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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38화 (38/121)
  • 38화. 0시를 향하여 (1)

    켄트우드 저택에서의 일상은 그야말로 호사가 따로 없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놓고도 정신없이 몰아치는 전개 탓에 도무지 갑부다운 나날을 영위했다고는 말하지 못할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특히 그랬다.

    거리의 소음과 동떨어져 있어 새벽같이 눈이 떠질 일도 없고, 넓고 푹신한 침대 위를 적당히 굴러다니다가 배가 고파질 즈음 옷을 갈아입고 내려가면 내가 차리지도 않은 호화로운 조찬이 기다리고 있는 삶.

    어느 정도냐 하면, 언젠가 갔던 올인클루시브 호캉스가 꼭 이런 느낌이었지 싶을 정도?

    밀리엄은 후하고 관대한 집주인 수준을 넘어 매 순간 뭐라도 퍼주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굴어서, 이제는 행복한 왕자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겹쳐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음식은 입에 맞냐, 불편한 부분은 없냐, 방이 너무 춥지는 않냐, 심심하진 않냐…….

    물론 나는 염치없는 식객이라 어지간한 호의는 전부 감사히 잘 받아먹었지만, 하녀를 붙여주겠다는 말에는 사양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신세를 지는 건 조금 아닌 것 같기도 했거니와, 누가 옆에서 옷이며 머리며 만져주고 이리저리 시중을 들어주는 상황이 상상만으로도 낯간지러웠기 때문이다.

    베로니카가 남의 시중을 받고 살던 아가씨는 아니었던 덕에 밀리엄도 그 점에 대해서는 금세 수긍했다.

    아무튼 나는 갑작스레 팔자에도 없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참이지만, 이 달콤한 사치에도 나름의 애로사항이라는 것은 존재했다.

    이를 테면.

    “좋은 아침입니다, 남작님. 간밤에는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아…, 네. 그럼요. 로웰 씨도 좋은 밤 보내셨나요?”

    ……이 저택에 머무는 또 다른 ‘손님’이 무려 기억상실 디버프를 먹은 <레드 헤링>의 흑막이라는 점이라거나.

    나는 단정한 차림새로 식탁에 앉아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 친절하게도 아침 인사를 건네오는 금발의 남자를 향해 만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며칠 전 병실에서 이뤄졌던 대화의 결론을 다시금 곱씹었다.

    ‘당분간… 정말 당분간만이라도, 댁에서 신세를 질 수 있을까요?’

    제임스 로웰이 그렇게 물었을 때, 밀리엄은 당연하게도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일순간은 분노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그 상황에서 밀리엄이 다시 한번 제임스의 멱살을 잡는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곧장 무어라 대꾸하려던 밀리엄은 이내 반쯤 열린 입을 꾹 다물더니 잠시간 고민에 잠겼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향해 물어온 것이다.

    ‘베로니카. 괜찮겠습니까?’

    그것은 이미 자기 집에 머물고 있는 나만 불편하지 않다면 제임스 로웰의 부탁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가 담긴 질문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 잠시간의 고민으로 밀리엄은 제임스를 곁에 두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물론 썩 기꺼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밀리엄에게 작금의 제임스 로웰은 어쨌거나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상대.

    어차피 외면할 수 없는 것, 하루라도 빨리 기억을 찾게 만들겠다는 결심이 굳은 얼굴 위로 설핏 엿보였다.

    ……대충 그러한 까닭으로, 나는 졸지에 <레드 헤링>의 두 주인공과 한 지붕 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한 지붕 밑이라곤 해도 지붕이 워낙 넓은 탓에, 동거라기보단 그저 같은 호텔에 우연히 동시 투숙하게 된 정도의 느낌이지만 어쨌거나.

    “베로니카, 좋은 아침입니다. ……아, 로웰 씨도 계셨군요.”

    밀리엄이 식당으로 들어선 것은 제임스와 내가 인사를 나누던 와중의 일이었다.

    제임스 로웰은 흘려들으면 언뜻 호의적으로까지 들리는 밀리엄의 인사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대하는 태도에서 어쩔 수 없는 차이가 묻어나긴 했지만, 밀리엄은 기본적으로 제임스에게도 그럭저럭 친절한 집주인이기를 자처했다.

    그러나 호기롭게 동거를 승낙했던 주제에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 조금이라도 자신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제임스를 이런저런 핑계로 피해 다니고 있기도 했다.

    여하간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그는 제임스와 인사를 나누느라 식탁 앞에 멀뚱히 서 있던 나에게 직접 의자를 빼주었다.

    나는 부드럽게 웃고 있는 밀리엄을 향해 고개를 까딱하며 자리에 앉았고, 밀리엄은 그대로 몸을 움직여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젊은 고용인 하나가 그 모습을 보며 낭패감 어린 표정을 짓는 것이 보였다.

    자기 일을 고용주에게 빼앗겨서라기보다는, 마침 은쟁반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오던 집사에게 그 장면을 들켜버린 탓인 것 같았다.

    켄트우드 저택의 집사인 휴스턴 씨는 인자한 인상과 달리 아무래도 썩 너그러운 상사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당연히 밀리엄에게 향할 줄 알았던 휴스턴 씨의 걸음이 내게로 휙 꺾어졌다.

