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37화 (37/121)

37화. 레드 헤링 (10)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모든 사건을 메이슨 교단이 예지했다고 보는 것보다는….”

“이 사건들의 배후에 메이슨 교단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겠네요.”

“예언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죠.”

씹어뱉듯 말하는 밀리엄의 목소리가 굉장히 사납게 들려왔지만, 나는 그보다 방금의 가설에 조금 더 신경을 기울였다.

요컨대 이 가설대로라면 이 책은 경전이나 예언서 따위가 아니라, 일종의 범죄계획서에 가깝다는 소리가 된다.

나는 나도 모르게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책을 내려다보았다.

‘1887년 9월. 플레밍턴’

수도 플레밍턴에서 연쇄 교살 사건이 일어나 열한 명이 사망한다는 내용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

연쇄 교살 사건에 열한 명의 사망자, 게다가 미제라면 설마.

어떤 사건이 서늘하게 뇌리를 스쳐 감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움직인 눈길이 밀리엄을 향했다.

흔들리는 숨. 부드득 이를 가는 소리. 허공을 노려보는 시선.

핏줄이 튀어나오도록 움켜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

돌이켜 생각해보면 <레드 헤링>에서 제임스 로웰에 의해 밝혀진 것은 ‘자정의 교살자’가 에드워드 녹스라는 사실뿐이었다.

에드워드 녹스의 범행동기는 끝까지 공개되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게임을 플레이할 당시의 나는 그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지 못했다.

애당초 <레드 헤링>의 결말부는 제임스 로웰이 흑막이라는 반전과 밀리엄 켄트우드가 빠진 딜레마에 완전히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다시 말해 게임 자체가 에드워드 녹스를 그리 중요하게 조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쾌락 살인이었겠거니 했지. 제임스 로웰의 앞선 희생자들이 전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면?

제작진이 애초부터 이런 내용의 후속작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동기를 공란으로 만들었든, 후속작을 만들려고 보니 전작의 공백이 들어왔든.

어찌 되었건 어젯밤 나와 밀리엄이 세운 가설대로, ‘예언서’ 속 사건들의 배후에 메이슨 교단이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마차 맞은편에 앉은 밀리엄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마주친 눈이 곧장 부드럽게 휘는 장면을 보고도 마음은 좀처럼 편해지질 않았다.

‘자정의 교살자’ 사건이 기록되어 있던 그 예언서가 정말로 교단의 범행계획서인 거라면, 밀리엄의 부모를 죽게 한 원흉은 결국 메이슨 교단이었던 셈이 된다.

게다가 지금은 캠벨 남작 일가 사망 사건과 교단의 연관성을 부정하기도 어려운 시점이 아닌가?

12년 전에는 부모를.

얼마 전에는 여동생을.

어쩌면 메이슨 교단은 밀리엄에게서 피붙이를 전부 빼앗아간 원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가능성을 이제야 확인한 상황이니…….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 보이는 얼굴 위로 어젯밤의 그가 겹쳐 보였다.

나는 가시를 삼킨 것 같은 기분 속에서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괜히 옆자리를 손으로 더듬었다.

조금 전 베로니카의 집에서 대충 챙겨온 짐가방이 만져졌다.

아침이 밝자마자 밀리엄과 경관을 양옆에 대동하고 돌아가 본 베로니카의 방은 그저 평화롭기만 했다.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숨어 있는 괴한 따위도 없었고, 어질러진 구석 없이 말끔한 상태 또한 여전했다.

‘그러니까… 어제 집을 비운 사이 누군가 침입했던 건 확실한데 딱히 없어진 물건은 없으시단 말씀이지요?’

동행한 경관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물었고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물론 나는 진짜 베로니카가 아니므로,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야 없는 노릇이기는 했다.

그러나 열린 창문을 닫을 생각조차 않았다는 건, 그만큼 부주의했거나 애초부터 자신이 침입했다는 사실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상식적으로 그런 침입자가 집을 뒤져놓고서 다시 깨끗하게 정돈해놓았으리라는 추측은 조금 어색한 감이 있고.

내 대답을 들은 경관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원체 성실한 사람인 것인지 꼼꼼하게 집안 곳곳을 더 살피고는 잠금장치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까지 해준 뒤 돌아갔다.

그렇게 경관이 돌아간 후 짐을 챙겨 베로니카의 집을 나선 지금, 마차는 성 조나단 병원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멜리사 위브가 보낸 심부름꾼이 제임스 로웰의 신원복구 소식을 전하기 위해 켄트우드 저택을 찾은 것이 오늘 아침의 일.

