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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33화 (33/121)
  • 33화. 레드 헤링 (6)

    나는 손안의 명함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밀리엄에게 도로 건네주었다.

    “안젤리나 캠벨 부인이 패트릭 헤이즈 씨한테 했던 의뢰가 뭔지 알고 싶은 거군요.”

    내게서 명함을 받아 다시 일기장 사이에 끼워 넣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어딘지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실소를 터뜨렸다.

    “그게 뭐였든 이제 와 알아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뭐라도 알아두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요.”

    공허한 금색 시선이 자주색 일기장 위로 애틋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그런 그를 잠시 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밀리엄은 자신의 호기심을 두고 ‘괜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겠지. 지푸라기든 실낱이든 잡아보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하여, 무엇 하나 확신할 것이 없는 지금이기 때문에 더더욱.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지, 과연 돌아갈 수 있기는 한 것인지, 이야기가 대관절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는 내가 그렇듯이.

    덩달아 씁쓸해지는 기분을 한숨에 실어 보내고서,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의욕적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좋아요, 그럼. 동생분 이름이 남아 있는 서류가 있는지 같이 한번 찾아보죠.”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알고 싶어서 견딜 수 없을 정도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경험상 ‘괜한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치고 정말 하찮은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기도 하고….

    나는 어째선지 내 얼굴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쳐다보는 밀리엄에게 샐쭉 웃어 보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밀리엄은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사람처럼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꾹 닫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갑작스럽기만 한 웃음이어서 나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소파 등받이에 한 손을 짚은 그가 웃음기 어린 자기 얼굴을 다른 쪽 손으로 쓸어내리는 모양새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어느 포인트에서 웃는 건지 좀 알려줄래요…?”

    “아, 미안해요. 조금 신기해서.”

    웃긴 것도 아니고 신기하다니, 더 아리송한 말이라 나는 도리 없이 밀리엄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간에,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초승달처럼 보기 좋게 휘어진 눈매가 웃고 있는 사람의 그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얼음이라도 가져다 댄 양 머리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분명 웃는 낯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들지?

    뭐가 신기하냐고 물을 요량이었던 것조차 잊은 채 나는 어… 하고 말을 흐리며 멍청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베로니카.”

    그러고 있자니 갑자기 그가 나를 불러왔다. 왠지 조금 낮아진 듯한 목소리로.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고 싶어지는 마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어진 것은 조금 전보다도 훨씬 더 수수께끼 같은 말이었다.

    그래도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다시 한번 고개를 기울이며, 내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고민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명쾌한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고 싶어지는 마음? 그게 대체 뭐람.

    “글쎄요.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가정은 딱히 해본 적이 없는데, 음….”

    애당초 고의성이 없으니까 실수라고 부르는 것 아닌가? 되게 난해한 질문이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제법 열심히 고민을 거듭했다.

    정말이지 뜬금없는 화제라 당황스러웠지만, 물어오는 밀리엄의 표정이 원체 진지했던 터라 나도 가능한 한 제대로 된 답을 주어야겠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에 감긴 붕대 끄트머리를 슬슬 긁어가며 마침내 도달한 결론은,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시시한 것이었다.

    “반복하고 싶어질 정도라면, 사실은 그걸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닐까요?”

    싱겁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정말로 그것 이외엔 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결과가 영 좋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실수였다고 인정했을 뿐이지, 결국 그게 옳았다고 생각하니까 다시 같은 일을 하고 싶어지는 게 아니겠냐… 대충 그런 의미로 한 말인데.

    대답을 들은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억울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동요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뭔가 깨달은 듯 보이는 모호한 시선.

    뭐, 뭐야. 왜 저렇게 보지?

    괜히 겸연쩍어진 나는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며 손가락으로 턱을 긁적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대화가 이어지지 않아서 내가 뭔가 말을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 즈음에야, 조금 전과 다름없이 착 가라앉아 있는 밀리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섭네요.”

    “……좀 전부터 되게 뜬금없는 거 알죠?”

    “당신이 하는 말마다 내가 얼마나….”

    무섭다는 사람치고는 평온한 얼굴로 알 수 없는 말을 이어가던 밀리엄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다고 느낀 순간, 덜컥 열린 문소리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휙 돌렸다.

    문간에는 빈손으로 문을 열고 들어선 조이가 서 있었다.

    순간 제게로 집중된 시선에 당황했는지, 조이는 얼떨떨한 얼굴로 나와 밀리엄을 번갈아 보다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제, 제가 혹시 방해를 했나요?”

    방해라니 뭘…… 아.

    순간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하얀 볼을 새빨갛게 물들인 조이의 얼굴을 보니 대충 감이 잡혔다.

    패트릭 헤이즈가 따로 귀띔을 해주지 않았다면, 저 애는 나랑 밀리엄이 교제 중인 사이라고 알고 있겠구나.