    내 옆에 멈춰 서서 허리를 숙인 그가 들고 있던 은쟁반을 내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남작님 앞으로 도착한 편지입니다.”

    “어, 저한테요?”

    “예. 초대장인 것 같습니다만.”

    밀리엄이 며칠에 한 번씩 베로니카의 집으로 심부름꾼을 보내 우편함을 확인해주기로 한 것이 그제야 떠올랐다.

    여태까지는 따로 전달받은 편지나 우편물이 없었는데.

    초대장이라. 이제 슬슬 새로운 캠벨 남작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생길 즈음인 걸까?

    어쩐지 조금 묘한 기분으로, 나는 손을 뻗어 은쟁반 위의 편지봉투를 집어 들었다.

    이쪽을 주시하는 밀리엄과 제임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가 크게 개의치 않고 봉투에서 편지를 꺼낸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시선이 편지의 내용에 가닿기도 전에 시스템창이 먼저 떠올랐다.

    [ ‘메이슨 교단으로부터의 초대장’을 획득했다. ]

    ……뭐를 획득했다고?

    금세 희미해지는 시스템창 위로 종이를 들어 올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편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베로니카 캠벨 남작님 귀하’로 시작된 유려한 글씨가 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 교단으로부터의 초대의사가 맞았다.

    사흘 뒤 저녁 교단이 주최하고 성녀님께서 자리하시는 아스톤 홀에서의 자선 파티에 참석해주십사 한다는 내용.

    홀로 참석하시어 다른 초대객들과 새로이 교류하시는 것도 물론 환영이지만, 좋은 취지의 행사이니만큼 일행을 동반해주신다면 더욱 기쁘겠다는 이야기…….

    “베로니카, 뭔가 좋지 않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표정이…….”

    “아, 아니요! 좋지 않은 소식은 아니에요. 그냥 초대장인데, 그게,”

    그냥 초대장인데 하필 메이슨 교단에서 보냈네요?

    ―라고 말하지 못한 이유는 이 자리에 나와 밀리엄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식당 곳곳에 선 고용인들을,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내 기묘한 반응을 의문 어린 얼굴로 보고 있는 제임스를 한 번씩 살폈다.

    그리고 밀리엄을 향해 살짝 손짓을 했다. 밀리엄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도 선뜻 몸을 일으켜 내 쪽으로 다가와주었다.

    나는 곁에 다가와 허리를 숙인 밀리엄의 눈앞으로 초대장을 들어 보였다.

    고개를 기울이며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밀리엄의 표정이 굳어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아침 식사를 잠시 미룬 나와 밀리엄은 2층의 서재로 올라갔다.

    서재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피해서 초대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서재로 들어선 밀리엄은 긴히 보여줄 게 있다며 곧장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안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책상 서랍을 연 그가 내게 들고 온 것은 패트릭 헤이즈의 사무실에서 가져온 서류 중 하나였다.

    “밀리엄, 이건…….”

    “헤이즈 씨가 메이슨 교단에 대해 가장 최근에 조사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입니다. 조사를 마치지 못해 중간에 끊겨 있긴 하지만, 여길 보면.”

    차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서류철의 종이들이 밀리엄의 손을 거쳐 빠르게 넘어갔다.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밀리엄의 기다란 손가락이 종이의 가장 윗줄에 적힌 어떤 이름을 가리켰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소리내어 읽었다.

    “‘아리아 오큘러스’……?”

    아리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이름이었다.

    나는 아래 적힌 내용을 확인하기에 앞서 잠시 미간에 힘을 주고서 기억을 더듬으며, 눈앞의 이름을 몇 번이고 속으로 곱씹어보았다.

    아리아. 아리아라…….

    ‘어제는 아리아 성녀님을 만났어요. 성녀님이 동네 아이들에게 빵 나눠주는 걸 도와달라고 하셔서….’

    ‘네! 메이슨 교단의 성녀님이요.’

    답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기억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식당을 나서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 손에 들려 있던 초대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메이슨 교단이 주최하고 성녀님께서 자리하시는 아스톤 홀에서의 자선 파티’라는 대목이 곧장 보였다.

    초대장에서 눈을 뗀 나는 이어지는 서류의 내용을 확인했다.

    패트릭 헤이즈의 조사에 따르면 메이슨 교단의 성녀인 아리아 오큘러스는 굉장히 비밀스러운 인물이었다.

    출신도 과거도 거처도 확실하지 않고, 교단의 공식행사에도 두문불출.

    이따금 빈민가 등지에 홀연히 나타나 음식을 나눠주는 등의 구호 활동을 벌이곤 하지만 정말 ‘이따금’ 비정기적으로 나타나는 탓에 행보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는 늘 베일이 달린 가면을 쓰기 때문에, 얼굴조차 아는 이가 없단다.

    글자 그대로 ‘베일에 싸인’ 존재인 것이다.

    서류 속의 패트릭 헤이즈는 어떻게 해야 아리아 오큘러스를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손에 들린 초대장이 왠지 모르게 조금 무거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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