덕분에 밀리엄은 ‘조만간 다시 찾아가 볼 생각’이라고 말한 지 이틀 만에 제임스 로웰을 찾아가게 되었다.

짐가방 손잡이를 소심하게 만지작거리던 나는 밀리엄의 손에 들린 서류봉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멜리사의 심부름꾼이 ‘부탁하신 자료’라며 밀리엄에게 건넨 봉투였다.

“저, 밀리엄.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그 봉투에 든 건 뭐예요?”

“아, 이거 말인가요.”

봉투를 살짝 들어 보이는 밀리엄의 대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금세 말을 이었다.

“로웰 씨와 관련된 자료들입니다. 반출 가능한 게 있으면 가져다달라고 멜리사에게 부탁했죠.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밀리엄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제임스 로웰의 이야기가 화두에 오를 때마다 부쩍 복잡한 낯을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라도 저러지 않을까. 내 인생을 무너뜨린 선택으로 나를 인도하고 유유히 사라졌던 상대가 팔자 좋게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어 나타난 상황이라면.

불쾌한 기억에 잠기면서도 결코 외면하지는 못하겠지.

정말로 기억을 잃은 거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만들고 싶을 것이다.

과거에 미처 쏟아내지 못했던 원망을 퍼붓기 위해서라도…….

나는 차마 밀리엄을 직시하지 못한 채, 그의 손에 들린 봉투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색 커튼을 젖히자, 작은 창 너머로 때마침 성 조나단 병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

수일 만에 만난 제임스 로웰은 여전했다. 자신에 대해서든 무엇에 대해서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

그는 무사히 신원이 복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아, 그렇군요.’ 하며 턱을 긁적였다. 자기 일이라는 자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와 밀리엄은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침대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채, 밀리엄이 건넨 서류를 가만히 읽어 내려가는 제임스를 잠자코 지켜보았다.

주름진 미간. 딱딱하게 닫힌 입매. 종이 위의 글자들을 내려다보는 제임스의 시선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그런 제임스를 바라보는 밀리엄의 눈빛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은 서류를 절반 정도 읽은 제임스가 별안간 그것을 내려놓은 순간까지 이어졌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종이뭉치가 이불 위로 내려앉았다.

제임스는 피곤한 사람처럼 미간을 꾹꾹 눌렀지만, 단순히 눈이 피로해서 읽기를 멈춘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서류 위로 손을 내린 그는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듯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고개는 밀리엄 쪽으로 돌아간 채였다.

돌아간 고개 탓에 표정을 살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종이 위에 자리한 손가락들이 결연하게 말려 들어가 단단한 주먹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저, 켄트우드 씨.”

이어진 목소리는 조금 주저하는 것처럼 들렸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지?

나는 제임스 로웰의 뒤통수를 지나, 그의 부름에 눈썹을 치켜뜬 밀리엄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밀리엄은 잠시 침대 위의 서류뭉치를 일별했다가, 제임스를 곧게 응시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윽고 제임스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저는… 기억을 되찾을 단서가 있다면 그게 뭐든 간절히 붙잡고 싶습니다.”

“나도 당신이 하루빨리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협력할 생각으로 그 서류도….”

“닥터 스티븐스는 제가 켄트우드 씨와 마주쳤을 때 겪은 두통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시더군요.”

순간 밀리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눈앞에서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하다 정신을 잃던 제임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렸고, 밀리엄 또한 나와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으리라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솔직히 켄트우드 씨를 보고 있자면 자꾸만 무언가 떠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전해 듣거나, 종이 위의 자신을 읽어내려가는 정도로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말로도 들렸다.

하지만, 그래서 뭘 어쩌고 싶다는 말인가?

내가 고개를 기울이고 밀리엄이 미간을 찌푸리는 사이, 제임스 로웰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꺼내기 조심스러운 말을 어떻게든 미루기 위해 빙빙 돌아가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니까, 혹시 제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에 저의….”

“로웰 씨, 나도 인내심의 한계라는 게 있습니다만.”

“―존재 자체를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게 아니라면.”

냉랭하게, 조금은 성가신 듯 굳어 있던 밀리엄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은 그때였다.

그는 설마 하는 듯한 표정으로 제임스를 향해 눈을 홉떴다.

화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마주하기 껄끄러운 얼굴이었기 때문에 나는 슬쩍 고개를 내렸고, 종이 위에 올려진 제임스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주먹 아래에서 종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제임스 로웰의 꾹 눌린 듯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려왔다.

“당분간… 정말 당분간만이라도, 댁에서 신세를 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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