 보이셨다거나 하는 부분은…….”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봤지만 그런 부분도 딱히 없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수사국에 있던 시절부터 교단에 발을 들이고 계셨는지도 모를 일이죠. 그럴 수 있는 분이기도 하고요.”

    “그럴 수 있는 분이요?”

    “부인과 오래전 사별하시고 가족이라곤 아픈 아들뿐인 분이라서요. 의사는 성년을 맞기 힘들 거라고 했다는데, 자식을 앞세우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

    “기적이 간절한 사람은 종교에 심취하기 쉽지요. 뒤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든 간에 메이슨 교단도 일단은 종교집단이니까요.”

    씁쓸하게 뇌까린 밀리엄의 얼굴에 희미하게 그늘이 졌다.

    “바빠서 늘 홀로 두어야 했는데 이번 생일엔 함께해줄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지 말아야 할 자리에 서버린 옛 상관에게 온전히 실망할 수도, 그렇다고 그를 온전히 연민할 수도 없는 현실에 대한 착잡함이 수려한 이목구비 위로 더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나는 딱히 무어라 대답하진 않았지만, 그의 복잡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덩달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악의 구렁텅이를 구원으로 여기게 만들 만큼의 간절함이라.

    나는 메이슨 교단을 대체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예언으로 위장한 범행계획을 실행에 옮기며 세상을 혼란케 만드는 범죄조직?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이 간절한 사람을 유혹할 수 있을 만큼의 교리와 약속을 가진 그럴듯한 종교집단?

    ……아니지. 아니다.

    이게 무슨 괴상한 고민이람.

    나에게 메이슨 교단은 그저 이 세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파헤쳐야 할, 어쩌면 무찔러야 할 거대한 비밀 덩어리 최종보스일 뿐이다.

    그 이상의 시선을 가질 필요는 없다. 가지지 않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나는 현실의 인간이고.

    ‘우리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죠. 애초에 당신은 그걸 감수하겠다고 했고, 그러니 내게 당신의 행동이나 선택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가능하다면 베로니카…….’

    이곳에, 이 세상에 내가 감정을 소비해야 할 ‘진짜’ 같은 건…….

    ‘당신을 지키는 일은 내가 하고 싶습니다.’

    …그런, 가치 있는 무언가는…….

    덜컹!

    자꾸만 위험한 쪽으로 뻗어가려는 생각을 고맙게도 끊어내준 것은, 이제까지보다 거칠게 흔들리며 아예 멈춰 서버린 마차였다.

    마부의 임의에 따른 급정거였는지 벽 너머로 히히힝, 하는 말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고꾸라질 것을 염려했는지 내 쪽으로 반쯤 몸을 일으켰던 밀리엄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창밖을 확인했다.

    나는 가늘게 뜬 두 눈 사이 자리잡은 미간에 미심쩍은 주름이 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도착한 건가요?”

    “도착이라면 도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바로 앞은 아니군요. 여기서 멈추다니 이상한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가 이내 몸을 돌려 마부석과 이어진 창문을 열어 마부에게 물음을 던졌다.

    “무슨 일입니까?”

    “저, 그게 통행이 불가하다는 것 같은…….”

    썩 크지 않은 창문 너머에서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마부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무슨 일이 있나?

    나는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보았다. 목을 쭉 빼고 앞쪽을 확인했을 때 제일 처음 시야를 사로잡은 것은 커다랗고 붉은 벽돌 건물이었다.

    [ 왕립수사국 스칼렛 맨션 ]

    ‘지도’에 새로운 장소가 추가되었다.

    그러니까 저 시뻘건 게 왕립수사국 건물이란 말이지….

    말마따나 마차에서 건물까지의 거리는 도착이라면 도착이라고 볼 수도 있을 만큼 가까웠으나, 마차가 멈춰 선 위치는 내리기에 자연스러운 지점처럼 보이지 않았다.

    바깥이 무척이나 소란스럽다는 걸 깨달은 건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사람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고, 드문드문 호루라기 소리도 들렸다.

    자세히 보니 건물 입구 쪽에 줄 같은 것이 쳐져 있고 그 앞을 경관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수사국 제복을 입은 수사관들이 심각한 얼굴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정말 무슨 일이지?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지만 마땅히 혼자 도달할 해답이 없어 일단 마차 안으로 다시 목을 집어넣으려는데, 구경꾼들을 통제하던 수사관 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곧장 마차 쪽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로 오신 누구십니까?”

    달려온 수사관은 매서운 인상의 젊은 남자였다.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있는 남자가 딱딱하게 뱉은 질문은 조금 공격적으로도 들렸지만, 나는 일단 차분히 대답을 건넸다.

    “베로니카 캠벨이에요.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왔는데요.”

    “캠벨 남작님이시군요. 귀한 걸음해주셨는데 죄송하지만 오늘은 외부인의 수사국 출입이 불가하니 돌아가주셔야겠습니다.”

    수사관은 별로 죄송한 사람의 그것처럼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다다다 쏘아붙이듯 말했다.

    나는 슬쩍 곁눈질로 밀리엄을 살폈다.

    그는 마부와 나누던 이야기가 끝났는지 어느새 다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가 앉은 자리에선 보이지 않을 이름 모를 수사관의 그림자를. 팔짱을 낀 채 아주 언짢은 표정으로.

    그 모습이 마치 대화에 끼어들 시점을 살피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는 우선 대뜸 축객령부터 내린 수사관과 조금 더 대화를 이어가보기로 했다.

    기실 참고인 조사는 핑계고 사실은 멜리사를 만나러 온 거니까, 수사국에 들어갈 수 없다면 어떻게 그녀만이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저, 혹시 멜리사 위브 수사관님은….”

    “위브 수사관과는 만나실 수 없습니다.”

    음?

    냉담하게 이어진 남자의 대꾸에는 어딘지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위브 수사관과는’ 만날 수 없다.

    내가 곡해해서 받아들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방금 그 말은 마치, 다른 수사관은 괜찮지만 멜리사 위브는 만날 수 없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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