    나는 내 거짓말에서 비롯된 조이의 오해를 이제라도 바로잡아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조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조이. 그게 사실은,”

    “조금쯤은 방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삐걱삐걱 고개를 돌려 밀리엄을 올려다보았다.

    언제 진지하고 아리송한 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냐는 듯, 거짓말처럼 말끔하게 웃음기만 남은 얼굴.

    남의 해명을 가로막는 농담 같은 한 마디.

    나는 눈을 도륵도륵 움직이며 필사적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밀리엄은 그런 나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또 다른 서류 더미를 향해 걸어가버렸다.

    황망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니, 이게 끝이야?

    말을 하다가 마는 게 어디 있어!

    좀 전의 그게 사실은 다른 사람이 들으면 안 되는 은밀한 대화였는데 나만 몰랐던 건가?

    내가 하는 말마다 자기가 얼마나 뭘 어쨌는데! 궁금하게 이러기냐!

    나는 밀리엄의 뒤통수를 원망스럽게 쏘아보았지만, 그는 어느새 집어올린 서류철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돌아선 등은 완고했고, 결국 포기한 것은 내 쪽이었다.

    나는 조금 전보다도 훨씬 빨개진 얼굴로 ‘저도 참 눈치가 없었네요, 식료품점에라도 들렀다 올걸! 지금이라도 다시 나갈까요?’ 따위의 말을 하며 방방 뛰는 조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해준 뒤, 패트릭의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 못다 들은 말은 나중에 짤짤 털어가며 추궁하는 걸로 하고, 일단은 같이 찾아주기로 한 것부터 찾아보자.

    그렇게 책상을 빙 돌아 안쪽으로 들어간 나는 우선 서랍들부터 전부 열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서랍엔 안 쓴 메모지며 필기구 따위가 정신없이 쌓여 있었는데, 아무리 손을 넣고 휘저어보아도 시스템창은 뜨지 않았다.

    물론 안젤리나 캠벨의 의뢰내용을 찾는 것이 시나리오 전개상의 이벤트가 아닐 가능성… 다시 말해 불필요하기 때문에 시스템이 단서에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런 관점에서 보더라도 서류 한 장 잡히지 않는 첫 번째 서랍은 더 뒤져봐야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조이, 메모지나 필기구 같은 건 그냥 버리면 될까?”

    “아, 네! 제가 나중에 한꺼번에 버릴게요!”

    어쨌든 일차적으로는 사무실 정리를 도와주러 온 사람으로서 착실하게 결정권자의 의사를 물은 뒤 첫 번째 서랍을 닫은 나는 곧장 두 번째 서랍을 당겼다.

    끼익, 소리를 내며 불안하게 열리던 서랍은 도중에 덜컹 걸려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안에 뭔가 걸린 것 같은데…….

    나는 한 뼘 남짓 열린 서랍 틈으로 팔을 뻗어 안쪽을 힘겹게 더듬었다.

    서랍 깊숙한 구석 위쪽에서 두툼한 종이 뭉치의 끝부분이 만져졌다.

    위치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서랍이 멈춰 선 원흉은 거기에 있는 듯했다.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는 베로니카의 팔을 열심히 뻗어 종이 뭉치를 붙잡은 나는 그대로 힘을 주어 그것을 빼냈다.

    반동 탓에 뒤로 자빠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기는 했으나, 결과는 어찌어찌 성공이었다.

    “베로니카?”

    쿵 소리를 듣고 다가오는 밀리엄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우선 손에 들린 전리품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그냥 종이 뭉치인 줄 알았던 것은 다시 보니 모래색 서류철에 감싸져 있는 두꺼운 파일이었다.

    [ ‘패트릭 헤이즈의 조사 자료’ 를 획득했다. ]

    그 쓸모를 온몸으로 증명하듯이, 시스템 문구가 떠올랐다.

    겉면에는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일단 표지를 넘겼다.

    그러자 제일 앞장의 상단에 쓰인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안젤리나 캠벨’

    아무래도 제대로 찾아낸 모양이었다.

    그렇게 의뢰인의 이름과 간단한 신상을 적어둔 듯한 부분을 지나쳐 그 아래 적힌 내용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어느 틈엔가 뒤쪽까지 걸어온 밀리엄이 책상 모서리를 턱 짚으며 내게로 허리를 숙였다.

    “베로니카, 방금 전엔 무슨…….”

    “아, 별거 아니었어요. 그것보다 이거요. 여기 캠벨 부인 이름이 적혀 있는……데.”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밀리엄에게 내 발견을 알리던 나는, 아마도 의뢰내용으로 추정되는 대목의 첫 단어에서 시선과 말을 동시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메이슨 교단’

    [ 키워드 ‘안젤리나 캠벨의 의뢰’ 획득 ]

    지나치게 낯익은 단어 위로, 야속한 시스템 문구가 나타났다가 스르륵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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